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리 교육이 달라져야 할 방향을 제시하면서 ‘공교육 거버넌스(governance)’를 바꿔야 한다고 주장했는데, 어떤 의미인가.
-‘거버넌스´란 교육을 맡는 정부 지배구조와 운영방식을 총괄하는 전문용어다. 현 거버넌스는 과대한 권력이 중앙에 집중되고, 정치목적의 도구로 이용되고 있어 현실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고 ‘난파’돼 있다. 이를 해결하려면 자율과 분권을 원칙으로 권한을 점진적으로 지방에 분산해야 한다. 취학 전부터 고교까지는 일선 학교로 권한을 실질적으로 넘겨주고, 대학과 성인교육은 별도 위원회에 총괄 책임을 맡기되 서비스 제공기관에 권한과 자율운영을 보장하자는 것이다.
문제는 중앙부서다. 청와대와 교육부, 관련 부처간의 관계를 포함한 조직편제와 운영방식이 문제다. 교육부는 정치간섭과 통제에서 벗어나 일종의 직업관료제 형태로 장기 국가인력개발 정책의 입안과 조정, 국제교육 협력, 자료수집·분석을 통한 미래 교육역량 구축에 전념하자는 것이다. 일부에서 제기하는 교육부 폐지가 아니라 구조조정 방안이다.
▶대학의 학생선발 자유를 보장할 것도 강조하고 있다. 그러나 본고사가 부활되면 사교육이 더욱 기승을 부릴 것이라는 걱정이 많다.
-국가보안법보다 더 강력한 이른바 ‘국민정서법’에 의지하고 있는 대표적인 관치행정 사례다. 우선 학생선발을 대학에 맡겨보자는 것이다. 사교육은 이미 상당 규모의 시장으로 커졌다. 어느 국가나 현자(賢者)도 시장을 잡지 못한다. 행정조치로 이를 잡을 수 있다고 믿는 순간 선무당 사람잡기처럼 교육현실을 어렵게 한다. 냉혹한 현실을 인정하는 것에서 재출발해야 하다. 학생선발이라는 교육논리와 사교육 시장규제라는 경제논리를 분리하지 않고는 해답을 찾기 어렵다.
▶공교육 공공성 확보 책임을 방기하고, 교육재정 조달 책임을 전가하고 있는 점을 들어 교육부를 비판하고 있는데.
-가장 안타까운 것은 시장의 힘과 논리가 교육을 집어삼키고 있는 현실이다. 이를 바로잡자는 것이다. 개혁 대상은 우리 교육 60년을 이어온 ‘수익자 부담 원칙’이다. 일제가 교육기회를 억제하기 위해 한국인 돈으로 학교를 세우도록 책임을 회피한 지침이다. 이는 한국교육의 발전과 폐해의 원동력이다. 교육기회 제공은 국민 기본권 신장이지 수익 제공이 아니다. 교육을 수익으로 보는 순간 시장논리가 교육에 스며든다. 자금도 교육재정 편성에서 수익자부담 원칙을 완강히 고수하고 있다. 그 결과 한국 교육은 처참할 정도로 궁벽하다.
▶오랜 관행이라면 그만큼 해결하기도 어려울 것 같다. 실현가능한 방법이 있나.
-현 거버넌스에서 교육부보다 교육정책을 더 확실하게 규정하는 것이 경제와 예산부처다. 따라서 중앙부처간 관계와 같은 지배구조의 조정이 필요하다. 경제논리가 교육논리에 봉사하는 관계가 설정되어야 한다. 서유럽 등 선진국은 박사과정까지 어떻게 무상교육을 하나. 북구 소강국은 어떻게 노인교육까지 국가가 책임지나. 최빈국인 북한은 어떻게 11년 무상교육을 유지하고 있나. 공통점은 수익자 부담이라는 시대착오적인 경제우선 논리가 적용되고 있지 않다는 것이다.
이 지침을 바꾸면 우리도 요람에서 무덤까지 양질의 교육과 학습기회를 제공하는 참다운 교육 나라로 만들 수 있다. 중앙부처 고유의 업무는 그것이 가능하도록 제도와 재정을 확보하는 것이다. 정치권 눈치 살피며 시시콜콜한 학교 일에 간섭만 하면 교육부를 폐지하라는 주장이 나오게 돼 있다.
▶김 교수는 발제문에서 우리 대학과 관련해 ‘퇴물 좌파교수의 전성시대’라고 표현했는데 어떤 뜻인가.
-큰 걱정이다. 좌파, 우파 관계없이 정치권력과 일정 거리를 두고 늘 감시하며, 그 오용과 남용을 질타하는 것이 지식인의 책임이라고 본다. 민선총장 선발 탓에 일부 교수들이 지나치게 정치화되고 있다. 이젠 민주화를 넘어 ‘교육의 교육화’를 선도할 필요가 있다. 대학의 일은 대학의 존재 이유와 가치에 맞도록 제 자리에 가져다 놓자는 것이다.
▶일부에서 끊임없이 제기하고 있는 고교 평준화제 폐지에 대한 생각을 밝혀달라.
-‘평준화’라고 할 만한 평준화는 처음부터 없었다. 그동안 시행한 것은 일반계고 무시험 전형이다. 원래는 학교시설과 교사 역량, 학생 능력을 상향 평준화한다는 전제 아래 필답고사 대신 무시험 전형을 시행했다. 궁벽한 한국 교육이 늘 그렇듯, 돈과 정성이 많이 드는 3대 조건은 한 번도 충족된 적이 없다. 다만 행정조치로 할 수 있는 입시폐지 조치만 관철된 것이다. 시비 대상은 고교입시 부활 여부다. 폐지론자들은 입시가 없어서 경쟁을 하지 않으니 학력이 떨어진다며 ‘평둔화’(平鈍化)라고 힐난한다. 반면 교육부 관료나 옹호론자들은 여론을 등에 업고 유지를 주장한다. 2005년 실제 분석해 보니 ‘평둔화’는 없었다. 고교 입시가 부활하면 학생 실력이 향상되고 국가 경쟁력도 올릴 수 있다는 주장은 허구다.
문제는 고입 부활문제에만 매달리다 더 심각한 중등교육 문제를 놓친다는 점이다. 바로 실업교육의 참담함이다. 그동안 가장 효과 있는 실업교육 개혁은, 원래 설립 취지와는 모순되는 대학입학 허용조치다. 온정주의적인 이 조치로 60%의 학생이 대학에 진학한다. 그렇다면 더이상 실업학교가 아니다. 고입부활 문제는 반드시 실업계 학생의 진로를 포함해 거론해야 한다. 왜냐하면 일반과 실업을 합한 취학률은 이미 완전취학에 이르렀기 때문이다.
중등과 고등교육이 보편화된 우리 사회에서 고교입시를 시행할 합당한 사유를 찾아야 한다. 과거 소수만 입학가능한 시기에는 시험을 봐야 했지만 만백성 자녀가 고교에 다니는 지금, 왜 학생에게 그 책임을 전가하는 고교 입시를 시행해야 하는지 이유를 대야 하고, 국민이 납득할 수 있어야 한다. 입시부활 대신 강하고, 튼튼하고, 넉넉한 학교를 재건할 수 있는 중등교육 정책이 더 긴요하다.
▶교육정책은 정권이 바뀔 때마다 바뀌었다. 교육정책만큼은 여야는 물론 전문가들이 모두 참여해 몇 년이 걸리더라도 사회적 합의를 이룬 기본 뼈대를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렇다. 참 안타까운 것은 정치권력의 행태다. 늘 교육을 이용해 목표를 달성하려는 유혹을 이기지 못하고 있다. 대신 크고 작은 학교 일까지 직접 개입한다. 특정 대학 전형요소 개입이 그 예다. 심지어 기초교육 교과편성에도 간섭한다. 유신독재 이후 군부독재에 이어 소위 문민, 국민, 참여 등 화장은 바꾸었으나 권력 행태는 여전하다. 최근 사례를 들자면 예·체능교과에 대한 간섭이다. 유신이든 참여든 권력은 권력이다. 우든, 좌든 정치목적을 앞세워 교육을 쥐락펴락 하면 교육정책의 일관성 보장이 매우 어렵다.
공교육 거버넌스 개혁 가운데 가장 중요한 사항이 바로 이와 같은 과대 권력이 남용되는 지배구조의 해체이다. 이에 대한 토론의 기회가 있다면 언제 어디든 찾아가 지혜를 함께 모을 의향이 있다.
김재천기자 patrick@seoul.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