떠나기 며칠 앞서부터 서산에서 가볼 만한 곳을 여러 군데 찾아봤어요. 여름휴가라고 해도 해마다 3일밖에 안 되기 때문에 짧지만 알차게 보내려면 계획을 꼼꼼하게 세워야 나중에 후회하지 않을 듯했어요. 또 워낙 멀리 있는 곳이라 쉽게 자주 갈 수 있는 곳도 아니었기 때문에 더욱 그랬지요. 늦어도 막차는 놓치지 말아야 하는데... 7월 26일 오후 6시, 일터에서 조금 일찍 마칠 수 있으리라는 기대는 와르르 무너지고, 보통 때와 다름없이 일이 끝났어요. "이런, 이걸 어쩌지? 막차도 못 타겠는 걸?" "안 되겠다. 어쩔 수 없이 내일 첫차로 가야겠다." "가만, 대전에서 당진 가는 차는 몇 시까지 있지?" "당진? 아, 당진이 서산하고 가까이에 있지? 그럼 시간을 다시 알아봐야겠다." 구미에서 대전까지 가는 버스는 늦게까지 있지만, 서산에 가려면 대전에서 다시 갈아타야 해요. 대전에서 서산 가는 막차가 저녁 8시인데, 아무리 생각해도 막차도 놓칠 거 같아요. 그래서 생각한 게 당진까지 가서 다시 서산으로 가려고 마음먹었어요. 알아보니, 밤 9시에 막차가 있더군요. "그래 가보자! 당진 가는 막차라도 타고, 그 다음에 다시 생각하자!" 이렇게 해서 서둘러 미리 꾸려놓은 짐을 챙겨서 집을 나섰어요. 아니나 다를까, 구미시외버스터미널에 닿으니 오후 6시 40분 차는 탈 수도 없고, 한 시간 뒤에 가는 차가 있었어요. 그래서 차표를 끊어놓고 자전거를 가방에 쌌어요. 애고, 그런데 이게 웬일이래요? 자전거로 먼 길을 떠나보지 않아 자전거를 가방에 처음 싸보는데 한참 동안 애를 먹었어요. 차 시간이 한 시간이나 남았지만, 자전거 두 대를 싸야하는데…. 그동안에 수십 번도 더 빼 봤던 바퀴도 잘 빠지지 않고, 땀은 비 오듯 하고…. 낑낑거리면서 애를 쓰며 어찌어찌하여 가방에 다 넣었는데, 이런! 차 떠날 시간이 15분밖에 남지 않았어요. 생각 같아서는 가방을 빨리 싸고 간단하게 저녁이라도 먹으려고 했는데 그럴 수도 없었답니다.
"그래, 그거 좋은 생각이다." 아무튼 이렇게 음료수 몇 개를 사 가지고 기사 아저씨한테 전해주고, 자전거를 짐칸에 싣고 버스에 올랐어요. '부웅∼' 드디어 버스가 움직여요. "휴우∼! 드디어 가는구나!" "응, 이젠 어떻게 하든지 당진까지는 가야해." "그래 당진까지 가서 다시 생각해보자. 정 안 되면 언니한테 차 가지고 나오라고 하면 되잖아." 드디어 우리 부부의 여름휴가는 이렇게 시작되었습니다. 일터에서 30분만 더 일찍 마쳤더라면 이렇게 바쁘고 힘들지는 않았을 텐데…. 그리고 맨몸으로 가는 거라면 아무 문제없을 테지만 서산에서 자전거를 탈 생각으로 가다 보니, 이것도 모두 추억에 남겠지! 하고 여기며 즐거운 마음으로 보내기로 했어요. 구미에서 대전까지는 한 시간 십 분쯤 걸렸어요. 대전에 닿자마자 잠깐 쉴 틈도 없이 당진 가는 막차를 타야 했습니다. 아무래도 오늘 저녁은 먹을 수 없을 듯해요. 매점에 뛰어가서 손에 잡히는 대로 빵 두어 개와 음료수를 사 가지고 차에 타니 바로 떠나요. "애고, 이거 오줌 눌 시간도 없구먼." "그래도 어쩌겠어. 오늘 안에 당진까지 가는 게 목표니까…."
이제 마음을 놓고 두어 시간쯤 가다 보면 닿겠지 하고 생각하고, 한 이십 분쯤 갔을까? 기사 아저씨가 안내방송을 하는데, 이게 뭔 말이래요? "손님 여러분께 알립니다. 이 차가 고장이 났나 봅니다. 아까 당진에서 올 때도 다른 차에 손님을 옮겼는데, 또다시 말썽이네요. 그런데 이게 또 막차라서 다른 차를 바꿔 탈 수도 없으니까 죄송하지만 양해를 부탁드립니다." 그러고 보니, 버스가 고속도로에 들어섰는데도 희한하게 느리게 가는 거예요. 버스가 가는 모양을 보니, 마치 우리가 자전거를 타고 빨리 갈 때 나는 속도와 맞먹어요. 이럴 수가! 게다가 막차라서 다른 차에 옮겨 타지도 못한다니, 이걸 어쩐대? 버스 안에는 우리와 친구사이로 보이는 청년 둘, 이렇게 네 사람밖에 없었어요. 차가 고장 나서 그렇다는데 이런저런 말도 못하고 그저 밤 12시 안에만 닿기를 바랐어요. "어휴∼ 오늘 왜 이러지? 집에서 나올 때부터 일이 자꾸만 꼬이네." "할 수 없지. 그래도 어쩌겠어. 가다가 아무 사고만 없기를 바랄 수밖에…." 우리도 답답하지만 기사 아저씨도 무척 속이 탈 거란 생각에 그냥 꾹 참았어요. 안내방송이 끝나고 한 십 분쯤 더 달렸나? 애고, 이건 또 무슨 일이래요? 천천히 갔지만 그런대로 잘 가던 버스가 느닷없이 고속도로 갓길에 비켜서 세우는 거예요. 이러다가 오늘 밤에 당진에도 못 가고 차 안에서 밤을 새워야 하는 거 아냐? 하며 걱정을 하고 있었어요. "죄송합니다. 잠깐 멈춰 서서 버스 열을 좀 식힌 다음에 가야겠습니다." 아저씨는 이렇게 말하고는 차 밖으로 나가버렸어요. 고속도로를 달리면서 차가 고장이 나서 30∼40km로 천천히 가는 것도 어이가 없는데, 이젠 그나마 가다가 말고 갓길에 세워두고 열을 식힌다니! 휴가 첫머리부터 이상하게 일이 꼬이는데 매우 황당했습니다. 그렇다고 차 안에 있는 사람들 가운데 그 누구도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지요. 막차라서 옮겨 타지도 못한다는데 어떻게 하겠어요. 얼마 동안 있다가 열을 다 식혔는지 버스가 다시 떠납니다. 열을 식힌 탓인지 그나마 아까보다는 훨씬 더 빨리 달려요. "휴우∼ 다행이다. 그래도 아까보다 빨리 가니까 조금 늦더라도 닿을 수 있겠다." 버스가 제대로 달리는 걸 보고 나서 서산 언니한테 전화를 했어요. 깜짝 놀라게 하여주려고 미리 얘기도 안 하고 가는 건데, 늦은 시간에 가서 '짠!' 하고 나타날 수도 없고, 또 서산까지 들어가려면 어쩔 수 없이 언니가 차를 타고 나와야만 했기 때문에 얘기를 해야 했답니다. "엥? 지금 서산에 오고 있단 말이야?" 아니나 다를까 몹시 놀라는 눈치예요. 사정 이야기를 하고 밤 11시 30분쯤 차를 가지고 나오라고 하니, 이런! 또 일이 꼬이네요. "애고, 미리 전화를 하고 오지. 내 차가 지금 서울에 가 있단 말이야." "어이쿠! 오늘 일이 엎친 데 덮친 꼴이네!" "가만 있어봐, 어쨌거나 내가 다른 사람한테 부탁해서라도 차를 알아볼 테니까 걱정 말고 내려와. 그나저나 배고프겠다." 전화 한 통 없이 느닷없이 찾아오는 우리를 반겨주는 언니가 퍽 고마웠어요. 더구나 이 늦은 시간에 다른 사람한테 부탁해서라도 차를 끌고 당진까지 나오겠다고 하니…. 버스는 보통 때 달리는 빠르기로 잘 가고 있어요. 우리가 생각했던 시간에 닿을 수 있겠다 싶어 마음이 놓였습니다. 이렇게 난생처음으로 충남 당진 땅에 닿으니, 밤 11시 30분. 언니는 버스터미널에 벌써 나와서 기다리고 있었어요. 곁에는 낯선 청년과 함께…. 먼저 밥부터 먹고 서산으로 가자고 하며 곱창집에서 늦은 저녁을 먹었어요. 우리 둘은 배고픈 탓에 게걸스럽게 먹으며 구미에서 여기까지 오면서 겪은 이야기를 안주 삼아 소주도 한 잔 했지요. "이것도 다 추억이야, 재미난 얘깃거리를 만들었구먼. 하하하!" "아이고, 그나저나 어째 여기까지 자전거를 가지고 올 생각을 했대?" "휴가가 삼일이나 되는데, 서산까지 와서 자전거 안 타고 갈 수는 없잖아. 더구나 여긴 볼거리도 많던데 말이야. 하하하." 다음 편에는 서산 가야산 둘레와 백제의 숨결이 고스란히 남아있는 보원사지 이야기가 이어집니다. 사흘 동안 휴가를 보내면서 둘러본 몇 곳을 사진으로 먼저 구경해볼까요?
鶴山 ; 이 기사를 읽으니, 자신이 군 재직 시에 즐기던 사이클링과 한 열흘 전에 자전거로 인천을 출발하여 고향 집이 있는 마산까지를 목표로 자전거로 공주의 교육원에 들렸던 자신에겐 작은 기인으로 느껴지는 조사범의 모습도 문득 떠오른다. 아직도 젊음이 넘치는 시절에는 그와 같은 삶의 여정도 의미있는 삶이 아닐 까 하는 생각을 한다. 심신이 강건한 젊은이들이 많아야 이 나라의 장래가 밝을 터인 데 일부의 나약한 젊은이들의 모습이 미래 이 사회에 대한 불안감을 떨칠 수 없게 만들기도 하는 게 솔직한 심정이다. 아무쪼록, 나이 먹은 사람의 노파심으로 치부 되었으면 하는 바램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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