鶴山의 草幕舍廊房

대한민국 探訪

[스크랩] 올레 15코스에서 (1)

鶴山 徐 仁 2014. 1. 15. 19:36

  

♧ 제주올레 15코스에 나서며


 동창회보에 실을 거리로 고민하다가 요즘 한창 인기를 끌고 있는 올레길 중, 모교가 위치한 애월읍 관내를 거치는 곳을 소개하는 글을 싣기로 작정하고는 물 한 병 들고 길을 나섰다. 처음 차를 몰고 가면서 15코스를 다 가지 말고, 애월읍 경계인 곽지리에서 봉성리 가는 길인 곽지교(郭支橋)에서 시작할까 하다가 아무래도 전 구간이라야 의미가 있다 싶어 한림항으로 갔다. 산남의 올레 코스는 해안길 위주지만 산북은 밭이나 숲, 마을을 가로지르는 길이 많다. 전장 19km 되는 긴 코스라 부담이 가지만 자주 접하던 곳이 많아 그리 힘들진 않으리라. 15코스는 다음과 같다. 

 

 한림항 비양도 도항선 선착장 - 평수포구(720m) - 대림안길 입구(2.5km) - 영새성물(2.8km) - 사거리(3.8km) - 성로동 농산물집하장(4.7km) - 귀덕농로((5.5km) -선운정사(6.5km) - 버들못농로(7.6km) - 혜린교회(8.9km) - 납읍숲길(9.3km) - 납읍초등학교 정문 앞 금산공원 입구(10.5km) - 납읍리사무소(11.3km) - 백일홍길 입구(12.1km) - 과오름 입구(12.5km) - 도새기숲길(13.8km) - 고내봉 입구(14.9km) - 고내봉 정상(16km) - 하루방당(16.5km) - 고내촌(16.9km) - 고내봉 아래 하가리 갈림길(17.6km) - 고내교차로(18.5km) - 배염골 올레(18.6km) - 고내포구(19km)


 

♧ 한림항 비양도 선착장에서 출발


 9월 14일 화요일 아침 9시, 안개 자욱한 길. 작년 12월에 개장한 제주올레 15코스는 한림항에서부터 고내포구까지 장장 19km의 노정(路程)을 시작한다. 비양도 선착장 사무소 앞에 세워진 코스 안내판을 확인하며 대충 갈 길을 확인하고는 비양도를 흘끗 쳐다보니, 오늘따라 안개 속에 갇혀 아주 희미하게 보인다. 출발 지점을 알리는 곳에서 북쪽 해안도로를 따라 두어 발자국 내디딘 곳, 오른쪽 덕장엔 옥돔을 말리느라 줄 맞춰 널어놓았다.

 

 요즘 옥돔은 말리지 않고 싱싱한 채로 배를 따 급랭(急冷)해서 최상급 '당일바리 생선'을 만드는데, 아무래도 이건 조금 시간이 지났든지 아니면 다른 곳에서 가져오지 않았나 싶어 냄새를 맡아보니, 별로 그런 느낌 없이 깨끗하다. 갑자기 노랗게 구운 옥돔 모습이 상상 되어 입을 ‘쩍!’ 다시고는 다시 걸어간다. 얼마 안 가 한림2리가 끝나고 바로 한수리 땅이다.


 

♧ 한수리의 갈매기와 기러기


 한수리(翰水里)는 ‘하물개’와 ‘연딋개’를 합친 마을인데, ‘하물개’는 ‘큰물의 포구’, ‘연딋개’는 ‘연대가 있는 포구’를 뜻한다. 1595년(선조 28)에 처음으로 사람이 들어와 살기 시작하였고, 일제강점기 때 한림항 공사를 위해 모래를 파가버리자 모래 밑에서 흙이 나오고 유물이 발견되어, 1002년 비양도 화산 폭발시 해일(海溢)로 거주지가 매몰된 것으로 보고 있다. 1953년 한림리 일부인 ‘연딋개’와 수원리 일부인 ‘하물개’를 통합하여 만든 후, 옆 마을 한림과 수원의 첫 자를 따서 한수리라 하였다 한다.

 

 

 500m나 걸었을까? 오른쪽으로 길이 넓어지면서 한림읍 관광 안내도가 서 있고, 바닷가엔 육지부의 솟대 형태를 띤 ‘갈매기와 기러기’를 만들어 세워 놓았다. 아마도 마을 북쪽 바다 터진 곳에서 들어오는 사악한 기운을 막아내려고 거욱대 대신 세워놓은 것으로 보이는데, 하나둘이 아니다. 볼거리가 없는 밋밋한 해안을 장식해줘 올레꾼들에게 인기가 있을 것 같다. 여름이라 떠도는 갈매기는 없고 세워놓은 기러기만 있는 셈.  

 

 

♧ 얼마 안 가 수원리가 나타나


 포구와 솟대(?)를 바라보며, 바다를 관통해 다리처럼 만든 길을 5분 정도 걸었을까? 수원리 이정표가 나타난다. 마을 소개글에, 수원리(洙源里)는 제주시 관덕정에서 서쪽으로 28km지점에 위치해 있으며, 동쪽으로 귀덕2리, 서쪽으로는 한수리, 남쪽으로 대림리와 이웃하고 있으며, 북쪽으로는 약 3km에 달하는 해안선과 일주도로, 남북으로는 잘 정리된 농경지가 광활한 옥토로 이루어진 넓은 평야를 가진 마을인데, 일주도로변을 따라 해안선까지 남북으로 길게 형성된 419세대의 비교적 큰 농어촌이다.

 

 옛날에는 ‘조물케’ 즉 잠수포(潛水捕)라 하였고, 사람이 살기 시작한 것은 언제부터인지 확실하지 않으나 기록에 의하면, 경주김씨 좌도지관 김검용(金儉龍)의 8대손인 김경의(金景義)가 1580(선조 13)년에 지금은 한수리가 되어버린 당시 속칭 ‘대섬집터’에 거주, 장사랑훈도(奬仕郞訓導)로 한림과 수원 마을의 발상시조가 되었다고 한다.

 

 

 평수포구엔 어선 몇 척이 매어있고, 물통은 썰물이라 말라 있는데, 동쪽 조그만 팽나무 너머로 보이는 한림빌라를 바라보고 나서, 올레길 표지를 따라 오른쪽으로 들어선다. 오래된 마을답게 곳곳에 팽나무가 늘어서 있고, 그곳에서 마을 사람들이 쉬고 있다. 비스듬히 왼쪽으로 난 길을 따라 이사무소로 나오니, 옛 일주도로다. 공자(孔子)가 제자들을 모아놓고 가르치던 곳의 지명인 ‘수원(洙源)’에서 따왔다는 마을 이름을 떠올리고, 오른쪽 수원초등학교를 바라보며 길을 건너 대림리로 들어섰다.       


 

 ♧ 대림리 농로와 마을을 지나


 곧게 남쪽으로 난 넓은 대지는 비닐하우스나 밭벼를 간 밭 몇 곳을 제외하고는 그대로 비어 있고, 이제야 양배추 묘종과 브로콜리 묘종을 심었다. 남은 곳은 마늘과 양파, 쪽파 등이 심어질 것이다. 넓은 농지에서 골라낸 굵은 돌을 두른 밭담이 눈에 익숙하게 다가온다. 천천히 걸어 들어가자 왼쪽으로 굽어진 곳에 저수조가 있고, 그곳에서 왼쪽으로 돌아 나오니, 바로 일주도로다. 이곳은 수원과 한림 마을을 거치지 않고 바로 명월로 가도록 뚫려 있다. 

 

  원래 대림리의 옛 이름은 ‘선돌[立石]’이다. 전설에 따르면 지금 수원리와 대림리 부근에 비스듬히 누워 있는 ‘선돌’이란 돌은 문제의 돌이었다. ‘이 돌이 서면 대림마을이 흥하고, 쓰러지면 수원마을이 흥한다.’는 전설에 따라 밤이면 세우고 다음날 밤엔 쓰러뜨리기를 계속했는데, 약 250년 전에 대림에 박천총이란 힘이 센 장사가 나타나 바로 들어 조금 옮겨 세웠다고 하는데, 지금 비스듬히 서지도 눕지도 않는 것을 보고, 화해의 모습이라 해도 될는지?


 

♧ 흐르는 물은 썩지 않는다


 어느덧 마을길을 지나 밭길로 들어선다. 지금은 어중간한 늦여름이어서 밭은 검은 흙을 드러내어 볼품이 없고, 길섶은 제초제를 쳤는지 들꽃 하나 성한 것이 없다. 벼가 이삭을 드러내고 익어가는 밭이 있길래 카메라를 꺼내 찍는데, 옆에 호박이 있다. 카메라를 들이대고 보니, 바닥에 폐비닐과 플라스틱 같은 게 깔려 있어 볼썽사납다. 모퉁이에 둥근잎유홍초가 피어 있는 것을 자세히 보니, 제초제의 후유증인지 싱싱하지 못하다.

 

 

 조그만 연못이 있어 표지판을 본즉 2.8km 지점인 ‘영새성물’이다. 무슨 뜻인지는 짐작이 안 가는데, 길을 내어 포장하면서 물길을 막아버렸다. 제초제와 농약을 친 밭에서 흘러내려온 물은 썩어 냄새가 나고, 한참 푸르러야 할 수련은 잎마저 시들어간다. 흐르는 물은 자정작용을 하여 쉬 썩지 않는 걸 모르는지, 넘는 물을 자연스럽게 흘러넘치게 하는 지혜가 아쉽다. 자연이든 사회든 소통이 되어야 제대로 돌아간다는 것을 우리에게 가르쳐준다.


 

♧ 귀덕 잣질 동네를 거쳐


 몇 군데 농업용수 취수장이 있는 빌레길을 돌아가면서 보니, 잘 단장해놓은 무덤과 길 옆 무덤 자리에 대리석으로 만들어 유골을 안치해 놓은 납골묘가 보인다. 길옆에 있는 것이 어딘가 어색했으나, 그곳에 그것을 만들지 않으면 안 될 사연이 있지 싶어 그냥 넘어가기로 했다. 소나무 그늘이 조금 이어지고 나서 다시 포장도로가 나타났다. 그곳을 가로지르는 길옆에도 조그만 못이 있었으나 썩은 물은 마찬가지다.

 

 

 방풍림으로 심었을 담팔수를 닮은 소귀나무 7~8그루가 서 있는 밭 옆길을 스치며 큰 길을 가로질러 귀덕 농로로 들어선다. 여기서부터는 성로동(城路洞), 속칭 ‘잣질’이다. 밭에서 그 많은 돌멩이들을 골라내어 돌무덤을 쌓고 그 위로 길을 만들어 다니던 곳이다. 제주의 돌담길은 흑룡천리 굽이굽이 특이한 경관을 이루며 뜻있는 외국인들에게 찬사를 받고 있다. 삼다 중 석다(石多)나 제주문화상징 10가지 중의 하나로 돌문화의 정수(精髓)라고나 할까.


 

♧ 어도오름을 바라보며 선운정사로


 멀리 안개 속 어도오름을 바라보며 처음으로 비포장 조그만 길로 들어서 200여m를 넘어서니, 다시 포장길이 나타난다. 대나무가 여러 곳에 있는 것으로 보아 4.3 당시 잃어버린 마을임에 틀림이 없다. 조금 더 내려가니 덕성원(德盛院)으로 들어가는 팻말이 있고 오른쪽 골목 입구엔 선운정사 팻말이 보인다. 앞은 소나무가 있는 촐동산인데, 그곳으로 가지 않고 촐동산교를 바라보며, 조금 더 가 대상물교를 건너면 바로 봉성리 선운정사(禪雲精寺)다. 

 

 

 경내로 들어서자 오른쪽 종각에 황금종이 걸려 있다. ‘이 황금종소리에는 중생들이 고통에서 벗어나 해탈에 이르게 하고자 하는 서원이 담겨져 있다.’는 해설문이 있고, 그 너머로 높은 탑 두 개가 서있다. 대웅전도 그만하면 화려한 것이 꽤 많은 신도를 가진 신흥절이라는 걸 알 수 있었다. 절을 보고 나와 동쪽 소나무가 있는 곳을 지나니, 정자천(亭子川, 지금의 금성천) 상류로 이어지는 냇가에 배고픈 다리가 있고, 건너자마자 과오름이 보이고, 봉성리로 가는 길이 나온다.(계속)

 

출처 : 김창집의 오름 이야기
글쓴이 : 김창집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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