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곡동은 서울에 있는 달동네였습니다.
성냥갑만한 달동네 집들은 비바람에 뽑히지 않으려고
낮게, 아주 낮게 몸을 움츠리고 있었습니다.
산을 넘고 강을 건너고
때로는 사막이나 바다를 건너온 사람들이 난곡동에 모여 살았습니다 .
크리스마스 이브 날이었습니다.
아내와 함께 초등학교 1학년 딸아이를 데리고 난곡동에 갔습니다.
난곡동은 시장 하나를 사이에 두고
1970년대와 2000년대가 공존하는 곳이었습니다.
내가 어릴 적에 살았던 달동네와 조금도 다르지 않았습니다.
산동네로 오르는 입구에 슈퍼마켓 하나가 있었습니다.
종합선물, 참치캔, 김, 사과, 귤, 음료수, 사탕, 초콜릿, 빨간색 싼타 장화......
커다란 봉지로 여섯 봉지를 샀습니다.
내가 두 봉지를 들었고 아내가 두 봉지를 들었습니다.
가벼운 두 봉지는 딸아이가 양쪽 손에 들었습니다.
가파른 언덕 길을 20분이 넘도록 걸었습니다.
아내와 나는 입속으로 콧속으로 훅훅 숨을 고르며
허청허청 언덕 길을 올랐습니다.
팔도 아프고 다리도 아프다고 칭얼대는 딸아이에게
다 왔다고 다 왔다고 조금만 더 가면 된다고 거짓말도 했습니다.
술 취한 아저씨가 유행가 가락을 구성지게 부르며
달빛 쏟아지는 언덕을 비틀비틀 오르고 있었습니다.
동네 사람들이 함께 쓰는 공동 변소가 여기저기 보였습니다.
옹색한 전파사 안에는 먼지 앉은 고물 TV가 가득했고,
때 묻은 마네킹이 서늘한 얼굴로 서있는 허름한 양품점도 있었습니다.
삼천리 연탄, 대성 연탄이라고 써 붙인 연탄집도 있었습니다.
고샅고샅 낮은 창가에는 백열등 불빛이 호박꽃처럼 환했습니다.
고단한 삶도, 심연도, 뼈아픔도, 쓰라림도 모두가 노란 불빛이었습니다.
그 조그만 불빛을 지키기 위해서
세상의 비바람과 싸워야하는 사람들의 비의가 나를 늘 숙연하게 했습니다.
성막 교회는 산동네 가장 높은 곳에 있었습니다.
성막 교회 지붕에는 십자가가 없었습니다.
미닫이 유리문에 십자가가 예쁘게 그려져 있었습니다.
유리문을 다르르 열고 교회로 들어갔습니다.
"목사님, 저희들 왔습니다."
방 문 앞에 쪼그려 앉아 구두를 닦고 있던 목사님이 우리를 반겨주셨습니다.
"연락도 없이 늦은 저녁에 왠 일이세요. 어서 들어오세요."
붉게 녹슨 난로 위에 보리차가 달그락달그락 소리를 내며 끓고 있었습니다.
순례자처럼 서있는 낡은 냉장고는
윙윙윙 고추잠자리 노래를 부르고 있었습니다.
간장, 된장, 고추장, 소금, 커피, 설탕이
방 한쪽에 꼬마병정처럼 서있었습니다.
방이 부엌이었고, 부엌이 방이었습니다.
방이 예배당이었고, 예배당이 방이었습니다.
누렇게 색이 바랜 냉장고 옆 면에 매직으로 써놓은 성경말씀이 있었습니다.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저희 것임이요.
애통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위로를 받을 것임이요.
< 마태복음 5장 3절~4절 말씀>
옆에 딸려 있는 조그만 방에서
어린 아이들 웃음소리가 까르르까르르 뒹굴고 있었습니다.
목사님 자녀들과 그 동네에 사는 어린 아이들이었습니다.
엄마는 없고 아빠는 지방으로 일을 나가서
혼자 지낼 수 없는 아이들도 있었고, 엄마 아빠가 없는 아이들도 있었습니다.
산나물 같은 웃음을 지으며 사모님이 커피를 내오셨습니다.
"죄송해서 어쩌죠? 갑자기 오셔서 드릴 게 커피 밖에 없어요."
미안해 하시는 사모님 때문에 커피를 꿀떡꿀떡 마셨습니다.
"오늘은 산타클로스로 오셨군요.
내일 아침에 우리 아이들이 얼마나 좋아할까요."
밤 10시가 지날 무렵, 성막 교회를 나왔습니다.
버스를 타기 위해 산동네 위로 나있는 도로로 올라갔습니다.
버스 정류장으로 가는 길에 백열등 환한 포장마차가 있었습니다.
"배고프다. 그치?"
도깨비방망이를 두드리며 아내와 나는 여기저기 주머니를 뒤졌습니다.
천 원 짜리 몇 장이 해죽해죽 웃으며 주머니 밖으로 나왔습니다.
포장마차로 들어갔습니다.
우동 하나를 시켰습니다.
"나, 오뎅 좋아하는데. 나, 오뎅 좋아하는데."
어린 딸아이가 눈치도 없이 자꾸만 오뎅을 졸랐습니다.
후덕하게 생기신 아주머니는 막대기 오뎅 하나를 딸아이에게 주셨습니다.
"밤이 늦었으니까 꼭꼭 씹어 먹어라. 크리스마스 선물이다."
아주머니는 따스한 눈빛으로 딸아이를 쓰다듬어주셨습니다.
한참을 기다린 후에 집으로 가는 버스를 탔습니다.
딸아이는 클레멘타인을 부르다가 내 품에서 잠들었습니다.
어두운 차창밖으로 지나온 시간이 불꽃처럼 지나갔습니다.
두 시간을 덜컹대고나서 집에 도착했습니다.
잠자리에 들었지만 말똥말똥 잠이 오지 않았습니다.
늦은 커피를 마신 탓이었습니다.
요 위에 누워 호박처럼 이리저리 뒹구는데
창밖에서 은은한 노랫소리가 들렸습니다.
교회 청년들이 부르는 새벽송 소리였습니다.
저 들 밖에 한밤중에 양 틈에 자던 목자들
천사들이 전하여 준 주 나신 소식 들었네
노엘 노엘 노엘 노엘 이스라엘 왕이 나셨네.
눈물이 나왔습니다.
삶의 켜켜마다 불었던 비바람 때문이었습니다.
달개비꽃처럼 멍든 여린 마음 때문이었습니다.
가난하고 비루했던 삶이 내 가슴에 만들어 놓은 비밀 때문이었습니다.
살다가보면 마음 아픈 날이 있습니다.
하지만 바람부는 곳에 지어놓은 까치집은 바람에 무너지지 않습니다.
우리들의 삶도 마찬가지입니다.
여러분께 아픔이 있더라도 잘 견뎌내시기를 바랍니다.
아픔은 길이 됩니다. 슬픔도 길이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