鶴山의 草幕舍廊房

文學산책 마당

생명의 서(書)

鶴山 徐 仁 2008. 2. 25. 21:10


    생명의 서(書)

                      -        유치환

    나의 지식이 독한 회의(懷疑)를 구(救)하지 못하고

    내 또한 삶의 애증(愛憎)을 다 짐 지지 못하여

    병든 나무처럼 생명이 부대낄 때

    저 머나먼 아라비아의 사막으로 나는 가자.



    거기는 한 번 뜬 백일(白日)이 불사신같이 작열하고

    일체가 모래 속에 사멸한 영겁(永劫)의 허적(虛寂)에

    오직 알라의 신만이

    밤마다 고민하고 방황하는 열사(熱沙)의 끝.



    그 열렬한 고독 가운데

    옷자락을 나부끼고 호올로 서면

    운명처럼 반드시 ‘나’와 대면케 될지니.

    하여 ‘나’란 나의 생명이란

    그 원시의 본연한 자태를 다시 배우지 못하거든

    차라리 나는 어느 사구(沙丘)에 회한 없는 백골을 쪼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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