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13.12.19 05:02
지난 11월 22일 천주교정의구현전주교구사제단이 ‘불법 부정선거 규탄과 대통령 사퇴 촉구’를 내걸고 시국미사를 가진 이후 종교계의 시국선언이 줄을 이었습니다. 11월 27일에는 개신교 단체들로 구성된 ‘국가정보원 선거 개입 기독교 공동대책위원회’가 지난 대통령 선거가 무효라며 박근혜 대통령의 사퇴를 요구하는 성명서를 발표했습니다. 11월 28일에는 대한불교조계종 승려 1012인이 박근혜 정부에 국정운영의 대전환을 촉구하는 시국선언을 발표했습니다. 11월 29일에는 원불교 교무 30여명이 지난 대선에서의 국가기관 개입 진상 규명과 대통령의 사퇴를 촉구하는 성명을 발표했습니다. 정의구현전주교구사제단의 시국미사에서 박창신 원로신부의 강론이 큰 파문을 일으킨 뒤 침묵하던 정의구현전국사제단은 12월 4일 전주교구 시국미사를 지지하고 대통령의 사퇴를 촉구하는 성명을 내놓았습니다.
종교계 시국선언 종파·교단 초월 정부 규탄하는 듯하지만 실제로는 각 종교 운동권 종교인들 중심
이렇게 이어진 일련의 종교계 시국선언은 여러 종교의 종교인들이 종파와 교단을 뛰어넘어 하나가 돼 정부를 규탄하는 듯한 모양새이지만 자세히 들여다 보면 20년 넘게 연대활동을 벌여온 각 종교의 운동권 종교인들이 중심에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민족의화해와통일을위한 종교인협의회’를 함께 구성하고 있는 천주교의 정의구현전국사제단(정구사), 개신교의 전국목회자정의평화협의회(목정평), 불교의 실천불교전국승가회(실승), 원불교의 사회개벽교무단이 그들입니다. 정구사는 천주교는 물론 종교계를 대표하는 사회·정치운동 단체입니다. 기독교 공동대책위는 20여개 단체가 이름을 걸고 있지만 목정평이 주축을 이루고 있습니다. 조계종 시국선언을 주도한 것은 실승입니다. 원불교 성명은 정치적 발언을 도맡아 하는 사회개벽교무단이 했습니다.
- 11월 22일 전북 군산시 수송동 성당에서 열린 시국미사를 마친 사제들이 가두행진을 벌이고 있다. 김영근 기자
- '민족의 화해와 통일을 위한 종교인협의회’회원 단체
종교인 운동권 단체의 ‘맏형’이면서 명망과 위력도 가장 강력한 정의구현전국사제단(대표 나승구 신부)은 1974년 9월 발족했습니다. 독재시대에는 민주화와 인권의 보루로서 명성이 높았지만 민주화 이후 좌편향을 강하게 드러내며 반미·통일 운동에 힘을 기울여 왔습니다. 현재 50대 중견 신부들이 실무 책임을 맡고 있지만, 창립 주역인 함세웅 신부가 대부(代父) 역할을 하는 등 70대 원로들이 여전히 강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습니다. 사제단은 정확한 회원수를 밝히지 않았지만 300~500명으로 추산됩니다. 한국 천주교의 신부는 2012년 말 현재 4578명입니다.
전국목회자정의평화협의회(상임의장 정태효 목사)는 1984년 7월 개신교계의 초교파적인 목회자 운동 단체로 출범했습니다. ‘깊은 어둠 속의 한국 사회를 깨우기 위한 적극적인 예언자적 활동’을 내걸고 국가보안법 폐지, 한총련 합법화 운동 등을 전개해 왔으며, 지난해 대선 때는 문재인 민주당 후보를 공개 지지했습니다. 개신교 교단 중 예장통합·감리교·기장·침례교 목회자들이 많이 참여하며 회원은 300~500명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우리나라의 개신교 목사는 약 14만 명에 이릅니다.
- 국가정보원 선거 개입 기독교 공동 대책위원회 소속 회원들이 11월 27일 서울 종로구 한국기독교회관 앞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제18대 대통령 선거가 국가 권력기관의 선거 개입으로 인한 불법 부정으로 얼룩졌다'며 규탄하고 있다. 성형주 기자
종교인 운동권 단체의 ‘막내’라고 할 사회개벽교무단(대표 강해윤 교무)는 1986년 9월 창립됐습니다. 원불교의 개교(開敎) 표어인 ‘물질이 개벽되니 정신을 개벽하자’에서 한걸음 더 나아가 ‘사회개벽’을 내걸고, 3대 종교의 ‘형님’ 종교인 운동권 단체들이 벌이는 연합 활동에 적극 가담해 왔습니다. 이번 시국성명 발표 때 일부 보도에서 ‘600명의 교무가 사회개벽교무단 회원’이라고 했지만 실제 회원은 100명 정도라고 합니다. 원불교 교무는 약 2000명입니다.
- 11월 28일 오전 서울 종로구 조계사 대웅전 앞에서 실천불가전국승가회 주최로 열린 박근혜 정부의 참회와 민주주의 수호를 염원하는 대한불교조계종 승려 시국선언에 참석한 승려들이 시국선언을 하고 있다.
시국선언 참여 종교인 전체 종교인 중 소수
시국선언에 참여하는 종교인은 전체 종교인 중 소수입니다. ‘대통령 사퇴’라는 구호에 공감하는 종교인도 아직은 그렇게 많지 않습니다. 개신교는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NCCK)를 성명에 참가시키기 위해 노력했지만 실패했다고 합니다. 불교도 지금은 ‘박근혜 정부의 참회’를 요구하는 수준입니다. 천주교는 정의구현사제단의 언행을 참지 못한 신자들의 반발이 거세자 수뇌부가 나서서 사제들의 직접적인 정치 참여를 만류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종교인은 근본적으로 이상주의적인 성향을 지니고 있습니다. 정부가 계속 ‘불통(不通)’ 이미지를 털어버리지 못할 경우 중립적 입장에 있는 종교인들이 종교인 운동권 단체들의 주장에 동조하고 나설 가능성도 있습니다. 벌써 개신교는 교단과 연합기관 등 공식적인 조직들이 움직이기 시작했고, 천주교도 수도자 단체와 평신도 조직들이 시국미사와 성명을 발표하기 시작했습니다. 불교도 동안거(冬安居)가 끝나는 내년 2월 쯤에는 시국 관련 움직임이 다시 일어날 수 있습니다. 많은 종교인은 현재 지난 대선 때 공권력의 불법 개입에 대한 진상 규명과 책임자 처벌을 촉구하는 수준이지만 정부의 대응이 만족스럽지 않을 경우 본격적인 반(反)정부 투쟁으로 돌아설 수도 있습니다.
그런 점에서 지금부터 한동안이 중요하다고 생각됩니다. 정부 여당이 이 문제에 대해 좀 더 적극적이고 전향적인 입장과 조처를 내놓을 수는 없는 것일까요? 원칙적인 입장만 계속 고집하는 것은 ‘큰 정치’의 모습은 아니라는 아쉬움이 드는 것도 사실입니다. 정부가 운동권 종교인들이 더 이상 길거리로 나오지 않고 종교인 본연의 역할에 충실할 수 있도록, 그리고 중립적인 종교인들이 이들의 주장에 동조하지 않도록 정국의 대전환을 이룩하기를 기대해 봅니다.
- 11월 29일 오후 전북 익산시 신용동 원불교 중앙총부 앞에서 열린 시국선언 기자회견에서 원불교 사회개벽단 교무들이 국가기관의 대선개입 진상 규명과 박근혜 대통령의 사퇴를 촉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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