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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풍이 몰아치고 악조건이 다가와도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는 항상 기쁨이 넘쳐야 한다. 주님을 영접하여 하나님의 자녀가 된 기쁨, 주님을 섬기며 순종하는 기쁨, 주님의 남은 고난에 참여하게 된 기쁨, 주님이 맡겨 주신 사명을 감당하는 기쁨, 내게 허락하신 가정과 교회와 사업과 나라와 민족에 대한 기쁨…. 예수님 안에서 주님의 은혜로 나타나는 웃음은 우리의 영혼에서 우러나오는 기쁨의 밝은 웃음이다. 믿음의 삶이 깊을수록 영적인 기쁨도 풍성해질 것이다. 삶에 광풍이 몰아치고 어떤 악조건의 괴로움이 다가와도, 복음의 기쁨과 구원의 기쁨을 누리면 참 평안이 있다. -용혜원 목사의 ‘우리가 서로 기뻐하자’에서-
예수 그리스도만 바라보는 온전한 믿음에서 샘솟는 기쁨은 환경을 초월한 진정한 주 안의 기쁨입니다. 이 기쁨은 하나님의 은혜로 이루어진 기쁨입니다. 필립스 부룩스는 “우리가 서로 기뻐하자! 하나님께서 우리를 가장 훌륭한 사람으로 만드셨으며, 가장 행복한 사람으로 만드셨으며 진리의 선포자로 만드셨기 때문이다”라고 말했습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기쁨과 웃음으로 살아야 합니다. 이 놀라운 구원의 소식을 전하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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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 김옥엽 국제펜클럽 회원 순수문학인협회 상임 이사 크리스챤문학상 수상 대한예수교장로회 숭인교회 유병수 담임목사 사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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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께서 건지셨나이다> |
시편 116:8 주께서 내 영혼을 사망에서, 내 눈을 눈물에서, 내 발을 넘어짐에서 건지셨나이다 For you, O LORD, have delivered my soul from death, my eyes from tears, my feet from stumbl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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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 안유미 프리랜서 시각편집디자이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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섶을 사르며 물을 끓임 같이 - 사 64:1-7 |
1. 원하건대 주는 하늘을 가르고 강림하시고 주 앞에서 산들이 진동하기를 2. 불이 섶을 사르며 불이 물을 끓임 같게 하사 주의 원수들이 주의 이름을 알게 하시며 이방 나라들로 주 앞에서 떨게 하옵소서 3. 주께서 강림하사 우리가 생각하지 못한 두려운 일을 행하시던 그 때에 산들이 주 앞에서 진동하였사오니 4. 주 외에는 자기를 앙망하는 자를 위하여 이런 일을 행한 신을 옛부터 들은 자도 없고 귀로 들은 자도 없고 눈으로 본 자도 없었나이다 5. 주께서 기쁘게 공의를 행하는 자와 주의 길에서 주를 기억하는 자를 선대하시거늘 우리가 범죄하므로 주께서 진노하셨사오며 이 현상이 이미 오래 되었사오니 우리가 어찌 구원을 얻을 수 있으리이까 6. 무릇 우리는 다 부정한 자 같아서 우리의 의는 다 더러운 옷 같으며 우리는 다 잎사귀 같이 시들므로 우리의 죄악이 바람 같이 우리를 몰아가나이다 7.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가 없으며 스스로 분발하여 주를 붙잡는 자가 없사오니 이는 주께서 우리에게 얼굴을 숨기시며 우리의 죄악으로 말미암아 우리가 소멸되게 하셨음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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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장 후반부에서 시작된 애처러운 기도가 여기서도 계속됩니다. 앞에서도 <주여 하늘에서 굽어 살펴주옵소서>(63:15)라며 탄원했는데, 여기서도 일찍이 다윗을 구원하실 때 하늘을 드리우고 강림하신 것처럼(시 18:9) 지금도 그렇게 <하늘을 가르고 강림>(1절)하시기를 구하고 있습니다. 특히 불로 강림하사 섶을 태우고 산이 녹아내리며 물이 끓듯 진동케하며 심판하사 이방 나라들이 떨게 해 달라고 합니다. 이런 표현 속에는 화산으로 말미암아 산들이 불타고 용암이 분출되어 강과 바다가 들끓는 현상을 통해 하나님의 진노와 심판을 경고하고자 하는 의미가 담겨 있습니다.
우리가 범죄하므로 진노하심 <주께서 기쁘게 공의를 행하는 자와 주의 길에서 주를 기억하는 자를 선대하시거늘 우리가 범죄하므로 주께서 진노하셨사오며 이 현상이 이미 오래되었사오니 우리가 어찌 구원을 얻을 수 있으리이까>(5절). 하나님은 공의로우신 분이셔서 우리가 바르게 행하면 선대하시지만 범죄하면 진노하사 보응하십니다. 따라서 우리는 기쁜 마음으로 우리의 본분을 다 해야 하고, 늘 의를 행하므로 하나님의 법을 즐거워 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특히 즐겨 예배하는 자를 사랑하십니다. 기꺼이 봉사하고 헌신하는 자에게 은혜를 베푸십니다. 무엇을 하든 우리는 기쁨으로 주님을 섬기고 자발적으로 그분의 몸된 교회를 받들어야 합니다. 또한 하나님은 탕자의 아버지가 돌아온 둘째 아들에게 그랬던 것처럼(눅 15:20) 참회하는 자는 반드시 용서하시고 맞아 주십니다. 이 사실은 우리가 하나님의 법을 버리면 하나님의 회초리를 피할 수 없지만 그래도 그분의 인자하심이 완전히 철회되는 것은 아니며 당초 주신 그분의 언약 역시 폐기되지 않는다는 사상과도 일치합니다(시 89:30~). 실제 이스라엘은 거의 멸망할 뻔 하다가도 그 파멸에서 다시 구원받은 사례가 수도 없이 많았습니다(시 78:38). 주의 긍휼은 영원하시므로 비록 우리가 범죄하고 주께서 진노하셨다고 해도 결국은 버림받지 않고 구원을 얻는다는 말씀입니다.
우리는 다 잎사귀 같이 마름 <무릇 우리는 다 부정한 자 같아서 우리의 의는 다 더러운 옷 같으며 우리는 다 잎사귀 같이 시들므로 우리의 죄악이 바람 같이 우리를 몰아가나이다>(6절). 예레미야의 애가가 있듯이 이사야의 애가도 있습니다. 이 두 애가의 주제는 모두 갈대아인들에 의해 닥친 예루살렘의 멸망과 또 그 비극이 가져온 이스라엘의 죄입니다. 단지 차이가 있다면 이사야는 예언을 통해 그 일을 미리 내다보며 탄식한 반면 예레미야는 직접 그 일이 이루어지는 것을 현장에서 보았다는 것입니다. <부정한 자 같다>는 것은 성막의 뜰에 들어올 수 없는 사람, 어떤 역겨운 질병에 걸려 정수리로부터 발바닥까지 상한 것과 터진 것 밖에는 없는 자 같았다(1:6)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의 의는 주님이 미워하시고 가증하게 여기시는 더러운 옷처럼 형편없어지고 말았습니다. <다 치우쳐 함께 더러운 자가 되었나니 이는 그들이 여호와를 부르지 아니함이니라>(시 14:3-4). 그래서 <다 잎사귀 같이 시들었습니다>. 이 말씀의 원어적 의미는 <가을 낙엽처럼 땅에 떨어졌다>입니다. 그렇습니다.우리의 신앙고백이 시들면 우리의 영혼의 수액도 점점 더 말라 결국 우리의 삶 마저 소멸됩니다. 주의 이름을 부르십시오.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가 없으며 스스로 분발하여 주를 붙잡는 자>도 없다는 것이 선지자의 안타까움이요 탄식입니다. 다시금 하나님을 붙잡으십시오. 그것은 곧 우리에 대한 그분의 선하심과 아름다운 약속을 붙잡는 것에 다름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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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 조성노 독일 본(Bonn) 대학교 신학부 졸업 뮌헨(Muenchen) 대학교 신학부 졸업 장로회신학대학교 조직신학 교수 역임 푸른교회(분당 소재) 담임목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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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는 사랑의 네트워크
모든 교회와 믿음의 공동체는 하나님의 목적을 위한 연관되고 효과적인 네트워크를 이루어야한다. 작은 시스템 하나만 만들어도 엄청난 효과를 거둘 수 있는 것이 네트워크의 힘이다. 같은 수의 사람이라도 연결된 고리 하나만으로 때로는 불가능하다고 여겨지는 일을 능히 이루게 된다. 단순한 집단이 아니라 조직이 될 때 상상할 수 없는 능력이 나타난다. 나이든 사람일수록 외로운 사람일수록 그곳에서 위로받고 사랑을 경험할 수 있어야한다. -한태완 목사의 ‘사랑의 안전벨트’에서-
교회에는 인종, 성별, 연령, 고향, 학력, 직업, 성격 등 모든 게 다른 사람들이 모이지만 한 가지 공통점은 예수 믿는 신앙으로 하나가 되어 조화를 이루는 곳입니다 그러나 이 세상은 인간이 서로 반목질시하고 원수가 됩니다. 그런데 인간은 사회적 존재로서 혼자서는 고독을 이길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믿음의 공동체인 교회를 통해 위로 받고 사랑을 나눠야 합니다. 모이고 돌봐주는 사랑의 네트워크를 이루십시오. 교회의 중요한 역할 중 하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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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 김옥엽 국제펜클럽 회원 순수문학인협회 상임 이사 크리스챤문학상 수상 대한예수교장로회 숭인교회 유병수 담임목사 사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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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에는 기쁨이=으�灌� |
시편 30:5 그의 노염은 잠깐이요 그의 은총은 평생이로다 저녁에는 울음이 깃들일지라도 아침에는 기쁨이 오리로다 For his anger lasts only a moment, but his favor lasts a lifetime; weeping may remain for a night, but rejoicing comes in the morn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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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 안유미 프리랜서 시각편집디자이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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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진흙 주는 토기장이 - 사 64:8-12 |
8. 그러나 여호와여, 이제 주는 우리 아버지시니이다 우리는 진흙이요 주는 토기장이시니 우리는 다 주의 손으로 지으신 것이니이다 9. 여호와여, 너무 분노하지 마시오며 죄악을 영원히 기억하지 마시옵소서 구하오니 보시옵소서 보시옵소서 우리는 다 주의 백성이니이다 10. 주의 거룩한 성읍들이 광야가 되었으며 시온이 광야가 되었으며 예루살렘이 황폐하였나이다 11. 우리 조상들이 주를 찬송하던 우리의 거룩하고 아름다운 성전이 불에 탔으며 우리가 즐거워하던 곳이 다 황폐하였나이다 12. 여호와여 일이 이러하거늘 주께서 아직도 가만히 계시려 하시나이까 주께서 아직도 잠잠하시고 우리에게 심한 괴로움을 받게 하시려나이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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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여호와여, 이제 주는 우리 아버지시니이다. 우리는 진흙이요 주는 토기장이시니 우리는 다 주의 손으로 지으신 것이니이다>(8절). 비록 우리가 어리석고 미련해서 원수들에게 멸시당하고 때로 짓밟히고 있지만 그래도 여전히 주는 우리의 아버지십니다. 그러므로 탕자가 일어나 아버지 집으로 돌아왔듯 우리도 그렇게 회개하며 주께로 돌아가오니 제발 받아달라는 것입니다. 지금은 비록 아버지의 진노 아래 있지만 그러나 아버지는 결코 노를 영원히 품지 않으실 것이라는 고백입니다. <우리는 진흙이요 주는 토기장이>시니 하나님이야 말로 저희를 지으신 영원한 아버지시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주의 손으로 지으신 것이오니 제발 버리지 마옵소서>(시 138:8).
우리는 주의 백성 <여호와여, 너무 분노하지 마시오며 죄악을 영원히 기억하지 마시옵소서 구하오니 보시옵소서 보시옵소서 우리는 다 주의 백성이니이다>(9절). 우리는 주의 백성이오니, <백성이 자기 하나님께 구할 것이 아니냐>(8:19). <우리는 주의 것이오니 우리를 구원하소서>(시 119:94). 하나님이 우리의 죄악에 대해 분노하시는 것은 당연한 일이지만 그러나 너무 분노하지는 마시라는 간구입니다. 죄성은 원래 독해서 쉽사리 잊혀지는게 아니지만 그럼에도 우리의 <죄악을 영원히 기억하지는 마시옵소서>라며 빌고있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누가 뭐래도 우리는 다 주의 백성이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말인즉슨 옳습니다. 자식이 잘못을 저질렀다고 의절을 합니까? 또 의절을 한다고 더 이상 자식이 아닙니까? 또 자식의 허물을 평생 잊지 않는 부모가 있을까요? 본문을 보십시오. 다시 돌아와 사죄를 빌지 않습니까? <너무 분노하지 마옵소서. 우리의 죄악을 영원히 기억하지 마옵소서>하며 하나님의 노를 달래고 죄악을 속히 잊어 달라며 부탁드리고 있지 않습니까? 자식이 이렇게까지 나오는데 그 자식을 용서하지 않고 분노를 누그러뜨리지 않을 부모가 있겠습니까? 자식은 아무리 못나도 끝까지 자식일 뿐 종이 될 수는 없으며, 종은 아무리 착하고 성실해도 종일뿐 자식이 될 수는 없는 법입니다. 이렇듯 지금 이스라엘이 주는 토기장이 우리는 진흙, 주는 우리의 하나님, 우리는 다 주의 백성이라며 하나님의 용서를 구하고 있는 것입니다.
잠잠하지 마옵소서 <여호와여 일이 이러하거늘 주께서 아직도 가만히 계시려 하시나이까 주께서 아직도 잠잠하시고 우리에게 심한 괴로움을 받게 하시려나이까>(12절). 예루살렘 성전은 이스라엘의 거룩하고도 아름다운 전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터가 높고 아름다워 온 세계가 즐거워하던 곳이 지금은 보기 흉한 모습으로 폐허가 되어 온 세계가 경멸하는 아주 수치스러운 곳이 되고 말았습니다. 오랜 세월 희생의 제사와 찬송으로 하나님을 경배하고 예배하던 곳이 잿더미로 변했다는 사실이 얼마나 서글픈 일입니까? 성전 뿐 아니라 성전의 각종 기구들, 안식일과 월삭을 비롯해 그들이 지키던 각종 절기들, 온갖 규례들까지도 다 황폐화 되고 말았습니다. 그래서 지금 <여호와여, 사정이 이러하거늘 주께서 여전히 가만히 계시려 하시나이까?>하며 적들에 대한 하나님의 응징을 강력 주문하고 있는 것입니다. <주께서 주의 성전이 다 파괴된 것을 보시고도 여전히 분개하시거나 복수하지 않으시나이까?> <하나님이여 일어나 주의 원통함을 푸시옵소서>(시 74:22). <이런 심한 모욕을 당하시고도 잠잠하시고 모른체 하시나이까?> 그래서 계속 <하나님이여 침묵하지 마소서>(시 83:1) 혹은 <내가 찬양하는 하나님이여 잠잠하지 마옵소서>(시 109:1)하며 원수들에 대한 심판을 절절히 바라고 있는데 그러나 걱정마십시오! 하나님은 반드시 공의로운 판단으로 응징하십니다. 우리가 느끼는 것 만큼이나 오래 참지 않으시고 필히 심판하사 하나님의 의를 세상에 널리 드러내실 것입니다. 오직 하나님의 처분에 맡기시고 자신을 성찰하는 일에 더욱 힘쓰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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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 조성노 독일 본(Bonn) 대학교 신학부 졸업 뮌헨(Muenchen) 대학교 신학부 졸업 장로회신학대학교 조직신학 교수 역임 푸른교회(분당 소재) 담임목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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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석 되신 그분을 만나면
반석은 사막지대에서 종종 유일하게 여행자에게 그늘을 제공하는 원천이 되기도 한다. 그때 반석은 피난처요, 안식처가 된다. 인생의 길은 생각보다 더 뜨거운 열기를 감내해야 하는 고단한 길이다. 우리는 이 길에서 쓰러져 생의 의지를 포기해 버린 기권자를 생각보다 더 많이 만나게 된다. 반석 되신 그분을 만나면 쉼을 누리며 살아간다. 반석은 또한 우리가 디디고 설 인생의 견고한 기초가 된다. -이동원 목사의 ‘나의 반석이신 하나님’에서-
오늘 이 시대에 우리는 모래 위에 집을 짓는 너무나 많은 건축자들을 볼 수 있습니다. 주님은 친히 지혜로운 자는 그 집을 반석위에 짓는다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친히 우리의 반석이 되어 주십니다. 반석위에 세운 교회는 음부의 권세가 이길 수 없다 했습니다. 내 인생의 집을 반석위에 짓게 되었습니까? 예수님을 만난 후 인생에서 경험하는 가장 큰 행복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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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 김옥엽 국제펜클럽 회원 순수문학인협회 상임 이사 크리스챤문학상 수상 대한예수교장로회 숭인교회 유병수 담임목사 사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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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호와를 의지하는 자는 > |
시편 125:1 여호와를 의지하는 자는 시온 산이 흔들리지 아니하고 영원히 있음 같도다 Those who trust in the LORD are like Mount Zion, which cannot be shaken but endures forev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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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 안유미 프리랜서 시각편집디자이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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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여기 있노라 - 사 65:1-7 |
1. 나는 나를 구하지 아니하던 자에게 물음을 받았으며 나를 찾지 아니하던 자에게 찾아냄이 되었으며 내 이름을 부르지 아니하던 나라에 내가 여기 있노라 내가 여기 있노라 하였노라 2. 내가 종일 손을 펴서 자기 생각을 따라 옳지 않은 길을 걸어가는 패역한 백성들을 불렀나니 3. 곧 동산에서 제사하며 벽돌 위에서 분향하여 내 앞에서 항상 내 노를 일으키는 백성이라 4. 그들이 무덤 사이에 앉으며 은밀한 처소에서 밤을 지내며 돼지 고기를 먹으며 가증한 것들의 국을 그릇에 담으면서 5. 사람에게 이르기를 너는 네 자리에 서 있고 내게 가까이 하지 말라 나는 너보다 거룩함이라 하나니 이런 자들은 내 코의 연기요 종일 타는 불이로다 6. 보라 이것이 내 앞에 기록되었으니 내가 잠잠하지 아니하고 반드시 보응하되 그들의 품에 보응하리라 7. 너희의 죄악과 너희 조상들의 죄악은 한 가지니 그들이 산 위에서 분향하며 작은 산 위에서 나를 능욕하였음이라 그러므로 내가 먼저 그들의 행위를 헤아리고 그들의 품에 보응하리라 여호와가 말하였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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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이사야서는 복음적인 예언의 끝을 향해 가고 있습니다. 이 예언의 마지막 두 장은 우리로 하여금 새 하늘과 새 땅, 그리고 복음의 시대가 가져올 새 세상, 또 그때 보배로운 것과 나쁜 것이 갈라지게 될 것 등 우리로 하여금 먼 훗날에 있을 일들을 미리 내다 보게 하고 있습니다. <나를 구하지 아니하고 나를 찾지도 아니하고 내 이름을 부르지 아니하던 나라에 내가 여기 있노라 하였노라>(1절). 그렇습니다. 우리는 아무도 주님을 구하지 않았고, 찾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주님이 우리를 찾아오사 <내가 여기 있노라>고 하신 겁니다. 얼마나 놀랍고도 복된 기회가 찾아온 것인지, 이 사건이 우리의 생애와 영원한 운명에 얼마나 결정적인 변화를 가져다 주었는지를 한 번 깊이 사색해 보십시오.
항상 내 노를 일으키는 백성 <곧 동산에서 제사하며 벽돌 위에서 분향하여 내 앞에서 항상 내 노를 일으키는 백성이라>(3절). 하나님은 당신의 택하신 백성인 이스라엘을 향해서도 부단히 그리고 간곡히 당신의 은혜를 받아들이라고 설득하십니다. 잠언에도 있듯이 하나님은 직접 또는 그의 선지자들이나 아들이나 사도들을 통해 무수히 손을 내미셨습니다(잠 1:24). 그러나 그들은 언제나 하나님의 그 초대와 간곡한 바람을 무색케 했습니다. 특히 그들이 저지른 죄악 중 가장 하나님을 격노케 한 것은 우상숭배였습니다. 선지자는 우상숭배가 하나님의 화를 불러일으킨 그들의 가장 치명적인 죄악이었다고 지적합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성전을 외면하고 동산이나 무덤 등에서 우상에게 제사했습니다. 하나님의 제단을 버리고 우상의 제단으로 쌓은 벽돌 위에서 분향했습니다. 그리고 엔돌의 신접한 여인처럼 산 자를 위하여 죽은 자에게 묻기 위해(8:19) 무덤 사이에 앉으며 음산한 처소에서 밤을 지냈습니다. 하나님은 <거룩하신 분>(5절)이십니다. 따라서 누구도 거룩하지 못한 행실로 하나님을 뵐 수는 없습니다. 거룩하지 못한 우리의 모습은 언제나 하나님을 진노케 한다는 사실을 잊지 마십시오.
내가 반드시 보응하리라 <보라 이것이 내 앞에 기록되었으니 내가 잠잠하지 아니하고 반드시 보응하되 그들의 품에 보응하리라>(6절). 기억하십시오! 하나님은 우리의 모든 허물과 우상숭배 행위와 거룩하지 못한 삶을 다 <기록>하십니다. 장차 이 세상을 심판하실 때 증거로 삼으시기 위해섭니다. 따라서 하나님은 과거 이스라엘이 섬겼던 우상숭배행위들, 산당들, 언덕과 벽돌 위에서 행한 분향 행위 등에 대해서도 반드시 그 책임을 물으실 것입니다. 그런 행위들은 하나님을 모독하는 것이요 그분의 영광을 욕되게 하는 중한 범죄기 때문입니다. 지난 주일은 <청년주일>, 지난 월요일은 <성년의 날>이었습니다. <청년이여 … 네 마음에 원하는 길들과 네 눈이 보는대로 행하라 그러나 하나님이 이 모든 일로 말미암아 너를 심판하실 줄 알라>(잠 11:9). <주여 우리 이웃이 주를 비방한 그 비방을 그들의 품에 칠 배나 더 갚으소서>(시 79:12). 언제나 하나님의 보응을 생각하며 삽시다. 하나님은 사랑의 하나님 이전에 공의의 하나님이심을 잊지 맙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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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 조성노 독일 본(Bonn) 대학교 신학부 졸업 뮌헨(Muenchen) 대학교 신학부 졸업 장로회신학대학교 조직신학 교수 역임 푸른교회(분당 소재) 담임목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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