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승을 우리 영토로 만든 과학자들
섬을 뜻하는 한자를 보자.
섬 도(島)는
바다에서 새(鳥)가 앉아있는 산(山)이고,
섬 서(嶼)는
도(島)에 더불어(與) 있는 산(山)이다.
둘을 구분하는 기준은 사람이다.
사람이
살 수 있는 큰 섬은 도(島),
살 수 없는 작은 섬은 서(嶼)다.
그래서
도서(島嶼)는 ‘크고 작은 온갖 섬’을 뜻한다.
물에 잠겨 섬이 되지 못하는 바위를 초(礁)라 한다.
잠길 듯 말 듯 아슬아슬 애를 태우는(焦) 바위(石)다.
드러난 바위가 노초(露礁),
잠긴 바위가 암초(暗礁)다.
배가 다니다가 초(礁)에 올라앉으면 좌초(坐礁)다.
그러면
밀물에 잠기고 썰물에 드러나는 바위를 뭐라고 할까.
간출암(干出巖)이다.
초(礁)에 해당하는 우리말은 ‘여’다.
물에 잠겨 보이지 않는 바위다.
썰물에 드러나는 바위가 ‘잠길여’,
드러나지 않는 바위가 ‘속여’다.
물때에 따라 잠기느냐 드러나느냐를 놓고
이름을 다르게 붙인 것이다.
같은 뜻인 여와 초와 rock을 비교해 보면
우리 민족이 바다를 얼마나 유심히 관찰했고,
우리말이 얼마나 과학적으로 만들어졌는지 알 수 있다.
제주 사람들은
아주 오래전부터 마라도 서남쪽 149km 지점에
매우 큰 여가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동서로 1.4km,
남북으로 1.8km의 크기(수심 50m 기준)에
가장 높은 곳이 수심 4.6m 정도라,
파도가 매우 사나워지면 가끔 모습을 드러내기도 한다.
그들은
이 여를 ‘여섬’이라 불렀다.
여섬은
용궁으로 떠나는 ‘나루터’였다.
그물질 나간 어부나 물질 나선 해녀가 돌아오지 않으면
여섬에 들러 용궁으로 갔다고 믿었다.
여섬은
바닷속에 있는 ‘저쪽 언덕’,
곧 피안(彼岸)이었던 것이다.
소설가 이청준의 작품에는
여섬이 ‘본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섬을 본 사람은
모두가 섬으로 가버렸기 때문이다’라고 표현돼 있다.
가수 정태춘은 ‘떠나가는 배’에서
여섬을 ‘평화의 땅’ ‘무욕의 땅’이라 불렀다.
민담 속의 여섬이
역사의 수면 위로 드러난 것은 100년쯤 전이다.
영국 해군이
소코트라 록(Socotra Rock)이라 부른 데 이어
난데없이
일본이 파랑도(波浪島)라는 딱지를 붙였다.
제주대와 KBS는 1984년 공동탐사를 통해
소코트라 록과 파랑도가 여섬이라는 것을 확인했다.
3년 뒤 해운항만청이 부표를 설치하고
2001년 국립지리원이 지명을 확정하면서
여섬은 공식 명칭을 갖게 됐다.
‘이어도’다.
장모음 ‘여’를 ‘이어(離於)’로 쓰고,
‘섬’을 도(島)로 붙인 것이다.
1993년 김시중 과학기술처 장관은
해양연구소 이동영 박사의 건의를 받아들여
10년 만에 이어도 해양과학기지를 건설했다.
20년 뒤인 지금 벌어지고 있는
동아시아의 해양 분쟁을 내다본 선견지명(先見之明)이다.
해양과학기지 건설을 주도한
한국해양과학기술원의 심재설 박사는 말한다.
“분쟁이라고요?
세계적으로 알 만한 해양학자들은
이어도가
한국의 영토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습니다.
해양과학기지가 생긴 뒤
이어도에 관한 논문이
매년 30편 정도 국제학술지에 실리고 있고,
NASA(미국항공우주국)에도
이어도에서 관측한
해양기상정보가 시시각각 업데이트되고 있습니다.
이 논문과 자료에
‘이어도 코리아(Ieodo Korea)’라는 출처가 따라 붙습니다.
과학자도
영토를 지킨다는 사실을 알아주면 좋겠네요.”
그렇다.
민담에서 ‘저쪽 언덕(저승)’이었던 이어도를
‘이쪽 언덕(이승)’으로 옮겨온 것도,
‘이쪽 언덕’을 대한민국의 영토로 만든 것도
우리 과학자들이다.
~ 옮겨 온 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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