鶴山의 草幕舍廊房

Free Opinion

[넷향기] 박재희 원장의 "혼돈의 미학"

鶴山 徐 仁 2015. 12. 2. 16:28

혼돈의 미학
박재희

우리가 사는 시대를 혼돈(混沌:chaos)의 시대라고 합니다. 일반적으로 무질서(disorder), 불확실성(uncertainty)이라고 표현되는 ‘혼돈’의 개념은 다양하게 사용되고 있습니다.

성경에는 창조주가 아직 분화되지 않은 무질서의 혼돈세계를 7일간에 걸쳐서 질서의 세계로 창조했다는 창조론이 있고, 현대 물리학에서는 세계를 질서가 아닌 혼돈을 통해 새롭게 규명하려는 시도가 있습니다.

중국인들이 아침마다 자주 먹는 음식으로 혼돈탕이 있는데 우리나라 물만두 탕과 비슷하여 이것저것 섞여있어 실체를 모른다는 뜻으로 이름 지어져 있습니다. 심지어 중국집 짬뽕의 어원이 혼돈에서 유래한다는 학설도 있습니다.

어쨌든 혼돈이란 개념은 무엇인가 정확히 논리적으로 설명되지 못하거나 마구 섞여 있는 불확실한 실체에 대한 개념으로 정의되어 있습니다.
우리가 경제나 정치 등 다양한 분야에서 혼돈이란 개념을 통하여 불확실한 현실과 미래를 설명하곤 합니다. 

혼돈이란 개념은 동양에선 도가철학에서 처음 사용된 개념입니다.
「장자(莊子)」7번째 편, 응제왕(應帝王) 마지막 부분에 나오는 혼돈의 원문은 이렇습니다.

‘남해의 왕 숙(?), 북해의 왕 홀(忽). 그리고 중앙의 왕 혼돈(混沌)이 있었습니다. (南海之帝爲? 北海之帝爲忽 中央之帝爲混沌).
남해의 왕 숙과 북해의 왕 홀은 자주 중앙 혼돈의 땅에 가서 서로 만났습니다. (?與忽時相與遇於混沌之地),
그런데 혼돈은 그들을 매우 잘 대접해 주었답니다(混沌待之甚善). 숙과 홀은 혼돈의 덕에 보답하려고 서로 의논을 하였습니다. (?與忽謀報混沌之德),
사람들은 모두 7개의 구멍이 있어 보고, 듣고, 먹고, 숨을 쉰다고 한다(人皆有七竅以視聽食息). 그런데 혼돈은 구멍이 없으니(此獨無有), 우리가 그 구멍을 뚫어줘 보답하자(嘗試鑿之).
그리고 날마다 한 개의 구멍을 뚫어주었고(日鑿一竅). 그리고 7일째 되는 날 혼돈의 몸에 7개의 구멍이 뚫리며 죽어버렸다는 내용입니다. (七日而混沌死).’

중앙의 왕 혼돈이란 존재는 그야말로 구멍도 질서도 없는 그런 존재였습니다. 그런데 인간의 관점에서 두 신은 호의를 베풀어 혼돈의 몸을 인간으로 만들려다 결국 혼돈 자체를 죽게 했다는 이야기입니다.
질서와 합리성보다 어쩌면 무질서와 모호성에서 더 큰 생명력을 볼 수 있다는 장자의 역설의 철학입니다. 
어쩌면 잘 정리된 인생의 길 보다, 무질서하지만 그 속에서 더 큰 자유와 생명력을 느낄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일본의 건축가 아시하라 요시노부의 <도쿄의 미학>이란 책의 부제는 ‘혼돈과 질서’입니다.
무질서 가운데 부드러운 질서가 있다는 전제아래 프렉탈 기하학을 토대로 도쿄의 무질서한 건축물 속에 내적 질서를 찾아보고자 한 혼돈을 주제로 한 건축학 책입니다.
무조건 밀어붙여 질서 정연한 뉴타운 개발만이 정답이 아니라, 어쩌면 도시 건축 역시 혼돈 속의 아름다움이 있다는 주장입니다.

미국의 버락 오바마 대통령은 혼돈의 대표적인 인물입니다.
흑인과 백인의 사이의 모호함, 하와이, 인도네시아, 시카고를 넘나들며 하버드대 유명인물과 시카고 빈민 변호사로서 그 혼돈스러움이 미국 정신이며 그 정신이 버락오바마를 대통령으로 만든 것입니다.

혼돈은 질서보다 경쟁력을 발휘할 때가 있습니다. 질서는 언제나 아름답고 우리를 안정시키는 것인가를 회의해 보고, 혼돈은 추하고 불안하고 제거해야 할 것인가에 대한 의문을 제기해 보아야 합니다.
짜여진 틀에 맞춰 학교를 다니고, 회사에 다니다가 거의 비슷한 질서정연한 인생을 사는 것이 과연 가장 아름다운 삶인가를 회의해 보아야 한다는 뜻입니다.
많은 경제 주체들이 부도와 파산이라는 혼돈의 위기에 처해있고, 인생도 도저히 논리적으로 정리할 수 없는 혼돈의 시대를 살면서 질서와 합리성만이 해답은 아닌 것 같습니다.

세상은 어쩌면 질서보다는 무질서 속에서 더욱 예쁜 꽃이 피고, 순종보다는 잡종이 훨씬 더 경쟁력이 있고, 확실함 보다는 혼돈 속에서 해답이 더욱 다양할 수 있습니다.
혼돈의 역설, 그 화두를 주제로 나는 얼마나 다이내믹한 인생을 살고 있는지 한 번은  돌아보아도 좋을 듯 합니다. 

 

 

 

 

 

창의성은 어디서 오는 것일까?

공병호

우리 모두는 어떤 면에서 보면 창작의 세계에서 살고 있습니다.
그림을 그리는 화가, 음악을 연주하는 음악가뿐만 아니고 상품을 만들고 기획을 하고 새로운 아이디어를 만들어 내고 비용을 절감할 수 있는 방법을 찾는 우리는 직업세계에서 모두 창작을 하고 있는 사람들입니다.
창작을 하는 사람들에 저도 반드시 포함이 돼야 합니다.
늘 새로운 콘텐츠를 만들어 내야하고 또 그 콘텐츠를 만들기 위해서 고심하는 삶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모든 창작을 하는 사람들은 두 가지 고민이 있습니다.
하나는 ‘내가 계속해서 창작을 할 수 있을까? 그런 능력을 계속해서 유지할 수 있을까?’ 라는 부분에 대한 고민이 무척 클 것입니다.
두 번째 고민은 ‘내가 창작해서 내놓은 상품이나, 서비스, 아이디어를 고객들이 어떻게 평가할 것인가?’에 대한 불안이 늘 있습니다.
자기 자신의 능력에 대한 불안감, 주변사람들이 나를 평가하는 평가에 대한 두려움이 항상 함께 존재한다고 봅니다.

자신에 대한 불확신함, 타인들로부터 오는 불확신함을 갖고 고심하기 때문에 한 전문가는 창작과 관련된 딜레마를 짧고 명료한 문장으로 이렇게 표현합니다.
“하나는 자신에 대한 두려움이고, 다른 하나는 타인을 자신을 어떻게 평가 할 것인가? 에 대한 두려움이다.”
그럼 우리는 이와 같은 두 가지를 제대로 발휘하기 위해서는 무엇을 갖추어야 할 것인가에 대해서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하나는 타고나는 것이고, 또 다른 하나는 후천적인 노력으로 볼 수 있습니다.
우선 타고나는 부분에 대해서 여러분들은 생각을 정리해 보시기 바랍니다. 타고나는 능력을 우린 ‘재능’이라고 부릅니다.

재능을 가진 사람들은 늘 창작에 성공할 수 있는가? 라는 질문에 대해서 여러 가지 이야기가 나올 수 있습니다.
재능과 관련된 한 전문가의 이야기를 들어 보시기바랍니다. 이 이야기는 데이비드 베일즈의 ‘아트 앤 피어(ART & FEAR, 예술가여 무엇이 두려운가)’라는 책에서 인용하는 문장입니다.
 
“수없이 많은 예술가들이 황금의 시기와 메마른 시기를 통해 방향과 재료, 주제를 끊임없이 수정해 가면서 힘겹게 자신의 예술을 가꾸어 나가고 있다.
물론 재능이 있다면 좀 더 빨리 시작할 수 있겠지만, 목적이나 방향감각이 없는 재능은 무의미할 뿐이다.
이 세상은 위대하고 눈부신 천성을 타고 태어났지만 아무것도 창조해 내지 못하는 사람들로 가득 차 있다.”

데이비드 베일즈는 재능은 ‘하나의 필요조건이 될 수 있겠지만 지속적인 창작을 만들어 내는대는 결정적인 부분이 될 수 없다는 것을 강조한 것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저는 지난 조직 생활을 되돌아보면 정말 재능이 뛰어나지만 아무것도 창조해 내지 못하는 사람을 저는 많이 봐왔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재능을 갖고 자신이 좋아하는 분야에 종사 할 수 있는 행운을 갖고 태어난 분들을 좋지만 설령 재능이 좀 뒤떨어지더라도 목적이나 방향성을 갖고 살아가는 것이 대단히 중요한 부분입니다.

저는 최근에 DNA 이중 나선 구조를 발견해서 노벨상을 수상한 왓슨씨의 전기를 읽어 볼 기회가 있었습니다.
그 전기에서 제임스 D. 왓슨(James Dewey Watson)씨는 아주 재미난 이야기를 합니다.
'집착의 대상은 두 가지도 많다!'
재능보다도 한 분야를 택해서 좀 더 우직하고 끈기 있게 자신의 분야를 갈고 닦는 필요성과 중요성을 강조한 부분이었습니다.

'재능은 유혹하는 덪일뿐이다.
마지막으로 재능에 관해 실질적으로 던질 수 있는 문제는 이러하다.
즉 누가 신경을 쓰는가? 누가 알아줄 것인가? 그리고 재능이 있다고 무엇이 달라지는가?
대답은 간단하다.
그 누구도 신경 쓰지 않고 알아주지 않는다는 점이다.'

재능이 있든 없든 창작을 하는 사람들은 끊임없이 무엇인가를 만들어 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작은 것이든 큰 것이든 관계없이 계속해서 무엇인가를 만들어내다 보면 좋은 것도 나올 가능성이 높다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