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교육목회에 특별한 관심을 기울이게 된 것은 청계천 선교시절이었다. 빈민촌 생활에 지치게 된 어느 날 예배당으로 사용하고 있는 판자집 벽에 기대고 앉아 햇볕을 쪼이고 있을 때였다. 몇 걸음 떨어진 곳에서 7살의 누나와 5살의 남동생 둘이서 놀고 있었다. 누나가 깨어진 도자기 들을 주어다 상을 차려 놓고는 풀잎을 뜯어다 설어서는 밥상을 차리고 있었다. 그러면서 동생에게 이르기를 “나는 엄마고 너는 아빠야. 아빠가 밖에서 들어와. 내가 밥상을 차려 놓을께”하고 일렀다.
동생이 몇 발자국 가더니 돌아서서는 외출하였다가 집으로 들어오는 흉내를 내는 것이었다. 그런데 내가 소스라치게 놀란 것은 그가 술 먹은 사람처럼 비틀비틀하며 걷는 흉내를 내며 말하기를 “어~, 취한다. 기분 좋다”하며 누나 가까이로 다가가는 것이었다. 그러자, 누나가 발딱 일어서며 “또 한 잔 걸쳤네, 또 한 잔 걸쳤네, 아휴 웬쑤야” 하며 악 쓰는 소리를 질렀다. 그랬더니 동생이 발길로 차려놓은 상을 툭 차며 말하기를 “이기 어따 잔소리야”하고 소리를 버럭 질렀다. 그러자 누나가 다시 소리를 지르기를 “날 잡아 묵어라...”하며 달려드는 것이었다.
나는 그런 모습을 지켜보며 몹시 놀랐다. 남매가 놀면서 아빠 엄마가 평소에 하는 모습을 곁에서 본 그대로 되풀이 하는 것이었다.
그때 내 마음에 확고하게 떠오른 생각이 “저 아이들을 그냥 두면 빈민촌의 가난을 대물림하게 되겠구나. 교육으로 저 아들들을 도와야겠구나”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마을 유치원을 세우게 되었다. 초등학교 들어가기 전 나이의 아이들을 교회당에 모아 돌보기 시작하였다. 교사를 구할 예산도 사람도 없기에 이화여대 유아교육학과를 찾아가 도움을 요청하였다. 그래서 시작된 유치원이 ‘배꽃 유치원’이었다. ‘배꽃 유치원’이 내 교육목회의 첫 시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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