鶴山의 草幕舍廊房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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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불의 '한국 선생님'

鶴山 徐 仁 2007. 6. 20. 07:25
2007년6월1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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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불의 '한국 선생님' 

   

‘애국, 애족’.

이 촌스러운 ‘교훈(校訓)’을 1층 로비에 걸고 있는 곳은 아프가니스탄의 수도 카불에 있는 ‘아프가니스탄-한국 직업훈련원(AKVTC)’이다. 우리 정부가 1100만 달러(100억원)를 지원해 2005년 여름 문을 연 이곳은 카불의 중심도로인 카르가가(街)를 달리다 보면 만난다. 아마 카불에서 가장 멋진 건물 중 하나일 것이다. 겉만 번듯한 게 아니다. 훈련원 바깥은 지금도 폭탄이 터지고 사람들이 죽어 나가지만 여기선 300여 명 아프가니스탄 학생들의 꿈이 자라고 있다. 봉제기술자, 전기기술자, 컴퓨터 전문가가 돼 가난한 부모와 형제를 돕고, 피폐한 조국의 재건에 힘을 보태겠다는 그런 꿈 말이다.

이들에게 ‘애국, 애족’의 교훈을 가르치고, 꿈을 키워 주는 주역들은 역시 한국인이다. 한국의 개발시대를 몸으로 체험했던 40·50·60대의 한국인 아저씨들이다. 산업인력공단에서 파견한 4명의 자문관들이다. 후진국이 모두 그렇듯, 아프가니스탄의 젊은이에겐 지식만 전수할 수 없다. 지식에 앞서 시간과 약속의 개념을 가르쳐야 하고, 근면의 중요성도 알려 줘야 한다. 엄청난 열정과 에너지가 소모되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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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7일 아프가니스탄 수도 카불에 있는 한국·아프가니스탄 직업훈련원에서 스카프를 두른 채 모터 작동법을 배우던 여성 4명이 미소를 띠며 포즈를 취하고 있다.

  • 머리가 성성하고, 얼굴에 주름도 가득하지만 이들 4명의 한국 아저씨는 20대의 열정으로 일한다. 아프가니스탄은 위험하고 힘들다. 현지 정보기관에선 일주일에 한 번 꼴로 훈련원을 찾아와 “여성을 가르치고 있어 여성교육을 반대하는 탈레반의 테러 표적이 된다는 첩보가 있다”는 등의 정보를 전해 준다. 안 들은 것만 못하다. 그래서 이들은 좀처럼 숙소 바깥에 나들이도 하지 않는다. 직업훈련 경력 32년차로 베트남·가봉 등 개발도상국에서 지도했던 이욱(62)씨, 수단과 스리랑카 등을 경험한 29년차의 정재문(53)씨, 해외 근무는 아프가니스탄이 처음인 26년차의 송승호(50)씨, 그리고 과테말라·베트남 등을 돌아다닌 17년차의 막내 유기승(46)씨가 바로 그들이다.

    이들의 노력으로 많은 변화가 벌어지고 있다. 자신의 나이를 말할 때도 ‘아마도’(maybe) ‘대략’(about) 등의 말을 붙이는 자신 없는 아이들이 이젠 당당히 의견을 말한다. 또 지각할까 정문에서부터 뛰는 학생들과 교사들이 생겨났다. 이런 변화는 작은 기적들을 만들고 있다. 작년엔 400명의 졸업생 가운데 취업을 희망한 357명 중 350명이 취업, 취업률 98%를 기록했다. 입소문이 나자 카르자이 아프가니스탄 대통령은 “한국의 직업훈련원처럼 해 보라”고 장관들에게 지시할 정도다.

    “고3 수험생을 가장 잘 가르칠 수 있는 사람은 아마 대학 1학년 신입생일 겁니다.”
    한국 직업훈련원의 성공 원인을 자문관 중 최고참인 이욱씨는 이렇게 분석했다. 한국이 개도국 단계를 막 거쳐 왔기 때문이란 의미였다. 이들은 아프가니스탄 젊은이들에게 “나도 옥수수죽을 먹고 자라 봐서 너희들을 이해한다. 30년 전엔 한국도 비슷했다. 이를 악물고 열심히 하면 금세 한국이 될 수 있다”고 말한다. 한국은 경제력에 비해 국제사회 기여도가 너무 낮다고 비판을 받는다. 하지만 우리가 국제사회에 기여할 수 있는 좋은 자산이 있다. 바로 우리의 근대화 자산들이다. 우리 안에서는 우리의 근대화 역사를 두고 온갖 난도질을 하지만, 밖에서는 이렇게 우리의 역사와 경험을 소중히 여긴다. 라오스, 캄보디아 등에서도 ‘새마을운동’을 열심히 배운다고 한다. 4명의 아프가니스탄의 한국 아저씨들에게 파이팅을 외쳐 본다.

  • 이인열 특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