鶴山의 草幕舍廊房

Faith - Hymn

[CTS 새벽종소리] 2012년5월11일 QT - 신앙의 안목 (도서/사진/말씀)

鶴山 徐 仁 2012. 5. 14. 21:37



신앙의 안목


신앙은 안목이 열려 보지 못하던 것을 보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의 눈이 닫혀 있으면 바로 곁에 놓인 생명의 샘도 찾을 수 없습니다. 안목이 열려야 볼 것을 보게 되고, 과거에는 깨닫지 못했던 것을 깨닫게 됩니다.
-김중기의 [구약 성경 이야기] 중에서-

신앙은 우리에게 새로운 눈을 줍니다. 새로운 안목이 열리면 새로운 세계가 펼쳐집니다. 그때 우리는 인생의 참의미가 하나님이심을 고백합니다. 신앙의 눈이 열려야 지금 여기서 미래를 볼 수 있고, 비전을 품게 됩니다. 바울이 예수님을 처음 만날 때 눈의 비늘이 벗겨졌던 것처럼 내 눈앞에 보이는 것을 전부로 여기는 우리의 눈도 열려야 새로운 하나님의 세계를 경험할 수 있습니다.




글쓴이 : 이재학 연세대학교 연합신학대학원을 졸업
웨스터민스터신학대학원대학교(선교학)박사학위(Ph.D) 수료
하늘땅교회 담임목사
내가 범죄하면 - 욥 10:14-17
14 내가 범죄하면 주께서 나를 죄인으로 인정하시고 내 죄악을 사하지 아니하시나이다

15 내가 악하면 화가 있을 것이오며 내가 의로울지라도 머리를 들지 못하는 것은 내 속에 부끄러움이 가득하고 내 환난을 내 눈이 보기 때문이니이다

16 내가 머리를 높이 들면 주께서 젊은 사자처럼 나를 사냥하시며 내게 주의 놀라움을 다시 나타내시나이다

17 주께서 자주자주 증거하는 자를 바꾸어 나를 치시며 나를 향하여 진노를 더하시니 군대가 번갈아서 치는 것 같으니이다
<내가 범죄하면 주께서 나를 죄인으로 인정하시고 내 죄악을 사하지 아니하시나이다>(14절).
물론 지금은 복음시대라 내가 범죄해도 나를 죄인으로 인정하시거나 내 죄악을 사해주지 않으시지는 않습니다. 그럼에도 내가 범죄하면 주님은 괴로워하시고 내 안에 계신 성령님은 몹시 힘들어 하십니다. 그게 바로 성령을 근심시키고 훼방하고 소멸하는 행위입니다. <그럴 수 없느니라 죄에 대하여 죽은 우리가 어찌 그 가운데 더 살리요>(롬 6:2).

내가 악하면
<내가 악하면 화가 있을 것이오며 내가 의로울지라도 머리를 들지 못하는 것은 내 속에 부끄러움이 가득하고 내 환난을 내 눈이 보기 때문이니이다>(15절).
<악함>이란 구원 받은 하나님의 자녀들의 삶도, 심성도, 정서적 특징도 아닙니다. 악함이란 빛이 아닌 어두움이며, 아름다움이 아닌 추함이며, 하나님의 뜻이 아닌 마귀의 본색입니다. 따라서 내가 악하게 굴거나 악의 열매를 맺으면 주님은 화로써 나를 깨닫게 하시고 회개하게 하십니다. 마귀는 우리가 악에 빠지면 쾌재를 부르며 더욱 악을 선동하고 부추기지만 하나님은 안타까움과 무한하신 연민으로 채찍을 드사 징계하십니다. 이는 우리를 사랑하시기 때문이요 우리가 당신의 자녀들이기 때문입니다. <주께서 그 사랑하시는 자를 징계하시고 그가 받으시는 아들마다 채찍질하심이라 … 하나님이 아들과 같이 너희를 대우하시나니 어찌 아버지가 징계하지 않는 아들이 있으리요 징계는 다 받은 것이거늘 너희에게 없으면 사생자요 친아들이 아니니라>(히 12:6-8). <무릇 내가 사랑하는 자를 책망하여 징계하노니 그러므로 네가 열심을 내라 회개하라>(계 3:19).

내가 머리를 높이들면
<내가 머리를 높이 들면 주께서 젊은 사자처럼 나를 사냥하시며 내게 주의 놀라움을 다시 나타내시나이다>(16절).
<머리를 높이 든다>는 말은 교만을 뜻합니다. 거만한 몸짓을 가리킵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교만을 가장 미워하십니다. 오죽하면 <젊은 사자처럼 나를 사냥하신다>고 했겠습니까? 하나님께는 교만에 대한 일종의 피해의식이 있으십니다. 교만한 천사장의 반란으로 천상의 전쟁이 발발했고, 사탄과 마귀가 출현했고, 아담과 하와가 교만하여 선악과를 범하므로 온 인류가 죄악에 빠졌습니다. 따라서 교만한 자는 반드시 치사 <주의 놀라움을 나타내십니다>. 반면 겸손한 자에게는 은혜를 베푸십니다.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워 종의 형체를 가지사 사람들과 같이 되셨고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사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 그러므로 하나님이 그를 지극히 높여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주사 하늘에 있는 자들과 땅에 있는 자들과 땅 아래에 있는 자들로 모든 무릎을 예수의 이름에 꿇게 하시고 모든 입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주라 시인하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셨느니라>(빌 2:5-11).

주께서 나를 치시면
<주께서 자주자주 증거하는 자를 바꾸어 나를 치시며 나를 향하여 진노를 더하시니 군대가 번갈아서 치는 것 같으니이다>(17절).
욥이 느끼는 환난의 정도가 점점 더 악화되어 가는 형국입니다. 썰물처럼 빠져나가는가 싶으면 어느새 다시 밀물처럼 차오르기 시작합니다. 한 증인이 등장해 그를 정죄하고 성토하다 또 다른 증인이 나서서 그를 혹독하게 비난하고 다시 치곤 했는데 욥은 그것을 마치 <군대가 번갈아 가며 자기를 공격하는 것>처럼 느꼈습니다. 그래서 더욱 고독했고, 암담했고, 더 이상 희망이 없어 보여 절망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사람이 감당할 시험밖에는 너희가 당한 것이 없나니 오직 하나님은 미쁘사 너희가 감당하지 못할 시험 당함을 허락하지 아니하시고 시험 당할 즈음에 또한 피할 길을 내사 너희로 능히 감당하게 하시느니라>(고전 10:13)고 했습니다. 아무리 혹독한 시험일지라도 나로 하여금 반드시 그걸 이기게 하시는 하나님을 찬양합시다. 그때 비로소 내가 당한 그 쓰디 쓴 시험이 내 영혼에 더없이 소중한 양약이 될 것입니다.
글쓴이 : 조성노 독일 본(Bonn) 대학교 신학부 졸업
뮌헨(Muenchen) 대학교 신학부 졸업
장로회신학대학교 조직신학 교수 역임
푸른교회(분당 소재) 담임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