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에서] 파란 눈의 신공항 判官
입력 : 2016.06.24 05:50
지난 21일 오후 3시 여의도 정치권은 숨죽이며 낯선 프랑스인 입만 바라봤다. 장 마리 슈발리에 ADPi(파리공항공단 엔지니어링) 수석 엔지니어는 동남권 신공항 용역 결과를 발표했다. 이 프랑스 남자는 모국어가 아닌 영어로 결과를 설명했다. 한국 정부의 국책 사업을 결정하는 현장에 통역이 등장했다.
부산 가덕도도 경남 밀양도 아닌 김해공항 확장. 노무현·이명박·박근혜 세 대통령과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전 대표 등 유력 정치인들의 지난 10년 정치 이력과 함께 돌고 돌았던 신공항 문제는 프랑스인 입을 통해 '없던 일'로 결론 났다. 한쪽에서는 "우롱당했다"는 성토가 이어졌고, 다른 한쪽에선 "그나마 다행"이라며 안도했다.
민간 회사에 다니는 슈발리에와 그의 조직이 결정한 것은 신공항 위치만이 아니었다. 한국 정치의 미래까지 그의 입에 좌우될 형편이었다. 발표 직전까지 정치권은 공항의 안전성, 환경성, 성장 가능성 같은 과학적 데이터에 관심 두지 않았다. 대신 선거의 유불리를 따지는 표 계산기만 쉴 새 없이 돌렸다. 가덕도로 결정 나면 대구·경북이 요동치며 여권(與圈)이 타격을 입고, 밀양이 되면 부산이 야당(野黨) 강세 지역으로 굳어질 것이라는 관측이 제기됐다. 입지 결정에 따른 '정계 개편 시나리오'까지 돌아다녔다. 외국 공항 전문가 입에서 "한국의 정치적 위험 요소도 후보지 선정에 반영했다"는 말이 나왔다.
그가 속한 회사는 지난 15년 동안 80여 나라에서 공항 프로젝트 700여 건을 수행해왔다고 한다. 이런 공신력 있는 외국 기관에 맡겨 국책 사업을 결정할 수도 있다. 우리 능력이 없어 그랬다면 마음이 편하겠다. 그러나 국토연구원 등 국내 기관들도 수차례 비슷한 연구를 수행한 적이 있다. 문제는 선정 능력이 아니라 그 후 정치와 지역 이익이라는 최악의 조합이 뿜어댈 '맹독'에 버틸 면역력이 우리에겐 없다는 것이다. "어떤 결론이 나든 욕 먹을 테니 외국 기관에 그 부담을 떠넘기자"는 발상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이명박 정부에서 일했던 천영우 전 청와대 외교안보수석은 2011년 신공항 백지화 발표 이후 공군에 의뢰한 결과 기존 김해공항 확장이 불가능하지 않다는 결론을 얻었다고 한다. 신공항은 가덕도냐 밀양이냐 중 양자택일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는 "미신(迷信)이 사실을 제압하는 현실에선 국내의 어떤 실력 있는 기관이 나섰더라도 이해 당사자들이 결론을 인정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했다. 실력 부족이 아니라 '불신(不信) 사회'라는 여건이 외국의 '권위'를 빌리도록 강요했다.
이런저런 사정으로 외국에 책임을 떠넘겼더라도 공항 입지 결과 발표까지 외국인에게 맡겨야 했는지 의문이다. 정부는 그들에게 용역을 맡겼을 뿐이다. 그 결과를 바탕으로 정책을 결정하고 책임져야 할 당사자는 우리 정부다. 파란 눈의 '판관(判官)'에게 우리 미래까지 맡길 작정이 아니라면 슈발리에씨가 섰던 그 자리에는 국토부 장관이나 국무총리가 서야 했다.
이명박 정부에서 일했던 천영우 전 청와대 외교안보수석은 2011년 신공항 백지화 발표 이후 공군에 의뢰한 결과 기존 김해공항 확장이 불가능하지 않다는 결론을 얻었다고 한다. 신공항은 가덕도냐 밀양이냐 중 양자택일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는 "미신(迷信)이 사실을 제압하는 현실에선 국내의 어떤 실력 있는 기관이 나섰더라도 이해 당사자들이 결론을 인정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했다. 실력 부족이 아니라 '불신(不信) 사회'라는 여건이 외국의 '권위'를 빌리도록 강요했다.
이런저런 사정으로 외국에 책임을 떠넘겼더라도 공항 입지 결과 발표까지 외국인에게 맡겨야 했는지 의문이다. 정부는 그들에게 용역을 맡겼을 뿐이다. 그 결과를 바탕으로 정책을 결정하고 책임져야 할 당사자는 우리 정부다. 파란 눈의 '판관(判官)'에게 우리 미래까지 맡길 작정이 아니라면 슈발리에씨가 섰던 그 자리에는 국토부 장관이나 국무총리가 서야 했다.
[출처] 본 기사는 조선닷컴에서 작성된 기사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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