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르코지 대통령의 사생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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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르코지 대통령과 세실리아 /조선일보DB
지난달 18일 니콜라 사르코지(Sarkozy) 프랑스 대통령과 퍼스트 레이디 세실리아가 이혼을 공식 발표한 직후였다. ‘도대체 세실리아가 원하는 게 뭔가?’ 프랑스 주간지들은 일제히 퍼스트 레이디 자리를 박차고 나간 세실리아를 커버 스토리로 다뤘다. 프랑스에서도 대통령의 이혼은 처음이었다.
그런데 일주일이 지나자 세실리아 이야기는 자취를 감췄다. 세실리아 스스로 언론매체 두 곳과의 인터뷰를 통해 이혼의 변을 밝힌 것 말고는, 프랑스 언론들이 더 이상 그를 쫓아다니지도 않았다.
이처럼 프랑스 언론에 침묵이 허용되는 이유는 정치인의 사생활을 문제 삼지 않는 사회 분위기 때문이다. 대통령의 이혼을 접한 프랑스 사람들은 “우리가 세실리아한테 투표한 것도 아니었다” “수백만 프랑스 사람들이 겪는 걸 대통령 부부도 겪는 것”이라는 반응들이었다. 여론조사에서 10명 중 9명꼴로 “이혼은 전적으로 두 사람 개인 문제”라는 응답도 나왔다. “대통령의 사생활도 국민들 관심사”라는 사람은 10명 중 1명뿐이었다.
자신의 사생활이 침해당하는 걸 극도로 싫어하는 프랑스 사람들은 남의 사생활에도 관심 끄고 산다. 대통령한테도 예외는 아니었다. 사르코지의 이혼을 둘러싸고 드러난 프랑스인의 의식 구조도 흥미롭지만, 더욱 관심이 쏠렸던 건 공직에 대한 사고방식이었다. 정치인의 사생활에 간섭하지 않겠다는 ‘관대함’은, 뒤집어 말하면 사적 감정이야 어떻든 공무(公務)에 철저하고 사생활에 권력을 끌어들이지 말라는 ‘엄격함’이기도 하다.
이혼이 발표된 직후, EU 정상회담장에 가있던 사르코지 대통령은 기자회견장에서 르몽드 기자로부터 이혼 질문을 받았다. 그러자 사르코지는 “프랑스인들이 나를 대통령으로 뽑은 건 일하고, 또 일하고, 더 많이 일해서 프랑스 문제를 해결하라는 뜻”이라며 입을 꽉 다물었다. 그걸로 끝이었다.
퍼스트 레이디 자리를 박차고 나간 세실리아도 비슷한 얘기를 했다. “남편이 대통령이 된 덕분에 어느 날 갑자기 내가 세상의 중심이 된 것 같은 그 특별한 자리가 두렵다”고 했다. 열살 난 아들 루이한테 경호를 붙여 등·하교시킨다면 “그 아이 인생에는 정말 괴로운 일”이라고도 했다.
흔히 프랑스는 소수의 엘리트가 이끌어가는 사회라고 한다. 엘리트를 키워내는 ‘대학 위의 대학’ 그랑제콜이 있고, 요직은 ENA(국립행정학교) 출신이 독점한다고 해 ‘에나르키 사회’라고도 불린다. 평등을 지고(至高)의 이상으로 삼는 나라에서 엘리트주의가 허용되는 모순도 여기에 해답이 있다. 권력을 ‘누리라고’ 쥐어주는 게 아니라 나라를 위해 남들보다 무거운 책무를 다하라고 권한을 부여한다는 생각이다. 공사를 철저히 구별하는 사고방식은 대통령 가족에, 사돈의 팔촌에, 권력자와 친한 사이라는 ‘사적’ 이유로 권력을 남용하거나 그 떡고물을 누리는 걸 허용하지 않는다.
정권이 바뀌어도 권력형 비리가 끊이질 않고, 공사(公私) 구분 못 하고 부적절한 사생활에 청와대 고위 공직자 신분을 끌어다 쓴 변양균·신정아 사건에서부터 연예인 박철·옥소리 부부의 민망한 사생활 폭로까지 ‘가십 천국’이 되어버린 한국 사회를 보면서, 정작 매섭게 따져야 할 중대 쟁점들은 뒷전이 되는 게 아닌가 싶어 우리와 정반대의 프랑스 얘기를 떠올려 본다.
강경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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