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간 현지 신문인 아프간 이슬라믹 프레스(AIP)는 이날 탈레반이 아프간 정부와의 협상이 실패쪽으로 가고 있다며 한국 정부와의 직접 대화를 요구하고 나섰다고 보도했다. 탈레반 지휘관인 압둘라 잔의 대변인은 이 신문을 통해 “아프간 정부와의 협상은 성공하지 못할 것으로 본다.”며 한국정부가 직접 우리와 대면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이제 공은 한국과 아프간 정부의 코트로 넘어갔다.”며 “오늘 오후까지 해결이 되지 않으면 인질들을 살해하겠다.”고 위협했다.
이 대변인은 또 “한국인들은 서로 다른 몇 개의 그룹으로 분산돼 있으며 각 그룹마다 자살 폭탄 조끼를 입은 대원들이 배치돼 있다.”면서 “군사 작전이 이뤄지지 않는 지금은 한국인 인질들을 비교적 잘 대우해주고 있다.”고 덧붙였다.
탈레반이 한국 정부와의 직접 대화를 요구하고 나섰다는 외신보도에 대해 정부 당국자는 “납치단체와 직접 대화는 하지 않는다는 기본 원칙에는 변함이 없다.”며 “현재 안정된 접촉 채널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정부가 납치단체와 직접 대면하면서 대화에 나설 필요가 없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 당국자는 또 “현재 가동하고 있는 직·간접 접촉선을 통해 (보도의)진실성과 진위를 파악할 것”이라며 “좀 더 상황을 봐야겠지만 아직 납치단체가 공식적으로 우리측에 전달한 얘기가 아니고 외신을 통한 것이라서 진위 파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앞서 현지에 급파된 우리 정부 대표단의 협상 노력과 관련, 한국인 인질들의 석방 가능성이 높아졌다고 아프간 내무부 대변인이 밝혔다. 제마라이 바샤리 대변인은 “이 문제에 대해 쉬지 않고 매달리고 있다.”며 “한국인과 독일인의 석방 가능성에 대한 희망이 조금 더 높아졌다.”고 말했다.
그러나 탈레반과의 협상이 지지부진하거나 별다른 성과를 거두지 못할 경우 장기화될 가능성도 있다는 우려가 일각에서 조심스럽게 제기되고 있다. 탈레반이 요구한 2개 사항 가운데 한국군 철군은 큰 걸림돌이 되지 않지만 탈레반 수감자 23명을 무더기로 맞교환 석방하는 일은 아프간 정부가 흔쾌히 동의하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뉴욕타임스는 탈레반이 석방을 요구하는 수감자 중에는 2주일 전 체포된 가즈니 주 탈레반 최고위급 사령관이 포함돼 있다고 보도했다.
한편 지난 18일 아프간에서 납치된 독일인 인질 2명은 탈레반이 아니라 현지 부족 무장강도에 납치된 것이라는 주장이 나왔다. 독일 타블로이드신문 빌트는 22일 납치세력이 파슈툰 부족 무장강도라고 보도했다.
이와 관련,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는 22일 아프간 주둔 독일군의 철군 요구에 굴복하지 않을 것이라고 다시 한번 강조했다. 메르켈 총리는 독일 공영 ARD 방송 회견에서 “우리는 탈레반의 요구를 들어줄 수 없다.”면서 “아프간에 독일군 증파 가능성도 배제하지 않고 있다.”고 밝혔다.
미군 대변인인 데이비드 아세타 중령도 같은 날 “아프간과 한국 정부의 요청이 있을 때만 구출 군사작전에 들어갈 예정”이라며 “한국인들의 목숨을 위기에 빠뜨리고 싶은 생각은 추호도 없다.”고 말했다고 AP 통신이 전했다.
한편 안경환 국가인권위원장은 아프가니스탄 한국인 피랍 사건과 관련, 이날 아프가니스탄 인권위원회에 긴급 서신과 전화를 통해 “한국 민간인의 생명과 안전이 보호될 수 있도록 최선의 노력을 다해달라.”고 요청했다.
최종찬 김미경기자 siinjc@seoul.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