鶴山의 草幕舍廊房

Faith - Hymn

[CTS 새벽종소리] 2012년6월15일 QT - 명품 인생 (도서/사진/말씀)

鶴山 徐 仁 2012. 6. 17. 15:04



명품 인생


은과 금은 모두 귀금속을 만드는 광석이라는 점에서는 같지만, 서로 성질이 달라서 정제할 때 온도를 달리해야 한다. 제련하는 온도가 다르다는 것을 통해 연단도 사람에 따라 각기 다른 방법을 사용하신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사람 역시 고통을 통해 순결한 영혼으로 정련됨으로써 하나님이 창조하셨던 걸작 명품으로 거듭나는 것이다.
-신언혁의 [지혜롭게 키운 자녀가 성공한다] 중에서-

사람은 누구나 연단의 과정이 있습니다. 그 과정을 통해 정금 같은 인생으로 만들어집니다. 사람이 연단 받는 것은 하나님의 계획 속에 이미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사용하시기 위해 연단의 과정을 허락하셨습니다. 지금의 연단 때문에 명품 인생을 살아갈 수 있습니다.





글쓴이 : 이재학 연세대학교 연합신학대학원을 졸업
웨스터민스터신학대학원대학교(선교학)박사학위(Ph.D) 수료
하늘땅교회 담임목사
우물 곁에서
목마른 사람은 생수를 얻고 피곤하고 지친 사람은 쉼을 누리며
외로운 자는 그 우물 곁에서 사람을 만났습니다
그 옛날 사마리아의 오랜 우물 곁에서는 소외된 여인이 예수를 만나 생명을 얻었습니다.
늘 말씀의 우물 곁에 거하고 싶습니다
글쓴이 : 박종혁 마다바름 스튜디오
계간지 <단비> 발행인
빈정거림 - 욥 15:7-16
7. 네가 제일 먼저 난 사람이냐 산들이 있기 전에 네가 출생하였느냐

8. 하나님의 오묘하심을 네가 들었느냐 지혜를 홀로 가졌느냐

9. 네가 아는 것을 우리가 알지 못하는 것이 무엇이냐 네가 깨달은 것을 우리가 소유하지 못한 것이 무엇이냐

10. 우리 중에는 머리가 흰 사람도 있고 연로한 사람도 있고 네 아버지 보다 나이가 많은 사람도 있느니라

11. 하나님의 위로와 은밀하게 하시는 말씀이 네게 작은 것이냐

12. 어찌하여 네 마음에 불만스러워하며 네 눈을 번뜩거리며

13. 네 여이 하나님께 분노를 터뜨리며 네 입을 놀리느냐

14. 사람이 어찌 깨끗하겠느냐 여인에게서 난 자가 어찌 의롭겠느냐

15. 하나님은 거룩한 자들을 믿지 아니하시나니 하늘이라도 그가 보시기에 부정하거든

16. 하물며 악을 저지르기를 물 마심 같이 하는 가증하고 부패한 사람을 용납하시겠느냐
엘리바스가 대놓고 욥을 비난하며 온갖 빈정거림으로 그를 비웃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흔히 상대의 기분이나 감정들을 확인하기 위해 일부러 툭툭 내뱉는 빈정거림으로 상대를 시험합니다. 그래서 전에는 그 어떤 음모나 미움에도 끄떡하지 않던 사람도 남의 빈정거림에는 자칫 이성을 잃는 수도 있습니다. 따라서 빈정거림은 그 가진 수완만큼이나 조심성 있게 상대의 의도를 파악해야 하며 앞으로 다가올 일에 대해서도 미리 예상하고 대비하는게 현명합니다.

네가 정말 잘 났느냐
<네가 제일 먼저 난 사람이냐 산들이 있기 전에 네가 출생하였느냐>(7절).
엘리바스의 이 말은 <네가 우리보다 한참이나 더 어른이어서 저 태고의 가장 지혜롭고 순수했던 시절의 명철과 판단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느냐? 네가 아담보다 먼저 있었느냐? 아담은 죄 때문에 고난을 겪었는데 이토록 극심한 환난을 당하고 있는 네가 죄인이 아니란 말이냐? 네가 그렇게 잘 났느냐?>는 뜻입니다. 그야말로 지독한 언어폭력이 아닐 수 없습니다. 어떤 남편이 술에 취해 귀가하여 아내를 향해 <네가 그렇게 잘 났느냐>며 비아냥거리다 결국 폭력까지 행사했습니다. 이것은 아내에 비해 상대적으로 무능하고 수동적인 남편의 원초적인 열등감의 표현입니다. 엘리바스의 노골적인 빈정거림도 이를테면 그런 콤플렉스의 발로일 것입니다.

네가 홀로 지혜를 가졌느냐
<하나님의 오묘하심을 네가 들었느냐 지혜를 홀로 가졌느냐>(8절).
이는 마치 하늘의 궁정회의에 참석하여 하나님의 오묘하신 뜻을 다 듣기라도 한 듯 혼자서 지혜로운 체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천하의 현군이었던 솔로몬도 <내가 깨달은 것은 오직 이것이라 곧 하나님은 사람을 정직하게 지으셨으나 사람이 많은 꾀들을 낸 것이니라>(전 7:29)고 했습니다. 꾀는 결코 지혜가 아닙니다. 엘리바스는 지금 자신의 꾀로 지혜를 자처하며 도리어 욥을 공격하고 있습니다. 그 사람의 가진 것이 <지혜냐 꾀냐>는 주님의 이 말씀으로 판가름 납니다. <누구든지 나의 말을 듣고 행하는 자는 그 집을 반석 위에 지은 지혜로운 사람 같으리니 비가 내리고 창수가 나고 바람이 불어 그 집에 부딪치되 무너지지 아니하나니 이는 주추를 반석 위에 놓은 까닭이요 나의 말을 듣고 행하지 아니하는 자는 그 집을 모래 위에 지은 어리석은 사람 같으리니 비가 내리고 창수가 나고 바람이 불어 그 집에 부딪치매 무너져 그 무너짐이 심하니라>(마 7:24-27).

네가 홀로 의로우냐
<사람이 어찌 깨끗하겠느냐 여인에게서 난 자가 어찌 의롭겠느냐>(14절).
그렇습니다. 우리는 누구도 의롭지 않습니다. 엘리바스의 고발처럼 <악을 저지르기를 물마심 같이 하는 가증하고 부패한 사람>(16절)들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또한 의로운 자들입니다. 삶이나 행위가 깨끗하고 거룩해서가 아니라 주님이 우리를 의롭다 칭해 주셨기 때문입니다. 주님이 우리의 죄악과 허물을 대속하사 우리를 의로운 자들로 명명해 주셔서 죄인이지만 의인이 된 것입니다. 죄인임에도 의인으로 간주해 주신 이 <칭의>의 은혜에 감사합시다. 예수를 믿는 사람들은 다 믿음으로 의롭다하심을 입은 자들입니다. <불법의 사함을 받고 죄가 가리어짐을 받는 사람들은 복이 있고 주께서 그 죄를 인정하지 아니하실 사람은 복이 있도다>(롬 4:7-8).
우리는 다 믿음안에서 의인된 자들입니다.
글쓴이 : 조성노 독일 본(Bonn) 대학교 신학부 졸업
뮌헨(Muenchen) 대학교 신학부 졸업
장로회신학대학교 조직신학 교수 역임
푸른교회(분당 소재) 담임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