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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원규의 법정이야기] 치매 걸린 엄마를 둔 54세 딸의 '엄마를 부탁해'/ 조선일보

鶴山 徐 仁 2011. 9. 10. 10:29
사설·칼럼

[최원규의 법정이야기] 치매 걸린 엄마를 둔 54세 딸의 '엄마를 부탁해'

입력 : 2011.09.08 23:06

최원규 사회부 차장

교양 있게 늙어가려고 애썼던 엄마,
치매에 걸려 요양병원에도 모시고 자식들이 모시려 해봤지만
'내 집에 가겠다'며 막무가내 혼자 살며 기억 잃어가
나이 오십이 넘은 나는 오늘도 엄마 때문에 운다

'내 엄마 이야기이기도 하고, 당신 어머니의 이야기일 수도 있고, 앞으로 다가올 나와 당신의 하루 보내기일 수도 있어서…'.

서울 광진구에 사는 이경미(54)씨가 얼마 전 기자에게 보낸 이메일은 이렇게 시작하고 있었다. 늙어서 치매에 걸린 어머니에 관한 얘기였다. 올해 79세인 그의 어머니는 그 옛날 여고(女高)를 나왔고 나름대로 교양 있게 살려고 애썼던 여성이었다고 했다.

#엄마는 실향민인 아버지와 연애결혼을 해 4남매를 낳았고, 자식과 남편을 위해 1000원 한 장도 아끼며 살았다. 엄마가 치매에 걸린 건 5년 전 인공관절 수술을 받은 직후였다. 수술 후부터 횡설수설했고 결국 치매 판정을 받았다.

엄마는 아버지와 함께 살았던 집에서 지금 혼자 산다. 아버지는 13년 전에 돌아가셨다. 자식 중 누군가 모실 수도 있지만 다른 집에선 엄마가 너무 힘들어한다. 자식들이 집에 모시면 엄마는 "내 집에 가야 한다"고 막무가내다. 아무리 알려드려도 엄마는 자식들 집에선 화장실이 어딘지 방이 어딘지 찾지 못해 쩔쩔맨다.

자식들은 자기 일로 바빠서 엄마 옆에 있어 주지 못한다. 요양병원에도 모셔봤지만, 거기서 엄마가 있을 공간은 침대 한 칸뿐이었다. 병이 더 악화되겠다 싶어 결국 다시 집으로 모셨다. 엄마는 그나마 자기 집에 있어야 안정이 된다.

식당일을 하는 나는 아침마다 엄마와 통화한다. "엄마, 꼭 식사를 해야 돼요. 아니면 정신이 더 안 돌아요. 그리고 전화기 옆에 빨래집게로 집어놓은 약을 꼭 드세요." 그러면 엄마는 아침에 먹어야 할 약을 지난밤에 먹었다고 한다. 엄마는 오래전부터 성당을 다닌 것도, 수중에 돈이 있었는지도 이제는 잘 기억하지 못한다.

요즘엔 다행히 이웃에 도와주는 분이 있어 엄마는 데이케어센터를 다닌다. '노인 유치원'이라고 불리는 곳이다. 이웃에 사는 분이 아침에 엄마를 데이케어센터로 가는 버스에 태워준다. 엄마가 그곳에 간 날은 그나마 마음이 놓인다.

일러스트=이철원 기자 burbuck@chosun.com
하지만 엄마는 1주일에 3일 정도는 데이케어센터로 가는 버스를 타지 못한다. 집 열쇠가 없다고, 핸드백을 잃어버렸다고 소동을 벌이다가 차를 타지 못하기 일쑤다. 그런 날은 온 종일 전화를 해야 한다. "엄마, 점심인데 밥은 드셨어요?" 그러면 어이없는 대답이 돌아온다. "벌써 저녁인데 무슨 점심이야." 그러고는 "내가 왜 여기서 혼자 살아야 해. 내가 살던 후암동 집으로 데려다 줘" 하며 울먹거린다. 후암동 집은 엄마가 시집 오기 전에 살았던 곳이다.

전화기를 붙잡고 있는 나는 미칠 것 같은 심정이 된다. 그런 날은 신경이 곤두서서 아이들에게 이유 없이 성질을 내다가 슬퍼서 혼자 운다. 자식들을 위해 한평생 애쓴 엄마를 위해 나는 아무것도 해줄 게 없기 때문이다.

오늘도 엄마는 데이케어센터로 가는 버스를 타지 못했다. 엄마가 아프니 자식들의 삶도 흔들린다. 서로에게 섭섭함만 쌓여간다. 다시 요양병원에 모신다 해도 엄마는 집에 가겠다며 보따리를 쌀 것이다.

엄마를 어떻게 해야 하나, 또 나의 죄스러움은 어떻게 해야 하나. 첨단 세상에서 왜 이 병은 고치질 못하나. 내가 뭘 할 수 없다는 게, 엄마를 똑바로 볼 자신이 없다는 게 너무 슬프다. 나이 오십이 넘은 나는 오늘도 엄마 때문에 운다.

# 기자가 전화했을 때도 이경미씨는 한참을 울먹였다. "정부에서 치료비 지원도 받고 이것저것 해본다고 해봤지만 너무 막막하다"고 했다. 엄마의 치매 앞에서 그는 속절없이 무너져내리고 있었다.

자식만 고통스러운 것도 아니다. 어버이날인 지난 5월 8일 치매와 암으로 투병하던 노(老)부부가 경기도 용인의 아파트에서 동반 자살했다. 노부부는 함께 살던 아들에게 "짐이 되기 싫다"는 유서를 남겼다.

치매에 걸린 배우자나 부모를 살해하는 패륜 범죄도 끊이지 않는다. 그들은 대체로 무거운 징역형을 선고받는데, 그중엔 안타까운 사연도 적지 않다. 청주지법은 작년 10월 치매와 노환으로 고통받던 남편을 목 졸라 살해한 80대 할머니에게 징역 3년에 집행유예 5년을 선고했다. 60년을 해로한 남편이 죽음이 임박해 숨을 거칠게 몰아쉬는 걸 보고 너무 안타까워 남편을 죽이고 따라가려고 했다는 할머니의 사연을 감안해 선처한 것이다. 당시 재판장은 "고민 끝에 집행유예를 선고했다"고 했다.

2008년 42만1000명이던 국내 치매 노인 수는 노령화가 진행되면서 올해 49만5000명으로 늘었고, 2020년에는 75만명에 육박할 거라고 한다. 정부도 내년부터 5년마다 치매 관리 종합 계획을 세우기로 했다. 중앙 치매센터를 지정하고, 보건소에 치매 상담센터를 설치하는 대책이 포함됐다. 하지만 그게 환자나 가족의 피부에 와 닿는 해결책이 될지는 미지수다. 치매에 걸린 엄마의 실종을 다룬 신경숙의 소설 '엄마를 부탁해'는 이미 고통스러운 우리 현실에 대한 얘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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