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간의 흔적 지우려던 '순천만', 고속도로 관통 위기
- 조홍복(powerbok) 2009.06.07 12:34
- 인간에 의한 인간을 위한 순천만
<'S'자 곡선 수로에 내려 앉은 낙조. / 순천시 제공>
바다와 마주하는 전남 순천시 도사동 안풍들녘. 10여년 전 순천만 하구를 파내면서 채취한 모래로 쌓은 간척지(10만1015㎡)로 이후 준설토 야적장으로 방치돼 왔던 이 땅이 최근 생명이 흐르는 젖줄로 변모하고 있었다. 순천시가 기획재정부 소유의 이 간척지를 작년 12억원을 들여 사들인 뒤 모래톱과 작은 섬이 있는 대규모 담수 내륙습지로 조성하고 있는 덕이다.
이미 시는 이 간척지 중간지점에 초등학교 운동장 크기의 담수습지를 조성해 뒀다. 높이 2m가 넘는 갈대군락과 습지 사이에는 도요물떼새와 저어새, 노랑부리백로 같은 철새 수백 마리가 흩어져 있었다. 이 새들은 1.5㎞가량 떨어진 순천만 대대포구 갯벌에서 먹이를 잡아먹고는 밀물이 들 때 이곳으로 날아들어 휴식한다.
황태주 시 관광진흥과 계장은 “간척지가 개인 소유로 전환된 뒤 개발될 우려가 컸다"며 "추가로 50억원을 투입해 내년쯤 인공 습지를 모두 완성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순천만 탐방 유료화
작년 국내외 관광객 260만명이 찾은 순천만은 세계 5대 연안습지 중 하나다. 하지만 전국적 관광지로 급부상하면서 자연환경 훼손 우려도 함께 커졌다. 이에 따라 순천시는 편의시설 개발로 관광객을 유치하기 보다는 만 주변에 철새들 보금자리를 확대하는 쪽으로 정책을 변경했다. 개발보다는 온전한 생태자원을 후손에게 물려주기 위한 보전에 방점을 찍은 것이다.
시는 아예 주변 음식점을 모두 철거해 내륙습지와 예전의 자연 모습 그대로를 복원할 계획이다. 음식점 9곳 중 6곳은 이미 철거했고, 나머지도 협상을 통해 자연으로 되돌릴 계획이다. 이런 식으로 순천만 주변 농지와 식당, 준설토 야적장을 꾸준히 매입해 내륙습지 등으로 복원한다. 내년까지 모두 97억원을 들여 50만1330㎡ 땅을 사들일 계획으로, 이미 80%를 매입했다. 대대동 순천만자연생태관 뒤편 주차장 1만6529㎡ 부지도 내륙습지로 조성했다.
<탐조선을 타고 순천만을 둘러보는 관광객 / 순천시 제공>
순천만 탐방 유료화도 추진한다. 현재는 생태관을 제외한 갈대탐방로와 용산전망대는 무료로 탐방이 가능하다. 하지만 오는 10월부터는 자연생태공원 입구에서부터 습지 관람료를 징수할 예정이다. 입장료는 성인 2000원, 학생 1000원, 어린이 500원. 갈대탐방로가 있는 순천만 핵심보전지역을 보전하기 위해 장기적으로는 ‘인터넷 예약제’도 실시할 예정이다. 관람객 숫자를 하루 1000명 정도로 엄격히 제한해 순천만 훼손을 최소화하겠다는 것이다.
지찬혁 서울환경운동연합 습지센터팀 간사는 “순천만 갈대밭과 철새 보호를 위해 관광객 숫자를 제한하는 것 자체는 바람직하다”며 “다만 생태 도시로 거듭나기 위해서는 도심 전체가 친환경적으로 변화해야 하는데, 지금의 순천은 이런 모습이 전혀 없다”고 지적했다.
“2013년 국제정원박람회 개최”
대규모 숲을 조성해 순천만 생태계를 보호하는 ‘2013국제정원박람회’가 순천만 하류에서 5㎞ 떨어진 지점에서 열린다. 시는 최근 정부로부터 이 행사를 국제행사로 치르는 방안에 대해 승인을 받았다. 이제 국제원예자생산협회(AIPH) 승인만 남겨뒀다. 영국·독일·프랑스·일본 등 AIPH 28개 회원국을 초청하기 위해서는 오는 10월 스페인 사라고사에서 열리는 이 단체 총회에서 승인을 얻어내야 한다.
시는 966억원을 들여 도심과 순천만 사이 6㎞ 구간 150㏊(45만평) 부지에 일본과 프랑스 등 세계 각국의 문화와 전통을 담은 30개 정원을 꾸민다. 박람회를 치른 뒤에는 이를 시민을 위한 공원으로 활용할 계획이다.
양복완(부시장) 국제정원박람회 유치단장은 “일부 공간은 홍수(연중 5일 가량) 조절용으로 물을 모아두는 저류지(貯溜池)로도 활용한다”고 말했다.
<순천만에 날아든 천연기념물 흑두루미. 지구상에 존재하는 1만여 마리 중 370여 마리가 작년 순천만에서 월동했다. / 순천시 제공>
순천만자연생태공원 주변 농경지 300㏊에 자리한 전봇대 282개도 내년 말까지 모조리 철거하기로 했다. 천연기념물 228호로 지정된 흑두루미 같은 대형 철새를 위협하는 전깃줄을 없애기 위해서다. 높이 30의 이동통신 기지국 철탑 3개도 인근 야산으로 옮긴다. 대대동 동편 마을에 사는 한석주(69)씨는 "공사기간 중 전기가 일시적으로 끊기면 당장 논에 물을 댈 수 없어 불편하지만 순천만을 보존하자는 데 주민들이 모두 뜻을 모았다"고 말했다.
지금의 순천만자연생태관은 5㎞ 후방으로 옮기고 인근 주차장도 폐쇄할 방침이다. 이 생태관을 대신할 국제습지센터를 450억원을 들여 ‘2012여수엑스포’ 개최 이전에 만든다. 이렇게 되면 관광객이 차량을 직접 몰고 현재 생태관이 있는 핵심보전지역까지 접근하는 것을 차단할 수 있게 된다.
최덕림 시 관광진흥과장은 “생태관을 후방에 세우는 것은 장기적으로 순천만 생태계를 지키기 위해서”라며 “탐방 동선이 더 길어지고 다양화할 수 있어 순천만을 깊이 이해하고 느끼는 데 좋을 것”이라고 말했다. 노관규 순천시장은 “무차별적 관광객 유치보다는 생태계 보전이 우선이라는 게 시정의 큰 원칙”이라고 말했다.
고속도로 관통
하지만 인간의 흔적을 지우려는 순천만은 거대한 ‘인공’ 암초를 만났다. 순천만이 인간의 손에 의해 허리가 잘려나갈 위험에 놓인 것이다. 목포~광양고속도로가 순천만 생태보전지구를 관통할 계획이다.
한국도로공사는 공사계획에 따라 순천구간 5.67㎞ 중 3.5㎞에 달하는 순천만 관통 고속도로 공사를 진행 중이다. 이럴 경우 순천만을 찾는 철새의 보금자리가 훼손되는 것은 물론이고 순천만 전체 자연생태계에 막대한 악영향을 끼친다.
<순천만 갯벌 동식물을 코앞에서 관찰하는 갈대탐방로. 1.2㎞에 달하는 갈대숲길이 펼쳐져 있다 / 순천시 제공>
순천시는 순천만 생태보전지구인 상류 1.7㎞ 지점을 관통하는 목포~광양고속도로 건설 중단을 최근 한국도로공사에 요청했다. 이 도로로 철새 서식지가 훼손된다며 친환경적으로 고속도로를 만들자는 것이다. 하지만 도로공사는 “현재 공정률이 42%에 달한 데다 600억원의 추가 공사비가 문제”라며 난색을 표하고 있다. 국토해양부도 “공사가 이미 진행 중이라 공사 중지는 현실적인 어려움이 있다”고 했다.
순천만이 이처럼 두 동강 날 위기에 처한 것은 순천시의 실정(失政)이 원인이다. 당초 순천만의 생태적 가치를 인식하지 못한 순천시는 2003년 이 고속도로 공사를 허용했다. 순천시는 2007년 11월 ‘설계변경’을 건의했다.
순천지역 시민사회단체의 반발은 거세다. 순천 30여개 시민·사회단체로 구성된 ‘순천만 관통 고속국도 공사중지 범시민위원회’는 정부와 도로공사에 공사 중지를 요구하며 최근 공사현장 앞에서 농성에 돌입했다. 이들은 관통 고속도로 공사를 우선 중지하고, 순천만 생태계를 보전할 수 있도록 공법 변경을 요구했다.
법적 근거도 내세웠다. 습지보전법에 따라 세계적 연안습지인 순천만에 고속도로를 건설하는 것은 불법이란 게 이들의 주장이다. 범시민위원회는 “고속도로가 관통하는 지역은 습지보전법을 준수해야 하는 연안습지에 해당한다”고 말했다. 공사 구간이 습지보전지구임과 동시에 람사르 등록습지로 정해져 있다는 것이다. 순천만은 2003년 12월 습지보전지구로 지정됐고, 2006년 1월 람사협약에 가입됐다. 고속국도 도로구역 결정고시 협의는 이보다 늦은 2006년 3월에 이뤄졌다는 게 이들의 설명이다.
순천만의 운명은 결국 인간의 결정에 따라 좌우될 것으로 보인다. 자연 그대로의 순천만은 애초부터 불가능했는가 보다.
순천만은 총연장 40.45㎞의 해안선으로 둘러싸인 갯벌·갈대밭·염습지로 구성돼 있다. 전체 갯벌은 22.6㎢로 이 중 간조 때 12㎢ 가량이 모습을 드러낸다. 순천만은 2003년 12월 국내 세 번째로 ‘연안습지 보호지역’으로 지정됐다. 천연기념물 흑두루미를 포함한 희귀조류 11종 등 200여종의 조류가 월동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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