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先人(선인)들은 자신의 말의 진실성, 信實性(신실성)을 아주 소중하게 생각했던 것 같다. 우리 조상들의 信義(신의)에 대한 이야기는 여러 史書(사서)들의 기록에 잘 나타나 있다.
《三國遺事(삼국유사)》 「瑠璃王(유리왕)」條(조)의 이야기가 그런 것이다. 高句麗(고구려) 시조 朱蒙(주몽)은 앞날을 위해 사랑하는 여인 禮氏(예씨)와 헤어지게 되었는데, 그때, 그녀의 몸에서 태어나는 아기가 사내거든 ‘七陵石(7릉석)’, 곧 일곱 모난 돌 아래에 있는 信物(신물)을 가지고 자신을 찾아오게 하라고 한다. 그래서 그녀가 낳은 아들 琉璃는 그의 집 주춧돌 밑에 숨겨져 있던 부러진 칼을 찾아 가지고 朱蒙王(주몽왕)을 찾아간다. 이에 왕은 그것이 자신이 가지고 있는 短劍(단검)의 반쪽이라는 것을 확인하고는 처음 마음에 약조한 대로 그를 太子(태자)로 삼았다.
《三國史記(삼국사기)》 「薛氏女(설씨녀)」條(조)의 이야기도 ‘약속 지키기’에 관한 것이다. 新羅(신라)시대에 嘉實(가실)이라는 한 청년이 이웃의 薛氏女를 사랑했다. 그래서 그는 돌아오면 그녀와 맺어지기로 하고, 거울 한 개를 깨뜨려 각각 한 조각씩을 가지고, 그녀의 나이 든 아버지를 대신해 수자리 살이를 갔다. 그런데 嘉實이 때가 되었는데도 돌아오지 않자 주위에서는 薛氏女에게 그 사람과의 일은 잊어버리고 다른 사람을 맞아 결혼을 하라고 했다. 그녀는 그 말들을 듣지 않고 끝까지 언제 온다는 기약도 없는 그를 기다렸다. 嘉實은 뒤늦게야 몰라보게 변한, 초라한 모습으로 돌아왔는데 그녀는 거울 조각을 꺼내어 맞추어 보아 그임을 확인하고는 부부가 되었다는 것이다.
우리 古典(고전)은 약속을 어겼을 때에는 어떤 應報(응보)를 받는가 하는 이야기도 들려주고 있다. 《慵齋叢話(용재총화)》에 실려 있는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그런 것이다. 뒷날 宰相(재상)의 자리에 오른 洪氏(홍씨) 청년은 젊은 시절 산길에서 비를 만나 한 토굴에 들어갔다. 그 곳에는 17~18세쯤 된 아름다운 女僧(여승)이 있었다. 洪 청년은 아무 날 그녀를 데리러 오겠다고 언약하고 그녀와 사랑을 나누었다. 그러나 그는 그 약속을 지키지 않았다. 몸을 버리고 破戒(파계)까지 한 女僧은 그를 기다리다 병을 얻어 죽고 말았다. 그 후 洪 청년은 登科(등과)를 해 높은 벼슬에 올랐다. 그런데 어느 날부터 그가 가는 곳마다 그의 寢所(침소)에 뱀이 나타났다. 내다버려도, 죽여도 계속해서 뱀이 나타나자 그는 그것이 그녀의 원혼이라는 것을 알았다. 그리고 거기서 병을 얻어 죽고 말았다 한다.
우리뿐 아니라 서양에도 약속을 어기면 그 갚음을 받는다는 이야기가 있다. 그 좋은 예가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트로이의 멸망과 관련된 것이다. 그 나라의 王女(왕녀) 카산드라는 절세의 미녀였다. 그녀의 미모에 혹한 아폴로신은 자신의 구애를 받아들이면 앞일을 미리 아는 豫言力(예언력)을 주겠다고 했다. 흥정이 이루어져 그녀는 그러한 능력을 얻게 되었다. 그러나 받을 것을 받은 그녀는 마음이 변해 아폴로신에게 입술만을 허락하고 완전한 사랑을 하는 것은 거절했다. 아폴로신은 화가 났지만 이미 주어버린 예언력은 어쩔 수 없는 일이고, 그 대신 그 예언력에서 說得力(설득력)을 앗아 버렸다. 그래서 그녀는 앞날의 일은 환히 알았지만 아무도 그녀의 말을 믿지 않았다. 그리하여 그녀의 오빠, 왕자 파리스가 스파르타의 왕비 헬레네를 데리고 왔을 때 카산드라는 그녀를 돌려보내지 않으면 트로이가 망하게 될 것이라고, 아무리 말해도 아무도 그 말을 믿지 않았다. 결국 그 일로 해서 트로이는 그리스 연합군에 패망하고 카산드라 자신도 비극적인 죽음을 맞았다 한다.
우리의 조상들은 실제 생활에서도 한 번 한 약속은 반드시 지키는 것으로 알았다. 그것이 가장 잘 드러나 있는 것이 남녀 간의 혼사에 관한 것이다. 《東野彙輯(동야휘집)》에 보면 忠武公(충무공)의 후예 李氏女(이씨녀)는 閔氏(민씨) 총각과 결혼을 하기로 했는데 신랑이 초례를 치르고 바로 急死(급사)해 버렸다. 그래도 李氏는 시집으로 가 시부모를 모시고 살았다고 한다. 그 경우는 예식이라도 올렸으니 나은 편이다. 朝鮮(조선)시대에는 결혼을 약속하고, 신랑 측에서 四柱單子(사주단자)를 보내고 나면, 결혼식을 하기 전에 신랑이 죽어도 여자는 시집으로 가 그 집 귀신이 되는 것으로 알았다 한다.
요즘 사람들은 자기가 한 말을 너무 쉽게 잊어버리고 약속을 저버리거나 거짓말을 예사로 하는 것 같다. 그 중에서도 소위 정치판 주변의 사람들의 거짓말·食言(식언)이 도를 넘은 것 같다.
우리는 두 차례나 大選(대선) 막바지에 누군가가 허위사실을 유포해 후보의 당락에 큰 영향을 미치는 것을 보았다. 그런 큰, 나라 일에 惡意(악의)를 가지고 고의로 거짓말을 퍼뜨린 사람은 특별법 같은 것을 제정해서라도 일반 형사범이 아니라 國事犯(국사범)으로 다루어 중벌을 해야 하지 않을까 한다.
나는 文在寅(문재인) 의원의 약속 저버리기도 여간 큰 문제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는 지난 6월 성명을 통해 참여정부의 NLL에 관한 입장이 북한과 같은 것이었다는 것이 드러나면 자신이 사과를 하는 것은 물론 정치를 그만두는 것으로 책임을 지겠다고 땅 따먹듯이 약속을 했다. 그런데 당시 정부의 입장이 명명백백하게 북한과 같았다는 것이 드러났는데도 그는 정계 은퇴는커녕 사과 한마디 안 하고 있다. 이런 경우는 우리 국민이 다음 선거 때 투표를 통해 단단히 심판을 해, 약속을 지키지 않는 사람은 발붙일 곳이 없다는 것을 분명하게 알게 해야 한다는 것이 나의 생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