鶴山의 草幕舍廊房

대한민국 探訪

[스크랩] 올레 15코스에서(2)

鶴山 徐 仁 2014. 1. 15. 19:34

 

♧ 울며 넘던 구머리고개


 이 길을 걷노라면 어렸을 적 암소를 몰고 울며 지났던 광경이 떠오른다. 가난했던 우리 집의 복덩이인 나이 많은 암소는 황소처럼 밭을 갈고 마차를 끄는 일을 하면서도 해마다 새끼를 하나씩 쑥쑥 뽑아주어 동네의 부러움을 샀다. 게다가 이 녀석이 낳은 송아지가 커서 3년만에 다시 새끼를 낳고, 그 동생도 다시 새끼를 낳다보니, 해마다 송아지가 3~4마리씩 불어 어언간 암소 부자라는 소리를 듣게 되었다. 오름에라도 올려두면 저녁에 제 손주들까지 거느리고 집으로 돌아오곤 했다.

 

 한번은 학교 다녀와서 소 물 먹이러 가는데, 다리를 심하게 절기에 살펴보니, 발이 퉁퉁 부어올라 있었다. 겨우 물 먹이고 와서, 부랴부랴 밭에 가 아버님께 얘기를 했더니, 도노미(봉성리) 가서 쇠침을 맞혀 오라는 것이다. 끌다 쉬다 몰다 하면서 이 고개까지 이르렀는데, 소가 아파서 더 걸으려 하지 않았다. 그래 어질고 커다란 눈망울을 하염없이 보고 있자니,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났다. 그래도 쉬고쉬고 하면서 구머리를 넘고 도노미에 이르러 커다란 침을 놓아 곪았던 곳의 검붉은 피를 빼고, 발톱 사이에 박힌 가시를 제거한 후, 저녁 늦게 다시 이 고개를 넘었다.     


 

♧ 개숭이 밭의 추억


 곽지교(郭支橋)를 넘자마자 우리 소유였던 개숭이밭이 세로로 누워 있다. 밭이 크기 때문에 우리 식구들은 이곳에서 일하는 날이 많았다. 그래 어려서는 이곳이 놀이터가 되었고, 자라서는 벗어날 수 없는 일터가 되었다. 어려서 오토바이처럼 타고 놀았던 바위는 이제 뽑히고, 으름 숨겼다 따 먹던 잣은 치워졌어도 그 광경은 지금도 눈에 삼삼하다. 자식들 밭에 와 정붙이게 하려고 한 구석에 두어줄 참외나 수박을 심어주었던 아버님은 자식의 효도도 제대로 받아보지 못하고, 돌아가신지 어언 35년이 지나 얼굴조차 희미해졌으니, 흐르는 세월을 누가 막을 수 있단 말인가?

 

 위아래로 딸만 둘씩인 사이에 내가 끼었으니, 아버님의 아들 사랑하는 마음은 지금에 와서도 느껴진다. 김을 매다가 점심때가 지나면 초여름 물때를 짚어 금성이나 귀덕에 자리배가 들어올 시간에 맞춰 자리돔 사오는 심부름을 곧잘 시켰다. 그 때에는 보리 한 되에 자리돔 한 됫박 주던 시기여서 보리 한 되를 지고, 금성 궨당네 배에 가든지 귀덕 친구한테 가면 수월하게 살 수가 있어, 그걸 지고 오노라면 거리에 앉아 놀던 할아버지들이 서너 개씩 개평을 하여 맛있게 먹는 모습이 좋았다.


 

♧ 유일하게 옆을 스치는 버들못


  안개 너머로 추억처럼 뿌옇게 바라다 보이는 과오름을 향해 버들못 농로를 걷는다. 어렸을 때 꿩젱이동산이라고 불렀던 곳을 지나다보니, 수박풀 꽃이 대여섯 송이 곱게 피어 있어 카메라에 담고는 서둘러 걷는다. 비탈이 워낙 심해 길을 넓히지도 않았고 포장도 안 된 채로 있는 것이 오히려 정겹다. 우리 마을에서 남쪽으로 1km 정도 떨어진 ‘버들못’은 제주올레 15코스에서 유일하게 거치는 곽지 지경(地境)이다.

 

 넓은 빌레 한쪽에 자리한 그리 넓지 않은 못인데, 우리가 어렸을 적에는 소에게 물을 먹이거나 농업용수로 써왔다. 버들못은 ‘곽지8경’ 중의 하나로 ‘유지부압(柳池浮鴨)’이라 하여 버드나무가 서 있고, 철새나 오리가 한가히 노닐던 아름다운 곳이었다. 봄에 이사무소에 들렀을 때 정비한다고 했는데 주변을 돌로 둘러 가운데에 나무로 관찰로를 만들었고 창포를 심었으나, 물이 유통이 안 되어 뿌옇다.

 

 집집마다 소를 기르던 시절, 이곳은 소의 놀이터였다. 봄이 되어 외양간에서 겨우내 다리 오그리고 지내던 황소들을 몰고 오면, 오금을 펴기 위해 날뛰다가 고만고만한 상대를 만나 서로 흘기며 쉽게 한판을 벌인다. 우리 집은 암소 여러 마리를 길렀기에 자주 이곳에 물 먹이러 와서 소싸움을 관전하곤 했다. 늦게 농사일을 끝내고 밤에 소 물 먹이러 온 날에는 어찌 그리 도깨비불이 많던지, 생각만 해도 소름이 돋고 머리발이 곤두선다.


 

♧ 중산간도로를 통해 납읍리로


 버들못을 보고 다시 돌아서서 어렸을 적 해야미 밭으로 가던 길을 걷는다. 동동네 사람들이 봉성리로 가는 길이기도 하다. 식량이 모자라던 시절 해야미는 넓고 비교적 가까운 곳인데다 밭이 많으니, 출입이 잦을 수밖에 없었다. 언덕이 면해 있어 소나무가 자라고 중간중간에는 밀감 과수원을 조성했다. 중산간도로로 나오자 동쪽으로 납읍까지 길이 번듯하게 펼쳐진다. 반대 방향으로 조금 더 가면 바로 봉성리에 이른다.

 

 속칭 ‘넓은테역’ 네거리는 로터리를 만드느라 어질러 놓았는데, 이곳이 1960년대에 열었던 오일장터로, 지금은 흔적마져 사라졌다. 오른쪽으로 방향을 바꾸어 올라간다. 이 길로 곧장 가면 축산물 공판장이 자리한 속칭 ‘도치돌’이 있고, 더 진행하면 평화로가 나온다. 바리메오름 바로 앞 산록도로와 마주 치는 곳이다. 다시 왼쪽 혜린교회가 있는 골목길을 지나 바로 금산 입구 길로 들어간다.


 

♧ 천연기념물 납읍 금산공원


  납읍금산공원은 1986년 2월 8일 천연기념물 제375호로 지정된 난대림지대이다. 노꼬메오름에서 발원한 용암이 애월곶자왈을 형성하며 흐르다 그 자취가 사라졌는가 싶더니, 이곳에 다시 노출되면서 얼기설기 쌓인 돌무더기가 설촌 당시에는 매우 흉물스러웠다 한다. 그래서 마을에서는 이곳에 숲을 조성하기로 하고 나무를 가꾸면서 아무도 베지 못하도록 금했는데, 오랜 세월이 흐르는 동안에 어느덧 아름다운 금산(錦山)으로 변했다.    

 

 이곳은 자연림의 원형을 보존하고 있는 표본 지역으로 원식생 연구에 기초적인 자료를 제공하고 있기 때문에 학술자원으로서 가치가 높아 천연기념물로 지정되기에 이르렀고, 상록교목 및 60여 종의 난대성 식물이 자라고 있다. 주요 수종은 후박나무를 비롯하여 종가시나무, 생달나무, 동백나무 등 아열대 상록수와 보리밥나무, 송악, 콩짜개덩굴, 후추등과 같은 덩굴식물, 밤잎고사리 같은 희귀식물이 자란다.  

 

 과거에는 대를 쌓아 선비들이 모여 시회를 벌이는 장소로도 활용했으나, 지금은 그 위에 널빤지로 쉼터를 마련하고 관찰로도 만들었다. 또한 이곳은 제주무형문화재 제6호 납읍리마을제를 지내는 제단이 공원 가운데 자리해 있다. 해마다 정월 초정일에 지내는 유교식 마을제는 홍역신과 촌락수호신, 인물재해신을 모시며, 제관들은 3일 전에 제청에 들어 청금과 유건, 제물을 준비한다. 제물로는 통돼지와 메, 갱, 채소, 과일 등을 올린다. 우리 모교 곽금초등학교에서는, 6년 내내 봄가을 소풍을 이곳으로 왔다.


 

♧ 납읍마을을 지나 백일홍길로


 금산에서 나와 초등학교 정문을 뒤로 하고 조금 더 걸으면 바로 노인회관과 마을회관에 이른다. 해마다 추석날 밤에 이곳 마당에서 콩쿨대회가 열려서 학창시절 사복을 입고 와서 노래 부르곤 했다. 잠깐 상점에 들어가 빵과 음료를 사들고 맞은편으로 마을을 종단한다. 옛날에 있던 연못은 더러 메워서 다세대 주택을 지었는데, 갈수록 농촌지역에 학생수가 모자라 폐교 위기에 몰린 초등학교를 살리기 위한 방편이라 한다.

 

 

 애월로 내려가다가 왼쪽 ‘백일홍길’로 들어선다. 간판을 읽어보았더니, 무덤 앞에 백일홍을 심어놓은 곳이 많아 몇 달 동안 그 꽃을 볼 수 있는 길이라 했다. 백일홍은 배롱나무라야 맞다. 따라서 ‘배롱나무길’로 고쳐야 할 것이다. 길은 포장이 되지 않은 과오름 끝 부분을 거치게 되어 있다. 오름을  벗어난 곳은 광명사로 들어가는 길과 애월로 내리는 삼거리다.

          

 

♧ 소나무와 도새기 숲길을 지나


 이번 코스를 지정하면서 그런대로 고심한 흔적은, 될 수 있으면 아스팔트나 시멘트 길을 피해, 어떻게 하면 경치 좋고 정취가 묻어나는 옛길을 찾아 연결할까 했다는 점이다. 그래서 애써 과오름 구석 길을 통과했고, 그 길로 애월 쪽으로 곧장 내려가서 올라오지 않고, 고내봉을 연결하려고 사이길을 만들고, 오름을 다 벗어난 곳에서 동쪽 소나무 밭으로 연결해 오솔길로 나오도록 했다.

 

 그 다음 ‘도새기숲길’은 과거에 토종돼지를 가두어 기르던 소나무밭에서 고내봉으로 유도하는 길이다. 과거에는 새든 밭을 갈려 갈 때 힘들고, 거기서 나온 곡식을 져 나르노라 고생했지만, 요즘은 거의 기계화가 되다보니, 밭주인들끼리 의논해서 농로를 만들고 포장까지 해놓았으니, 그분들에게 양해를 구하고 그런 길을 이용하면 쉽게 코스를 개발할 수 있을 것이다. 이곳 애월리는 취나물 재배하는 곳이 많다.


 

♧ 고내봉을 가로지르다


 고내봉 서쪽 기슭을 통해 고내마을로 이어진 길로 조금 내려가면 오른쪽으로 올라가는 길이 보이는데, 절 옆을 스쳐 오름 능선으로 이어진 길이다. 오래된 절 조계종 보광사는 분화구 안에 자리 잡았고, 그 길을 따라 조금 더 가면 차량 몇 대 세울 정도의 공간이 나온다. 고내리 산 301번지에 자리한 고내봉은 표고 175.3m, 비고 135m, 둘레 3,240m, 면적 739,484㎡, 저경 1,140m의 원추형 오름이다.

 

 

 크고 높은 주봉을 중심으로 3개의 봉우리로 이루어져 있으며, 주봉 서쪽이 방애오름, 남쪽이 진오름, 남서쪽 공동묘지가 조성되어 있는 것이 너분(넓은)오름이라고 따로 불리고 있다. 오름을 돌아가며 산줄기가 뻗어내려 가장자리마다 잡목이 우거지고 골들이 패어 있는 복합형 화구를 이루고 있다. 또한 이 오름은 2종류의 구성물질로 이루어진 매우 드문 형태의 오름으로도 유명하다. 오름 북사면(바다쪽)과 그 골짜기에는 수중화산 쇄설성 퇴적층의 노두(路頭) 단면이 잘 발달되어 있다.

 

 

 오름 꼭대기에는 조선시대 때 봉수대를 설치했던 흔적이 있는데, 이 봉수는 북동으로 수산봉수, 남서로 도내봉수(어도오름)와 교신했었다. 중턱까지 오르면 남쪽으로 탁 트인 곳이 나타나며, 그곳에서 바라보는 한라산의 모습이 뛰어나 풍경사진을 찍는 사람들에게 잘 알려져 있다. 그런데 아이러니 하게도 고내 마을은 이 오름에 가려 한라산을 볼 수 없는 도내에서 몇 안 되는 마을이 되었으니….     


 

♧ 고내리 탐라후기 선사유적


 고내리는 제주도 서북부 해안을 끼고 동서 방향으로 자리 잡은 마을로 통일신라시대에 해당하는 탐라 후기의 생활 유적이 발굴된 마을이다. 일주도로 확장공사 구역에서 집중적으로 출토된 유물은 제주산 적갈색 토기이다. 이 적갈색 토기는 심발형, 사발형, 컵형으로 세분되며, 다른 모양의 토기도 출토되었다. 그 중 심발형 토기는 고내리식 토기로 명명되었는데, 기벽의 두께가 1㎝ 미만이고 저부를 따로 만들어 동체와 부착하였으며, 바닥과 구연부 직경이 거의 같은 비율로 제작된 토기이다. 이 적갈색 토기는 통일신라시대 또는 탐라시대 후기에 만들어진 것으로 보고 있다.

 

 이 토기 외에 새롭게 확인된 기종으로 사발형 토기, 잔형 토기, 소형 컵형 토기, 꼭지가 달린 소형 토기, 이형 토기 등이 출토되었다. 이 시대의 제주도산 적갈색 토기가 다양한 기종으로 만들어졌음을 알 수 있다. 이 밖에 다른 구역 상층에서 고려 초기 순청자편, 고려 말기 청자편, 연화문 수막새 등이 다량으로 확인된다. 또한 다른 구역 담장지에서는 고려 말기 청자편, 조선 초기 분청 사기편, ‘고내촌(高內村)’ 평와 등도 나왔다. 특히, 원대(元代) 자기와 함께 북송대(北宋代)의 희령원보(熙寧元寶)와 소성원보(紹聖元寶) 등의 화폐도 출토되었다.

 

 제주도의 고문헌인 ‘탐라지(耽羅志)’에 의하면, 고려 충렬왕 때 현 제주시에 있는 대촌현(大村縣)을 비롯한 여러 현촌 중에 고내현(高內縣)도 명시되어 있다. 따라서 노출된 고려시대 유구는 현청지(縣廳址) 또는 구전으로 전하는 고내사지(高內寺址)와 관련된 시설물일 가능성이 높을 것으로 추정된다.

 

 

♧ 고내마을 종착점에서


 오름 거의 정상 못 미쳐에서 오른편 하가리와 통하는 길로 비스듬히 내려와 고내 마을 안길을 통해 포구 종착점에 이르렀다. 사진 촬영 시간과 조금의 휴식시간밖에 안 가졌는데도 7시간을 넘겼으니, 보통으로 걸으면 8시간 이상은 걸릴 것 같다. 올레길을 개척한 서명숙 씨는 ‘놀멍 쉬멍 걸으멍’이란 슬로건을 내걸었다. 그런데 오늘 걸은 19km의 길을 놀멍 쉬멍 걷다간 새벽부터 밤까지 걸어야 하리라.

 

 물론 외국의 경우를 참작해서 코스의 길이를 정했겠지만, 한 코스는 길어야 10km 안팎으로 정했으면 좋았을 걸 하는 생각이 들었다. 오늘은 시간이 안 맞고 평일이어서 그런지 몰라도 이 코스를 걷는 사람은 한 사람도 볼 수 없었다. 이 코스는 밭에 유채나 들꽃이 핀 봄이나, 밀감이 익고 억새가 피어난 가을이 좋겠다. 한여름에는 납읍 금산공원에서 고내포구까지 약 10km를 걷는 것이 비교적 나무 그늘이 많고 거리가 적당해 좋을 것이다. 

 

출처 : 김창집의 오름 이야기
글쓴이 : 김창집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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