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나 이 나라 언론의 역사를 살펴보면 그렇게 된 언론의 생리를 이해할 수 있습니다. 개화기의 언론은 비록 빈약한 노력이긴 했지만 개방, 개혁이 언론의 사명이었고, 따라서 대한제국과의 마찰과 반목이 불가피하였습니다. 민중은 언론에서 그런 것을 기대했을 것입니다.
자유당 정권 하에서는 장기 집권에 반대하는 가운데 눈을 부릅뜨고 부정선거를 감시하는 것이 언론의 사명이었습니다. 군사 쿠데타를 통해 군사정권이 수립되고 유신헌법, 유신체제가 강요된 뒤에는 민주화를 위한 투쟁이 언론의 나아갈 길이었지만 그 시대에는 말 한 마디 잘못하면(잘못된 말이 아니라도) 호된 고초를 겪고 감옥에까지 갈 각오를 단단히 하지 않고는 글 한 줄 쓸 수도 없었고 입을 뻥긋할 수도 없었습니다.
그래서 군사정권 하에서는 언론의 철저한 검열이 실시되어 언론은 제구실을 못하고 살았습니다. 그러다 전두환을 거치고 노태우에 이르러 권위주의는 무너지고 대통령을 죽으라고 욕을 해도 감옥에 안 가는 새 시대가 ‘안전에 전개’되게 되었습니다.
무슨 소릴 해도 감옥에 안 가는 ‘희한한 세상’이 된 것입니다.
내가 보기에 한국의 언론은 정신을 못 차리고 어리둥절하고 있는 듯합니다. ‘진보적’이어야 한다는 강박관념에 사로잡혀 덮어놓고 반정부적인 움직임에 손을 들어 줍니다. 국정원 댓글 사건에도 정부의 입장을 이해하는 것은 언론의 일이 아니고 덮어놓고 야당의 손을 들어주게 되는 겁니다.
통합진보당의 ‘종북적’ 입장을 두둔하지 않게 된 것도 그리 오래 전의 일은 아닙니다. 노조가 파업하면 무턱대고 노조 편을 드는 경향이 농후합니다. 왜? 그 쪽이 ‘진보’라고 믿기 때문에! ‘진보노이로제’에 걸려 헤어나지 못하는 것이 한국 언론의 생리라고 해도 지나친 말은 아닙니다.
진보당이 과연 진보당입니까? 진보세력이 과연 진보세력입니까?
무슨 모양으로이건 남북이 통일되기까지는 한국의 언론은 반정부적 기질과 노선을 수정하지 못할 겁니다. 이런 사실 때문에 대한민국의 정치적 민주화는 시련을 겪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