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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평로] 대한민국 '패륜철'/ 조선일보

鶴山 徐 仁 2011. 6. 30. 19:40

사설·칼럼
태평로

[태평로] 대한민국 '패륜철'

입력 : 2011.06.29 23:20

박은주 문화부장

사흘 전, 한 주부가 자기 아이를 만졌다며 할머니 얼굴을 1.5L 페트병으로 때린 사건이 인터넷 동영상을 통해 알려졌다. 동영상은 여자가 '난동'을 부리는 장면부터 촬영됐기 때문에 할머니가 실제로 대단한 실례를 했는지 여부는 판단할 수 없다. 영상 속 여자는 "남의 새끼 만지지 말라고" "경찰 불러" 하면서 할머니를 때렸다.

같은 날 다른 영상도 올라왔다. "다리를 꼬고 앉지 마라, 불편하다"고 말한 것으로 추정되는 노인에게 "야, 이 XX놈아. 죽고 싶어?"라고 수십번 욕을 하는 젊은 남자의 모습이 담겼다. "방송에서 그러지 말라고 하는데 옆 사람에게 방해가 되면 안 되지 않느냐"는 노인 앞에 버티고 서서 청년은 "너, 서울역에서 내려라"며 위협과 욕세례를 멈추지 않았다.

둘 다 지하철에서 일어난 일이다. 대한민국 지하철이 '패륜철'이 된 것은 사실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지하철 패륜 사건을 크게 나누면 대개 둘 중 하나다. 개똥녀(자기 개의 변을 두고 내린 여자), 쩍벌남(다리를 과도하게 벌리고 앉은 남자)처럼 '예의'가 부족한 모습이 동영상에 찍히는 경우가 하나이고, 다른 하나는 노인과 젊은이 사이의 폭행·폭언 시비다.

할머니 폭행 사건이 알려지자 한 주부 블로거는 "우리 아이는 만져도 돼요"라는 푯말을 아이의 유모차 앞에 두고 찍은 사진을 올렸다. 사건에 대한 재기발랄한 '풍자'다. 할아버지에 대한 폭언도 압도적으로 젊은 남자를 비난하는 쪽이 많았다. 아직은 상식을 가진 사람이 다수인 것이다.

이런 사건의 발생 건수가 많아진 게 아니라, 촬영된 사건이 많아진 것뿐이라고 위로할 수도 있다. '전 국민의 파파라치화'라고 해도 좋을 만큼 휴대전화로 동영상을 찍는 사람이 많아서 어지간한 사건은 다 인터넷에 올라온다. 그러나 '체감 패륜지수'가 하루가 다르게 높아지고 있다는 한탄은 지구를 몇 바퀴 감을 정도로 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지하철에서 특히 폭언·폭행·시비가 많이 일어나는 것은 지하철이 노인과 청소년, 대학생들이 애용하는 교통수단이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인구밀도가 높아 스트레스가 가중되는 공간에서 세대로 보아 대척점에 있는 집단이 호흡을 나누면 불화의 가능성이 커질 수밖에 없다. 노인세대는 요즘의 버릇없는 젊은 세대가 개탄스럽고, 젊은이들은 남의 일에 참견하는 노인들이 못마땅할 수도 있다.

그러나 이런 사태를 그저 노인과 청년의 싸움이라고 방관하기엔 사태가 심각하다. 절제를 배우지 못한 젊은이들은 스스로의 분노 조절을 '굴종'으로, 다른 이들의 지적을 '프라이버시 침해'라고 생각한다.

억울한 일이긴 하지만 노인을 포함, 누구나 마음속에 '참을 인(忍)' 15개쯤을 지녀야 하는 세상이 됐다. 그런데 그렇다고 문제가 해결될까.

분쟁이 있다면 조정자도 있어야 하는 법. 그런데 우리 사회에 그게 없다. 앞의 두 지하철 사건에서 몸을 던져 싸움을 말린 것은 또 다른 노인들이었다. 폭언당한 노인의 '아들'이자, 폭행한 청년의 '부모'일 중년들은 이 싸움을 모른 척했다. 하긴 얼마 전 공개된 인터넷 동영상에는 등산복 차림의 중년이 농지거리를 주고받다 급기야 고성방가를 하는 장면이 들어 있었다.

공경 차원이 아니라 인간이 다른 인간을 대하는 기본부터 가르쳐야 한다고 말하는 사람이 없는 사회. 진짜 '패륜'은 공경이 없는 사회가 아니라, 이 지경의 사회를 그냥 방관하는 일이다. '패륜 지하철'은 오늘도 달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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