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무도 기원
현무도의 수련은 제 1세 환인 임금 시대(BC 7197)부터 행해졌으며, 환인 임금께서는 기무(氣武) 수련을 통하여 몸을 다스림으로 치신득도(治身得道)를 이루어 능히 무병장수(無病長壽)하였다. 환인 천제께서 천산(天山)에 살면서 도를 깨달아 오래 살고 몸을 다스려 병이 없었다. 初桓仁居于天山 得道長生治身無病 《환단고기(桓檀古記)》의 <환국본기(桓國本紀)>와<삼성기하(三聖紀下)> 기무예(氣武藝)의 수련은 환인 천제께서 최초로 행하셨고, 제1세 안파견 ~ 제 7세 지위리 환인 천제의 시대를 지나 환웅천황 제 1세 거발한(BC 3897~ BC 3804)이 치신득도(治身得道)하여 능히 선인(仙人)의 경지에 이른 후, 환국(桓國)을 이어 도읍을 신시(神市)에 세우고 나라 이름을 배달(倍達)이라 명명(命名)하였으며, 구전(口傳)으로 전해져 오던 천부경 (天符經)과 삼일신고(三一神誥)를 글로 옮겨 적게 하였다. 환웅천황의 치신득도(治身得道)- 도읍을 신시(神市)에 세우고 나라 이름을 배달(倍達)이라 하였다. 스무 하루 동안 하느님께 제사드리면서 문을 잠그고 밖의 것을 완전히 잊고 수련에 공을 드리며 약을 먹었다. 드디어 천황은 선인의 경지에 이르러 미래의 일을 알고 신을 부릴 수 있었다. 立都神市國稱培達擇三七日祭天神 忌愼外物閉門自修呪願有功腹藥 成仙劃卦知來執衆運神命群靈諸哲 《삼성기(三聖紀)》 - 안함노(安含老) 또한 만백성에게 천부경과 삼일신고를 가르쳐 병없이 오래 살게 하였고 도덕적으로도 순화(純化)시켜 성품을 온순하고 순박하게 하였을 뿐 아니라 전쟁에 있어서는 병사들이 기무예(氣武藝)를 수련함으로써 전투능력이 크게 향상되도록 하였다. 환웅천황이 처음으로 개천하여 백성을 교화할 때 천부경과 삼일신고를 강론하여 무리를 크게 깨우쳤다. 桓雄天王肇 自開天生民施化 演天經神誥大訓于衆 《환단고기(桓檀古記)》의 <삼성기하(三聖紀下)> 이러한 기무예 수련이 점차 체계적인 면모를 갖춤으로써 국책으로 시행되었고, 이로써 환인(桓因) 시대에 사람들끼리 전하던 방식을 벗어나 국가라는 조직 속에서 보다 적극적인 방법으로 전해지며 보급되었다. 이것이 제 1세 환웅천황 거발한(BC 3897) ~ 제 18세 환웅천황 거불단(BC 2380)을 지나 제 1세 단군 왕검(BC 2333 ~ BC 2240)으로 이어져 내려왔다. 단군 왕검은 환인, 환웅과 같이 천부경과 삼일신고에 의하여 치신득도(治身得道)함으로써 현묘지도(玄妙之道)를 얻게 되었다. 고조선(古朝鮮) 즉 단군조선에 이르러서는 소도(蘇塗, 제천단이 있는 성역)입구에 큰 나무를 세우고 거기에 방울과 북을 달아 놓았는데 이것을 솟대라 하였고, 소도 옆에는 경당(?堂)이 있어 이곳에서 젊은이들에게 글과 무예, 예의를 가르쳤다. 단군 시대에는 이 소도를 많이 설치하여 천지화(天指花)를 심었고, 이곳에서 공부하는 학인(學人)을 국자랑(國子郞)이라고 하였는데, 국자랑이 나와 다닐 때는 머리에 천지화를 꽂았기 때문에 사람들은 국자랑을 일컬어 천지화랑(天指花郞)이라고도 하였다. 소도가 있는 곳은 모두 계율이 있었는데 효·충·신·용·인(孝·忠·信·勇·仁)의 오상지도(五常之道)이다. 이곳에서 가르치는 교육은 육예(六藝)로서 책읽기(讀書), 활쏘기(習射), 말타기(馳馬), 예절(禮節), 노래와 음악(歌樂), 기무예(拳搏)였으며, 소도에서의 제천의식 때에는 반드시 천부경과 삼일신고를 강론하여 문(文)과 무(武)를 함양시킴으로써 그 근본을 삼게 하였다. 이러한 경당에서의 기무예 수련은 예무(藝武)와 군무(軍武)가 서로 어우러져 굳세고 용맹스러움이 전투에 임하여서는 결코 물러남이 없었다(臨戰無退). 소도가 서는 곳에서는 모두 계율이 있었는데, 효·충·신·용·인(孝·忠·信·勇·仁)의 오상 지도(五常之道)가 그것이다. 소도 옆에는 반드시 경당(絅堂)을 세워 미혼 자제들에게 사물을 강습하게 했는데 책읽기(讀書), 활쏘기(習射), 말타기(馳馬), 예절(禮節), 노래와 음악(歌樂), 주먹치기(拳搏)와 칼쓰기(術劍) 등 육예(六藝)이다. 蘇塗之立皆有戒忠孝信勇仁五常之道也 蘇塗之側必立?堂使未婚子弟講習事物蓋讀書 習射馳馬禮節歌樂拳搏?術劍六藝之類也 《환단고기(桓檀古記)》의 <삼성기하(三聖紀下)> 이러한 오상지도의 가르침으로 국자랑은 단군 조선에 부여를 거쳐 고구려까지 이어졌고, 고구려 시대에는 조의선인(?衣仙人)이라 일컬어졌으며, 고구려의 조의선인 제도는 그대로 신라에 전해져 국선화랑(國仙花郞)이 되었다. 화랑의 화랑오계, 세속오계는 국자랑의 오상지도와 이름만 다를 뿐 단군 조선 시대부터 이어져 온 우리 선인들의 가르침과 같은 것으로써, 국자랑, 조의선인, 국선화랑 등 이를 수련하는 사람 외에도 만백성이 함께 지니고 누구나 닦았던 계율이다. 이러한 가르침은 고구려를 지나 발해와 고려까지 지속되어 전승되어 오다가 발해가 멸(滅)하면서 세상으로부터 잊혀지게 되어 그 맥이 일부 선인(仙人)이나 은자(隱者)들에 의하여 계승하여 왔다. 이로써 환인 시대부터 전승되어 국가적으로 제도화되고, 시행되었던 기무(氣武) 수련은 오랜 세월 속에 면면히 이어져 오게 되었고, 이는 극고의 부동심을 필요로 할 뿐 아니라 수련 시에 많은 고통이 수반되므로 이를 중산 문경욱 中山 文京旭 선생께서 현실 생활에 알맞게 재정립하여 건신(健身), 초승(初勝), 중승(中勝), 상승(上勝)의 단계로 구분지어 누구나 쉽게 수련하며 배울 수 있도록 하여 오늘의 현무도에 이르게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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