鶴山의 草幕舍廊房

Faith - Hymn

은혜의 강에서 헤엄치라!

鶴山 徐 仁 2016. 7. 28. 09:41
7월 28일 (목)
은혜의 강에서 헤엄치라! - 겔 47:1-5
   
 

1. 그가 나를 데리고 성전 문에 이르시니 성전의 앞면이 동쪽을 향하였는데 그 문지방 밑에서 물이 나와 동쪽으로 흐르다가 성전 오른쪽 제단 남쪽으로 흘러 내리더라
2. 그가 또 나를 데리고 북문으로 나가서 바깥 길로 꺾여 동쪽을 향한 바깥 문에 이르시기로 본즉 물이 그 오른쪽에서 스며 나오더라
3. 그 사람이 손에 줄을 잡고 동쪽으로 나아가며 천 척을 측량한 후에 내게 그 물을 건너게 하시니 물이 발목에 오르더니
4. 다시 천 척을 측량하고 내게 물을 건너게 하시니 물이 무릎에 오르고 다시 천 척을 측량하고 내게 물을 건너게 하시니 물이 허리에 오르고
5. 다시 천 척을 측량하시니 물이 내가 건너지 못할 강이 된지라 그 물이 가득하여 헤엄칠 만한 물이요 사람이 능히 건너지 못할 강이더라

 
   
   
 

이제 장마도 거의 끝나고 본격적인 무더위와 함께 휴가철이 시작됐습니다. 올해는 동해나 서해, 제주도 같은 유명 피서지 보다는 <성전의 ... 문지방 밑에서 물이 나와 동쪽으로 흐르다가 성전 오른쪽 제단 남쪽으로 흘러내리는>(1절) <은혜의 강에서> 헤엄쳐 보십시오.

은혜의 강물이 왜 성전 문지방 밑에서 흘러나올까요? 성전에는 예배가 있고, 말씀이 있고, 기도가 있고, 감사와 찬양이 있지 않습니까? 성전이 은혜의 강물의 발원지라는 말씀을 이 시대에 적용한다면 교회가 바로 은혜의 원천이라는 뜻이 됩니다. 그런데 문제는 누구나 똑같은 수위의 은혜를 체험하는 것은 아니라는 겁니다. 우리는 같은 교회 같은 환경에서 신앙생활을 하지만 각자가 느끼는 은혜의 정도나 체험하는 수심은 다 다르다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발목>(3절), 또 어떤 사람은 <무릎>과 <허리>(4절), 그리고 어떤 사람들은 그야말로 헤엄을 쳐야 할 만큼의 은혜(5절)를 체험합니다. 자고로 은혜의 강은 그 수심이 깊어야 합니다. 그래서 마음껏 헤엄치며 그 풍성함을 만끽해야 합니다.

<내 주 하나님 넓고 큰 은혜는 저 큰 바다보다 깊다.
너 곧 닻줄을 끌러 깊은 데로 저 한가운데 가보라.

많은 사람이 얕은 물가에서 저 큰 바다 가려다가
찰싹거리는 작은 파도보고 마음 약하여 못가네

언덕을 떠나서 창파에 배 띄워
내 주 예수 은혜의 바다로 네 맘껏 저어가라.>(새찬송가 302장 1,3절)

주님은 <누구든지 목마르거든 내게로 와서 마시라 나를 믿는 자는 성경에 이름과 같이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오리라>(요 7:37-38)고 하셨고, 그것은 곧 <그를 믿는 자들이 받을 성령을 가리켜 말씀하신 것이라>(요 7:38)고 했습니다.

부디 성령 충만하셔서 이 무더운 삼복더위에 은혜의 강에서 마음껏 헤엄치는 가장 아름다운 피서를 즐기시길 바랍니다.

 
   
   
 

-지금 당신이 느끼시는 은혜의 강의 수위는 어디쯤 입니까?
-성전 문지방 밑에서 흘러나오던 은혜의 강물이 많이 고갈되었다면 그 원인이 뭐라고 생각하십니까?
-당신에게는 지금 깊은 은혜의 강에서 헤엄치고자 하는 절실한 영적 갈망이 있습니까?

 
   
   
 

주님, 저희는 늘 얕은 물가에서만 놀 뿐 저 깊은 은혜의 강에서 헤엄치려 하지는 않습니다. 안일하고 나태하고 변화를 두려워 하고 믿음이 약해서 그렇습니다. 발목이나 무릎, 허리 수준으로 만족하지 않고 헤엄 칠 만큼의 풍성한 수위에서 온몸으로 주님의 은혜를 느끼며 감사하는 저희들 되게 해 주시옵소서. 항상 성령 충만하게 하사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넘치게 해 주시옵소서. 올 여름에도 결코 목마르지 않고 날마다 시원한 생수의 은총을 누리며 살게 해 주시옵소서.

 
   
     
 

신앙 안에서 친교

친교는 교회의 존재 이유 중 하나인 것이다. 신약성경에 제시된 교회는 증거와 봉사와 친교에 의해 운영되었다. 이 세 가지는 진정한 교회가 되기 위한 필수 요건이다. 교회는 설교하고 가르쳐야만 한다. 그리고 그리스도께서 보여 주신 모범을 따라 봉사해야만 한다. 친교는 효과적인 복음 선포와 적절한 봉사를 위한 필수 요건이다. 코이노니아는 포도원에서 많은 열매를 맺으면서 영속하는 교회이다. 코이노니아는 “연결하고 상합하여” 사랑 안에서 스스로 세움으로 성령이 주신 개인적 은사를 이 땅 위에서 나타내는 몸이다. 종종 교회의 설교와 봉사는 단지 진정한 코이노니아가 결여되어 있다는 이유 때문에 큰 고통을 겪어 왔다.
-하워드 스나이더의 [새 포도주는 새 부대에] 중에서-

 
     
 
   
 


신앙의 친교는 들은 말씀을 삶속에서 나눔으로 은혜를 배가 되게 합니다. 온전한 교제를 통해 복음을 삶으로 살아내는 나눔이 됩니다. 신앙의 친교가 세상의 말을 나누는 일로 왜곡되거나 그렇게 될까 염려하여 친교를 없애는 것은 본질로서의 교회의 요소를 막는 것입니다. 서로 나눔을 통해 성숙해지고, 서로 친교를 통해 세상으로 나갈 준비를 합니다. 성도의 삶은 들은 말씀을 가지고 세상 속에 바로 접목할 수 없습니다. 우리 안에 먼저 나눠지는 은혜가 있을 때, 세상 속에서 말씀대로 살아낼 수 있습니다.

 
     
       
 

단상[斷想] - 694

 

낯선 계단
툭툭 성큼
한 걸음씩

 
       
 
   
  주신장로교회 황요한 목사
  전적 무능력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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