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마음 없는 순종
겉으로 드러나는 열매적 성과보다는, 주를 향한 진실한 사랑의 고백을 얼마만큼 하나님과 이웃 앞에 쏟아놓고 있었는가를 생각하니 너무도 부끄럽고 아쉬웠습니다.
“네게 사랑의 열매, 용납의 열매, 온유와 화평의 열매가 있느냐. 오래참음의 열매가 있느냐. 헌신의 열매가 있느냐. 한 영혼을 위해 진심으로 헌신한 밀알적 열매가 있느냐?” 하나님께서는 그것을 물으시는 것 같았습니다.
“순종하되 마음의 동기까지도 온전히 드림 바 되어서 순종했는가?” 주님은 그것을 귀이 보고 계셨습니다.
-신승훈의 ‘예수 없이 못사는 남자’ 중에서-
겉으로 드러나는 봉사의 모습과 헌신의 성과를 기대하며 주님께 마음 없는 순종을 드리고 있진 않습니까? 주님께서는 순종하는 행위 자체만이 아닌 마음의 순종까지 감찰하시는 분입니다.
천사의 말을 한다 해도, 우리의 있는 것으로 어려운 이웃을 돕는다 할지라도 그 안에 사랑이 없으면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주님께 드리는 순종의 제사 역시 진실된 마음 없이는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행위로만 드려지는 순종이 아닌 온전한 마음의 순종을 주님께 드리길 원합니다.
| |
|
| |
|
|
|
슬픈 일 - 전 4:1~6 |
1 내가 다시 해 아래에서 행하는 모든 학대를 살펴 보았도다 보라 학대 받는 자들의 눈물이로다 그들에게 위로자가 없도다 그들을 학대하는 자들의 손에는 권세가 있으나 그들에게는 위로자가 없도다 2 그러므로 나는 아직 살아 있는 산 자들보다 죽은 지 오랜 죽은 자들을 더 복되다 하였으며 3 이 둘보다도 아직 출생하지 아니하여 해 아래에서 행하는 악한 일을 보지 못한 자가 더 복되다 하였노라 4 내가 또 본즉 사람이 모든 수고와 모든 재주로 말미암아 이웃에게 시기를 받으니 이것도 헛되어 바람을 잡는 것이로다 5 우매자는 팔짱을 끼고 있으면서 자기의 몸만 축내는도다 6 두 손에 가득하고 수고하며 바람을 잡는 것보다 한 손에만 가득하고 평온함이 더 나으니라
|
|
세상에는 슬픈 일들이 참 많습니다. <해 아래서> 이뤄지는 많은 일들이 기쁨이나 즐거움 보다는 오히려 슬픔을 안겨주기 십상입니다. 쓸쓸한 가을바람도, 찬 가을비도, 가을이 깊어가는 어느 날 불현 듯 찾아온 실연도 다 우리를 슬프게 합니다. 그런데 솔로몬은 이보다 더 아프고 더 처절한 모순과 슬픔을 얘기하며 인생의 허무와 덧없음을 고백합니다.
학대 <내가 다시 해 아래에서 행하는 모든 학대를 살펴 보았도다. 보라 학대 받는 자들의 눈물이로다. 그들에게 위로자가 없도다. 그들을 학대하는 자들의 손에는 권세가 있으나 그들에게는 위로자가 없도다>(1절). 예나 지금이나 세상에는 늘 학대 받는 자들이 있습니다. 솔로몬도 지금 학대 받는 자들의 눈물을 보며 통탄을 금치 못하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권력에 의해, 가진 자들에 의해, 고용주에 의해, 남성이나 남편에 의해, 부모나 어른들에게 혹은 비장애인에게 학대를 당하면서도 아무런 위로나 격려를 받지 못하는 게 모순에 찬 인간현실이라는 것입니다. 실은 그런게 바로 우리를 슬프게 합니다. 그런데 주님은 <애통하는 자에게 복이 있나니 그들이 위로를 받을 것>(마 5:4)이라고 하셨습니다. 보혜사 성령께서도 우리의 슬픔을 보듬고 격려하신다고 했습니다. <슬픈 마음 있는 사람 예수 이름 믿으면 영원토록 변함없는 기쁜 마음 얻으리 예수의 이름은 세상의 소망이요 예수의 이름은 천국의 기쁨일세>(새찬송가 91장).
시기 <내가 또 본즉 사람이 모든 수고와 모든 재주로 말미암아 이웃에게 시기를 받으니 이것도 헛되어 바람을 잡는 것이로다>(4절). 사람은 지혜롭고 유능하고 경건하고 성실하다고 다 인정받고 사랑받고 환영을 받는 것은 아닙니다. 아무리 조심하고 신중하게 처신해도 시기와 질투를 피하지 못하는 게 또한 세상입니다. 남이 잘 되는 꼴을 못 봐주는 사람들이 적지 않고 사촌이 논을 사면 배아파하는 사람들이 많은 까닭입니다. <투기 앞에 누가 서리요>(잠 27:4). 그렇습니다. 시기는 우리를 몹시 슬프게 합니다. <사랑은 시기하지 않는다>(고전 13:4)고 했는데, 사울 왕은 <사울이 죽인 자는 천천이요, 다윗이 죽인 자는 만만이라>며 외친 백성들의 소리에 그만 다윗에 대한 불 같은 시기심이 일어 결국은 자기의 영혼을 사탄에게 내어 주고 말았습니다. 사람이 다른 사람을 시기하여 미워하고 증오한다는 것은 큰 불행이며 그 시기심이야말로 인간의 영혼을 갉아먹는 치명적인 죄악임을 잊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자해 <우매자는 팔짱을 끼고 있으면서 자기의 몸만 축내는도다>(5절). <팔짱을 끼고 있다>는 말은 일해야 할 때 빈둥거린다는 뜻이고, <자기의 몸을 축낸다>는 말은 자기를 파멸한다는 뜻으로 극단한 <자해>를 가리킵니다. 그게 어떤 식이든 자해란 인간에게 있어서 가장 잔인하고 안타까운 자기 파멸입니다. 갈수록 자해자가 늘고 있습니다. 술과 담배도 실은 스트레스를 자해로 푸는 자학 행위에 다름아닙니다. 마약이나 도박, 절도나 강도, 사기와 뇌물 같은 비리도 다 자기를 파멸하는 슬픈 자해일 뿐입니다. 남의 악의로부터 자신을 지키는 일도 중요하지만 자해로부터 자신을 보호하는 일 또한 절실한 과제가 된 요즘입니다. 그런데 솔로몬은 그게 다 뭔가 <두 손에 가득> 잡으려는 탐욕에서 온다고 합니다. 따라서 <한 손으로만> 잡더라도 마음의 <평온함>을 갖는 일이 중요하다고 충고합니다(6절). 욕심을 자제하십시오. 자족하며 감사하며 이웃과 나누며 사십시오. 그게 자해로부터 자신을 지키고 온갖 세상사 슬픈 일을 피하는 최상의 비결입니다.
|
|
글쓴이 : 조성노 독일 본(Bonn) 대학교 신학부 졸업 뮌헨(Muenchen) 대학교 신학부 졸업 장로회신학대학교 조직신학 교수 역임 푸른교회(분당 소재) 담임목사 |
|
| | | | | |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