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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평로] '오렌지 영도자' 김정은의 시대/ 조선일보

鶴山 徐 仁 2011. 12. 29. 20:13

[태평로] '오렌지 영도자' 김정은의 시대

  • 박정훈 기사기획 에디터
  • 입력 : 2011.12.28 23:10 | 수정 : 2011.12.29 07:47

    박정훈 기사기획 에디터

    10년 전 그 사건이 없었다면 북한 후계자는 김정은이 아니었을지도 모른다. 2001년 5월, 김정일의 장남 김정남이 일본 나리타공항에서 체포됐다. 위조 여권을 들고 일본에 입국하려다 적발된 것이다. 결국 김정남은 후계 경쟁에서 탈락했고, 김정은 체제로 이어졌다.

    사건 한 달쯤 뒤였다. 당시 도쿄특파원이던 기자는 정보 소식통으로부터 흥미로운 제보를 받았다. 김정남이 도쿄의 한국 술집이며 음식점에 드나들었다는 것이었다. '황태자'가 설마? 그러나 제보는 사실이었다.

    정보 소식통이 지목한 A클럽은 한국 술집이 밀집한 아카사카(赤坂) 한복판에 있었다. 한국 기업 주재원들이 많이 찾는 유명한 가라오케 클럽이었다. 그곳에서 일하는 한국인 종업원들은 김정남을 '팁이 후하고 매너 좋은' 손님으로 기억했다. A클럽엔 2000년 겨울 10여 차례 들렀는데 늘 혼자 왔다고 했다. 술은 별로 마시지 않고 한국 소식이며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곤 했다는 것이었다. 때로는 여종업원들과 어울려 인근 한국 식당에 가는 일도 있었다. 김정남은 자신을 미국 뉴욕에 사는 교포라고 칭했다. A클럽 종업원들이 손님의 정체를 안 것은 김정남이 체포되고 나서였다. 일본 TV에 생중계되는 김정남의 모습은 의심의 여지가 없었다. 비만형 체격이며 얼굴의 점 위치까지 그 '돈 많은 교포 손님'임에 틀림없었다.

    요컨대 일본 정보당국은 김정남의 동선(動線)을 파악하고 있었다는 얘기였다. 일본에 드나드는 것을 알면서도 눈감아 주었던 것이다. 그런데 왜 갑자기 김정남을 노출시켰을까는 지금도 풀리지 않는 수수께끼다.

    어찌 됐든 이 사건은 북한의 후계구도를 가른 분기점이 됐다. 당시 김정남은 7시간 동안 일본 당국의 조사를 받은 뒤 추방됐다. 그 과정에서 그의 사생활이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김정남은 가족과 함께 도쿄 디즈니랜드를 보러 왔다고 진술했다. 그의 일행은 100달러 지폐가 가득 찬 여행가방을 들고 있었다. 김정남은 다이아몬드가 박힌 롤렉스 시계를 찼고, 손가락엔 '여러 개'의 반지를 끼고 있었다. 지갑엔 1만엔 지폐가 '3㎝ 두께'로 채워져 있었다.

    세계 매스컴에 베일을 벗은 김정남에게 '붉은 노동당원'의 흔적이라곤 없었다. 당성(黨性)도, 이념도 없었다. 그저 졸부(猝富) 같은 물질 숭배와 자본주의 소비 스타일에 대한 동경뿐이었다. 물론 김정남만은 아니다. 얼마 전엔 그의 이복동생 김정철이 싱가포르의 록 콘서트를 찾아 열광하는 현장이 포착됐다. 김정남의 아들 김한솔이 머리를 염색하고 귀걸이까지 한 모습이 공개되기도 했다. 반(反)외세와 자주를 주창한 수령(首領)의 자손들은 한결같이 '오렌지족(族)'이 돼 있었다.

    아무리 인민복과 김일성 헤어스타일로 위장해도 김정은 역시 마찬가지다. 그는 조부(김일성) 흉내를 내며 주체사상의 상속자임을 과시하고 있으나 그도 자본주의 단물에 젖은 인물이다. 영국 언론에 따르면, 스위스 유학 시절 그는 미 프로농구에 중독돼 있었다. 나이키 운동화 컬렉션을 자랑하는 미국식 라이프 스타일의 추종자이기도 했다.

    그런 경험이 김정은을 개방·개혁으로 이끌 것이라는 기대도 나오나 허망한 얘기다. 고생 한 번 안 하고 뒤로는 사치 취향에 탐닉하는 '오렌지 영도자'가 과연 헐벗은 인민을 생각할 수 있을까.

    그런 지도자에 운명을 맡긴 2500만 북한 동포가 불쌍하다. 미우나 고우나 그런 지도자와 함께 한반도 미래를 얘기해야 할 우리도 기구한 처지이긴 마찬가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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