鶴山의 草幕舍廊房

Free Opinion

[넷향기] 박상희 소장의 "늘 수치심을 느끼는 사람" 외 1

鶴山 徐 仁 2015. 12. 9. 19:01
늘 수치심을 느끼는 사람
박상희

서양에서보다 동양에서 많은 병 중 하나가 대인공포증이다.
이 병은 사람들 앞에서 심하게 긴장을 하거나 불안해져서 될 수 있으면 대인 관계를 멀리하려는 병.
그런데 특별히 동양인 이 병이 많다는 것은 동양인이 잘 느끼는 수치감과도 연관시켜 설명할 수 있다.

수치심은 왜 생기는 것일까?
그 이유 중 하나는 대인관계나 상대의 기분을 지나치게 의식하기 때문이다.
서양사람들은 다른 사람의 시선을 과도히 신경 안쓰는 경우가 많지만 동양인은 다른 사람의 시선과 판단에 대해서 매우 민감하다. 사회적인 문화차이가 있는 것이다.

또 한 가지는 가정에서의 개인 경험에서도 말미암을 수 있다.
어릴 때부터 주위로부터 충분한 애정이나 칭찬, 주목을 받아 자기애가 충족되어 있으면 자신만만하게 살아갈 수 있다.
하지만 만족스러운 자기애가 형성되어있지 못한 사람은 상대가 생각한 대로의 대응을 해주지 않으면, 경멸받았다거나 바보 취급 받았다고 생각해서 분노나 수치심을 느끼게 되는 것이다.

또한 외상이 되는 경험에서 발생할 수 있다. 충격적인 강한 수치심을 느낀 사람이 대인공포증으로 발전하는 것이다.
이런 경우 자신을 그대로 받아들이기보다는 다른 사람의 판단, 시선으로 자신을 평가한다.
자신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수 있는 있어야 한다. 다른 사람의 시선으로 자신을 바라보지 않아야 한다.





고수(高手)는 칼날을 보이지 않는다

박재희

포정해우란 고사성어를 아십니까? 포정이란 전국시대 백정이 (해우)기가 막히게 소를 잘 잡았다는데서 유래되는 이야기입니다.
어느 날 포정이 궁정에서 소를 잡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얼마나 소를 잘 잡았는지 포정이 칼을 움직이는 동작이 신기에 가까웠습니다.
그 모습을 본 문혜왕은 너무 감탄하여 포정에게 “어떻게 하면 소 잡는 기술이 이와 같은 경지에 이를 수 있는가?”이렇게 물었습니다.
포정은 칼을 놓고 왕에게 이렇게 말했죠.

“제가 처음 소를 잡을 때는 소의 겉모습만 보였습니다.
3년이 지나니 어느새 소의 겉모습은 눈에 띄지 않고 소의 내면이 부위별로 보이게 되더군요.
그리고 또 19년이 지난 요즘 저는 눈으로 소를 보지 않습니다.
마음의 눈을 뜨고 소의 살과 뼈 근육 사이에 틈새 속을 봅니다. 그리고 그 사이로 칼을 지나갑니다.
이런 기술로 아직 한 번도 칼질을 실수하여 살이나 뼈와 부딪힌 적이 없습니다.
솜씨 좋은 백정이 1년 만에 칼을 바꾸는 것은 칼을 가지고 소의 살을 베기 때문입니다.
평범한 백정은 월마다 칼을 바꾸는데, 이는 칼로 무리하게 뼈를 가르기 때문입니다.
그렇지만 제 칼은 19년이나 되어 수천 마리의 소를 잡았지만 칼날은 방금 숫돌에 간 것과 같습니다.
소의 뼈와 살 근육 사이에는 어쨌든 틈새가 있기 마련이고 그 틈새로 칼날을 집어넣어 소를 잡기 때문에 칼날은 전혀 무뎌지지 않는 겁니다.
이것이 19년이 되었어도 칼날이 방금 숫돌에 간 것과 같은 이유입니다. 이것이 저의 소를 잡는 방법인 것입니다."

《장자(莊子)》 〈양생주편(養生主篇)〉에 나오는 이야기입니다.
포정은 소 잡는 기술의 최고 경지에 오른 높을 고(高)자 손 수(手)자 고수입니다. 그는 소라는 동물의 이치를 체득하고 그 원리를 깨달은 백정이었던 거죠.
처음 백정이 되었을 땐 그저 소리만 요란하게 소를 잡겠다고 대들었을 겁니다.
그러나 오랜 시간과 노력의 결과로 경지에 오른 고수가 되었을 때 그는 소의 겉모습이 아닌 뼈와 살 사이에 있는 공간의 이치를 보았던 것입니다.
비록 소 잡는 일이든 어떤 일이든 경지에 오른 고수의 모습은 아름답습니다.

손자병법에서도 경지에 오른 장군의 모습에 대하여 자주 말하고 있습니다.
손자병법에서 말하는 고수의 모습은 이렇습니다.  

첫째 고수(高手)에게는 바람 같은 빠르기와 태산과 같은 무게가 있습니다.
전쟁에 임하여 병사들을 지휘하는 장군이 땀을 흘리며 쩔쩔맨다면 승리는 고사하고 병사들의 신뢰도 얻지 못할 것입니다. 태산과 같이 움직이지 않는 무게로 자리를 지키는 리더의 모습은 언제보아도 든든합니다. 또한 절박한 상황에서는 바람처럼 빠른 판단력과 추진력은 산전수전(山戰水戰) 모두 겪은 리더에게서만 나오는 돌파력입니다.

일본 구로사와 아키라 감독의 영화 ‘가케무샤’에서 병사들을 지휘하는 다케다 신겐(武田信玄) 그가 앉은 자리 뒤 깃발에 보이는 손자병법의 명구는 고수의 모습을 단적으로 말해주고 있습니다.
其疾如風빠르기는 바람과 같고, 其徐如林천천히 움직이는 것은 숲과 같구나, 侵掠如火기습 공격은 불과 같고, 不動如山움직이지 않는 것은 마치 산과 같구나! 정말 믿고 따르고 싶은 리더의 모습입니다. 

둘째 고수는 자신의 칼날을 남에게 보이지 않습니다.
강태공. 낚시하는 사람이 아니라 주나라 장군이었습니다. 그 장군 강태공(姜太公)은 고수를 이렇게 표현하고 있습니다. “남과 다툴 때 번쩍거리는 칼을 쓴다면 진정한 고수가 아니다.(爭勝于白刃之口, 非良將也)”

하수들이나 싸울 때 번쩍거리는 칼을 들이대며 온 세상 사람들 모두 보란 듯이 싸웁니다.
그러니 아무리 승리를 해도 그 승리 뒤에는 갈등과 원망이 남을 수밖에 없는 거죠. 고수는 조용히 싸웁니다.
고수는 승리를 자랑하지 않습니다. 그러니 상대방이 원한을 가질 수 없는 거죠.
내가 이긴 사람이 자신의 패배를 인정 할 수 있게 만드는 것. 이것이 진정한 고수의 모습입니다. 

셋째 고수는 사람들의 환호와 갈채에 연연하지 않습니다. 자신의 갈 길을 자신이 직접 선택합니다.
손자는 이렇게 말합니다.
“내가 이룬 전쟁에서의 승리가 천하의 모든 사람들이 칭찬하는 승리라면 최고 중의 최고의 승리는 아니다.(戰勝而天下曰善, 非善之善者也)"
고수는 다른 사람들의 환호를 받기 위하여 승리하려 하지 않습니다. 오직 나를 따르는 저 부하들의 안위를 걱정하며 전쟁에 나섭니다. 그의 마음속에는 군주의 칭찬이 아니라 병사들의 생사에 대한 염려로 가득 차 있기 때문입니다.

넷째 고수는 일반인의 상식을 뛰어넘는 비범함이 있습니다. 고수의 식견과 예측은 일반인들이 예측할 수 있는 수준을 넘어섭니다.
손자병법에 “전쟁의 승리를 바라보는 예측이 일반 사람들의 인식 수준을 못 넘어선다면 최고 중의 최고의 고수는 아니다.(見勝不過衆人之所知, 非善之善者也)”라는 구절이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고수는 자신의 전술을 병사들에게 일일이 설명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때로는 그의 안목과 식견을 이해 못하는 사람들에게 비난을 받기도 합니다.
그래서 리더는 언제나 고독하고 외롭습니다. 이 고독까지도 즐길 줄 알아야 진정 고수라고 할 수 있는 겁니다.

손자병법에서 말하는 고수의 모습. 때로는 바람 같은 빠르기와 태산 같은 무게, 칼날을 밖으로 보이지 않는 신중함, 사람들의 환호와 갈채에 연연하지 않는 소신, 일반인을 상식을 뛰어넘는 식견과 고독을 즐기는 여유, 병법에서 말하는 이런 고수의 조건을 들으시면서 여러분들은 과연 어느 정도 경지에 오른 고수이십니까?

인생을 살면서 포정이 소의 뼈와 근육과 힘줄 사이 빈 공간으로 칼을 지나가는 것처럼, 내가 어는 곳으로 가야할지 정확히 안다면 진정 삶의 고수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