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인이 가르치는 韓國史, 명강의 반열에 오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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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4.09.27 06:17
[건국대 '베스트 교수'에 세차례나 선정된 쑨양훙]
세계정세와 함께 한국사 풀고 좌·우 뛰어넘는 객관적 해석
수강생들 "신선한 충격"
-신채호 선생에 반했다는 쑨 교수
"중국은 역사교육 중시하는데 한국은 필수과목 아니라 놀라"
여느 대학마다 '명강의'로 꼽히는 수업이 있다. 서울 건국대에선 민동기 교수의 재정학·경제학원론, 강황선 교수의 행정학 강의 등이 유명하다. 입소문 자자하기로는 국제학부 쑨양훙(孫艶紅·36) 교수의 강의를 빼놓을 수 없다. 그는 2009년, 2011년에 이어 지난 학기까지 학생들이 뽑은 '베스트 티처(best teacher)'에 선정됐다. 올해로 14년째인 이 대학 베스트 티처에 3번이나 선정된 교수는 손으로 꼽을 정도고, 외국인 중에선 그가 처음이다. 조선족이 아닌 중국인인 그가 맡고 있는 과목은 뜻밖에도 '한국사'다. 국내 대학에서 한국사를 가르치는 중국인은 그가 유일하다.
쑨 교수는 2009년부터 건국대 강단에 섰다. 첫 강의 시간 한국사 교수가 중국인이라는 걸 알고는 학생들은 당혹스러워했다. 그가 "중국에선 고구려를 지방 정권이라고 주장하기도 한다"고 말하자 한 학생은 강의가 끝난 뒤 바로 수강을 철회했다. 학과 사무실엔 "왜 중국인이 한국사 수업에서 중국을 언급하느냐"는 항의가 들어왔다.
쑨 교수는 2009년부터 건국대 강단에 섰다. 첫 강의 시간 한국사 교수가 중국인이라는 걸 알고는 학생들은 당혹스러워했다. 그가 "중국에선 고구려를 지방 정권이라고 주장하기도 한다"고 말하자 한 학생은 강의가 끝난 뒤 바로 수강을 철회했다. 학과 사무실엔 "왜 중국인이 한국사 수업에서 중국을 언급하느냐"는 항의가 들어왔다.
- 건국대 학생들이 베스트 교수로 뽑은 쑨양훙 교수가 23일 건국대 강의실에서 한국사를 가르치고 있다. 지난 학기 강의 평가에서 100점 만점에 95.31점을 받은 쑨 교수는 외국인 교수 가운데 처음으로 베스트 교수에 세 번 선정됐다. /주완중 기자
그는 학생들의 우려가 '편견'임을 강의로 증명해나갔다. 수강생들 사이에서 '지금까지 배웠던 국사와는 다르다'는 평가가 나오기 시작했다. 사학과 김종혁(27)씨는 "예컨대 단군조선을 배울 때 교수님은 중국에선 '기자조선설(說)을 주장한다'고 설명한다"고 말했다. "매번 '아 저런 시각도 있구나'라고 생각하면서 더 객관적으로 역사를 볼 수 있어요." 쑨 교수의 수업엔 늘 세계지도가 등장한다. 한국사는 동시대 세계정세와 함께 이해해야 한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매 학기 첫 수업 땐 "내 말도 100% 믿지 마라. 역사는 살아 있는 것이고 논쟁을 통해 발전한다. 같은 공간에 살아도 서로 다르게 볼 수 있다. 젊은 여러분은 다양하고 넓은 안목으로 보려고 항상 노력하라"고 주문한다.
학생들이 공통적으로 꼽는 쑨 교수 강의의 또 다른 장점은 한국 현대사에 대한 객관적 해석이다. 현대사는 한국 안에서도 좌·우에 따라 해석이 첨예하게 갈리지만, 쑨 교수는 양쪽 입장을 초월한다는 것이다. 신산업융합학과 이명성(26)씨는 "이승만 대통령을 설명할 때 가장 인상 깊었다"고 말했다. "우리는 한쪽은 장점만 다른 한쪽은 단점만 말하잖아요. 교수님을 통해 처음으로 우리나라 초대 대통령을 객관적으로 평가할 수 있었어요." 쑨 교수는 "소위 말하는 '뉴라이트', '좌편향' 책 가리지 않고 다 본다"고 말했다. "저는 한국사에 선입견이 없잖아요. 한국인들은 커가면서 자기도 모르게 좌파가 되고 우파가 되잖아요. 선거 때도 공약은 안 보고 빨간색 당인지, 파란색 당인지만 보고 찍고요. 제게 그런 건 없다는 거죠."
중국 창춘(長春)이 고향인 쑨 교수는 옌볜대 사학과를 나와 국민대에서 석·박사를 했다. 그는 "한국 문화를 지키며 사는 중국 조선족의 정체성에 호기심을 느꼈다가 한국 역사에 빠졌다"고 했다. 역사학도가 된 그를 사로잡은 건 한국의 독립운동가들이었다. 쑨 교수는 "중국에서 활동했던 독립운동가들의 회고록을 연구하면서 크게 감동했다"고 말했다. "어려운 환경 속에서 개인보다 민족을 위해 몸 바친 사람들, 민족의 역사를 찾으려고 했던 사상가이자 역사가였던 신채호·박은식 선생 같은 분들의 정신을 본받고 싶다고 생각했습니다."
그가 한국사를 공부하며 가장 충격받은 대목은 임진왜란이다. "중국에선 명나라가 한국을 도와줘서 임진왜란에서도 이겼다고 보는데 한국에선 명나라는 한 게 거의 없고 이권(利權)을 챙기려고 개입해서 조공만 많이 받아갔다고 보는 걸 알고 깜짝 놀랐어요." 쑨 교수는 "그때가 한국 사회를 이해하게 된 계기가 됐다"고 말했다.
그가 한국 학생들을 보며 매우 놀란 건 한국사를 필수로 안 배운다는 것이었다. "교육과정의 문제더군요. 중국에선 중·고등학생 때부터 역사 공부를 꾸준히 해요. 중국은 역사 교육을 중시하지요." 또 한 가지 차이점. "한국 학생들은 성실하고 성적이 좋지요. 그런데 아는 것이건 모르는 것이건 대답을 안 해요. 중국 학생들은 모르는 것이라도 대답을 잘하지요. 하하."
쑨 교수의 수업에선 금기가 있다. 싸움이 날 수 있는 민감한 문제는 언급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예컨대 동북공정 같은 것이다. "감성적으로 접근하기 쉬운 문제죠." 베스트 티처인 그도 평점이 낮은 게 있다. 발음이다. "매일 출퇴근 때 한국 라디오를 들으며 따라 하고 거울 보고 발음 연습, 녹음기로 수업 내용을 녹음해 분석도 하지요." 국립민속박물관 학예사인 한국인 남편과 다섯 살, 세 살 아들을 둔 쑨 교수는 "한국 사회가 너무 극단적으로 가고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다른 건 몰라도 자기 좋아하는 얘기만 하고 싫어하는 것 욕하다가 끝나는 교수, 10년째 강의 노트가 똑같은 교수는 안 되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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