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조선] '제2의 원전 비리'? 광해관리공단의 '먹이사슬'
입력 : 2013.11.01 11:05 | 수정 : 2013.11.02 16:01
대규모 입찰 비리로 검찰 수사를 받고 있는 한국광해관리공단(이사장 권혁인)의 지난 5년간 입찰 현황을 주간조선이 단독 입수해 분석한 결과, 수천억원에 달하는 혈세가 공단과 유착관계에 있는 업체들 간 ‘나눠 먹기’식으로 사용된 것으로 드러났다.
주간조선이 박완주 의원(민주당·충남 천안을)실을 통해 입수한 자료에는 지난 5년간 광해관리공단이 발주한 광해방지사업과 입찰업체, 선정업체, 선정업체의 지분내역, 사업금액, 평가위원명단이 나와 있다. 이 자료를 분석한 결과, 광해관리공단과 관련업체를 중심으로 한 폐쇄적인 ‘먹이사슬’ 구조가 잘 드러났다. 광해관리공단의 입찰 비리는 지난 10월 1일 서울중앙지검이 공단을 압수수색하면서 수면 위로 떠올랐다.
주간조선이 광해관리공단의 입찰 비리에 주목한 이유는 광해관리공단을 중심으로 한 먹이사슬이 한국수력원자력의 ‘원전 비리’와 유사하기 때문이다. 광해관리공단과 한국수력원자력은 모두 산업통상자원부(장관 윤상진, 이하 산업부) 산하 공기업들이다.
폐쇄적인 입찰구조, 투명하지 못한 선정과정으로 인해 막대한 혈세가 낭비되고 있다는 점은 산업부 산하 공기업의 도덕적 해이가 비단 한국수력원자력 뿐만이 아닌 다른 공기업에도 퍼져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산업부 산하 공기업에 대한 대대적 개혁이 요구되는 이유다. 광해관리공단은 광산 개발에 따른 수질·토양오염과 산림파괴 등 환경피해를 방지하고, 폐광 관리 및 훼손된 지역을 복구하는 사업을 수행한다.
2006년 광해방지사업단이라는 이름으로 설립됐다가 2009년 현재의 이름으로 바뀌었다. 업무의 특성상 광해관리공단의 대중적 인지도는 높지 않지만 강원랜드의 주식 33%를 가지고 있는 대주주이면서, 매년 수천억원의 예산을 운용하는 거대 공기업이다.
정부는 광해방지 기본 계획에 따라 2007년부터 2016년까지 10년간 총 1조1316억원의 정부 출연금과 보조금, 관련업계의 부담금 등을 투입하고 있다. 1단계 사업기간인 2007~2011년 5573억원을 투입했고 지난해부터 2016년까지 5743억원을 투입하는 2단계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광해관리공단은 매년 예산 중 약 1000억원을 광해방지사업에 사용하고 있다.
자료에 따르면 지난 5년간 광해관리공단으로부터 광해방지 관련사업을 수주한 민간업체는 34곳. 주간조선은 이 중 최소 5건 이상 사업을 수주한 업체를 대상으로 이 회사의 지분 구조 및 임직원의 출신 내역 등을 분석해봤다. 분석 결과 가장 문제가 되는 부분은 입찰과정에서의 공정성이다.
광해관리공단이 발주하는 사업들은 경쟁입찰을 통해서 수주업체가 결정되지만 이를 결정하는 평가위원들은 광해관리공단 임직원이거나 공단에서 발주하는 사업을 하고 있는 민간업체 임직원과 교수들이다. 때문에 입찰과정에서 공단 측의 입김이 강하게 작용할 수밖에 없다. 업체들 간 담합이 가능한 ‘그들만의 리그’인 셈이다.
5년간 가장 많은 사업을 수주한 S사의 경우 총 21건을 따냈다. 금액으로는 192억원 정도다. 이 회사의 대표와 사내이사는 모두 한국지질자원연구원 출신이다. 한국지질자원연구원은 정부 출연 기관이다. 한국지질자원연구원은 광해관리공단이 발주하는 대부분의 사업에 평가위원으로 참여하고 있다. S사 대표이사의 경우 광해관리공단의 사업을 두 번째로 많이 수주한 업체인 D사에도 지분을 15% 정도 가지고 있다.
D사의 경우 대한석탄공사 임원 출신이 대표이사로 있다. 광해관리공단은 폐광에 대한 광해방지사업을 기본으로 하고 있어 석탄공사와 밀접한 연관성을 가지고 있다.
익명을 요구한 한 에너지 공기업 임원은 “석탄공사와 광해관리공단의 경우 사실상 하나의 회사로 묶어놔도 될 만큼 업무의 연관성이 많다”라며 “석탄공사 임원 출신이 만든 회사가 광해관리공단에서 발주한 사업을 따내는 것은 현행법의 허점을 교묘하게 이용한 사실상의 전관예우”라고 말했다.
5년간 9회에 걸쳐 160억원 규모의 사업을 수주한 또 다른 S사의 경우도 5명의 등기이사 중 3명이 대한석탄공사 출신이었다. 이 회사 임원들도 광해관리공단 평가위원 명단에 이름을 올리고 있다. 주간조선은 최소 5회 이상 사업을 수주한 업체로 범위를 축소해서 분석했지만, 5회 이하 수주한 업체 중에서도 평가 과정에 참여한 업체가 적지 않았다.
평가위원 명단에 다수의 대학교수가 참여하고 있는데 교수들의 소속 대학이 광해관리공단이 발주하는 용역 프로젝트를 대부분 따낸 것도 평가과정의 공정성에 의문을 제기할 수 있는 부분이다.
광해관리공단은 하나의 사업을 발주할 때마다 평균적으로 6~7명의 평가위원을 임명하고 이들을 통해서 사업자를 선정해왔다. 하지만 평가위원 중 평균적으로 절반은 광해관리공단에서 프로젝트를 받는 교수들이고 나머지 절반은 광해관리공단 임원, 광해협회, 한국지질자원연구원 또는 광해협회 소속 민간업체들이다. 결국 광해관리공단과 직간접적으로 이해관계에 얽혀 있는 민간업체나 교수들이 서로 밀어주기가 가능한 구조인 셈이다.
광해관리공단은 매년 총 3000억원가량의 예산을 사용하고 이 중 1000억원가량을 민간업체에 발주하는 사업비로 쓰고 있다. 공정성과 투명성을 담보할 수 없는 평가시스템과 유착관계로 인해 거액의 예산이 눈먼 돈처럼 사용되고 있는 셈이다. 이런 폐쇄적 구조로 인해 뛰어난 광해방지 기술을 가진 업체가 있더라도 사업을 따내기가 쉽지 않은 것이다.
이번 검찰 수사 역시 광해관리공단의 먹이사슬 밖에 있는 업체들과 공단의 전직 임원의 제보에 의해 시작된 것으로 전해진다. 현재 검찰은 공단 관계자와 연구 용역에 참여했던 일부 교수가 공사를 수주하려는 업체들로부터 수차례에 걸쳐 수억원대의 금품을 받고 업체 선정에 특혜를 준 것으로 의심하고 계좌추적을 통해 자금흐름을 쫓고 있다.
검찰은 10월 1일 서울 종로구 수송동에 있는 광해관리공단 본사 및 지사, 공단 임원의 자택, 그리고 관련업체 본사와 임원 자택 및 대학교수 연구실 등을 압수수색했다. 앞서 주간조선의 분석 대상에 포함된 업체들도 압수수색 대상에 포함됐다.
에너지 공기업들 사이에서는 광해관리공단에 대한 검찰 수사가 진행되자 ‘언젠가는 한번 터질 것이 터졌다’는 반응이다. 익명을 요구한 한 에너지 공기업 임원은 “광해관리공단의 폐쇄적 입찰 구조는 공기업들 사이에서 해도 너무했다는 말이 있었다”며 “광해관리공단은 강원랜드를 비롯한 몇몇 레저시설 등에 출자해 이런저런 이득을 많이 보면서도 낮은 인지도로 인해 견제와 감시의 사각지대에 있었으며, 이로 인해 문제가 있었다”고 주장했다.
그는 “언젠가는 한번 문제가 될 줄 알았는데 곪은 것이 터졌다”고 말했다. 더 큰 문제는 광해관리공단 사업의 실효성에 문제가 있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당장 10월 31일 열린 국회 산업자원통상위원회의 광해관리공단에 대한 국정감사에서도 이러한 문제가 지적됐다.
오영식 의원(민주·서울 강북 갑)은 지난해 광해방지사업이 완료된 폐광산 57곳에 대해 환경부가 실시한 환경오염조사에서 39개 광산이 기준치 이상의 중금속이 검출된 것으로 나타났다고 말했다. 매년 1000억원에 가까운 예산이 광해방지사업에 투입됨에도 불구하고 70% 가까운 폐광에서 여전히 유해물질이 나오고 있는 것이다.
원자력발전소가 국민의 안전과 직결되어 있는 것처럼 광해방지사업 역시 국민의 안전과 밀접하다. 사업이 잘못됐을 경우 그 피해는 고스란히 국민에게 돌아간다. 다만 광해사업의 경우 그 피해가 광산 인접지역에 제한된다는 점이 다를 뿐이다. 하지만 전국적으로 광산이 5300여개이고 그 가운데 현재 폐광된 광산이 2600여개라는 점을 감안하면 광해사업의 중요성은 원전 관리 못지않다.
전문가들은 광해관리공단의 비리 의혹이 여러 가지 면에서 ‘원전 비리’와 유사하다고 말한다. 입찰과정의 불공정성이나 사업의 실효성에도 문제가 있다는 점 등이 원전 비리와 비슷하다는 것. 여기에 업계가 워낙 좁고 전문성이 필요하다 보니 같은 분야에 있는 사람끼리 돌아가면서 나눠 먹는 유착고리가 형성되는 점도 흡사하다고 지적한다.
정부가 지난 10월 10일 내놓은 원전비리 근절 후속조치도 이러한 유착관계 근절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한 공기업 감사실 관계자는 익명을 전제로 “한수원이나 광해관리공단 또한 직간접적 이해관계가 있는 업체들이 사업의 대부분을 수주하는 구조를 바꿔야 한다”며 “끼리끼리 해먹는 폐쇄적 구조에서 비리가 싹튼 만큼 인적 유착구조를 과감히 수술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60개에 달하는 공기업을 산하에 두고 있는 산업부의 관리감독시스템도 문제라는 지적이 나온다. 산업부는 지난해 4월 직원 2명이 산하기관에 예산 배정 등과 관련해 편의를 봐주고 뇌물을 받은 혐의로 구속되자 내부에 공직기강팀을 만든 바 있다.
하지만 원전 비리나 이번 광해 비리 등이 불거진 것을 보면 사실상 유명무실한 조직이었다는 비판이 나온다. 게다가 광해 비리와 관련해 검찰의 압수수색을 받은 광해관리공단 임원 중에는 전직 산업부 사무관도 포함되어 있다. 다른 임직원 중에도 산업부 출신이 적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현재 진행되고 있는 검찰 수사로 광해사업과 관련한 조직적 비리가 또다시 밝혀진다면 산업부 산하 공기업의 도덕적 해이가 다시 한 번 국민의 손가락질을 받을 가능성이 높을 것으로 보인다. 한국광해관리공단 측은 제기되는 의혹에 대한 주간조선의 취재 요청을 거절했다.
주간조선은 평가위원 선정 기준과 업체 선정 기준, 담합 의혹 등에 관해 공단 측에 충분한 반론권을 주겠다며 취재를 요청했으나 공단의 강희종 홍보팀장은 “현재 검찰 수사가 진행 중인 사안이어서 답변할 수 없다”고 말했다. 강 홍보팀장은 “조사를 한 것 자체가 의아하기는 한데, 우리로서는 아니다라고도 답변하기 어려운 상황”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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