鶴山의 草幕舍廊房

Faith - Hymn

CTS 큐티

鶴山 徐 仁 2013. 10. 7. 12:00



구원으로의 부르심


본토를 떠나는 것은 이때까지의 안정과 편안함이 일시에 깨지면서 불확실한 미래를 마주해야 하는 일이다. 그러나 떠나야 한다면 떠나야만 한다. 하나님은 인류에게 구원의 길을 보여주시기 위해 한 사람을 본토에서 불러내셨다.………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떠나라고 하신 ‘본토 친척 아비 집’은 그를 둘러싸고 있는 삶의 터전이 되는 모든 것이었다.
-유승원의 [책 한권의 사람] 중에서-

본토는 우리 삶에 익숙한 곳입니다. 그러나 익숙함이 더 많은 게으름과 자유의 방종을 가지고 옵니다. 그곳을 떠나는 일이 고통스럽지만 보이지 않는 내 인생의 미래를 하나님께 맡길 수 있는 최고의 기회입니다. 지금도 하나님은 우리에게 구원을 이루시기 위해 본토를 떠나 지시하신 땅으로 갈 수 있는 믿음을 요구하십니다.



글쓴이 : 이재학 연세대학교 연합신학대학원을 졸업
웨스터민스터신학대학원대학교(선교학)박사학위(Ph.D) 수료
하늘땅교회 담임목사
주님을 생각함
구주를 생각만 해도 내 맘이 좋거늘 그 얼글 뵈올 때에야 얼마나 좋으랴
글쓴이 : 김수영
프랑스 파리와 서울에서 활동하는 프리랜서
대저 여호와는 - 이사야 33장 22~24절

22 대저 여호와는 우리 재판장이시요 여호와는 우리에게 율법을 세우신 이요 여호와는 우리의 왕이시니 그가 우리를 구원하실 것임이라
23 네 돛대 줄이 풀렸으니 돛대의 밑을 튼튼히 하지 못하였고 돛을 달지 못하였느니라 때가 되면 많은 재물을 탈취하여 나누리니 저는 자도 그 재물을 취할 것이며
24 그 거주민은 내가 병들었노라 하지 아니할 것이라 거기에 사는 백성이 사죄함을 받으리라
하이데거는 언어를 존재의 집이라고 했습니다. 언어에서 인간의 사유활동이 시작되고 나아가서는 인류문명의 발전이 이뤄진다는 얘깁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언어가 없었다면 생각도, 소통도, 관계도 발전할 수 있었을까요? 특히 우리에게는 <고백>이라는 중요한 언어의 기능이 있습니다. 고백이란 대개 마음의 느낌과 생각, 의지를 말로 표현하는 행위를 가리킵니다. 따라서 누구의 고백을 듣는다는 것은 곧 그 사람의 전체와 만나는 것입니다. 바로 이런 점 때문에 고백은 진지하고 신중한 것이고 또 그 고백이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을 향한 것이었을 때는 더 더욱 신중하고 심각한 것일 수 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우리의 재판장 우리의 왕
<대저 여호와는 우리 재판장이시요 여호와는 우리에게 율법을 세우신 이요 여호와는 우리의 왕이시니 …>(22절).
맞습니다. 이 고백은 진실입니다. 여호와는 <우리의 재판장>이십니다. 그래서 우리는 그분의 판단에 우리의 모든 것을 맡겨야 하고 또 거기에 전적으로 따라야 합니다. 그분은 우리에게 율법을 제시하신 분이십니다. 모든 재판과 판단의 기준과 원칙을 세우신 분이시라는 뜻입니다. 여호와는 영원하신 재판장이시며 율법을 세우신 입법자시며 이 세상과 역사에 대한 최후의 심판주이십니다. 뿐만 아니라 그분은 <우리의 왕>이십니다. 스스로 존재하시며 스스로 충족하시며 홀로 우리의 모든 것을 책임져 주시는 주권자십니다. 우리는 이 사실을 고백하는데 주저하거나 인색하거나 태만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주님은 제자들에게 <사람들이 나를 누구라 하더냐>며 신앙고백을 듣고 싶어 하셨고, 베드로는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다>(마 16:16)하고 고백하여 주님의 칭찬을 들었습니다. 다윗도 <주께서 나의 반석이시요 나의 요새이심이니이다>(시 71:3)라고 고백했습니다. 당신은 주님께 어떤 고백을 하시겠습니까?

우리를 구원하실 자
<… 그가 우리를 구원하실 것임이라>(22절).
사도행전은 <다른 이로써는 구원을 받을 수 없나니 천하 사람 중에 구원을 받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라>(4:12)고 했습니다.
다른 이름은 없음을 확신하시고 거듭 고백하십시오. 요즘 큰 위협이 되고 있는 종교다원주의와 포스트모더니즘은 다른 이름도 인정한다는 데 그 문제의 심각성이 있습니다. 그들은 단지 이름이 다를 뿐 궁극적인 실체는 같다고 합니다. 정상은 하나지만 그 정상을 오르는 길은 다양하므로 타 종교를 용납하고 인정함은 물론 각 종교가 내세우는 구원자도 인정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대단히 관대하고 합리적인 주장 같지만 성경의 가르침과는 철저하게 배치되는 잘못된 논리입니다. 성경은 오직 주님 만이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라고 합니다. 주님 만이 유일한 구원자이신 그리스도라고 합니다. 속지 마십시오. 흔들리지 마십시오.
글쓴이 : 조성노 독일 본(Bonn) 대학교 신학부 졸업
뮌헨(Muenchen) 대학교 신학부 졸업
장로회신학대학교 조직신학 교수 역임
푸른교회(분당 소재) 담임목사



지혜로운 자


우리도 하나님 나라의 오케스트라 멤버입니다. 우리 가운데 어느 한 사람도 소중하지 않은 이가 없습니다. 어떤 사람은 바이올린, 어떤 사람은 심벌즈, 또 어떤 사람은 드럼 연주자와 같습니다. 중요한 것은 우리가 무엇을 맡았느냐 하는 것이 아니라 그 일을 어떻게 적절하고 지혜롭게 해내는가 하는 방법과 태도입니다.
-김상복의 [섬기는 당신이 최고입니다] 중에서-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은 공동체와 조직 안에서 벽돌 한 장입니다. 아무것도 아닌 것 같지만 그 벽돌 한 장이 빠지면 건물은 무너집니다. 그런데 그 벽돌 한 장의 역할을 잘 감당하려면 지혜가 필요합니다. 지혜는 우리가 알고 있는 지식을 적재적소에 활용하는 능력입니다. 우리에게는 지혜를 주시는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이 필요합니다.



글쓴이 : 이재학 연세대학교 연합신학대학원을 졸업
웨스터민스터신학대학원대학교(선교학)박사학위(Ph.D) 수료
하늘땅교회 담임목사
어찌 그리 아름다운지요
여호와 우리 주여 주의 이름이 온 땅에 어찌 그리 아름다운지요
주의 손가락으로 지으신 주의 하늘과 주의 베풀어 주신 달과 별 내가 보오니..
글쓴이 : 김수영
프랑스 파리와 서울에서 활동하는 프리랜서
열국이여 - 이사야 34장 1~4절
1 열국이여 너희는 나아와 들을지어다 민족들이여 귀를 기울일지어다 땅과 땅에 충만한 것, 세계와 세계에서 나는 모든 것이여 들을지어다
2 대저 여호와께서 열방을 향하여 진노하시며 그들의 만군을 향하여 분내사 그들을 진멸하시며 살륙 당하게 하셨은즉
3 그 살륙 당한 자는 내던진 바 되며 그 사체의 악취가 솟아오르고 그 피에 산들이 녹을 것이며
4 하늘의 만상이 사라지고 하늘들이 두루마리 같이 말리되 그 만상의 쇠잔함이 포도나무 잎이 마름 같고 무화과나무 잎이 마름 같으리라
하나님의 교회와 그 백성을 대적하는 나라들은 반드시 파국을 맞게 될 것이라는 예언입니다. 성경에는 여호와의 전쟁에 관한 말씀이 많습니다. 그런데 그런 전쟁들은 다 의로울 뿐 아니라 반드시 여호와가 이기십니다. 세상은 누가 뭐래도 하나님의 피조물이기 때문에 하나님이 친히 은혜를 베푸시고 선을 행하십니다. 그러나 세상이 이 <세상의 신>이라 불리우는 사탄의 수중에 들어가 도리어 하나님을 대적하고 세상 가운데서 사는 하나님의 백성들을 위협하거나 해치려 들면 하나님은 단호히 그것들과 맞서 싸우십니다. 이게 바로 여호와의 의로운 전쟁입니다.

열방을 향하여 진노하신 여호와
<대저 여호와께서 열방을 향하여 진노하시며 그들의 만군을 향하여 분내사 그들을 진멸하시며 살육당하게 하셨은즉>(2절).
하나님은 지금 열방과 다투고 계십니다. 하나님이 지금 그들을 치러 진노 가운데서 오고 계십니다. 그들이 모두 하나로 똘똘 뭉쳐 마귀의 이익을 위하여 하나님과 신앙을 대적하고 있기에 하나님이 그들 모두에 대해 진노하고 계십니다. 하나님은 오랜 세월 모든 민족들로 하여금 각자의 길을 가도록 그냥 방임하셨습니다(행 14;16). 그러나 이제는 더 이상 그렇게 침묵하지 않으시겠다는 선전포고이십니다. 그들은 늘 군대를 동원하여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해악을 끼쳐왔고 하나님의 백성으로 하여금 피흘리게 해왔기 때문에 이제는 그들이 피를 마실 차례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공의의 진노는 무엇보다도 먼저 그들의 군대 위에 임할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언제나 군대를 앞세워 하나님을 대적해 왔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진노 앞에 직면한 나라와 개인은 그가 누구든 결코 무사할 수 없음을 깊이 명심하십시오.

하늘의 만상이 사라지리라
<하늘의 만상이 사라지고 하늘들이 두루마리 같이 말리되 그 만상의 쇠잔함이 포도나무 잎이 마름 같고 무화과나무 잎이 마름 같으리라>(4절).
하나님의 진노의 결과가 얼마나 끔찍하고 무시무시한가를 표현한 3절 말씀을 한 번 보십시오. <그 사체의 악취가 솟아오르고 그 피에 산들이 녹을 것이며> 모든 사람들이 그 소름끼치는 광경과 악취 때문에 죄에 대한 분노와 하나님의 진노에 대한 두려움을 갖게 될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또 살육을 당하되 매장되지도 못하고 널부러져 있어 하나님의 공의를 보여주는 기념비가 될 것입니다. 어디 그 뿐입니까? 그 하나님의 진노와 응징으로 결국 이 세상 만유가 온통 뒤죽박죽이 되어 수척해지고 쇠잔해질 것이며 해는 어두워지고 달은 보랏빛이나 핏빛으로 변할 것이라고 합니다. 또 하늘이 마치 불의 열기에 오그라드는 양피지 같이 말릴 것이라고 합니다. 별들은 가을 낙엽처럼 떨어질 것이고 패배한 나라들의 모든 아름다움과 기쁨과 낙은 다 사라질 것이고 방백의 지위나 정부, 모든 통치권은 폐지될 것이며 오직 전쟁의 칼날만이 그들 위에 떨어질 것입니다. 이것은 마치 종말에 있을 여러 현상들과 최후의 심판을 비유한 말씀처럼 보이는데 그러나 이는 역사의 종말에 있을 최후 심판에 비하면 맛보기 수준에 불과할 뿐입니다. 성경은 마지막 날에 대해 <하늘이 큰 소리로 떠나가고 물질이 뜨거운 불에 플어지리로다>(벧후 3:10)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글쓴이 : 조성노 독일 본(Bonn) 대학교 신학부 졸업
뮌헨(Muenchen) 대학교 신학부 졸업
장로회신학대학교 조직신학 교수 역임
푸른교회(분당 소재) 담임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