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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치
하나님은 때로 우리의 기도를 바로 들어주시지 않는다. 그래도 기도해야 하는 이유는 기도 가운데 하나님의 뜻을 보여주시고 우리의 뜻이 하나님의 뜻에 합하도록 인도해 주시기 때문이다.
-이용규 선교사의 ‘더 내려놓음’ 중에서-
기도의 응답이 더딘 이유 중 하나는 지금 당장은 이롭게 보이는 달콤한 열매가 훗날 우리에게 독이 될 것을 아는 주님의 선하심에 있기도 합니다. 그래서 주님은 기도 응답을 미루시고 돌아가는 길처럼 보이는 차선책을 우리에게 제시하십니다. 물론 우리의 아는 것으로 주님의 뜻을 알기란 쉽지 않습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것, 가장 최선의 결과를 주님이 이미 알고 계신다는 사실입니다. 당장은 이해할 수 없을지라도 주의 선하심을 신뢰함으로 지금 주신 주님의 답에 순종해 가십시오. 그럴 때 우리는 하나님과 우리 자신의 뜻이 협력하여 좁은 길을 지나 선을 이루는 놀라운 일들을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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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흡 |
당신이 아름다운 건 당신이 호흡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당신이 아름다운 건 당신이 생명 안에 살아가고 있기 때문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땅의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생기를 그 코에 불어넣으시니 사람이 생령이 되니라’ (창세기 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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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 박주원 현재 연극치료, 대안학교 교사 등 활동중 동덕여자 대학원 연극치료학과 재학중 유럽, 이집트, 쿠바, 멕시코 등 사진, 배낭여행 (2001~현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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젖 뗀 아이 - 시편 131:1~3 |
1. 여호와여 내 마음이 교만하지 아니하고 내 눈이 오만하지 아니하오며 내가 큰 일과 감당하지 못할 놀라운 일을 하려고 힘쓰지 아니하나이다 2. 실로 내가 내 영혼으로 고요하고 평온하게 하기를 젖 뗀 아이가 그의 어머니 품에 있음 같게 하였나니 내 영혼이 젖 뗀 아이와 같도다 3. 이스라엘아 지금부터 영원까지 여호와를 바랄지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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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에는 <젖 뗀 아이>라는 말이 두 번이나 나옵니다. <...젖 뗀 아이가 그의 어머니 품에 있음 같게 하였나니 내 영혼이 젖 뗀 아이와 같도다>(2절). 누구나 처음 세상에 태어나면 엄마의 젖을 먹습니다. 그러나 일정 기간이 지나면 젖을 떼고 이유식을 거쳐 단단한 음식을 먹어야 합니다. 그래야 균형 잡힌 영양을 섭취하며 건강하게 성장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신앙인도 마찬가지입니다. 마치 어린아이가 젖을 떼듯 속히 유아기를 벗어나 성장해야 합니다. 이 시는 이제 막 젖을 떼고 단단한 음식을 먹으며 성장해야 하는 영혼들에게 몇가지 소중한 덕목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겸손하게 살아야 합니다. <여호와여 내 마음이 교만하지 아니하고 내 눈이 오만하지 아니하오며>(1절). 사실 이 시는 다윗의 후기 작품입니다. 베들레헴 초원에서 양들을 칠 때 지은 시가 아니라 왕위에 있을 때 읊은 시입니다. 그럼에도 그는 여전히 <교만하지 아니하고 오만하지 않고>겸손하게 살겠다고 다짐합니다. 겸손이야 말로 그리스도인 최고의 덕성입니다. 주님은 겸손의 화신이셨습니다.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 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워 종의 형체를 가지사 사람들과 같이 되셨고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사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다>(빌2:6-8)고 했고, <하나님이 그를 지극히 높여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주셨다>고도 했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너희도 이 그리스도의 겸손한 마음을 품으라고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겸손한 사람이야 말로 주님의 심장을 가진 사람입니다. 겸손한 사람이 바로 주님을 가장 많이 닮은 주님의 분신입니다. 겸손한 사람이 바로 젖을 떼고 단단한 음식을 먹으며 착실히 성장하고 있는 그리스도인입니다.
과욕을 버려야 합니다. <...내가 큰 일과 감당하지 못할 놀라운 일을 하려고 힘쓰지 아니하나이다>(1절). 이것은 한 마디로 지나친 욕심과 무리한 탐욕을 부리지 않겠다는 다짐이고 맹세입니다. 여기서 말하는 <큰 일>, <놀라운 일>이란 다 자기 분수에 맞지 않은 허영을 뜻합니다. <욕심이 잉태한 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 즉 사망을 낳느니라>(약1:15)고 했습니다. 사실 우리의 모든 문제는 다 이 과욕과 탐욕, 허영과 허세에서 옵니다. 젖 뗀 아이는 더 이상 젖을 찾아 울지 않습니다.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진정으로 성장하기를 바란다면 반드시 이 과욕과 탐욕을 자제할 줄 알아야 합니다. 자족하며 감사하며 주의 일에 힘쓸지언정 자신의 탐욕을 위해 눈을 높은데 두는 일은 없어야 할 것입니다. 신앙의 미숙과 성숙이 바로 여기에서 판가름 나기 때문입니다.
펑안한 마음으로 살아야 합니다. <실로 내가 내 영혼으로 고요하고 평온하게 하기를...>(2절). 이 세상 욕심에 끌리지 않고, 하나님의 말씀과 인도대로 순종하며 고요하고도 평온한 심령상태를 유지해 가는 삶이야말로 가장 바람직한 성도의 정서라 할 것입니다. 믿는 자가 늘 초조해하거나 불안해하는 것은 결코 은혜롭지 못합니다. 성도에게는 평안한 마음에서 우러나온 평안한 얼굴로 늘 남에게 평안을 끼치며 살아야 할 책무가 있음을 깨달아야 할 것입니다. 그게 바로 젖 뗀 아이가 더 이상 엄마 젖에 연연하지 않고 밝은 표정으로 늘 성장하는 것과도 같은 성도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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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 조성노 독일 본(Bonn) 대학교 신학부 졸업 뮌헨(Muenchen) 대학교 신학부 졸업 장로회신학대학교 조직신학 교수 역임 푸른교회(분당 소재) 담임목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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