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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지난 9월 베를린에서 열린 AV/멀티미디어 전시회 IFA 2007의 LG전자 부스. 휴대폰 등 다양한 전자제품이 관람객들의 높은 관심을 끌었다. (photo 조선일보 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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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림푸스는 지난 10월 17일 한·일 양국에서 기자간담회를 갖고 DSLR(디지털) 카메라 ‘E-3’를 세계 최초로 선보였다. 올림푸스 E-3는 전문가 및 준전문가를 위한 DSLR 카메라로, 올림푸스가 야심차게 선보이는 DSLR의 최상위 기종이다. 회사 측은 “세계 최고속 AF(자동초점), 초당 5장 고속 연사, 셔터 스피드 8000분의 1초 등 고성능을 갖추고 있다”고 말했다.
이에 앞서 소니의 한국법인인 소니코리아는 지난 9월 12일 준전문가용 고성능 DSLR카메라인 ‘알파700(α700)’을 세계 최초로 한국에서 출시한다고 발표했다. 소니코리아는 지난 9월 12일부터 18일까지 7일간 예약을 받아 9월 18일 현장판매를 했다. 이 회사는 “9월 18일의 현장판매는 소니 본사에서도 ‘α700’에 대한 한국 고객들의 뜨거운 관심을 특별히 반영해 진행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한국이 글로벌 테스트마켓(시험시장)으로 떠오르고 있다. 올림푸스와 소니처럼 한국에서 세계 최초로 신제품을 공개하는 글로벌 기업이 늘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복득규 삼성경제연구소 수석연구원은 “한국시장은 테스트마켓이 될 만한 충분한 요건을 갖추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그 이유로 네 가지를 들었다. △우선 신제품에 관심이 많은 소비자(얼리 어답터)가 많다는 점 △소비자들이 정보를 교류할 수 있는 네트워크, 즉인터넷이 발달했다는 점 △신제품 사용소감을 빨리 인터넷에 올리고 관심을 기울이는 소비문화가 있다는 점 △개방적이며 소득이 뒷받침되는 시장이 있다는 점 등이 그것이다. 업종에 따라서는 중국 시장을 염두에 두고 한국시장을 테스트마켓으로 활용하는 기업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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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세계 최초로 한국에서 출시된 일제 ‘소니 알파 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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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이 글로벌 테스트마켓으로 관심을 받기 시작한 것은 2000년대 초 한국이 세계적 IT(정보기술) 강국으로 떠오르면서부터이다. 와이브로, HSDPA(고속하향패킷접속방식), 인터넷TV(IPTV), 전자태그/유비쿼터스 센서 네트워크(RFID/USN), 글로벌 ERP(전사적자원관리), 디지털멀티미디어방송(DMB), 통신·방송 융합, 트리플플레이서비스(TPS), 차세대 금융 등 IT 업종이 한국엔 널려 있다. 한국 외엔 세계 어느 나라도 이를 동시에 수용할 테스트마켓을 갖고 있지 않다.
한국이 온라인게임, 휴대폰 등 IT분야의 신흥 강국으로 떠오르면서 해당 분야 기업을 중심으로 “한국에서 통해야 세계에서 통한다”는 말이 정설(定說)로 받아들여졌다. 온라인게임은 한국이 종주국으로 대접받고 있으며 한국에서 떠야 세계적으로 히트치는 구조가 일찌감치 확립됐다. 한국이 세계 12대 경제 강국으로 떠오른 것과 맞물려 이런 경향은 자동차, 디지털 가전 등 첨단 제품으로 확대되고 있다. 특히 하루가 다르게 트렌드가 변하는 첨단 디지털 기기의 경우 한국 소비자의 반응을 보고 세계 시장을 대상으로 마케팅 전략을 수립할 정도다.
모토로라는 지난 6월 ‘레이저 스퀘어드’를 세계 최초로 한국시장에 선보였다. 이 제품은 2004년 출시돼 세계적으로 1억대 가량 팔린 베스트셀러인 레이저의 후속 모델이다. 업계 관계자는 “이 제품이 한국시장에서 세계 최초로 공개됐다는 점은 모토로라가 한국 시장에서 다시 한 번 레이저의 영광을 재현하려는 의지를 보여주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최근에는 글로벌 자동차기업들의 한국 중시 경향이 뚜렷하다. 한국은 수입자동차 시장이 작았을 때도 자동차 편의장치에서 주종을 이루는 반도체, IT 쪽이 세계 최고 수준이어서 무시할 수 없는 특성이 있었다. 그런데다 최근 수년간 한국의 수입자동차 시장이 급속하게 커졌고 한국 소비자의 안목이 세계적으로 수준급이어서 테스트마켓으로 적격이 됐다. 수입자동차 회사들이 한물 간 구형 모델을 한국에 들여와 편하게 장사하던 것은 이제 호랑이 담배 피던 시절 이야기가 된 셈이다.
렉서스는 2004년 8월 렉서스 ES330의 마이너 체인지 모델인 뉴ES330을 세계 최초로 한국에서 출시했다. 지난해 5월에는 중형차인 뉴ES350도 한국에서 선보였는데 이 역시 세계 첫 공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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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국에서 세계 최초로 출시된 일본 닛산의 ‘뉴 인피니티 G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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렉서스보다 한국에 늦게 진출한 인피니티는 한국을 테스트마켓으로 적극 활용하고 있다. 인피티니는 지난해 10월 한국에서 세계 최초로 뉴 인피티니 G35 세단을 출시했다. 이 차종은 인피니티가 글로벌 럭셔리 브랜드 등극을 목표로 수년간 심혈을 기울여 준비한 핵심 모델이다. 실제로 이 모델은 출시 직후 국내외에서 선풍적 인기를 끌고 있다. 인피니티는 지난 4월에는 거의 같은 시간대에 뉴욕모터쇼와 서울모터쇼에서 뉴 인피니티 G37 쿠페를 공개했다. 인피니티는 제품뿐만 아니라 인피니티 전시장의 세계 표준인 ‘인피니티 전시장 환경 디자인 계획’을 세계 최초로 한국에 적용했다.
그러나 빛이 있으면 그림자가 있게 마련이다. 한국이 테스트마켓으로 떠오르는 현상에 대해 마냥 좋아할 만한 일은 아니라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화장품이나 명품처럼 한국을 소비시장으로만 인식하고 투자를 하지 않는 사례도 적지 않아 경각심을 가져야 한다는 것이다.
한국이 테스트마켓으로 각광 받으면서 한국에 R&D(연구개발)센터를 설치하는 다국적 기업도 늘어나고 있다. 지멘스, 3M, 구글 등 세계적 기업들이 한국에 R&D센터를 두고 있다. 복득규 수석연구원은 “글로벌 기업이 한국에 R&D센터를 설치하면 고용을 늘리는 것은 물론 국내 기업과 상호 자극을 주고받아 국내 소비자가 누리는 제품과 서비스의 수준이 올라가는 긍정적 효과가 기대된다”고 말했다. 그는 “한국이 테스트마켓으로 각광받는 것에 만족해서는 안 되며 국가적 차원에서 R&D센터를 적극 유치해야 한다”고 말했다. ▒
한국이 테스트마켓으로 뜨는 이유
ㆍ신제품에 관심이 많은 소비자가 많다
ㆍ인터넷 발달로 소비자 간 정보 교류가 빠르다
ㆍ개방적이고 소득이 뒷받침된다
ㆍ신기술·신시스템을 빨리 흡수한다
ㆍ중국시장 진출 위한 전초기지
글로벌 기업들의 최근 1년 말·말·말
“한국이 다른 나라에 비해 갖고 있는 엄청난 장점은 똑똑하고, 식별력있고, 세분화된 시장이 있다는 점이다. 모든 외국 기업이 한국을 테스트마켓으로 생각한다. 우리는 흔히 ‘한국에서 성공하면 중국에서도 성공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아니 중국뿐 아니라 어느 나라, 어느 문화에서도 성공할 수 있다’고 말한다.”
- 윌리엄 오벌린 주한미국상공회의소(암참) 회장, 2007년 4월 한국경제 인터뷰에서
“다른 어느 나라보다도 신기술, 신시스템을 거부감없이 빨리 흡수하는 한국 소비자들의 얼리어답터적 성향에 주목하고 있다.”
- 디빅스의 케빈 헬 부사장, 2006년 12월 전자신문과 가진 방한 인터뷰에서
“한국시장은 테스트마켓을 넘어 일본 수준의 선진시장으로 성장했다.”
- 니콘이미징코리아의 야마구치 노리아키 사장, 2006년 8월 ‘D80’ 제품설명회에서
“한국은 중국·일본과 동남아지역의 ‘테스트마켓’ 역할을 할 정도로 시장성이 있다.”
- 사라 매켄지 영국영화진흥위원회 국제업무 본부장, 2006년 10월 부산국제영화제를 방문한 자리에서
“한국은 세계 유명 브랜드들이 각축을 벌이고 있는 시장이며 인피니티의 신차를 받아들일 충분한 마인드를 가지고 있다.”
- 마크 아이고 북미 닛산 인피니티 부사장, 2006년 10월 서울에서 열린 신차발표회에서
“한국 소비자들의 입맛을 잡으면 다른 나라에서 성공할 가능성이 높다.”
- 돌코리아의 에마뉘엘 하벨야나 사장, 2006년 10월 동아일보 인터뷰에서
“한국시장은 앞서가는 트렌드로 전 세계 정보기술(IT)제품의 시험무대가 되고 있어 미오 제품의 테스트마켓 역할도 하게 될 것이다.”
- 대만 내비게이션 업체인 미오테크놀로지의 스콧 리 한국지사장, 2006년 8월 동아일보 인터뷰에서
/ 박영철 차장대우 ycpark@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