鶴山의 草幕舍廊房

Faith - Hymn

[CTS 새벽종소리] 2012년5월12일 QT - 신앙이란 (도서/사진/말씀)

鶴山 徐 仁 2012. 5. 14. 21:39



신앙이란


신앙은 관념이 아니다. 신앙은 생활이다. 신앙생활이 도를 닦는 것이 아닌 이유는 진리를 깨닫기 위해 고민할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비밀이다. 예수님은 진리다. 공개된 비밀이다. 이 비밀이 예수를 믿는 사람들에게는 다 공개되어 있다. 그저 성경을 펼치기만 해도 진리가 보인다. 보이는 것이 다 지혜와 지식이다.
-조현삼의 [삶을 찾아서] 중에서-

우리 손에 들려 있는 성경은 상상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특별히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로 이 땅에 오셔서 어떤 삶을 사셨는지 우리의 삶의 현장에서 직접 들려주시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아들 예수님을 통해, 보혜사 성령님을 통해 알 수 있습니다. 이 모든 것을 기록해 놓은 것이 성경입니다.




글쓴이 : 이재학 연세대학교 연합신학대학원을 졸업
웨스터민스터신학대학원대학교(선교학)박사학위(Ph.D) 수료
하늘땅교회 담임목사
태에서 무덤으로 - 욥 10:18-22
18 주께서 나를 태에서 나오게 하셨음은 어찌함이니이까 그렇지 아니하셨더라면 내가 기운이 끊어져 아무 눈에도 보이지 아니하였을 것이라
19 있어도 없던 것 같이 되어서 태에서 바로 무덤으로 옮겨졌으리이다
20 내 날은 적지 아니하니이까 그런즉 그치시고 나를 버려두사 잠시나마 평안하게 하시되
21 내가 돌아오지 못할 땅 곧 어둡고 죽음의 그늘진 땅으로 가기 전에 그리하옵소서
22 땅은 어두워서 흑암 같고 죽음의 그늘이 져서 아무 구별이 없고 광명도 흑암 같으니이다
<주께서 나를 태에서 나오게 하셨음은 어찌함이니이까 그렇지 아니하셨더라면 … 태에서 바로 무덤으로 옮겨졌으리이다>(18-19절).
내가 차라리 모태에서 죽든가, 태어나다 죽었더라면 이 고통을 당하지 않아도 좋았을 것을 … 욥이 다시 우울증에 빠져 깊은 좌절과 비관으로 힘들어 하는 대목입니다.

잠시 나마 평안하게 하소서
<내 날은 적지 아니하니이까 그런즉 그치시고 나를 버려두사 잠시나마 평안하게 하시되>(20절).
하나님께서 저에게 약간의 평안함만이라도 허락해 달라는 것입니다. 환난을 전적으로 제거하시는데 동의하실 수 없다면 얼마 동안만이라도 유보해 주실 수 없느냐는 호소입니다. <주여, 나를 끊임없이 고문대에 세워 두시지 마시고, 계속 극한 고통 속에 두시지 마옵소서. 내게 잠깐 숨 쉴 틈을 허락하시고 조금이라도 정신을 차릴 시간을 주옵소서!> 하나님께서 허락하시는 평안에 대해 감사해야 함에도 제대로 감사하지 못하며 사는 자들은 언젠가 고통을 당하게 될 때 단 한 시간의 평안함이 얼마나 복되고 감사한 일인지를 뼈저리게 깨닫게 될 것입니다. 작은 행복, 잠시 나마 주어지는 평안의 소중함을 새롭게 인식합시다. 그리고 감사합시다. 그래야 큰 행복, 오랜 평안을 보장받습니다.

돌아오지 못할 땅으로 가기 전에
<내가 돌아오지 못할 땅 곧 어둡고 죽음의 그늘진 땅으로 가기 전에 그리하옵소서>(21절).
인생은 그 날이 그리 길지 않습니다. 욥은 그 사실을 직시하며 나의 이 짧은 날들을 온통 극심한 비참과 고난으로 채우지 마시기를 기도합니다. <내 날이 적지 아니하니이까>(20절) 그러니 나를 불쌍히 여겨 달라는 호소입니다. 다윗도 <내가 사망의 잠을 잘까 두렵사오니 그 때가 되면 내가 구원을 기대하는 것이 너무 늦게 될 것이기 때문이니다>(시 13:3). <주께서 죽은 자에게 기이한 일을 보이시겠나이까>(시 88:10)하며 탄원하였습니다. 이를테면 욥의 호소도 바로 그런 것입니다. <내가 죽기 전에 약간의 위로라도 허락하셔서 나로 하여금 지금과 같은 혼란스러움이 아니라 평안과 확신으로 이 세상을 하직하게 하옵소서>. 우리도 이렇게 기도해야 마땅합니다. <주여, 내 속사람을 새롭게 하여 주옵소서. 내가 죽기 전에 나를 거룩하게 하옵소서. 죽은 뒤에는 그것이 결코 이루어 질 수 없기 때문이옵니다>.

흑암한 곳으로 가기 전에
<땅은 어두워서 흑암 같고 죽음의 그늘이 져서 아무 구별이 없고 광명도 흑암 같으니이다>(22절).
죽은 자의 운명은 고정되어 더 이상의 다른 가능성이 없습니다. 죽은 자는 그 상태에서 다시는 이생으로 돌아오지 못합니다. 그리고 거룩한 영혼들은 죽어 흑암이 없는 빛의 세계로 가지만 악한 영혼들은 <그늘져 광명도 흑암 같은> 곳으로 갑니다. 욥은 지금 몸도 마음도 신앙도 극도로 위축되어 죽음을 얘기하며 오직 어두움, 그늘, 흑암만을 생각할 뿐입니다. 그가 만약 지금 경건하고 은혜롭고 확신에 찬 삶을 살고 있다면 죽음에 대해 과연 이런 부정적인 생각을 했겠습니까? 저는 지난 17년 동안 목회를 하며 죽음 앞에서 유난히 비겁함을 보인 여러 케이스의 임종을 경험했습니다. 그럴 때마다 혼란스러웠고 답답했으며 몹시 아쉬웠습니다. 말하자면 욥도 지금 바로 그런 절망에 울고 있는 것입니다. 더욱 자신의 믿음을 잘 관리하십시오. 늘 확신과 담력과 감사와 인내를 놓치지 마십시오. 우리 믿는 자들에게는 출생보다도 그게 어떤 죽음이냐가 더욱 소중함을 결코 잊지 마십시오.
글쓴이 : 조성노 독일 본(Bonn) 대학교 신학부 졸업
뮌헨(Muenchen) 대학교 신학부 졸업
장로회신학대학교 조직신학 교수 역임
푸른교회(분당 소재) 담임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