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삭을 시기하여 우물을 빼앗고 쫓아내었던 장본인인 아비멜렉이 드디어 이삭을 찾아와 화해를 요청하게 되었다. “아비멜렉이... 이삭에게로 온지라 이삭이 그들에게 이르되 너희가 나를 미워하여 나로 너희를 떠나가게 하였거늘 어찌하여 내게 왔느냐?”(창세기 26장 26, 27절) 이삭의 이런 물음에 그들이 답하기를 네가 믿고 받드는 신이 너와 함께 계심을 보았기에 너와 우리 사이에 평화를 맺으러 왔노라고 하였다. “여호와께서 너와 함께 계심을 우리가 분명히 보았으므로 우리의 사이 곧 우리와 너의 사이에 맹세를 세워 너와 계약을 맺으리라 말하였노라. 너는 우리를 해하지 말라........이제 너는 여호와께 복을 받은 자니라.”(26장 28, 29절) 이삭의 우물을 빼앗고 핍박하였던 사람들이 이삭이 가는 곳마다 번영을 누리는 모습을 지켜보고는 이삭이 그렇게 잘 되는 것은 이삭이 지성으로 받드는 그의 하나님이 뒤를 받쳐 주기 때문이라고 믿게 되었다. 그래서 그들이 이삭에게 화해를 요청하려 와서 이르기를 “너는 여호와께 복을 받은 자니라”하였다. 이삭을 두려워한 것이 아니라 이삭이 믿는 하나님을 두려워하게 된 것이다. 물론 이삭은 그들의 요청을 받아들여 성대한 잔치를 벌이며 환대하였다. 이에 그 땅에 평화가 이루어졌다. “이삭이 그들을 위하여 잔치를 베풀매 그들이 먹고 마시고... 서로 맹세한 후에 이삭이 그들을 보내매 그들이 평안히 갔더라”(26장 30, 31 절) 그날 이삭의 일꾼들이 판 우물에 다시 물이 터졌다. 이에 이삭은 새 우물의 이름을 ‘브엘세바’라 이름 지었다. 이 이름 속에 이삭의 인격과 신앙, 꿈과 비전이 담겨 있다. 겉보기로는 무기력하게 보였던 이삭이었지만 그의 내면세계에 깊은 영성이 있었음을 짐작케 한다. ‘브엘세바’란 말은 ‘약속의 우물’이란 말이다. 사람들은 우물 빼앗기에 여념이 없었다. 그러나 이삭은 한결같이 우물파기에 자신의 삶을 걸었다. 서로 빼앗고 빼앗기에 여념이 없는 시대를 살아가면서 그는 그런 세파에 휩쓸려 들지를 않고 우물 파는 사람으로 살아가기를 맹세하였다. 그는 하나님 앞에서 그 맹세에 자신의 삶을 걸었다. 그의 그런 헌신과 희생의 열매로 그 땅에 평화가 도래케 되었다. 그런 점에서 이삭의 우물파기는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큰 도전이 되는 삶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