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네시아 발리섬에서 열린 기후변화협약 국제회의가 ‘발리 로드맵’을 채택하고 막을 내렸다. 미국 대학의 졸업식이 ‘출발’을 의미하는 commencement라는 단어로 표현되듯이, 발리회의의 끝은 190여 개에 달하는 참여 국가들에 있어 ‘부담스러운’ 새로운 시작을 의미한다. 2년 후 덴마크 코펜하겐에서 열리는 제15차 당사국 회의에는 나름대로의 이산화탄소 감축목표를 들고 가야 하기 때문이다. 이제 국가별 이산화탄소 감축목표를 설정했던 교토의정서가 코펜하겐의정서로 대체될 날이 멀지 않았다.
문제는 우리나라다. 이번 발리 회의에선 일차적으로 선진국들에 의무 감축목표를 제시하도록 했다. 과연 우리나라가 소위 ‘선진국’에 포함될 것인가가 관건이다. 객관적 상황은 우리에게 유리할 것이 없다. 현재 세계 9위의 이산화탄소(CO2) 배출국이면서 지난 1990년 이후 중국과 인도를 제외하고는 CO2 배출증가율이 세계에서 가장 높은 나라가 바로 한국이다. 게다가 세계를 상대로 장사를 해야만 먹고살 수 있는 우리나라의 경제구조상 대외협상력이 특별히 우위에 있다고 말하기도 힘들다. 기후변화 문제에 있어 우리나라는 그 어디에서도 든든한 우군을 찾기 힘든 형편이다.
물론 미국과 중국처럼 국가 간 기후변화 협상에 있어서의 ‘문제아’들을 놔두고 왜 굳이 우리가 타깃이 되어야 하느냐고 볼멘소리를 할 수도 있다. 사실 미국은 이미 교토의정서에서 탈퇴했을 뿐만 아니라 이번 발리협상에서도 끝까지 의무감축을 반대하다가 막판에 손을 들고야 말았다. 중국은 언제라도 미국을 제치고 세계 1위의 이산화탄소 배출국으로 등극할 채비를 갖춘 나라다. 그러나 상대방을 향해 손가락질을 하는 순간, 나머지 네 손가락은 자신을 가리키고 있음을 잊지 말아야 한다.
생각을 바꾸면 세상이 달라 보이기 마련이다. 지구 온난화 문제를 계기로 한국경제의 근본적 체질 전환을 모색할 때다. ‘지구 온난화 선진국’으로 눈을 돌려 보자. 일본은 세계에서 가장 높은 에너지 효율성을 자랑한다. 독일은 에너지원에 대한 세율인상과 법인세 및 소득세에 대한 세율인하를 포함하는 환경친화적 조세개혁을 통해 에너지 저소비형 산업구조를 달성함과 동시에 25만 개 이상의 새로운 일자리를 창출하였다. 말 그대로 환경과 경제를 동시에 살리는 스마트한 정책방안이라고 할 수 있다.
미국 버클리대학의 최근 연구에 의하면 일정 수준의 전력생산을 위해 신재생에너지를 사용할 경우 기존의 화석연료를 사용할 때보다 평균 9만 명 정도의 일자리가 더 생기는 것으로 분석하였다. 이러한 일자리는 신재생에너지 관련 건설 및 제조업은 물론, 발전시설의 가동과 유지, 연료 공정 등에서 다양하게 발생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처럼 화석연료 사용을 줄여 이산화탄소 배출량을 줄이고 동시에 일자리까지 추가로 만들어진다면 경제학에서 말하는 ‘공짜 점심’에 가장 가까운 정책이 아닐까 싶다.
기후변화 문제에 관한 한 이제 더 이상 머뭇거릴 수 없다. 세계가 한국을 주시하고 있고, 지속 가능한 경제발전 외에는 대안이 없다는 사실을 우리 자신도 이미 너무나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오늘 17대 대통령 선거를 치른다. 돌이켜 보면 신재생에너지 기술을 개발하겠다, 에너지 효율적인 산업구조를 만들겠다, 10여 년 전부터 이런 구호성 공약을 유력 후보들로부터 들어 온 것 같다. 그러나 에너지 공급에 있어 신재생에너지 비중이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는 국가통계는 찾아보기 힘들다. 이산화탄소 감축이 국가적인 아젠다로 부상된 지금, 이번 대선을 계기로 더 이상 우리나라의 시민단체가 우리나라를 대표하여 기후변화협약 국제회의에 참석한 장관을 현장에서 질타하는 씁쓰레한 상황이 벌어지지 않았으면 한다.
홍종호·한양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