鶴山의 草幕舍廊房

Faith - Hymn

CTS 큐티

鶴山 徐 仁 2013. 9. 12. 15:04



특권


우리도 우리가 가지고 있는 특권을 복음 전도의 수단으로 삼을 수 있다. 강요한다면 문제가 되겠지만, 일터에서 전도할 때 아랫사람에게 권면한다면 아무래도 윗사람에게 전도하는 것보다 수월하고 효과적일 수도 있다. 물론 ‘특별할 때’에만 사용하는 것이 특권이지, ‘툭하면’ 꺼내드는 것은 특권이 아니다!
-박응순의 [단숨에 읽고 보는 이야기성경] 중에서-

하나님은 우리에게 있는 특권을 영혼 구원을 위해 사용하십니다. 특권이라는 것은 나만의 유익을 위해 소모되는 것이 아닙니다. 함께 나눌 때 영혼을 살리는 힘이 있습니다. 위치가 주는 특권도 가난한 사람을 돌보고 사용할 때 은혜가 있습니다. 나에게만 집중되는 특권은 권력이 됩니다. 하지만 여러 사람에게로 나눠지는 특권은 주님의 사랑입니다.



글쓴이 : 이재학 연세대학교 연합신학대학원을 졸업
웨스터민스터신학대학원대학교(선교학)박사학위(Ph.D) 수료
하늘땅교회 담임목사
나의 안에 거하라
나의 안에 거하라 나는 네 하나님이니
모든 환난 가운데 너를 지키는 자라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널 도와주리니
놀라지 말라 내 손 잡아주리라
글쓴이 : 김수영
프랑스 파리와 서울에서 활동하는 프리랜서
장엄한 목소리 - 이사야 30장 27~33절
27 보라 여호와의 이름이 원방에서부터 오되 그의 진노가 불 붙듯 하며 빽빽한 연기가 일어나듯 하며 그의 입술에는 분노가 찼으며 그의 혀는 맹렬한 불 같으며
28 그의 호흡은 마치 창일하여 목에까지 미치는 하수 같은즉 그가 멸하는 키로 열방을 까부르며 여러 민족의 입에 미혹하는 재갈을 물리시리니
29 너희가 거룩한 절기를 지키는 밤에 하듯이 노래할 것이며 피리를 불며 여호와의 산으로 가서 이스라엘의 반석에게로 나아가는 자 같이 마음에 즐거워할 것이라
30 여호와께서 그의 장엄한 목소리를 듣게 하시며 혁혁한 진노로 그의 팔의 치심을 보이시되 맹렬한 화염과 폭풍과 폭우와 우박으로 하시리니
31 여호와의 목소리에 앗수르가 낙담할 것이며 주께서는 막대기로 치실 것이라
32 여호와께서 예정하신 몽둥이를 앗수르 위에 더하실 때마다 소고를 치며 수금을 탈 것이며 그는 전쟁 때에 팔을 들어 그들을 치시리라
33 대저 도벳은 이미 세워졌고 또 왕을 위하여 예비된 것이라 깊고 넓게 하였고 거기에 불과 많은 나무가 있은즉 여호와의 호흡이 유황 개천 같아서 이를 사르시리라
사람들은 화가나면 흔히 큰 소리를 치고 말로 남을 위협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장엄한 목소리>(30절)는 그 자체가 곧 그분의 <혁혁한 진노>요 <맹렬한 화염과 폭풍과 폭우와 우박>입니다. 자연의 여러 가지 무시무시한 현상들이나 재난들은 다 전능하신 하나님의 진노를 표현하기에 안성맞춤입니다. 자연의 소리에서 장엄한 하나님의 음성, 진노하시는 하나님의 목소리를 들으십시오.

그의 혀는 맹렬한 불
<보라 여호와의 이름이 원방에서부터 오되 그의 진노가 불붙듯 하며 빽빽한 연기가 일어나듯 하며 그의 입술에는 분노가 찼으며 그의 혀는 맹렬한 불 같으며>(27절).
그건 사실입니다. 하나님의 말씀 한 마디면 교만한 원수들도 단번에 멸망시킬 수 있습니다. 아니, 사람의 혀도 <곧 불이요 불의의 세계라 혀는 우리 지체 중에서 온 몸을 더럽히고 삶의 수레바퀴를 불사르나니 그 사르는 것이 지옥 불에서 나느니라>(약 3:6) 했고, <혀는 작은 지체로되 큰 것을 자랑하도다 보라 작은 불이 얼마나 많은 나무를 태우는가>(약 3:5) 라고 했는데 하물며 하나님의 혀이시겠습니까? 그러므로 우리는 사람의 혀도 경계해야지만 불처럼 맹렬한 하나님의 혀야말로 더욱 조심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분노의 혀 앞에서 무사할 사람은 없고 하나님의 맹렬한 진노의 불 앞에서 심판을 피할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그의 호흡은 유황개천
<대저 도벳은 이미 세워졌고 또 왕을 위하여 예비된 것이라 깊고 넓게 하였고 거기에 불과 많은 나무가 있은즉 여호와의 호흡이 유황개천 같아서 이를 사르시리라>(33절).
예루살렘 근방에 있었던 힌놈의 아들의 골짜기는 <도벳>이라는 이름으로도 불려졌습니다. 그런데 바로 그 골짜기에 무수한 앗수르 군대가 진을 치고 있었는데 그들이 바로 멸망의 천사에 의해 다 죽임을 당했다는 것입니다. 이를테면 도벳은 앗수르 왕을 위해 예비된 심판의 자리였습니다. 거기에는 그들 모든 시신을 불태우기에 충분한 땔감도 이미 준비되어 있었습니다. 따라서 여호와의 호흡이 진노의 유황개천이 되어 흘렀기 때문에 그들 모두가 활활 타오르는 불길 속에서 순식간에 다 멸하고 말 것이라는 겁니다. 요한계시록은 회개치 않은 죄인들이 최후에 맞게 될 멸망의 장소도 <불과 유황이 타는 못>이라고 합니다. 그곳은 모든 불경건한 자들을 다 수용할 만큼 충분히 깊고 또 넓을 뿐 아니라 불과 땔감도 많다고 합니다. 하나님의 진노는 불이고 마귀와 그의 사자들은 그 불에 던져질 땔감에 다름 아닙니다. <그들이 나가서 내게 패역한 자들의 시체들을 볼 것이라 그 벌레가 죽지 아니하며 그 불이 꺼지지 아니하여 모든 혈육에게 가증함이 되리라>(66:24). 하나님의 진노와 심판을 생각하며 더욱 근신합시다. <외모를 보시지 않고 각 사람의 행위대로 심판하시는 이를 너희가 아버지라 부른즉 너희가 나그네로 있을 때를 두려움으로 지내라>(벧전 1:17).
글쓴이 : 조성노 독일 본(Bonn) 대학교 신학부 졸업
뮌헨(Muenchen) 대학교 신학부 졸업
장로회신학대학교 조직신학 교수 역임
푸른교회(분당 소재) 담임목사

 

 

 

 

태어날 때부터 걸었던 사람은 없다
엄마를 꼭 빼닮은 아이가 한걸음 한걸음 조심스레 걸음을 배우며 자라가듯이,
주님의 형상을 본받은 우리는 조금씩 자라갑니다.
글쓴이 : 김수영
프랑스 파리와 서울에서 활동하는 프리랜서
형통한 삶을 향하여 - 여호수아 1장 1~8절
1 여호와의 종 모세가 죽은 후에 여호와께서 모세의 수종자 눈의 아들 여호수아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2 내 종 모세가 죽었으니 이제 너는 이 모든 백성과 더불어 일어나 이 요단을 건너 내가 그들 곧 이스라엘 자손에게 주는 그 땅으로 가라
3 내가 모세에게 말한 바와 같이 너희 발바닥으로 밟는 곳은 모두 내가 너희에게 주었노니
4 곧 광야와 이 레바논에서부터 큰 강 곧 유브라데 강까지 헷 족속의 온 땅과 또 해 지는 쪽 대해까지 너희의 영토가 되리라
5 네 평생에 너를 능히 대적할 자가 없으리니 내가 모세와 함께 있었던 것 같이 너와 함께 있을 것임이니라 내가 너를 떠나지 아니하며 버리지 아니하리니
6 강하고 담대하라 너는 내가 그들의 조상에게 맹세하여 그들에게 주리라 한 땅을 이 백성에게 차지하게 하리라
7 오직 강하고 극히 담대하여 나의 종 모세가 네게 명령한 그 율법을 다 지켜 행하고 우로나 좌로나 치우치지 말라 그리하면 어디로 가든지 형통하리니
8 이 율법책을 네 입에서 떠나지 말게 하며 주야로 그것을 묵상하여 그 안에 기록된 대로 다 지켜 행하라 그리하면 네 길이 평탄하게 될 것이며 네가 형통하리라
사람들은 미래에 대한 관심이 많습니다. 나의 자녀들의 미래는 어떨까? 사업은 잘될까? 결혼하면 잘 살 수 있을까? 그래서 궁합이나 사주를 보고 점집을 찾고 예언 기도하는 곳을 서성거리게 됩니다. 그러나 이는 다 헛수고입니다. 하나님은 인간의 미래를 알지 못하도록 막아 놓으셨습니다. 왜냐면 미래를 몰라도 두려운데 알게 된다면 두려워서 살 수가 없을 것입니다.
여호수아도 그랬습니다. 모세가 죽은 후 하나님은 그에게 백성을 인도할 것을 명령하십니다. 그는 모세의 시종으로 40년을 보냈기에 백성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위대한 지도자도 힘들었던 그 일을 감당함에 있어서 무거운 짐이 되었던 것입니다. 특히 지금 백성들은 가나안을 눈앞에 두고 모세가 죽음으로 많이 절망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절망하지 않으시고 당신이 함께할 것이니 ‘가라’고 명하시면서 형통한 삶의 비결에 대하여 말씀하십니다.
형통한 삶은 먼저 하나님을 인정해야 합니다. 나를 선택하시고 나를 향한 아름다운 계획을 가지고 계시며, 지금 나를 사용하신다는 것을 확신해야 합니다. 또한 나의 사명도 확인해야 합니다(2-3). 범사에 마음을 다하여 하나님을 신뢰해야 합니다. 내 지혜화 경험을 의지하지 말고 하나님을 인정하고나아가면 우리의 길을 지도하실 것입니다(잠3:5-6). 그리고 담대해야 합니다. 그 담대함의 근거는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심입니다. 본문을 살펴보면 담대하라고 하시면서 너와 함께 하리라, 너를 떠나지 아니 하리라, 너를 당할 자 없으리라고 10번이 넘도록 반복하심을 봅니다(5-9). 우리 인간은 강해진 것 같다가도 약해지고, 할 수 있다 하다가도 안된다고 생각하고 포기합니다. 이것이 모든 인간의 한계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실제로 나와 함께 동행함을 믿는다면 두려워할 필요가 없습니다.
또한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해야 합니다(7-8). 하나님의 말씀은 팍팍하고 그대로 살아가기 힘든 내용이라고 생각하지 마십시오. 하나님은 우리가 형통하고 아름다운 삶을 살아가기를 원하십니다(렘29:11). 성경은 형통한 인생을 위한 매뉴얼입니다. 성경에는 형통한 삶을 벤치마킹할 수 있도록 구름같이 허다한 증인들의 인생스토리가 가득합니다.
형통한 삶을 향하여 가는 삶에는 세 가지가 필요합니다. 먼저 범사에 하나님을 인정하고, 두려움을 버리고 하나님과의 동행의식으로 담대해야 하며, 말씀에 대한 철저한 순종입니다. 그리하면 어디에서 무슨일을 하든지 평탄하고 형통한 길이 열려질 것입니다.

[적용]
- 나는 미래에 대하여 얼마나 걱정하고 있나요? 왜 그런 걱정을 하고 있다고 생각하는지요.
- 나를 부르신 하나님의 존재에 대한 믿음과 나의 사명에 대한 확신을 다시 점검해 봅시다.
- 하나님과 동행을 느끼고 사십니까? 주의 말씀을 사랑하고 순종하기를 결단하며 기도합시다.

[기도]
생사화복을 주장하시는 하나님, 범사에 주님을 인정하며 살아가는 믿음을 주옵소서. 내가 할 수 있는 구체적이고 올바른 목표도 갖게 하시옵소서. 그리고 주어진 시간속에서 열심을 다할 수 있도록 은혜주시고, 그 일을 감당함에 있어서 담대함의 용기도 허락하시옵소서. 무엇보다 주의 말씀에 순종함으로 형통한 삶을 향하여 나아가게 하시옵소서.
글쓴이 : 윤영대 총신대학교 대학원 석사
미국 Reformed Theological Seminary 실천신학 박사
백석대학교 기독교학부 교수
행복누리교회(서울 잠실 소재) 담임목사

 

 

 

 



경건이란?


경건은 하나님과의 바른 관계에서 나오는 자연스런 행동이다.
경건은 유혹에서 나를 지켜주며,
외부의 압박으로부터 나를 보호한다.
흑암 속에서 빛이며, 폭풍가운데 고요함이요,
아무 것도 없는 것 같으나 모든 것을 소유하는 것이다.
다른 사람에게 위로와 자존감을 주며 소경을 보게 하고
앉은뱅이를 걷게 하며 나병환자를 깨끗하게 하며
갇힌 자를 자유하게 하며 죽은 자를 살려내는 것이다.
경건에는 이런 능력이 따른다.
-김중석 목사의 ‘경건을 훈련하자’에서-

하나님께로 돌아가는 것,
이것을 오늘 우리는 경건이라 합니다.
하나님을 잘 기쁘시게 해드리기를 계속하는 것입니다.
경건이란 한때만 회개하고 뉘우치는 것이 아니라
장시간 훈련을 통하여 하나님 자녀로서의 참 모습을 지니고
주변에 영향력을 끼치는 것입니다.
경건에는 더욱이 ‘금생과 내생에 대한 약속’이 있습니다.
천국과 영생이 약속될 뿐 아니라
현세에서도 영육 간에 엄청난 복을 받는다는 사실입니다.
경건해야 자신이 살고 가정이 복 받고 교회가 교회되게 됩니다.




글쓴이 : 김옥엽 국제펜클럽 회원 순수문학인협회 상임 이사
크리스챤문학상 수상
대한예수교장로회 숭인교회 유병수 담임목사 사모
하나님의 일꾼
주님은 분명 하나님의 밭에서 열매를 수확할 일꾼을 찾고 계실 것입니다.
그 일꾼은 특별한 지식이 있는 사람도, 체력이 좋은 사람도 아닙니다
하나님은 결코 그런 사람을 찾고 계시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밭에 들어가서 하나님이 가장 소중하게 여기는 열매를 수확할 일꾼은그저 하나님의 밭에 들어가서 일하기를 기쁨으로 소망하며, 순종하는 사람입니다. 열매를 거두는 주인의 기쁨에 동참하며, 그 열매와 영광을 주인에게 내어드려야 합니다. 진심으로, 하나님의 좋은 일꾼 되기를 소망합니다.
글쓴이 : 김수영
프랑스 파리와 서울에서 활동하는 프리랜서
자기 자신을 먼저 바라봐야 합니다 - 창세기 31장 33~42절
33. 라반이 야곱의 장막에 들어가고 레아의 장막에 들어가고 두 여종의 장막에 들어갔으나 찾지 못하고 레아의 장막에서 나와 라헬의 장막에 들어가매
34. 라헬이 그 드라빔을 가져 낙타 안장 아래에 넣고 그 위에 앉은지라 라반이 그 장막에서 찾다가 찾아내지 못하매
35. 라헬이 그의 아버지에게 이르되 마침 생리가 있어 일어나서 영접할 수 없사오니 내 주는 노하지 마소서 하니라 라반이 그 드라빔을 두루 찾다가 찾아내지 못한지라
36. 야곱이 노하여 라반을 책망할새 야곱이 라반에게 대답하여 이르되 내 허물이 무엇이니이까 무슨 죄가 있기에 외삼촌께서 내 뒤를 급히 추격하나이까
37. 외삼촌께서 내 물건을 다 뒤져보셨으니 외삼촌의 집안 물건 중에서 무엇을 찾아내었나이까 여기 내 형제와 외삼촌의 형제 앞에 그것을 두고 우리 둘 사이에 판단하게 하소서
38. 내가 이 이십 년을 외삼촌과 함께 하였거니와 외삼촌의 암양들이나 암염소들이 낙태하지 아니하였고 또 외삼촌의 양 떼의 숫양을 내가 먹지 아니하였으며
39. 물려 찢긴 것은 내가 외삼촌에게로 가져가지 아니하고 낮에 도둑을 맞았든지 밤에 도둑을 맞았든지 외삼촌이 그것을 내 손에서 찾았으므로 내가 스스로 그것을 보충하였으며
40. 내가 이와 같이 낮에는 더위와 밤에는 추위를 무릅쓰고 눈 붙일 겨를도 없이 지냈나이다
41. 내가 외삼촌의 집에 있는 이 이십 년 동안 외삼촌의 두 딸을 위하여 십사 년, 외삼촌의 양 떼를 위하여 육 년을 외삼촌에게 봉사하였거니와 외삼촌께서 내 품삯을 열 번이나 바꾸셨으며
42. 우리 아버지의 하나님, 아브라함의 하나님 곧 이삭이 경외하는 이가 나와 함께 계시지 아니하셨더라면 외삼촌께서 이제 나를 빈손으로 돌려보내셨으리이다마는 하나님이 내 고난과 내 손의 수고를 보시고 어제 밤에 외삼촌을 책망하셨나이다
오늘 본문의 말씀을 보면, 라반은 야반도주한 야곱과 두 딸, 그리고 손자들을 잡으려고 추격합니다. 그리고 드디어 길르앗 산에서 야곱을 만나서 26절에 이렇게 말합니다. “네가 나를 속이고 내 딸들을 칼에 사로잡힌 자 같이 끌고 갔으니 어찌 이같이 하였느냐?” 또 30절을 보면, “이제 네가 네 아버지 집을 사모하여 돌아가려는 것은 옳거니와 어찌 내 신을 도둑질하였느냐”며 추궁합니다.

사실, 야곱은 라헬이 드라빔을 가지고 라반의 집에서 나왔다는 사실도 알지 못합니다. 그런데 오늘 라반은 야곱이 자신의 고향으로 도망가려는 것과 자신의 드라빔을 가지고 가는 것에 대해서 비난합니다. 이 장면을 보면서, 어떻게 사람이 자신의 잘못은 보지 못하고 다른 사람의 허물을 그렇게 잘 보는지 한심할 정도입니다. 보십시오! 라반이 지난 20년 동안 야곱을 얼마나 속여 왔으며 잘못해 왔는지를 알 수 있습니다. 야곱만이 아닙니다. 두 딸, 레아와 라헬에게도 똑같은 일을 저질렀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41절을 보면, “내가 외삼촌의 집에 있는 이 이십 년 동안 외삼촌의 두 딸을 위하여 십사 년, 외삼촌의 양 떼를 위하여 육 년을 외삼촌에게 봉사하였거니와 외삼촌께서 내 품삯을 열 번이나 바꾸셨으며”라고 야곱은 통곡하며 말합니다. 라반은 무려 사위의 품삯을 열 번이나 속이고 지불하지 않았으면서, 딸들의 재산도 빼돌렸습니다. 그런데 라반은 자신이 행한 일을 보지 못하고 야곱을 향해서 비난의 고삐를 늦추지 않습니다.

나 자신은 어떻습니까? 나에게 섭섭하게 한 누군가의 얼굴이 떠오르십니까? 나의 마음을 아프게 한 사람의 이름이 떠오릅니까? 그런데 사실 나는 그 모든 일에 아무런 잘못이 없다고 자신할 수 있습니까?

예수님은 마태복음 7장 3절에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어찌하여 형제의 눈 속에 있는 티는 보고 네 눈 속에 있는 들보는 깨닫지 못하느냐?” 우리는 다른 사람의 잘못에 대해서는 너무나 엄격하면서도 정작 자신의 행동에 대해서는 너무나 관대합니다. 그것이 우리의 문제입니다. 그래서 세상은 싸움으로 가득한 겁니다.

오늘 라반처럼 살아가지 말고, 내 자신의 허물과 잘못을 먼저 발견하는 그리스도인이 되기를 기도합니다. 아니, 예수님처럼 다른 사람의 허물도 내가 떠안고 살아갈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글쓴이 : 전기철 서울신학대학, 연세대 연합신학대학원 졸업
미국 보스톤 조직신학 석사(S.T.M)/연세대학교 박사학위(Ph.D)
강남새사람교회 담임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