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대 자연대 이상묵 교수 '바다의 탐구' 감동적인 수업
2년전 美 사막 지질탐사중 자동차 전복 사고
"육체는 갇혔어도 정신은 오히려 해방된 느낌…
장애인에겐 줄기세포 아닌 빌 게이츠가 구세주"
정혜진 기자 hjin@chosun.com
4일 오후 12시50분 서울대 자연대 304호 강의실. 문이 열리더니 중년의 남자가 탄 회색 전동 휠체어가 굴러들어왔다. 휠체어에 앉은 그는 온 몸이 휠체어에 묶여있다시피 했다. 두꺼운 벨트가 배꼽 위쪽에서 그의 몸통을 묶어 휠체어 등받이에 딱 붙여 놓았고, 두 팔과 다리도 팔걸이와 발걸이에 묶여 고정돼 있었다. 휠체어도 여느 전동휠체어와는 달랐다. 얼굴의 오른쪽으로는 마이크 모양의 물건이 머리 받침대에 달려 튀어나와 있었고, 얼굴 왼쪽 앞에는 빨대 비슷한 것도 달려 있었다. 휠체어가 강의실 칠판 앞까지 굴러와 멈춘 뒤 남자가 말했다. "자, '바다의 탐구' 강의를 시작하겠어요."
휠체어에 앉은 이는 서울대 자연대 지구환경과학부 이상묵(45) 교수다. 그는 2006년 7월 미국 캘리포니아 데스벨리 사막에서 지질조사를 하다 차량 전복사고로 다쳐 목 아래 전신이 마비됐다.
그가 움직일 수 있는 것은 오로지 목 위 얼굴뿐. 전동휠체어를 멈출 때도 오른쪽 뺨 옆에 있는 마이크 모양의 물건에 뺨을 비벼 멈추도록 했다. 마이크 모양 물건은 휠체어 작동을 조종하는 기계였다.
- 차량사고로 목 아래 전신이 마비되었지만 강단으로 돌아와 교육과 연구활동을 펼치고 있는 서울대학교 자연과학대학 지구환경과학부 이상묵 교수가 4일 자연대 강의실에서 전동 휠체어에 앉아 강의하고 있다. /오종찬 기자 ojc1979@chosun.com
"강의를 시작하기 전에 제 장난감에 대해 자랑할게요."
그의 왼쪽 입 앞으로 빨대처럼 나와 있는 것은 컴퓨터 마우스였다. 입으로 그것을 살짝 한번 빨자 강의실 대형 스크린에 비친 컴퓨터 모니터에서 프로그램이 실행됐다.
"한번 빨면 클릭이고, 오른쪽이나 왼쪽으로 입 바람을 불어 마우스의 화살표를 움직입니다."
'장난감' 설명을 마친 이 교수는 본격적으로 강의를 시작했다. 그는 연방 빨간색 빨대를 빨고 훅훅 불어댔다. 그때마다 노트북과 연결된 스크린 화면의 강의계획서 파일 창이 켜지고 바뀌었다. 이날은 개강 첫 강의인지라 앞으로의 강의계획을 주로 설명했다.
강의가 계속되고 말이 길어지면서 이 교수의 목소리는 금방 알아챌 수 있을 정도로 가늘어졌다. 옆에서 이 교수를 돕는 조교가 얼른 빨대가 있는 물컵을 그의 입에 대주었다.
"제 폐활량이 정상인의 40%밖에 안됩니다. 그래도 말 소리는 잘 들리죠?"
입은 그에게 '손'이자 '다리'였다. 전동휠체어를 움직이는 것도, 컴퓨터 파일과 인터넷 창을 열었다 닫았다 하는 것도 모두 입으로 했다. 글도 입으로 쓴다고 했다. 윈도우 비스타 프로그램에 음성인식 장치가 있어 컴퓨터에 연결된 소형 마이크를 통해 말하면 컴퓨터에 그 내용이 글로 작성된다. 하지만 한국어 인식은 하지 못해 영어로만 말해야 한다.
이 교수는 "장애인들에게 줄기세포가 구세주가 아니라 빌 게이츠가 구세주"라고 말했다. 그처럼 두 팔을 전혀 쓰지 못하는 장애인들도 컴퓨터만 있으면 삶이 달라질 수 있다는 것이다.
좌절의 순간이 없었냐고 묻자 그는 "이상하게 좌절한 적이 한번도 없었다"고 말했다. 그는 "다친 뒤로 육체는 꼼짝할 수 없이 갇혀 있는 셈이지만 정신은 오히려 해방된 느낌"이라고 했다. 생사를 오가다 깨어난 뒤 가장 먼저 든 생각도 "뇌를 다치지 않아서 학교로 돌아갈 수 있겠구나"라는 것이었다고 한다.
그는 치료와 재활을 거쳐 2007년 3월 학교로 복귀했다. 그의 복귀에는 후배의 응원과 얼굴조차 몰랐던 동료 교수의 도움도 큰 힘이 됐다. 이 교수의 해양학과 후배 서진원(42)씨는 미국 LA병원에 누워 있던 그를 찾아와 "운동선수가 챔피언이 되면 한 체급 올리는 것처럼 장애를 체급 올리는 것으로 생각하라"고 위로했다고 한다. 그와 안면조차 없었던 서울대 기계항공공학부 이건우 교수는 2006년 11월 경암학술상에서 우수 연구로 받은 상금 1억원을 모두 그에게 기부했다. 이 교수는 그 돈으로 전동휠체어를 실을 수 있도록 개조한 승합차를 마련했다.
1시간에 걸쳐 한 학기 강의계획 설명을 마친 그는 "다음 수업시간에 보자"는 말과 함께 오른쪽 뺨을 움직여 휠체어를 움직였다. 조교가 강의실 문을 열어주자 그는 다시 강의실에서 10m쯤 떨어진 그의 연구실로 돌아갔다. 학교는 그가 맡은 강의는 그의 연구실과 같은 층 강의실에서 하도록 배려하고 있다.
이날 강의를 들은 지구환경과학부 2학년 김홍진(21)씨는 "불편한 몸으로 열심히 강의하시는 교수님이 스티븐 호킹(루게릭 병으로 온 몸을 휠체어에 의지하고 있는 세계적인 천체 물리학자) 못지않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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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일 오후 서울대학교 자연과학대학 한 강의실에서 지구환경과학부 이상묵 교수가 수업을 하고 있다. 차량사고로 목 아래 전신이 마비되었지만 강단으로 돌아와 교육과 연구활동을 펼치고 있는 이 교수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오종찬 기자 ojc1979@chosun.com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08/03/05/2008030500049.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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