鶴山의 草幕舍廊房

Free Opinion

일본 특파원 리포트 4

鶴山 徐 仁 2007. 3. 24. 17:51
여유 잃어버린 일본의 ‘유도리교육’
2004-12-20
12957

여유와 느슨함, 그리고 창의성과 지혜 등 인성교육을 강조한 일본의 ‘유도리(여유)교육’이 급격히 여유를 잃어가고 있습니다. 세계적인 기관들의 조사에서 일본 초-중-고교생의 학력이 떨어지고 있다는 조사결과가 잇달아 나오면서부터입니다. 물론 “결과들을 학력저하로 단정할 수 없다.”며 여유교육을 계속해야 한다는 반대론도 있습니다.

탈여유교육 움직임은 일본 교육을 총괄하는 문부과학성이 주도하고 있습니다. 문부과학성은 최근 초-중-고등학교 학생들의 학력저하를 막기 위해 각급 학교별 총 수업시간을 규정한 표준수업시간을 늘리는 방안을 적극 검토키로 했습니다. 토요일 수업을 학교자율에 맡기거나, 폐지됐던 전국학력조사 재도입도 검토에 들어갔습니다.

문부과학성이 이처럼 여유가 사라진 것은 각 국의 학력수준 비교에서 일본 학생들이 항목별로 약간, 혹은 상당히 떨어졌다는 결과가 나왔기 때문입니다. 최근 공립학교가 여유교육을 강화한 데 대해 “사립학교에 비해 공립학교의 교육 강도가 너무 약하다.”는 지적이 늘어난 것도 원인이지요.

일요일인 19일 오후 학교에 나와 쌀쌀한 날씨에도 불구하고 테니스연습에 한창인 도쿄도내 한 도립고등학교의 학생들.

국제교육도달도평가학회가 12월 15일 발표한 `국제수학ㆍ이(理)과 교육동향조사' (TIMSS2003)에 따르면 일본 중2 학생의 이과 수준은 전회 조사 때의 4위에서 6위로, 초등학교 4학년은 2위에서 3위로 떨어진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7일 발표한 학력조사(PISA)에서도 일본 고1학생의 독해력 등이 상당히 떨어진 것으로 평가됐습니다.

하지만 일본의 여유교육이 궁지에 몰린 것은 단순히 학력수준 평가결과 때문만은 아닌 것 같습니다. 앞서의 국제평가에서는 평가 부문이 여럿이었고, 일부 항목에서만 떨어진 것으로 나타났으며, 많은 분야에서 여전히 세계 최상위권이었습니다. 따라서 진짜 이유는 여유교육 도입 이후 이를 비판하는 여론의 확산에 있는 것 같습니다.

사립 중-고등학교들은 토요일에도 수업을 하고, 평일에도 학과 수업 강도가 강한 반면 공립학교들은 수업시간을 줄여 학생들이 자기계발 할 시간을 주고, 클럽활동을 강화했습니다. 이에 따라 학생들의 공부기피 풍조가 확산돼 유명고교-대학 진학률이 최근 들어 좋지 않다며, 개선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는 것입니다.

“학생들 공부기피 풍조 확산“ 여론 높아

학력수준조사결과에 대해 나카야마 나리아키 문부과학상은 "도저히 세계 최고 수준이라고 할 수 없는 조사결과를 엄숙히 받아들여야 한다."고 지적하고 문부성이 추진해온 `여유교육'이 반드시 의도했던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는 사실을 반성해야 한다면서 다각적인 대책 마련에 들어갈 가능성을 비쳤습니다.

우선 검토되는 것이 수업시간을 늘리는 내용입니다. 그 중에서도 주5일 수업이 최우선 재검토대상입니다. 표준수업시간은 현재 초등학교는 6년간 5367시간, 중학교는 3년간 2940시간이며 고등학교도 과목별 점수를 얻는데 필요한 시간을 규정하고 있습니다.

일본은 `교육현대화'를 내걸고 학습지도요령을 개정했던 1968년 한때 중학교 표준수업시간을 3360시간에서 3535시간으로 늘리고 초등학교 표준수업시간도 5821시간으로 늘리기도 했으나 1977년 `여유교육’을 표방하면서 표준수업시간 단축을 계속해 왔습니다. 27년 만에 유도리(여유)교육이 도마에 오른 것입니다.

이에 따라 대학입시 경쟁이 여전히 심한 고등학교에서부터 공립학교 학생들의 여유는 사라질 것으로 보입니다. 나카야마 문부과학상은 구체적으로 토요일수업 허용계획을 밝히고 나섰습니다. 그는 17일 아사히신문과의 인터뷰를 통해 정부령으로 의무화했던 주5일제 수업을 탄력적으로 운용, 학교와 지방자치단체가 재량껏 주말수업을 할 수 있도록 허용하는 것을 검토 중이라고 밝혔습니다.

일요일 오후 학교 운동장에서 뛰어노는 도쿄도내 한 공립 소학교(초등학교) 어린이들.

일본의 학교 주5일제는 ‘학교·가정·지역사회가 협력해 아이들에게 풍요로운 사회체험 등의 기회를 제공함으로써 학생 스스로 배우고 사고력이 풍부한 인간성을 함양, 살아가는 능력을 육성한다.’는 취지에서 1992년부터 단계적으로 도입됐지요. 92년 2학기에는 매달 제2토요일이 휴무였고, 2002년부터는 토요일 전면 휴무가 도입된 상태입니다.

나카야마 장관은 "토요일 수업을 원하는 현장의 바람이 있다."며 "지방분권 등 추세를 감안해 주말수업 실시 여부를 학교와 지자체의 재량에 맡기는 것이 좋다고 본다."고 말했습니다. 1977년 이후 지속적으로 줄여온 표준수업 시간을 다시 늘리겠다고 최근 밝힌 것과 궤를 같이하는 것입니다.

문부성, 토요휴무 학교재량에 일임 검토

문부성이 이처럼 여유교육을 포기하려는 것은 무엇보다 학력저하의 주범으로 지목된 주5일제 의무화에 대한 비판론 때문인 것 같습니다. 맞벌이 부부의 경우 토요일 자녀양육 문제도 5일제 반대의 한 요인이라는 얘기입니다.

이런 상황서 국제기관의 조사결과가 탈여유교육 움직임에 불을 지핀 격이지요. TIMSS조사에서 일본 중2학생은 46개 국가-지역중 수학공부가 즐겁다는 응답이 평균(55%)을 밑돈 39%였습니다. 하루 중 숙제에 쓰는 시간은 1.0시간으로 최저였지만, TV-비디오 시청시간은 2.7시간으로 가장 길었습니다. 공부가 싫은 학생이 늘어나면서 전체적으로 학력이 저하되는 것은 필연적이라는 얘기지요.

일본 공립학교에서는 자기계발 교육이 많습니다. 공립중학교는 현재 전체가 토요휴무입니다. 학교들은 아울러 배드민턴, 취주악, 테니스, 농구, 축구, 연극, 미술, 수영 등의 클럽활동에 많은 시간을 할애 합니다. 90%안팎의 학생들이 아침 7시 전후부터 1시간 정도 클럽활동을 하고, 수업 끝난 뒤에도 3시간 정도를 합니다. 수요일과 시험기간에는 쉬지만 일요일에도 클럽활동을 합니다. ‘연습에 웃고 시합에 웃자’가 구호일정도로 연습은 강도가 높습니다. 일반학생과 우수학생이 수학 등은 별도수업도 받지만, 평준화교육이다보니 학생들 간 학력차가 커 수업효율도 떨어진답니다.

사립중서도 주5일수업은 위협받고 있습니다. 273개 수도권 사립중학교는 주5일제가 올해 30%였지만, 내년에는 28%로 줄어듭니다. 학부모들이 압도적으로 토요휴무제에 반대하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장기불황도 경쟁을 격화시켜 주5일제를 위협한다고 합니다. 도쿄도내 도립고교 중 5일제 취지를 손상치 않으며 토요일 수업을 하는 학교가 올해 5개교였는데 내년에는 17개교로 3배나 늘어난다고 합니다.

문부과학성은 토요 휴무를 학교재량에 맡기는 쪽으로 검토에 들어갔지만 교육현장에서는 벌써 도입하고 있는 것입니다. 당초 목표와는 달리 “강제성이 없으면 공부를 멀리 한다.”는 청소년들의 속성 때문이지요. 창의력 중심 교육은 이상이고, 성적중심이 현실인가 봅니다. 일본 교육당국이 여유를 갖고 이상적인 인성교육을 이끌어가기에는 비판여론이 너무 부담스러운 것 같습니다.

물론 학생들에게 여유를 주는 것이 장기적으로 훨씬 좋다는 주장도 만만치 않지만 대세를 형성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선진교육을 목표로 도입된 여유교육이 한 때의 실험으로 그칠까요, 아니면 살아남을 수 있을까요. 일본 내 여유교육 탈피 논란이 뜨거워질 것으로 보입니다. 한국에서도 주5일제 수업 논의가 활발하게 진행 중인 현실에서 일본의 결론이 주목됩니다.


taein@seoul.co.kr

고구려신사가 왜 '출세신사' 인가
2004-12-27
12897

도쿄 중심부에서 전철로 1시간10분정도 걸리는 사이타마현 히다카시의 고마(高麗-고구려의 일본식 표기)산 자락에는 고구려의 후예들이 봉직하는 고마신사가 자리 잡고 있습니다. 이 신사는 근래 들어서는 '출세신사'로 더 알려져 있습니다.

고마신사는 한국인에게 높은 관심을 갖게 합니다. JR의 전철노선 안내판에는 한자로 '고려천(일본명 고마가와)'이라고 쓰인 낯익은 역이름이 보입니다. 세이부이케부쿠로선에는 '고려'역이 눈길을 사로잡습니다. 1300년 가까이 고구려의 흔적이 일본 한복판에 남아있다는 게 경이롭기까지 합니다.

고마가와역에서 걸어서 20분, 고마역에서 45분정도 걸려 고마신사로 가는 길은 '시골길'로 불립니다. 풍경은 한국의 어느 시골마을에 와있다는 착각을 일으키게 합니다. 길가에 감, 유자, 고구마 등을 100엔 정도에 파는 무인판매대가 많은 것도 이채롭습니다. 가을엔 코스모스, 겨울엔 무나 배추, 토란밭이 정겹습니다. 고구려식 흙담벽집도 눈에 띕니다. 고마역에는 장승이, 고마가와역에는 장승모형 철구조물이 시선을 끕니다.


약광이 고구려에서 수호불로 가져온 성천존이 모셔져 있어서 절 이름이 성천원(쇼텐인)으로 불리는 성천원 입구의 약광의 묘.

안내간판은 온통 고구려 천지입니다. 高麗村(고마무라), 高麗本鄕(고마혼고), 高麗川(고마가와), 高麗峙(고려고개라는 뜻), 고마소학교, 고려교 등은 물론 '고마 혹은 고라이'라는 가게 이름이 곳곳에 눈에 뜨입니다. 너무도 맑은 물이 흐르는 고마가와는 낚시, 소풍장소로 유명합니다.

이 지역의 역사는 고구려가 당나라와 신라의 연합군에 패한 직후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속일본기에 따르면 나라시대인 716년 고구려의 멸망 후 일본으로 망명한 고구려인(왕족이나 승려 중심)들 중 스루가(시즈오카), 가이(야마나시), 사가미(가나가와), 가즈사(지바), 시모후사(이바라키), 히다치(이바라키), 시모쓰케(도치키) 등의 7개 지방에 살던 1799명을 무사시지방으로 이주시켜 고마군을 설치했습니다. 일종의 코리아타운이지요. 이곳에서 주로 농업기술을 전수합니다. 비슷한 시기 옆 지역에 신라군도 설치했다고 하지만 아쉽게도 현재는 흔적이 거의 없습니다.

고구려 나당연합군에 패한 직후 형성

당시 고마군의 지도자(고구려 최후의 왕자였다는 설이 유력)였을 것으로 추정되는 분이, 고마신사의 제신으로서 고구려에 온 고마왕 약광(若光 일본식 잣코)이었습니다. 후손들이 대대로 고마신사의 대표인 궁사로 봉직하고 있습니다, 일본에서도 손가락에 꼽을 정도로 오래된 고마씨 족보에 의하면 "약광이 죽자 군민들은 그의 위덕을 기리기 위해 어전의 뒷산에 사당을 세우고 신령을 제사지내면서 고마명신 이라고 칭하였다." 라고 전합니다.

이들 고구려 후예들은 26대까지는 고구려 사람끼리만 혼인, 혈통을 보존했지만 이후 일본인과의 통혼으로 사실상 현재는 일본인화 되어 있습니다. 고구려인의 후손이란 점을 강조하는 약광의 59대손 고마 시즈오씨(77)가 신사의 대표 궁사(宮司)를 맡고 있으며, 아들 후미야스씨가 뒤를 이을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고마 가문은 14세기 무로마치 막부 때 중대 위기를 맞습니다. 정권과 반대편에 가담했다는 이유로 멸문의 화를 당할 뻔했지요. 종가만 남고 나머지는 모두 분가해 고마이, 아라이, 나카야마, 아베, 가토 등 다른 고구려계 성씨를 쓰게 되었습니다. 이런 연유로 고마씨 직계 혈통이 지금은 50여명에 불과하다고 합니다.

구한말-일제 초기 친일파의 거두였던 조중응이 쓴 고마신사의 현판. 고마신사라고 쓰지 않고 고구려의 '구'자를 작게 써 고구려신사라고 썼다.

메이지유신 이후 일본에 국수주의적 풍조가 강화되면서 고마씨 일족과 신사는 제2의 위기를 맞습니다. 1896년 일제는 한국과 관련된 지명을 없애버리기로 합니다. 고려군은 이루마군(入間郡)에 편입시켜, 히다카마치로 부릅니다. 약광에 대한 제사도 금지시키고, '천황'신을 제사지내게 했습니다. 1991년 사이타마현 히다카시가 돼 오늘에 이릅니다.

하지만 최근 들어 일본인들 사이에 "고마신사에 다녀오면 출세한다."는 소문이 나돌면서 고마신사와 고마씨 일족은 전성기를 맞고 있습니다. 연간 40만 명 정도가 다녀갑니다. 신년 등 특별한 날이면 기모노를 차려입은 어린이들이 부모들의 손을 잡고 참배하는 모습을 쉽게 볼 수 있습니다. 일본인들은 모셔진 신이 누구인지는 따지지 않습니다.

하지만 이 '출세신사'라는 단어는 깊이 음미해봐야 할 듯합니다. 신사 입구 안내판에는 출세신사로 알려진 것에 대해 정계, 관계, 재계 인사들이 참배한 뒤 다수가 출세의 길을 걸었기 때문에 출세신사로 불린다고 소개하고 있습니다. 총리도 다수 나왔고, 최고재판소장, 검찰총장 등이 나왔으며 관리나 대학교수, 작가들도 참배했다는 것입니다.

"각계 인사 고마신사 참배한 뒤 출세"

와카스키 레이지로, 하마구치 오사치, 사이토 마고토, 하토야마 이치로씨 등이 이 곳 신사를 참배한 뒤 총리가 되었다고 적혀 있습니다. 이 밖에도 고이소 구니아키나 시데하라 기주로씨도 이 곳을 참배한 뒤 총리가 되었습니다. 현재의 고이즈미 총리의 할아버지 고이즈미 마타지로씨도 체신장관 시절 참배하고, 기념식수한 것이 지금도 남아있습니다.

특히, 이 신사가 내선일체 사상을 주입하는 상징으로 이용되었다는 점을 알게 되면 묘한 기분이 됩니다. 총독 등 조선총독부 고위관리들이 내선일체를 주입시키기 위해 참배하고 부임하는 경우가 많았다고 합니다. 그래서 방명록엔 사이토 마고토, 고이소 구니아키 등 전 조선총독의 이름이 남아있습니다. 이후 유명세를 탄 것이지요.

다만 사이토 마고토는 조선 총독 이후 총리로 출세했다고 하지만 일본이 정치적 격변을 겪던 1936년 암살되었고, 해방직전 총리가 됐던 고이소 구니아키는 전범으로 1948년 종신금고형을 선고받은 뒤 1950년 도쿄 스가모 형무소에서 병사했다고 합니다. 이런 역사적 사실은 출세부분에 가려 있습니다.

한국인들의 방문도 이어졌습니다. 신사입구에는 한일 양국사이에서 기구한 운명을 살다간 이방자 여사와 대한제국 마지막 황태자 영친왕(英親王) 이은(李垠) 부부가 기념식수한 나무들이 불행한 개인사를 말해 주고 있습니다. 현재의 나종일 대사를 비롯, 1965년 국교정상화 뒤의 역대 주일대사들이 고마신사를 찾은 기록도 있습니다. 나 대사의 경우는 선친 나용균 전 국회부의장도 국회의원 자격으로 찾았다는 방명록이 있고 윤치영, 이후락씨 등 역대 정계 실력자들이 이 곳을 찾았다는 방명록이 있습니다.

눈에 확 띄는 인물은 구한말 친일파의 거두 조중응(趙重應)입니다. '조선인 정3품 조중응'이라는 이름으로 남긴 '고구려신사'라는 현판이 지금도 고마신사 입구에 걸려있고, 또 조중응이 '한국원외무참의 조중응'이라는 이름으로 참배자 중 명사들 이름 맨 앞쪽에 자리 잡고 있습니다. 그는 국회민족정기모임이 지목한 친일파 중 핵심인물로 구한말, 일제시대 물불을 가리지 않고 친일행위를 한 인물입니다. 일제로부터 자작 칭호를 받았고, 농상공부대신까지 역임했지요. 이 신사를 찾은 첫 한국인 유명인사라서 현판을 남겼다고는 하지만...

이처럼 고마신사와 고마무라(고구려촌) 지역은 일본에 있는 많은 한국인들에게 친근감을 주면서도 민족사의 아련한 고통이 배어나옵니다. 특히 조선총독을 역임한 인물 등이 출세가도를 달렸다며 출세신사로 이름나면서 수많은 일본인 참배객이 줄을 잇는 현실은 고마신사를 더욱 복잡한 의미를 갖는 장소로 만듭니다. 고마신사는 '출세신사'라는 말 속의 아픈 의미를 생각하며 찾아가야 할 듯 합니다.

taein@seoul.co.kr

반도막 난 용돈, 팍팍한 새해맞이
2005-01-05
18544

새해 아침, 수많은 일본인들이 예년과 마찬가지로 주요 신사와 절을 찾아 참배(일본어 하츠모우데)를 하며 새해 소망을 빌었습니다. 3백만 명 안팎이 참배한 신사만도 메이지신궁 등 여러 곳이었고, 1억2700여만 명의 일본인중 반 정도가 신사나 절을 찾았다고 합니다.

연말부터 각 주택가나 상점에는 소나무와 대나무, 고사리 등으로 ‘카도마츠’(기성품 1천엔 안팎)라는 것을 만들어 입구에 걸어놓았습니다. 푸른나무들처럼 번창하는 한 해를 기원하는 의미지요. 섣달 그믐날에는 ‘토시코시 소바’라는, 해를 넘기는 메밀국수를 먹습니다. 1일에는 모치(떡) 등을 먹고, 하츠모우데를 했습니다. 어린이들에게는 토시다마(세뱃돈 격)를 주고 친지 방문도 많았습니다. 이처럼 일본에는 세시풍습이 많이 남아 있습니다.

지난해 마지막 날 도쿄에 큰 눈이 내렸지만 새해 신사참배객은 넘쳤습니다. 전철, 지하철은 20~30분 간격으로 24시간 운행했습니다. 고이즈미 준이치로 총리가 지난해 1월1일 전격 참배, 주변국의 강력한 반발을 산 야스쿠니신사의 경우 1일 0시에 1000명 정도의 참배객이 줄을 서서 순서를 기다렸습니다. 대부분 친구들과 어울린 젊은이였습니다. 복장은 자유분방해서 양말을 신지 않은 사람도 눈에 띄었습니다.

지난 1일 0시가 되자 새해 첫 순간을 야스쿠니신사에서 맞은 수많은 일본인들이 차례대로 참배를 하고 있다.

이들은 0시가 임박하자 5,4,3,2,1,0을 일제히 외치고, 북소리에 맞춰 복을 비는 동전던지기를 시작하면서 옆 사람을 쳐다보고는 “잘 부탁합니다.”라는 인사를 나누었습니다. 이어 차례차례 신사참배를 했습니다. 사진 찍는 것은 달가워하지 않는 것 같았습니다. 카메라로 참배 장면을 촬영하자, 일부는 “무슨 카메라야?”라며 불만을 터트리기도 했습니다.

신사 경내에 마련된 수십 개의 임시상점들은 이채로웠습니다. 주로 맥주 등을 팔았는데 안주로는 이른바 대판야끼와 다코야끼(문어요리) 등이 주류였고, 밤참용 간이식사도 팔았습니다. 거나하게 취한 사람도 보였고, 대부분 눈 내린 도쿄의 밤을 즐기는 모습이었습니다.

이 같은 하츠모우데는 대부분 1일 0시부터 3일까지 합니다. 일본의 8만여 개 신사 중 가장 많은 참배객이 연초에 찾는다는 메이지신궁은 해마다 신년연휴에 300~400만 명씩이나 참배한다고 합니다.

신사에 수만 명 줄서 참배순서 기다려

올해도 인산인해였습니다. 수만 명이 길게 늘어서 참배순서를 1시간여정도 기다리다가 통제에 따라 차례로 참배했습니다. 외국인들은 구경에 여념이 없었고, 일본인들도 축제를 하듯 참배를 했습니다. 동전던지기, 제비뽑기식 운세 뽑아보기, 기부(출세, 가족건강, 합격, 국가안녕, 사업번창 등)도 하고 복을 빌었습니다. 우리의 연등을 달 때처럼 1000엔(약 1만원)에서 사업번성 기원 같은 경우는 10만엔(100만원)이상의 기부도 있었습니다. 수백엔 대도 있었습니다.

메이지 전 일왕을 기리는 메이지신궁은 참배자가 많아 JR야마노테선의 경우 신궁 옆의 하라주쿠역은 임시 매표소와 승하차대를 마련, 3일 오후 늦게까지 운행했습니다. 메이지신궁 입구에는 포장마차는 보이지 않았지만, 스기나미구에 있는 오미야하치만규 신사에도 임시상점이 있었고, 그곳에선 배용준씨의 달력(1500엔)과 머플러(1800엔)도 팔고 있었습니다.

시내의 주택가에 주로 주민들이 찾는 작은 신사들은 평소와 달리 밤늦게까지 참배객을 맞았지만 동네 사람들만 찾아가 한적했습니다. 대부분 신사들은 정초의 참배객들의 기부금이 일년 수입을 좌우한다고 합니다. 그래서인지 큰 신사들은 거리나 전차역, 전차안 등에서 하츠모우데 광고를 경쟁적으로 했습니다. 기부는 인터넷접수도 이루어졌습니다.

하츠모우데 풍경 중 가장 크게 변한 것이 전통의상 기모노를 입지 않는 것이라고 합니다. 올해는 전날 큰 눈이 내린 탓도 있었지만 여러 신사에서 참배자 중 기모노를 착용한 사람은 극소수였습니다. 십수년전까지만 해도 특히 여성을 중심으로 기모노를 입고 참배하는 사람이 많았답니다. 하지만 착용방법이 까다롭고 비싸기도(보통 50~60만엔, 고급품 일습 160만엔) 해 기피하고 있답니다. 보통 빌려 입지만 하루 빌려 입는데 만도 10만엔이나 하고, 세탁비도 특별히 비싸 과거와 달리 신년 시무식 때도 입는 사람이 사라지다시피 했답니다.

새해 참배객이 가장 많은 메이지신궁에서 순서를 기다리는 시민들.

색다른 얘기도 들었습니다. 1일 0시에 하츠모우데에 참석하거나 참석하기 위해 나가는 젊은이들 중 상당수가 “애인과 합법적으로 밤을 보낼 수 있는 기회”라는 것이 60대 일본인의 귀띔이었습니다. 또 “메이지신궁에 가면 가미사마(神)가 300만분의 1의 소원밖에 들어줄 수 없기 때문에 한적한 주변신사로 간다.”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아울러 올해 새해맞이는 어린이나 청소년들에게도 ‘장기불황’의 그림자가 그대로 반영됐습니다. 세뱃돈이 대폭 줄어든 것입니다. 세배는 안하지만 복돈이지요. 불황그늘이 여전하다는 얘기지요. 40대 전후는 자녀들과 주변 친척 어린이에게 주는 세뱃돈을 준비해야 하는데 UFJ은행 조사에 따르면 세뱃돈 사정이 궁핍했습니다.

세뱃돈에도 장기불황의 그림자 반영

이 조사에서 수도권과 오사카 주변 주부들은 1만7940엔을 세뱃돈으로 준비했습니다. 전년 보다 2224엔이 줄어든 액수입니다. 1인당 예정액은 초등학교 저학년 2306엔, 초등고학년 3375엔, 중학생 4618엔, 고교생 5594엔이었습니다. 주부들의 전체 세뱃돈 준비액은 거품붕괴 첫 해인 91년 이후에도 3만엔 대를 유지했으나, 2002년 2만엔 대가 됐고, 올해는 1만엔 대로 추락했다고 합니다.


세뱃돈 예산이 줄어든 것은 어린이들과의 교류 횟수가 줄고, 올해부터는 세금과 각종 연금지출도 느는 등 생활비 지출이 늘어난다는 위기감 때문이라는 게 조사결과입니다. 어려운 경제형편을 반영, 일본인 60%는 연말연시 여행도 하지 않고 “집에서 천천히 쉬겠다.”고 답했답니다. 귀성여행 등 경비도 줄었다고 합니다. 스스로의 노후에 대비해야 한다는 위기감도 작용, 아이들의 세뱃돈을 줄였다고 합니다.

물론 아이들이 필요한 고가의 게임기 등을 부모들이 평상시 사줘 ‘평소 용돈을 저축하는 어린이가 늘어나는 것’도 어린이의 세뱃돈을 줄이는 요인의 하나라고도 합니다. 아이를 적게 낳기 때문에 평소에 돈을 충분히 받는다는 얘기지요. 상당수 부모들은 집에서 빈둥빈둥 노는 무업자(니트족)나 프리터(아르바이트족)들에게 세뱃돈을 주는 일도 고역이랍니다.

월급쟁이들은 더 어렵다고 합니다. 지난해 연말 도쿄신문 보도에 따르면 일본 월급쟁이들의 ‘용돈’이 15년 사이 절반으로 떨어졌다고 합니다.(조사대상 500명) 40세의 평균적 일본 회사원의 한 달 용돈이 3만8000엔이라고 합니다. 3만엔 대로 떨어진 것은 22년만이라고 하고, 거품붕괴 직전인 90년의 7만6000엔에 비하면 절반으로 추락했다고 합니다.

이들은 특히 용돈이 부족해도 “사용하지 않고 버틴다.”는 응답이 54.6%일 정도로 절제를 하고 있고, 저축을 깨거나 신용카드를 쓴다는 사람은 적었습니다. 1회 식사비도 평균 650엔으로 매년 줄고 있습니다. 회식은 한달에 3.8회로 평균 음료비는 4500엔 정도였다고 합니다. 따라서 각종 모임 때는 각자가 분담하는 와리깡을 할 수밖에 없는 것이지요.

사정이 이러다 보니 일본 월급쟁이들의 66.6%는 용돈 면에서 ‘어느 정도’, 혹은 ‘매우’ 힘들다는 응답을 했습니다. 특히 40대 이후는 70%이상이 주택론이나 교육비 등에 짓눌려 용돈사정이 궁하다고 합니다. 일본 월급쟁이들, 정말 어려운 시절인가 봅니다.

taein@seoul.co.kr

물가 세계1위 도쿄…얼마나 비싸기에
2005-01-17
25702

최근 수년간 도쿄의 물가는 세계 모든 도시 중 1위로 조사되고 있습니다. 2004년 국제컨설팅 회사인 머서 휴먼 리소스가 전 세계 144개 도시의 주택과 음식, 의류 등의 물가를 비교해 외국인이 사는 데 들어가는 비용을 조사한 결과 도쿄가 1위를 차지했고 런던과 모스크바가 그 뒤를 이었습니다. 서울은 7위였습니다. 지난해 세계 200여개 도시물가에 대한 다른 조사에서도 미국 뉴욕(12위) 물가를 100으로 잡았을 때 도쿄 130, 런던 119로 도쿄가 1위였습니다.

KOTRA가 지난해 세계 각국의 물가 동향을 소개한 '세계 주요도시 생활여건'이라는 책은 고급아파트(침실 3개, 45평 이상) 임대료의 경우 일본 도쿄(월 1만5000달러)가 가장 비싸다고 소개한 바 있습니다. 서울은 3168달러로 28위였지요.

도대체 도쿄의 피부로 느끼는 물가는 어느 정도일까요? 단순비교는 무리가 있지만 편의상 1엔을 10원정도의 환율로 환산, 체감물가를 추적해보았습니다. 그 결과 의-식-주 가운데 주거비용과 교통비, 전기나 가스 등 서비스 요금이 ‘살인적’이라고 할 정도로 비쌌습니다.

도쿄 신바시역 광장에서 구두를 닦는 구두미화원 할머니.먼지를 털고, 약을 바르고 몇번 문질러주는 것으로 우리 돈 5000원을 받는다.

우선 도쿄의 맨션(아파트) 가격은 10년간의 가격하락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서울의 비싼 곳과 비교할 때 두 배 정도의 가격입니다. 비교적 정확하게 비교될 수 있는 것은 분양아파트 가격이겠지요. 예를 들면 용산역과 비교될 시나가와역 인근 고급아파트는 전용면적 32평 정도가 15억원짜리도 있습니다. 10평대 초반도 2억5천만원입니다.

서울의 강남권이라 할 수 있는 야마노테센 다마치 역에서 걸어서 4분 걸리는 주상복합맨션 전용면적 11평의 분양가가 3억1500만원, 38평의 분양가는 18억5000만원입니다. 역시 야마노테센 이케부쿠로역에서 걸어서 6분 걸리는 한 주상복합은 전용면적 23평인 경우 6억여원, 53평은 22억6천만원 정도입니다. 비교가 되지요?

임대맨션은 시내 18평정도의 월세가 200여만원이고, 중심부는 전용면적 20평대 초반이 300만원 정도입니다. 전용면적 6평정도로 방 하나, 좁은 부엌이 달린 맨션이 월 90만원, 전철역에서 걸어서 10분이 넘는데도 15평대가 160만원정도 하는 것도 있습니다.

신칸센 도쿄에서 나고야까지 10만원

단독주택 가격도 비쌉니다. 도쿄 시내 나카노구의 한 지역은 25평정도 대지의 2층 단독주택 가격이 6억원 안팎입니다. 교통이 편리하고, 좋은 주택지역은 이 보다 훨씬 비쌉니다. 도심부로 들어가면 전철역(오사키역)에서 15분정도 걸려도 대지 30평대후반의 방4개에 부엌이 달린 주택은 10억원이 넘습니다.

교통비는 더욱 놀랍습니다. 우선 장거리 이동은 도쿄에서 366㎞인 나고야의 경우 신칸센 지정석이 10만원정도, 특석은 15만원 가깝습니다. 552㎞인 오사카는 신칸센 지정석이 13만원대, 특석이 18만원대입니다. 비행기 요금도 비슷합니다. 심야버스 등은 이보다 쌉니다.

도쿄시내의 한 100엔숍.물가가 비싸다보니 일본에서는 요즘 주로 중국산 공산품을 파는 100엔숍(약 1000원)이 빠르게 늘고 있다.

전철비도 만만치 않습니다. 도쿄시내에서 전철로 1시간 정도 이동하자면(서울시청서 인천까지 정도) 1만원 가깝게 드는 곳도 있습니다. 특히 과거 일본 국철에서 민영화된 JR은 다른 사철이나 지하철 보다 종합적으로 비쌉니다. JR의 기본요금은 1300원으로 1600원인 지하철 보다는 싸지만, 할증요금이 거리에 따라 빠르게 늘어납니다. 예를 들면 신주쿠에서 쾌속전철로 50분정도 걸리는 다카오산을 사철인 게이오선으로 가면 3700원인데, JR은 두 배정도입니다.

도쿄에서 전철의 보조교통수단 정도로 이용되는 버스는 기본요금이 2000원입니다. 택시비는 끔찍합니다. 기본요금은 6600원입니다. 밤11시가 넘으면 30% 할증이 돼 최근엔 “20%만 할증을 받겠다.”는 택시도 있습니다. 밤11시가 넘어 30분정도 택시로 이동하면 5~6만원은 쉽게 나옵니다. 따라서 개인비용 보다는 직장비용으로 이용하는 손님이 많습니다.

일본 내 여행비용도 입이 벌어집니다. 도쿄에서 두 시간 정도 걸리는 이즈반도에 갈 경우 비성수기 주말에 2박3일정도 호텔을 이용하면 1인당 35만원이 넘습니다. 겨울에 인기가 높은 홋카이도의 경우 비행기를 이용한 2박3일짜리 여행상품이 30만원에서 70만원대까지입니다. 이에 비해 이 시기 서울여행은 2박3일짜리가 30만원대 상품도 있지요. 따라서 많은 일본 사람들이 “차라리 해외여행을 다닌다.”고 말합니다.

전기, 전화, 가스, 수도 등 서비스 요금도 독점구조가 파괴되면서 많이 내렸지만 여전히 한국에 비해서는 2~3배 정도는 된다고 합니다. 방 두개짜리, 3~4인 가족 생활규모의 경우 전기세는 한 달에(여름, 겨울 성수기 제외) 7~8만원, 수도요금은 4~5만원(하수도료까지 포함되기 때문에 비쌈), 가스요금은 3만원 정도입니다. 전화요금은 휴대전화의 경우 하루에 한 번 정도 쓸 정도일 경우 서울에서는 2~3만원대였지만 도쿄는 7만원대입니다.

마늘 한통에 3000원까지 “허리가 휜다”

장바구니 물가도 비싸지만 장보기 나름입니다. 10m 이내 지역 가게의 경우도 같은 식료품이나 과일의 가격이 크게 다릅니다. 발로 움직인 만큼 절약할 수 있습니다. 신문에 삽입되는 광고전단이 싼 장보기수단으로 활용됩니다. 거의 매일 세일품목과 가격이 광고되고 있습니다. 일단 신문속의 광고전단으로 가격을 파악하고, 거기다 걸어서 몇 곳의 가게를 비교한 뒤 장을 봐야 낭패를 당하지 않습니다. 전자제품도 점포에 따라 가격차가 큽니다. 값싼 중국산 공산품이 주류인 100엔숍도 빠르게 늘어나고 있습니다.

식료품을 볼까요. 배추는 큰 것이 요즘 한포기에 3000원 정도입니다. 무는 1000~1500원 정도이고, 가장 비싼 것은 마늘입니다. 일본산이 평상시 한 통에 2000원 정도이고, 최근에는 3000원 정도 합니다. 우리나라는 100통 1접에 1만원대이니 거의 20배 정도 하는 것이지요. 미나리도 비싸 매우 작은 묶음 한단에 1000원 안팎입니다. 사과나 감은 중상 정도의 크기가 1개 1500원 정도이지요. 쇠고기와 돼지고기(각각 국산)는 서울 보다 약간 비싼 편입니다.

생선의 경우는 종잡기 어렵습니다. 고등어의 경우 여름이나 가을에는 일본이 오히려 싼 때도 있었습니다. 중간이 2000원 정도 할 때도 있었으니까요. 그러나 큰 것은 2~3만원, 혹은 5만원이 넘는 것도 있습니다. 조개나 게, 새우, 농어, 도미 등도 역시 일본산은 한국 보다 비싸지만 동남아, 노르웨이산 등 수입품이 들어오며 가격이 비슷해진 것도 많습니다. 생선류나 초밥 등은 오후7~8시 떨이장에 가면 50%정도까지 싸게 살 수도 있습니다.

과일이나 라면, 김치, 책 등도 현해탄을 건너오면 두 배정도가 됩니다. 이발이나 미용요금은 단순비교가 어렵지만 서울 보다는 2배 정도는 비싸 보입니다. 술값도 비교가 어렵지요. 일본 술집은 워낙 좁아터진 것이 특징이고, 안주가 서울 보다는 매우 비싼 편입니다. 서울처럼 인정이 넘치고, 아주 싼 곳도 물론 있지요. 그래도 비교적 비싼 편입니다. 점심식사도 1만원 안팎입니다.

결론적으로 도쿄에서 평범한 월급쟁이로 살아간다는 것은 살인적인 물가고로 인해“허리가 휜다.”는 말이 틀리지는 않아 보입니다. 그래서 많은 월급쟁이들이 조금이라도 지출을 줄이기 위해 사이타마, 가나가와, 지바 현 등 위성도시에서 출퇴근 할 수밖에 없는 모양입니다. 서울의 물가가 급격히 올랐다고 하지만 도쿄에 비할 바가 아닌 것이지요.

taein@seoul.co.kr

기발한 지진 대비…남의 일 아니다
2005-01-31
15929

지난해 간사이, 간토, 니가타, 홋카이도 등지에서 연이어 강력한 지진이 일어나 열도를 공포에 몰아넣은데 이어, 지난 1월 17일로 6433명이 숨진 한신대지진 10주년을 맞이한 일본인들은 ‘지진대비 비상 대책’에 대한 관심이 한층 높아지고 있습니다. 최근 일본인 10명중 8명이 지진 때문에 불안해하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습니다.

초-중학교에서는 지진이 나면 최초에 책상 밑으로 몸을 숨기고, 시간이 지나면 질서정연하고 빠르게 운동장으로 대피하는 훈련도 반단위(대피시간 측정), 학년단위로도 하고 있습니다.

‘일본열도가 떨고있다’는 제목의 도쿄통신에서도 일부 언급했지만, 지진이 발생했을 때의 기본수칙도 많습니다. 지진이 일어나 흔들리기 시작하면 현관이나 창문을 열어 놓는 것이 필수라고 합니다. 큰 지진시 건물전체가 무너지거나 뒤틀려 문이 열리지 않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비상통로를 확보하는 것이지요.

물론 리히터 규모 7이상, 특히 규모 8이상의 거대지진이 일어나면 ‘운’에 맡길 수밖에 없다는 사람들도 있지만 “그래도 최대한의 대비를 해놓는 것이 불행을 조금이라고 줄일 수 있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조언입니다.

10년 전의 참화를 극복하고 재건된 고베항 여객부두와 고베시 전경.

일본 관계당국은 대규모 지진에 대비, 시민들이 준비해놓아야 할 기본적인 지침을 계도하고 있습니다. 경시청은 1월16일자 홍보지를 통해 ‘음료수와 식료품 등 최저 3일분의 비상식량을 준비하라. 음료수는 한 사람당 하루에 3리터 정도가 필요하다.’ ‘ 피난소나 떨어져있던 가족이 만날 비상연락법이나 장소를 확인해놓아라. NTT비상전화(171)도 반드시 숙지하라.’ 등을 홍보하고 나섰습니다.

지진이 발생하면 화재위험이 매우 높습니다. 석유난로 등 불을 즉시 끄고, 가스밸브도 차단해야 합니다. 가스는 진도5이상의 지진이 발생하면 자동으로 차단되도록 되어있습니다만 전원도 차단해야 한다고 경시청은 계도했습니다. (지진은 보통 리히터 규모로 사용하지만 일본에서는 자신이 사는 곳에서 진동의 위력을 표시하는 1~7까지의 ‘진도’를 사용합니다.)

쓰나미 경보 때는 차로 이동하지 말라

아울러 차를 운전하는 중에는 키를 꽂아놓은 상태로 도로의 좌측(일본은 한국과 달리 차가 좌측통행이기 때문이지요.)에 정차시킨 뒤 넓고, 높은 장소로 대피하도록 권합니다. 특히 쓰나미 경보가 내려졌을 때는 차로 이동하지 말고, 내려서 대피할 것을 권하고 있습니다. 대형 스피커나 라디오 등을 통한 안내방송에 따라 행동하는 것은 물론 기본이라고 합니다.

이상은 당국이 마련한 지진에 대한 기본적인 수칙입니다. 개인들에게 들어보면 독특한 대비책이 많습니다. 지진을 여러 차례 경험한 70대 일본인은 “나는 특별히 대비하지 않는다. 운수소관이다. 다만 욕조를 매일 밤 깨끗이 닦은 뒤 물을 가득 받아놓는다. 3일 정도의 비상용수로 활용할 수 있다. 지진초기 구호의 손길이 안 닿을 때는 물이 제일 귀하다.”고 소개합니다.


10년전 한신대지진으로 폐쇄된 고베항. 오른쪽 사진은 고베시의 무너진 건물더미에서 부상자를 나르고 있다. 서울신문 포토라이브러리

어떤 30대 맞벌이 부부는 비상용 배낭 두 개를 항상 준비해놓고 있다고 합니다. 하나에는 쌀과 연료, 식수 등 비상식량을 채우고, 다른 하나에는 망치나 톱, 밧줄, 면장갑, 수건, 전지, 전등 등을 넣어두었다가 지진시 즉시 둘이서 하나씩 메고 대피하려 한답니다. 자신들이 문제없이 대피한 뒤에는 구조활동을 하기 위한 물품도 함께 준비한 것이랍니다.

그리고 상당수 일본인들이나 도쿄에 사는 외국인들도 비상용품을 담은 비상가방을 머리 위나 가까운 곳에 두고 잠자리에 든다고 합니다. 장롱이나 텔레비전, 각종 부엌용품 등을 고정시켜 진도 4,5급의 지진시 가구가 흩어지며 다치는 일이 없도록 조치하는 것은 기본입니다.

이 밖에도 일회용 식기와 식기를 세척하지 않고 쓸 수 있게 랩을 준비하거나, 지진 때 가장 해결하기 어려운 용변문제 해결을 위해 1회용 용변처리기를 준비하기도 합니다. 지진시 휴대전화도 불통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공중전화에서 쓸 동전이나 카드도 요긴하지요. 물티슈나 물을 운반하기 위한 비닐백도 요긴하다고 합니다.

한신대지진 10주년을 맞아 여러 가지 지진대비 모습도 언론에 소개됐습니다.

한 대학교수는 집을 흙벽으로 짓고, 집 주차장 지하에는 16t의 물이 저장된 저수조를 만들고, 간이 정수장치까지 준비했습니다. 1개월 정도의 생활용수지요. 장롱 일체는 한 방으로 몰아넣고, 이음새로 고정시켜 큰 지진에도 넘어지지 않도록 대비했습니다. 침실은 아무 물건도 놓지 않았습니다. 물건들이 떨어져 입을지도 모르는 불의의 상처를 막기 위해서지요. 각 방에는 비상손전등을 2개씩 비치했습니다. 전지용과 흔들면 커지는 두 가지씩이지요. 안경, 수첩, 지갑, 휴대전화 등 귀중품은 상자 하나에 넣어 항상 본인 옆에 놓는 답니다.

개인별 지진대비 노하우도 언론에 소개

1월 한겨울에 한신대지진을 경험한 피해자들의 대비책은 본인들이 10년 전 느꼈던 아쉬움을 토대로 한 것이어서 더욱 현실적이었습니다. 한 여성은 자신의 체력에 맞게 5킬로그램 정도의 비상용 배낭을 준비했습니다. 그녀는 “지진 때 돈이 가장 필요하더라. 그래서 5만엔(약 50만원)을 항상 준비해 놓는다.”면서 화장지, 구급약품, 라디오, 타월 4개(보온용), 컵, 접시, 고무장갑, 가위 등도 넣어둔다고 합니다.

집밖에는 각종 공구와 밧줄을 넣어둔 조그만 별도의 창고도 만들어 놓았습니다. 집이 무너지면 뜯고 들어가기 위한 망치, 큰 비닐로 무너진 집을 씌운 뒤 도난을 방지하기 위해 기다란 밧줄도 준비했다고 합니다. 실제로 지난해 니가타 지진 때는 귀중품을 노린 도둑도 적지 않았다는 것이 알려지기도 했습니다.

한겨울 한신대지진 때 “신문이나 큰 종이상자가 있었으면 좋았겠다.”고 느낀 아주머니도 있었습니다. 지진직후 구호의 손길이 닿지 않았을 때 몹시 추웠는데 신문지나 박스를 깔고 덮으면 훌륭한 보온장치(장판이나 이불기능)가 될 것으로 생각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유성펜이 중요하다는 주민도 있었지요. 병원에 후송되거나 피난했을 때 몸이나 집 앞에 신분을 기록, 비나 눈에도 지워지지 않게 하기 위해서랍니다.

빗자루나 쓰레받기가 필요하다는 주민도 있었습니다. 유리가 깨졌을 경우 청소기를 사용하지 못하기 때문에 생활공간을 마련하기 위해서는 빗자루가 꼭 필요하더라는 것입니다. 양말의 필요성을 강조하는 분도 있었습니다. 상처받을 상황이 많기 때문이지요.

이처럼 일본에서는 지진에 대비한 비상대처 방법을 비교적 자세하고, 현실적으로 교육하고 있습니다. 특히 직하형 지진이 도쿄 등 수도권을 강타할 경우 수십만동의 건물이 붕괴되거나 불이 나 수천명이 사망할 것이란 추산이 최근 보도되면서 지진대비는 더 철저해지고 있는 것 같습니다. 교통기관이 무력화돼 300만명 이상이 근무처나 학교에서 귀가하기 어려울 지경에 빠질 것이란 경고도 있었습니다. 지각판 충돌, 활성단층, 예상치 못한 비활성 단층 등 때문에 “일본 어디도 지진의 안전지대는 없다.”는 경고도 일본인들을 긴장시킵니다.

지난해 5월말 우리나라도 경북 울진 앞바다에서 규모 5.2의 강한 지진이 일어나 일부 서울시민이 진동을 느꼈을 정도였다지요? 지진이 ‘남의 나라 일’만이 아니라는 점이 입증됐습니다. 따라서 일본인들의 지진대비책을 참고해두면 좋을 것으로 보입니다.

taein@seoul.co.kr

이지메, 일본인의 양면성
2005-02-21
9953

일본에서는 한동안 학교 내 ‘이지메(개인 혹은 집단의 괴롭힘. 따돌림)’ 문제가 조용했습니다. 그러다가 이번 달 들어 잇달아 이지메와 관련됐다는, 후유증이라고 할 수 있는 두 건의 충격적 사건이 터지면서 다시 화제로 떠올랐습니다.

지난 14일 오후 오사카의 한 초등학교에서는 3학년 때부터 이지메를 당했다는 무직의 17세 소년이 “5, 6학년 때 이지메를 당하는데도 선생님이 도와주지 않았다.”며 졸업 후 5년 만에 모교에 찾아가 선생님 3명을 흉기로 찔러 그 중 1명(52세)의 교사가 숨지고, 2명은 중상을 입은 사건이 일어났습니다. 학교 안팎 600여명의 재학생들은 공포에 떨었고, 즉각 임시휴교조치가 내려지기도 했습니다.

경찰은 이 사건의 동기와 진상에 대해 신중하게 수사하고 있습니다. 파장이 너무 크기 때문입니다. 경찰조사에서 소년은 “이지메를 당하게 된 것은 초등학교 3학년 무렵이다. 그 당시의 담임교사도 도와주지 않아 원망하고 있었다.”며 졸업 5년 뒤에 끔찍한 범행을 하게 된 동기를 밝히고 있습니다. 소년은 현재 이 학교에 재직 중인 5, 6학년 때의 담임선생님을 면회하는 것처럼 가장, 학교진입을 시도했었지요.

쉬는시간에 운동장에서 뛰어노는 도쿄 한 초등학교의 어린이들.


 소년의 이 같은 이지메 진술에 따라 경찰은 소년이 지명한 5, 6학년 당시의 담임교사와 함께 3, 4학년 당시의 담임교사로부터도 진술내용을 확인했습니다. 하지만 이지메 사실은 확인되지 않고 있습니다. 당시의 동급생들도 이지메에 대한 언급은 하지 않고 있습니다.

소년은 당초 5, 6학년 때의 남성 담임교사를 범행 대상으로 골라, 범행 1시간 전에 학교의 출입문에서 인터폰으로 담임교사를 호출했지만 부재중이라고 하자, 1시간 뒤 다른 문을 통해 학교로 들어가 전혀 알지 못하는 교사를 차례로 찔렀습니다. 그는 경찰에 체포된 뒤 “교사라면 누구라도 좋았다.”고 진술했습니다.

17세 소년 모교 찾아가 교사 살해

소년은 초등학교 6학년의 결석일이 30일 이내였고, 중학교 1학년 2학기부터 학교에 거의 가지 않는 부등교생이 되었다고 합니다. 소년은 이후 거의 독학으로 대학입학자격 검정시험에 합격, 최근엔 간사이지역 유명 대학에 가고 싶다며 의욕적으로 학원에 다녀 모친이 “겨우 하고 싶은 일을 찾은 것 같다.”며 기뻐하고 있던 시기였습니다.

그러던 소년이 누구도 생각하지 못한 끔찍한 일을 저지르고 말아 일본사회 전체에 큰 충격을 주고 있는 것입니다. 이 소년이 정신적인 결함에 의한 범행했는지, 아니면 이지메의 잔인성에 의한 상처가 곪아 터진 것인지는 현재로선 수수께끼인 것이지요.

역시 오사카에서 이 사건 며칠 전 아는 남성(68)에게 동급생의 물건을 빼앗도록 부탁했다는 혐의로 여고 3년생인 18세 소녀가 절도교사 혐의로 불구속 송치됐습니다. 소녀가 1월 동급생의 통학로나 머리모양 등을 휴대전화메일로 그 남성에게 알려주고 날치기를 지시했다는 것입니다. 남자가 범행에 실패, 체포되며 전모가 드러난 것이지요.

소녀는 경찰에서 “이지메를 당한 보복을 해주었으면 했다.”라고 진술, 역시 이지메 문제가 부각됐습니다. 남성은 소녀가 아르바이트하던 가게의 단골손님으로, 이메일을 통해 이지메관련 괴로움을 상담하고 있었답니다.

지난해 연말 오랫만에 함박눈이 내리자 밝은 표정으로 횡단보도를 건너는 일본인들의 모습.


이처럼 한동안 사회문제화 되지 않았던 이지메가 일본사회를 충격 속에 몰아넣으며 일선 학교에서는 이지메예방, 무단침입자를 막기 위한 대책마련, 괴한침입시 대피교육 등 관련대책을 서두르고 있습니다. 일부 학교는 경찰이 학교 내에서 순찰까지 돌아 논란이 분분하기도 합니다.

문부과학성의 통계로 보면 이지메는 줄어드는 추세였습니다. 1994년 이지메 통계 조사방법이 변해 그 이전의 통계와 비교는 무리가 있습니다. 그 이전 기준에 의한 통계로 보면 80년대 후반 5만여 건에서 93년에는 2만 건 수준으로 줄어드는 추세였습니다. 기준이 변한 94년에는 초-중-고 전체를 합해 이지메 건수가 5만6601건이었고, 95년에는 6만96건으로 최고조에 달합니다. 이후 96년 5만1544건, 97년 4만2790건, 98년 3만6396건, 99년 3만1359건, 2000년 3만918건, 01년 2만5037건, 02년 2만2205건으로 줄어듭니다.

이 중 02년을 초-중-고등학교 별로 보면 중학교가 1만4562건으로 가장 많았고 초등학교가 5659건, 고등학교가 1906건(기타 78건) 등으로 이지메는 사춘기의 고민이 한창인 중학생들 사이에서 가장 많은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95년 이후의 통계 전체적으로도 중학생, 초등생, 고교생 순으로 이지메 건수가 이어졌습니다.

“집단 익명성 보장되면 잔인해져”

주변의 일본인들에게 확인해 보면 지금도 이지메는 적지 않은 개인들에게 평생 씻을 수 없는 심각한 정신적 상처를 주고 있다고 합니다. 주로 힘이 약하고, 공부 못하고, 집안형편이 좋지 않은 학생들이 이지메의 대상이 된다고 합니다. 물론 강자에 대한 시기나 질투로부터 나오는 개인이나 집단에 의한 이지메 등도 있습니다.

이런 사례도 있습니다. 최근 모 학교에서 한 학생의 스케치북을 예리한 문구용칼로 4등분해버리는 일이 발생, 주의를 줬지만 다음날에는 교과서를 역시 칼로 찢어버리는 일이 생겼다고 합니다. 이에 학교에서 또 주의를 환기시키자, 다음주에는 다른 교과서를 찢어버리는 일이 발생하여 학교측이 등교시 문구용칼과 조각칼을 소지하지 못하게 했다고 합니다. 학교측은 피해학생이 입은 마음의 상처를 걱정하고 있습니다.

일본인 유전자의 ‘양면성’도 얘기됩니다. 한 대학교수의 증언입니다. “일본인들은 개인적으로는 무척 친절하고 온순하다. 단체가 약한 자와 함께하는 모습도 자주 보인다. 친절함의 유전자이다. 하지만 제국주의 시절 기록 등에서 보듯, 집단의 익명성이 보장되면 잔인하고 폭력적이 되는 경우도 있다. 이것은 이지메의 유전자와 관계있어 보인다. 이처럼 기막히게 대비되는 유전자가 일본인의 한 특질이다.”는 것입니다. 그는 이를 지진이나 화산폭발 등 수시로 찾아오는 불가항력의 자연재해가 많은 것과 연결시켰습니다.

초로의 일본인은 이렇게도 조언했습니다. “내 친구들 사이에서 잘 지내던 친구가 어느 날 힘이 없어졌다며 친구들이 돌변, 집단따돌림하는 사례를 몇 차례 겪었다. 같은 일본인이면서도 섬뜩하게 느껴지곤 한다. 불가사의하다. 참고하시라.”고 말해줄 정도입니다.

그는 120여 년 전 개화파 김옥균의 운명도 예로 들었습니다. 김옥균은 1884년 일본의 힘을 업고 갑신정변을 통해 친청나라 정권을 전복했다가 3일 만에 실패하고, 일본으로 망명했습니다. 그러자 3년 전부터 후대했던 일본조야의 태도가 돌변, 힘이(이용가치가) 떨어진 그를 귀찮은 망명객이라며 내팽개쳤습니다. 이후 그는 비참한 10년간의 일본망명생활을 하게 되었고, 결국 1894년 상해로 망명했다가 자객에게 살해됐지요. 이것도 이지메유전자와 맥이 통한다는 것입니다.

그는 특히 최근의 한류붐도 걱정했습니다. 일본인들의 돌변성을 들며, 어느 순간 한류에도 약점이나 흠결이 보이면 싸늘하게 외면해 버릴 수 있으니 대비하라는 것입니다.


taein@seoul.co.kr

‘흡연자 천국 일본‘ 옛말될까
2005-02-28
12284

‘흡연자 천국’, ‘끽연자 대국’으로 불리는 일본. 말 그대로 다른 선진국에 비해 흡연자유를 여전히 “만끽하는 편”입니다. 실제로 여전히 많은 사무실은 흡연이 가능합니다. 서울신문 일본지사 사무실도 인접한 사무실서 뿜어대는 담배연기로 인해 추워도 하루에 창문을 몇 차례씩 열어야 할 정도입니다.

음식점이나 공공장소도 마찬가지입니다. 최근 조사에 따르면 2003년 5월 시행된 건강증진법에 의해 간접흡연의 방지 의무를 음식점 주인 등에게 부과했지만 현장에서는 제대로 지켜지지 않고 있다고 합니다. 음식점의 약 8할이 간접흡연 방지대책을 세우지 않고 있다는 사실이 도쿄대와 산업의과대에 의한 조사에서 밝혀졌습니다. 특히 소규모식당은 흡연천국이라 비흡연자는 식사를 방해받을 정도입니다.

길거리흡연을 금한 도쿄도 스기나미구 한 길거리의 길바닥경고문. 그 옆에 담배꽁초가 버려져 있는 것이 이채롭다.

도쿄의 스기나미, 지요다, 미나토 구 등 30곳 가까운 지자체들이 속속 길거리흡연을 금지하고 있지만 잘 지켜지지 않고 있습니다. 흡연금지 거리를 걸어가면서 담배를 피우는 사람들을 쉽게 볼 수 있습니다. 버려진 담배꽁초도 많습니다.

공공장소인 JR(옛 일본철도로 JR동일본, 서일본, 동해, 규슈, 홋카이도 등으로 민영화) 각 전철역에서는 오전7시반부터 9시반까지 전구역이 금연시간이라고 안내판을 내걸고, 계도방송도 하지만 잘 지켜지지 않습니다. 그 시간외에는 전철역 흡연구역에서만 담배를 피우도록 하지만 마찬가지입니다.

여성 흡연자들이 많은 것도 일본 흡연문화의 한 특징이기도 합니다. 길거리에서나 전철역 플랫폼의 흡연구역에서는 담배를 피우는 여성들이 많습니다. 한국과는 크게 대비되는 풍경이지요. 남녀를 떠나 윗사람 등 남의 시선을 크게 신경 쓰지 않는 일본의 문화적 전통 때문이라는 해석이 있습니다.

상점가는 물론 건물 내, 그리고 주택가 혹은 심지어 중-고등학교 바로 앞에서도 24시간 담배를 살 수 있는 담배자동판매기가 많은 것도 일본의 특징입니다. 한국에서는 수년전부터 엄격히 금지하고 있는 것과는 크게 대비되지요. 청소년 흡연이 많은 것과 관계가 있습니다. 교복을 입은 채 담배를 피우는 고교생도 볼 수 있습니다.

담뱃값도 미국이나 유럽 등 선진국에 비해 싼 게 특징입니다. 일본에서는 일본산 유명 담배나 미국, 영국 등 외국담배의 경우 가격이 대체로 270엔(약 2700원)에서 300엔 정도로 다른 물가에 비하면 상대적으로 싼 편입니다.

교복 입은 채 담배 피우는 고교생도

하지만 변화가 서서히 몰아치고 있습니다. 올해부터 스모경기장에서 흡연이 전면금지됐습니다. 아울러 최근 일본담배산업(JT)의 희망퇴직자 모집에서 전 사원의 3분의 1(5800명)이나 응해, 충격을 준 것도 “담배산업에 미래없다.”는 인식의 일부로 해석됐습니다.

일본의 흡연자들은 점점 금연문화의 확산에 포위되는 양상입니다. 일본담배시장 매출액의 90%를 점하는 JT의 한 관계자는 “앞으로 10년간 국내 담배 시장은 계속 축소될 것”이라고 예상할 정도입니다. 일본남성의 흡연율은 1980년대 70%대에서 90년대 50%대로 떨어진 뒤 3년 전에는 46%선까지 떨어졌습니다. 그러나 여성은 13%전후서 큰 변화가 없습니다.

특히 이런 흡연자의 입지축소 현상은 27일 공중위생 분야에서 첫 국제조약이 되는 ‘담배규제기본협약’이 발효되면서 가속화될 것 같습니다. 이 협약은 담배소비를 삭감, 건강피해를 방지하기 위한 내용들이 담겨있습니다.

물론 미국, 중국, 러시아, 브라질 등 생산과 소비 대국이 비준하고 있지 않기 때문에 실효성이 의심받고 있긴 합니다. 한국도 비준하지 않고 있습니다. 비준한 국가는 현재까지 일본, 노르웨이, 영국, 프랑스, 독일, 스페인, 네덜란드, 캐나다, 멕시코, 덴마크, 핀란드, 터키, 인도, 호주, 뉴질랜드, 태국, 싱가포르, 베트남을 포함한 57개국입니다.

도쿄 시내 한 시장 옆에 있는 담배자판기. 무려 3대가 한 곳에 몰려있다. 심야(밤11시~오전5시)를 제외하고는 누구나 이용할 수 있는 자판기는 일본 전국에 무려 60만대나 설치돼 있다고 한다.

비준국은 앞으로 담배광고를 5년 이내에 원칙 금지합니다. 3년 이내에 담배포장의 30%이상을 건강피해 등의 경고를 표시해야 합니다. 이에 따라 일본 재무성도 올해부터 법정비를 서둘러 담배광고 규제를 강화할 계획입니다. 4월부터는 빌딩 옥상이나 번화가 등에 간판 신설이 금지됩니다. 기존의 담배광고간판도 9월까지는 없애야 합니다. 전차나 버스의 담배광고는 이미 지난해 10월 전면금지됐지요.

현재 담배광고는 자동판매기나 담뱃가게, 일부 잡지나 신문 등 극히 부분적으로만 할 수 있습니다. 7월부터는 담배포장의 30%이상에 ‘흡연은 당신에게 폐암의 원인중 하나가 된다’는 경고를 표시해야 합니다. 특히 미성년자의 흡연을 막기 위해 담배업계는 전국에 있는 무려 60만대의 담배자동판매기 전체를 성인에게만 발행할 IC카드를 갖고 있어야만 살 수 있도록 하는 조치를 2008년 4월까지 도입할 예정입니다.

금연문화 갈수록 확산…흡연자 포위

일본의 흡연율은 최근엔 남녀를 합하면 24~29% 정도로 조사되고 있습니다. 규제가 강화되면 흡연자에 대한 포위망이 견고해져 당연히 금연자가 늘어나겠지요. 하지만 일본에서는 상대적으로 싼 담뱃값을 올리지 않으면 규제조치의 실효성이 떨어질 것이란 진단이 많습니다. 캐나다 영국 등에서는 담뱃값을 올리며 담배소비가 떨어졌다는 통계가 있습니다.

특히 가격을 올려야 구매력이 약한 청소년 흡연을 효율적으로 줄일 수 있다고 합니다. 캐나다는 1980년대 담뱃값을 두 배 올려 미성년자 흡연이 3분의1정도로 급감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일본은 여전히 담뱃값이 유럽에 비해 2분의1, 3분의 1정도에 지나지 않습니다.

일본의 담배가격 정책과 관련, 재정제도심의회는 “담배는 개인의 기호품이기 때문에 (세금을 올려 가격을 높인 뒤) 소비삭감을 노리는 것은 곤란하다.”는 입장이었지만 기본협약 발표에 따라 정책전환이 예상됩니다. 특히 후생노동성, 재무성 등 5개 성-청이 미성년자의 흡연을 줄일 대책을 오는 6월까지 강구할 예정이어서 주목됩니다.

무엇보다 금연운동 단체들은 담배규제기본협약 발효가 변화가 느린 일본에서도 담배산업은 물론 음식, 오락산업에도 영향을 미칠 것으로 내다보고 있습니다. 국제적인 강제성을 갖기 때문에 일본정부나 업계도 흡연규제를 할 수밖에 없을 것으로 기대하는 것입니다.

실제로 일본금연학회 등이 26일 일본 프로야구 12개 구단을 대상으로 소속 선수의 흡연상황과 미성년선수 지도 등 흡연에 관한 실태조사에 나서기로 하는 등 ‘흡연자들의 목죄기’는 점점 강해지고 있습니다. 니혼햄 소속 대어급 18세 신인투수가 전지훈련장 파친코에서 담배를 피우다 적발돼 징계처분을 받으면서 프로야구선수의 흡연문제가 부각됐기 때문입니다.

다만 현지에서는 일본정부가 국민적 불만이 따를 담뱃값 인상을 단행하기 어려운 실정이라며 흡연규제가 효과를 발휘하기 어려운 한계를 갖고 있다는 시각도 있습니다. 또 성인에게만 IC카드를 발행, 담배자동판매기에서 사용할 수 있게 하려는 대책도 실효성이 의심된다는 지적도 있습니다. 그렇다고 해도 분명 흡연자 천국 일본서도 흡연자의 입지는 점차 축소되고 있는 것을 부인할 수 없어 보입니다.


taein@seoul.co.kr

극우망령 부활과 ‘천황’
2005-03-14
7171

20세기전반 조선을 식민지배하고, 미국에도 진주만 기습을 단행한 일본 군국주의자들은 언제나 ‘천황(天皇)폐하의 명령 수행’을 앞세웠습니다. 그 ‘천황’이라는 이름의 일왕이 최근 일본군국주의망령의 부활 조짐과 함께 주목을 끌고 있습니다.

우리나라에는 독도문제로 영토분쟁을 도발하고, 식민지배를 합리화시키는 것을 넘어 미화시키는 내용의 왜곡된 역사교과서로 억지를 부리고, 중국-타이완과는 댜오위다오, 러시아와는 북방4개섬 영토분쟁, 미국과는 쇠고기수입 분쟁, 북한과는 납치피해자 논란 등 주변국들과 사사건건 다투기 시작한 그 일본인들의 중심에 지금도 일왕이 있습니다.

2차대전 패전 후 ‘인간선언’을 한 뒤 상징천황으로 격하됐다고 하지만 일본의 국력이 강해지고, 우익망령이 준동하며 구심점역으로서의 천황이 주목되고 있는 것입니다.

도쿄시내 한 가운데에 자리잡고 있는 일본 왕궁과 그 주변 모습.


최근 일본이 세계2위의 경제력을 앞세워 ‘대국대접’을 꿈꾸고, 유엔안전보장이사회 상임이사국 지위에 올라보려 하는 가운데도 역시 “천황의 위상을 강화시켜야 한다.” 움직임이 있습니다. 극우보수들은 “천황을 국가원수로 하자.”고 시도합니다. 국내외 눈치를 보느라 본격적인 추진은 하지 못하지만 언제 현실화될지 모를 일입니다.

최근엔 일 왕실의 대잇기도 큰 화제가 되고 있습니다. ‘여성천황제’ 도입논의가 바로 그것이지요. 지금까지 여성천황은 8명(10대-최후는 1770년) 있었습니다. 1947년 왕실의 ‘왕족 범위’를 대폭 축소시켜 11개의 왕가가 왕가의 지위를 상실한 뒤 왕실 내 남자 후손이 귀해진 것이지요. 일 왕실에는 40년간 남자후손의 출산이 없었습니다.

이렇다 보니 일 왕실과 일본 내 우파들, 많은 일본 국민들이 급해지고 있습니다. 일각에서는 1921년 왕실전범에서 모습을 감춘 ‘측실제도’의 소멸에서 원인을 찾는 시각도 있습니다. 일본측 기록에는 2000년 이상인 세계최고의 왕조로, 125대의 ‘천황’이 있었으나 그 중에서 반 정도가 정실부인이 아닌 측실부인의 소생이었다고 합니다. 메이지 일왕 전후 4대도 측실소생이었습니다. 그런데 적통만 되고, 양자도 안 되니 왕위계승의 위기가 커진 것이지요.

우익망령 준동 이후 구심점으로 주목

일본 내에서는 불과 수년전 까지만 해도 공산당 등 진보 정치권에서는 “천황제는 시대에 뒤떨어진 구시대의 유물”이라며 폐지론이 있었지만 최근 들어서는 일본사회가 급격히 우경화되면서 ‘천황제 폐지론’은 약해졌습니다. 80%이상 일본국민이 현 천황제에 찬성한다는 여론조사가 많습니다. 폐지론은 10%도 안 될 정도입니다.

그렇다면 과연 ‘천황’은 어떤 존재일까요. 일본 헌법에서 ‘천황’은 국가 및 국민 화합의 상징입니다. 하지만 정부에 대하여 아무런 권력도 없습니다. 그렇다고 해도 일왕이 담당한 국사는 많습니다. 헌법에 따라 총리대신을 임명합니다. 최고재판소장(대법원장)을 임명하고, 헌법개정과 법률, 조약 등을 공포합니다. 국회도 소집하고 중의원 해산의 최종 선언자이기도 합니다. 총선거 공시도 하고, 장관임명, 대사신임장 인증도 합니다. 사면이나 감형도 인증하고, 외국의 대사나 공사도 접수합니다. 회개회식 등 의식도 주재합니다.

마지막 황태자 영친왕 이은의 부인이었던 일본 왕족 출신 고 이방자 여사와 가족들이 살았던 도쿄 아사사카프린스호텔 별관 모습. 일본 패전후 세이부그룹에 매각돼 현재는 1층 한쪽이 유럽풍 '바'로 이용되고 있다. 종업원들이 한국인임을 확인하면 "이방자 여사가 살던 곳"이라고 설명해주기도 한다.

일본은 입헌군주제의 나라지요. 헌법에 의해 천황으로 불리는 군주가 다스리는 나라인 것입니다. 문헌에 따르면 기원전 660년 초대 천황인 진무가 즉위했으며, 4∼5세기께부터 고대 천황제의 모습이 갖추어집니다. 부족연맹의 장(長)정도였지요. 6세기말 쇼토쿠태자에 이르러서 ‘천황’의 권력이 확립됐다고 합니다.

7세기중엽 다이카개신 이후 ‘천황’은 현인신(現人神)으로서 유일 최고의 지위를 갖게 됩니다. 그러나 중세에 지위가 급락, 9∼12세기 헤이안시대의 귀족정치, 13∼14세기 가마쿠라막부시대의 무인정치 땐 권력이 무력화됩니다. 이런 상태는 1868년 메이지유신에 의해 ‘천황중심’의 중앙 집권체제가 다시 확립될 때까지 계속됩니다. 1천년 만에 일왕의 지위가 다시 막강해진 것이지요. 특히 20세기에 들어서서는 우익, 특히 군부의 파시즘 운동의 수단으로 ‘천황’의 신격화 작업이 최고조에 달했었습니다.

패전 후 47년 신헙법에 의해 다시 ‘천황’이 인간의 지위로 내려왔지만 여전히 일왕은 일본과 일본인들에게는 ‘특별한’ 존재입니다. 국민 통합의 상징으로서 국민들에게 끼치는 영향이 지대하답니다. 오랜 지방분권과 그에 따른 피비린내 나는 전국시대를 마무리한 구심점이 ‘천황’이었기 때문에, 그 상징이 없어지면 다시 분열의 시대에 진입할 것을 우려하기 때문이라고 내력을 설명하는 일본인도 있습니다.

1947년 5월 시행된 현행헌법상 “천황은 국정에 관한 어떠한 권리의 주장과 행사도 불가”하도록 돼있어 메이지헌법에서 “대일본제국은 만세일계(萬世 一系)의 천황이 통치하며 천황은 신성불가침”이라고 했던 것과는 엄청나게 비교가 되긴 합니다.

세자의 왕실비판 등에 따라 관심 높아져

현재의 아키히토 일왕은 52년 11월 왕세자로 즉위했으며, 지난 89년 쇼와일왕의 사망 직후 일본의 제125대 ‘천황’으로 즉위했습니다. 정식 즉위식은 90년 11월 12일입니다. 아키히토 일왕은 해외순방을 많이 해, 왕즉위 전부터 지금까지 50여개국을 방문했고 즉위 후 동남아, 중국, 유럽, 미국, 남미 등을 순방했지만 한국은 아직 방문하지 못했지요.

아키히토 일왕의 뒤를 이을 세자는 나루히토. 지난 1980년 세자에 책봉됐습니다. 가쿠슈인대 사학과를 거쳐 83년 영국 옥스포드대학에 유학했는데 이는 왕위계승자로선 역사상 최초의 해외유학입니다. 93년 외교관인 마사코비와 결혼한 뒤 앞서 소개드린 대로 지난해에 마사코비가 왕실 내에서 부당한 대우를 받는다고 밝혀 아직까지도 여진이 계속되고 있습니다.

일왕 부자 갈등설, 고부갈등설, 형제 갈등설, 옛 왕족 복귀시도설, 마사코비 재차 중병설 등 각종 설이 설설 끓고 있는 배경이기도 하지요.

한편 최근 일 왕실과 밀접한 관계(현 일왕이 세자 시절 가루이자와의 세이부계열 호텔을 자주 이용하는 등의 인연)였던 세이부그룹의 쓰쓰미 전 회장이 몰락의 길을 걸으면서 왕실의 토지에 대해 관심이 높습니다. 쓰쓰미 회장의 선친이 패전 뒤 1950년대를 전후 많은 왕실토지를 헐값에 불하받아 ‘프린스호텔’ 등을 건축했기 때문입니다.

현재 아키히토 일왕이 살고 있는 왕궁은 원래는 에도성이었습니다. 69년 11월 완공된 건물입니다. 일왕 부부와 노리노미야 공주가 살고 있으며 궁내청도 여기에 있습니다. 51만 평방미터의 아카사카어용지에는 세자 부부와 세자의 남동생 가족 등이 살고 있습니다. 도치키, 시즈오카, 가나가와 현 등지에는 별장지가 있고, 도치키현에는 252만 평방미터의 왕실목장도 있습니다. 교토에는 별궁 등이 있습니다.

세자의 왕실 비판으로 계속되고 있는 내홍, 세이부그룹 몰락과 함께 주목되는 왕실의 토지 등 살림 규모, 특히 일본의 패전 60주년을 맞은 올해 강화된 군국주의 망령 부활 움직임과 맞물리면서 일본 ‘천황’과 향후 왕실의 운명에 대한 관심도 점점 높아지고 있습니다.


taein@seoul.co.kr

일본 부동산시장 미니거품?
2005-03-30
7198

일본 부동산시장 미니거품?

일본 대도시(도쿄, 오사카, 나고야) 일부지역의 부동산 가격이 2004년 17년 만에 상승세(도쿄 긴자지역 0.9%)로 돌아선 것으로 조사되면서 1990년대 거품경제의 붕괴를 초래했던 자산가격 하락세가 반전될 조짐을 보이고 있다는 희망 섞인 해석이 나오고 있습니다.

올 8월 완공될 30층짜리 초고층 맨션인 시나가와 타워페이스. 몇개의 전철노선과 신칸센도 멈추는 시나가와역에서 걸어서 8분거리로 교통입지도 좋고, 마무리 공사가 한창이지만 상당수가 미분양 상태다.

반면 극히 일부지역의 지가상승은 5년째 계속되고 있는 통화팽창정책에 의한 과잉 유동성의 영향으로 사모부동산펀드나 부동산투자신탁 등으로 쏠린 투기성 자금이 조장한 ‘제2거품’ 내지 ‘미니거품’이라는 우려가 제기되는 등 제2거품 논란도 일고 있습니다. 물론 국토교통성은 일본 ‘전국의 평균지가’는 14년 연속 하락세였다고 발표했습니다.

당초 경제전문 주간지들이 지난해부터 도쿄 도심지역의 부동산 미니거품 가능성을 제기했었습니다. 그런 중에도 일간지들은 신중한 자세를 유지했었지요. 그런데 아사히?닛케이?마이니치신문 등이 24일 국토교통성의 지가발표 결과를 보도하면서 일제히 제2의 거품 가능성을 제기하며 성급한 낙관론을 경계했습니다.

실제로 부동산시장은 공급이 넘치는 분위기입니다. 지난해 부동산 판매 과열현상을 한차례 전해드렸지만 올해 들어서는 정말 심해지고 있습니다. 길거리에서 신규분양 맨션(우리식 아파트) 판매 전단은 귀찮을 정도로 많습니다.

가정집에도 무차별적으로 부동산판매 안내 전화가 걸려오고 있습니다. 저도 주말에 한차례 받아보았지만 제 집으로도 수시로 “집을 사라.”는 전화가 걸려온다고 합니다. 특히 올 들어 더욱 심해졌고,“외국인입니다.”라고 해도 “괜찮다. 국적이 어디냐.”면서 끈질기게 맨션 등을 사라고 매달려 간신히 뿌리친다고 합니다. 이른바 가격흥정도 이뤄집니다.

이처럼 부동산 세일광고가 기승을 부리는 것은 다량의 ‘미분양’이 발생하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이런 미분양 현상은 도쿄도내 지요타, 주오, 미나토, 시부야, 세다가야 등 최근 국토교통성 발표에서 지가가 상승반전으로 발표된 지역에서 많다고 합니다.

특히 지가상승이 두드러졌다는 미나토구 지역, 그것도 바다를 끼고 있어 경관이 수려한 시나가와역 인근 지역에서 분양되고 있는 초고층맨션들조차 다수의 미분양이 계속되고 있어 ‘초고층-대형물건 인기 신화’가 붕괴되고 있다는 진단도 있습니다.


부동산값 17년만에 상승 엇갈린 해석

실제 경제전문 주간 다이아몬드 최신호는 시나가와 지구에는 신축맨션 공급이 러시를 이뤄 판매전쟁이 종반으로 치닫고 있다고 전했습니다. 그러면서 “도심의 대규모 초고층맨션은 반드시 다 팔린다.”는 신화가 붕괴되면서 힘을 잃은 시장서 치열한 판매전에 돌입할 수밖에 없다고 전했습니다.

다이아몬드 조사에 따르면 시나가와지역에서는 완공이 됐지만 미분양인 고층-초고층 맨션이 있을 정도로 미분양이 심각하다고 합니다. 특히 회사측이 분양상황을 실제 보다 부풀려 밝혀 실제 분양률은 공개된 것보다 낮다고도 전합니다.

지난해 12월 준공된 22층짜리 한 고층맨션은 162 가구 중 6가구가 아직도 미분양인채로 남아 회사측은 무료 부동산 잡지의 광고 등을 통해 손님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아울러 이번 달 완공된 40층짜리 초고층맨션은 590가구 가운데 48가구가 미분양입니다.

2006년 10월 완공될 40층짜리 초고층맨션은 많은 층에서 도쿄만의 레인보우브리지 등 멋진 야경이 보이고 분양개시 2년 가까이 됐지만 585가구 중 무려 302가구가 아직 미분양인 상태입니다. 골조공사를 끝내고 정원공사를 하기 위해 현장 분양사무소를 철수하는 상황인데도 이 정도라고 합니다.

역시 내년 10월 완공될 예정인 31층짜리 한 초고층맨션은 223가구 중 46가구가 미분양입니다. 내년 1월 완공될 32층짜리 초고층맨션은 325가구 중 11가구가 미분양 상태고, 오는 8월 완공될 30층짜리 초고층맨션은 255가구 가운데 45가구가 주인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이 맨션은 특히 다른 맨션들이 전철역에서 10분 이상 걸리는 것과는 달리 10분 이내인데도, 주변에 학교가 없어 미분양이 많다고 합니다. 일본이나 서울이나 학교변수가 중요한가 봅니다.
내년 3월 완공될 42층짜리 초고층맨션 시나가와 월드시티타워. 야경이 도쿄의 명물로 꼽히는 레인보우브리지 교각이 보이고, 도쿄만 주변경관도 좋지만 전철역에서 멀다는(도보 14분) 등의 흠 때문에 아직도 일부 미분양이 남아 있다.

마찬가지로 시나가와 지역에서는 기차역이 걸어서 14분이고, 지하주차장의 방범시설도 완벽하게 갖춘 42층짜리 초고층맨션이 주변경관도 빼어나지만 내년 3월 완공을 앞두고 외부골조 공사가 끝난 현재까지도 1038가구 중 12가구가 미분양으로 남아 있습니다. 역시 학교나 편의시설이 주변에 없는 것이 큰 약점이라고 합니다.

미니거품이 꺼지는 것은 이런데서 확인됩니다. 미분양이 누적되면서 가격도 하락했다고 합니다. 한 조사에 따르면 시나가와지구의 신축맨션의 평균가격은 치열한 판매경쟁의 여파로 최근 3년간(01~04년) 당초 설정했던 가격이 14%정도나 가격이 하락했다고 합니다. 처음부터 격렬한 경쟁으로 인해 최대한 억제해서 책정했던 분양가격인데도 할인해서 판매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으로 몰린 것이지요. 이미 “흥정을 하면 1000만엔~2000만엔씩 깎아준다.”고 전해드린 바 있듯이 ‘맨션 털어내기 세일행진’은 여전히 멈추지 않고 있다고 합니다.


‘맨션 털어내기 세일행진’ 여전히 계속

이처럼 현재의 일본 대도시 주택시장은 ‘수요자(살 사람)가 선택할 폭이 넓은 수요자 우위’의 시장상황이라는 점은 분명해 보입니다. 그러면 가격은 내리는 경향이 강해지지요.

일본 부동산경제연구소의 전망에 따르면 올해 도쿄를 비롯한 수도권의 맨션 공급 호수는 지난해 보다 1000호 이상 많은 8만6000호 정도라고 합니다. 초대형, 초고층(30층이상)맨션이 주라고 합니다.

이처럼 수도권 지역의 맨션 공급이 2001년 이후 매년 8만호를 넘는 등 공급이 넘치자 분양회사들은 수차례로 분양회수를 늘려 판매에 나서고 있지만 기존의 재고에다 신규 물건이 더해지면서 ‘공급과잉’현상은 풀리지 않고 있다고 합니다. 지으면 분양되던 초대형-초고층 맨션마저 신화가 붕괴되었다는 것입니다. 가격은 약세지요.

그렇다면 2005년 3월말 현재 일본의 아파트(맨션) 가격은 어느 정도 일까요. 오늘 받아본 무료 분양정보지에 따르면 교통이 편리한 도쿄도심의 야마노테센 오사키역에서 걸어서 5분정도 걸리는 14~17평 재개발 맨션(지상 27층,254세대 규모)이 4370만엔~4980만엔(약 4억9800만원)입니다. 이 아파트 23~33평형(실평수 기준)이 7310만엔~1억1450만엔 정도입니다.

그 밖의 아파트나 단독주택들은 1월중순‘물가 세계1위 도쿄…’기사에서 전해드린 것과 큰 변화가 없습니다.

결론적으로 일본 미니거품, 제2거품 논란은 “집값이 반짝 올랐던 지역조차 이미 천정에 달해 내려가는 중”이라는 거품 해소론과 “도쿄나 오사카 등 도심부의 상승세는 최대 2년까지 계속될 수 있다.”는 강세 지속론으로 갈라져 있습니다.


taein@seoul.co.kr

평생 ’철밥통’ 일본공무원
2005-04-06
16758

일본이 빚잔치를 하고 있다는 일본사회내부의 비판과 우려가 많습니다. 나라는 빚더미에 올라있지만 나라를 움직이는 공무원들은 최고수준의 급여와 복지혜택을 누리는 것으로 비쳐지기 때문입니다. 높은 급여와 주택제공, 퇴직후 연금보장 등 평생 ‘철밥통’이라는 것입니다.

재무성에 따르면 일본의 나라빚이 눈덩이처럼 불어나 2004년 말 현재 751조엔(약 7500조원)에 달했습니다. 일본 국내총생산(GDP)의 1.5배에 달하는 규모로 국민 1명당 588만엔의 빚더미를 떠안고 있는 셈이지요. 국가가 특수법인 등의 채무변제를 보증한 57조5524억엔은 포함되지 않았습니다. 지방자치단체의 채무도 203조엔에 달해 국가와 지방채무를 합치면 총 채무규모는 1천조엔을 웃도는 것으로 추산됐습니다. 경기부양책 남발 등이 원인입니다.

현재의 일본 공무원제도는 60년 가까이 됐습니다. 그동안 세상은 크게 변했지만 공무원 세계는 변하지 않아 “공무원 세계는 60년 전 그대로 시간이 멈춰서 있다.”는 지적도 있습니다. 조직의 정체와 부패, 기득권 수호, 비대화는 그대로라는 것입니다.

도쿄시내에 있는 한 우체국과 경찰서.

이런 비아냥거림 속에도 공무원을 선망하는 분위기가 강하다고 합니다. 일류회사에 취직한 초년사회인들 중에 상당수는 공무원, 그것도 부담은 적고 수입은 상대적으로 높고, 생활비는 적게 들어가는 지방공무원이 되기 위해 회사생활에 소홀하다고 합니다. 그러다 공무원시험에 합격하면 회사를 그만 두는 사례가 적지 않다고 합니다.

특히 거품붕괴 후 민간기업의 평생직장 신화가 깨지면서 공무원 인기가 급등하자 평균학력도 급격히 상승하고 있답니다. 국가공무원의 경우 1970년대 초반에는 고졸이 50%였고 대졸은 21%에 지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최근에는 거꾸로 대졸이 50%에 육박하고, 고졸은 30%대로 줄었습니다. 70년대 초에는 중졸도 10%대 후반이었으나 요즘은 불과 1%라고 합니다.

일본 국가공무원은 97만명(우체국-28만, 자위관 25만여명 포함-공무원 숫자는 예산지급 규정에 따르느냐 등의 기준에 따라 차이가 있습니다.)이고 지방공무원은 316만명입니다. 총 413만명 규모지요.

90년대 일본경제의 거품이 붕괴되고, 디플레이션이 지속되고는 장기불황의 여파로 매년 공무원 수도 조금씩 줄고 있지만 평생직장의 신화가 붕괴되고 가혹한 구조조정에 돌입한 민간기업에는 비교가 안 될 정도입니다. 물론 향후 5년간 4.6%의 지방공무원을 줄일 계획도 있긴 합니다만 두고 봐야 한다는 얘기도 있습니다.

“공무원 세계는 60년 전 그대로”

국가공무원 직종도 다양합니다. 특별직에는 일본유네스코 국내위원회 위원 60명, 일본학사원 회원 150명, 일본학술회의 회원 210명 등도 있습니다. 그런데 일본학사원의 경우 ‘학술상의 공로가 현저한 과학자를 우대하기 위한 기관’으로 현재 평균연령은 80세, 종신으로 연간 250만에의 급여가 지급되고 있어 곱지 않은 시선도 있습니다.

일반 공무원의 수입은 일반직장에 비해 상대적으로 높습니다. 극단적인 예이긴 하지만 일부 조사에 따르면 한 시영버스 운전수의 연봉이 우리 돈으로 1억 5000만원을 넘는 경우도 있고, 구청 계장급 퇴직금이 3억원이 넘기도 합니다.

도쿄시내 한 구청의 모습.

일반적으로도 높습니다. 주간 동양경제에 따르면 국가공무원의 연봉은 사무차관이 2432만엔, 각 부처의 국장급이 1853만엔, 부처 과장급 1117만엔(45세 기준), 지방기관과장 772만엔(50세), 계장 584만엔(40세) 일반직원 382만엔(30세-이상 배우자 있을 경우)과 302만엔(25세 독신의 경우) 등입니다. 국가공무원 전체 월평균급여는 37.7만엔이지만 지방공무원 월평균 급여는 44.4만엔으로 단순평균으로 비교하면 지방공무원이 급료가 높습니다.

국가공무원 초임은 대졸1종(행정고시격)이 기본급 기준 월 17만 9800엔, 고졸 3종은 13만 8800엔입니다. 특별직 국가공무원으로 고이즈미 준이치로 총리는 기본급이 222만 7000엔, 장관급이 162만 6000엔, 차관급이 155만 7000엔 등입니다. 기본급 외에 가족부양수당, 주거수당, 통근수당, 단신부임수당, 한랭지수당, 특수근무수당 등 다양한 수당도 있지만 최근 수년 수당은 줄어들고 있다고 합니다.

이런 일본 공무원의 급여는 단체교섭권이나 파업권이 제약되기 때문에 중립적인 인사원이 연간 한차례 ‘인사원권고’를 통해 공무원과 민간급여 실태를 비교하고 부처나 직원단체의 얘기를 들어 결정하는 형식입니다. 최근 수년은 매년 1%정도씩 급여가 삭감되고 있습니다. 지방공무원은 도-도-부-현 인사위원회가 인사원권고를 참고, 권고안을 만들고 있습니다.

공무원의 급료와 복지혜택이 좋다보니 중도퇴직자가 줄어 공무원의 평균연령은 41~43세로 높습니다. 즉 국가공무원의 평균연령은 2003년에는 41.6세입니다. 1994년에는 평균연령이 39.6세였다고 하니 비교가 됩니다. 지난 10년간 2세나 늘어난 것이지요.

중도퇴직 줄어 평균연령 41~43세

근속연수도 평균 20.1년이었습니다. 그 중 차관, 국장, 심의관 급은 33.5년이었습니다. 아울러 지방공무원 전 직종의 평균연령은 42.6세로 국가공무원과 비교하면 1년 정도가 높았습니다. 지방공무원의 인기가 얼마나 좋은지를 반증해주는 것이지요.

하지만 일본 공무원들에 대한 국민의 불만은 상당히 높습니다. 그 중에서 대표적인 것이 이른바 낙하산인사로 불리는 ‘아마구다리’이고, 그 다음으로 국민봉사정신 결여, 비효율적인 조직이나 업무, 부당수당청구 등 불상사 다발, 급여 등이 지적되고 있습니다.

특히 낙하산인사에 대해서는 여기저기서 원성이 자자합니다. 일본에는 고위공무원(과장이상)의 경우 동기가 승진하게 되면 자동적으로 그만두는 것이 관행으로 되어 있습니다. 우리의 검찰조직과 유사하다고 할 수 있지요. 그만둔 공직자는 대개 낙하산을 타고 재단법인, 사단법인의 고위직으로 자리이동을 하게 됩니다. 이런 관행에 대한 원성이 거세지자 2001년말에는 법을 제정, 독립행정법인이나 특수법인 등에 취임한 퇴직공무원 상황을 공표하도록 의무화했을 정도입니다.

하지만 논란은 계속됩니다. 고이즈미 총리가 고위공직자 낙하산 인사의 문제를 조금이라도 덜기 위해 “정부관계 금융기관장으로는 차관급 경험자의 낙하산 취임은 인정하지 않는다.”고 낙하산금지령을 내렸지만 지난달 말 임기가 끝난 농림어업금융공고 총재(62)가 연임하기로 해 논란을 빚기도 했습니다. 그는 농수산성 사무차관 출신이기 때문입니다.

이런 말도 있습니다. “공무원은 사무나 신분의 구분이 어렵고 복잡다기하게 되어 있다. 의도적으로 이해하기 어렵게 해놓아 구조조정을 하려해도 손을 대기 어렵게 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그만큼 안전장치가 잘 되어 있는 철밥통 구조라는 것이지요.

우리나라에서는 최근 들어 공무원도 신분이 보장되지 않는 시대로 접어들어 '공무원 안전신화’가 붕괴되기 시작했다는데, 역시 일본인지라 공무원사회도 변화가 느리다는 반증이지요.


taein@seoul.co.kr

일본 국민병(病) 카훈쇼, 재앙이 되나
2005-04-11
10598

‘일본 국민병’으로 알려진 카훈쇼(花粉症-화분증 : 우리말로는 꽃가루병 혹은 꽃가루알레르기)가 재앙수준으로 비화될 것이란 경고가 나오고 있습니다. 이에 따라 일본 정부 당국은 바짝 긴장, 대책마련을 서두르고 있습니다. 자연의 역습이라는 우려도 나오지만 현재까지 뾰족한 수는 없다고 합니다.

신문과 방송 대부분은 꽃가루가 날리는 봄철에는 꽃가루정보를 매일 알립니다. ‘매우 많음’ ‘많음’ ‘비교적 많음’ ‘적음’ 등 4단계로 나눠 붉은지도나 찡그리는 사람모습으로 표시합니다.

각종 조사에서 꽃가루병의 주범은 삼나무(스기)와 히노키로 알려진 노송나무 두 가지가 지목됩니다. 이 두 나무가 꽃가루를 날리는 2월말부터 5월초까지 꽃가루병이 크게 유행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임야청은 반론을 제기합니다. 경유 등에 의한 대기오염이나 식생활의 변화 등 복합적 요인이 작용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카훈쇼는 40년밖에 안됐지만 삼나무는 수천 년 전부터 일본에 있었던 걸 이유로 듭니다.

도쿄도내 다카오산의 삼나무숲. 삼나무에서 누렇게 보이는 것이 꽃가루들이 저장돼 있는 모습이다. 이 꽃가루는 바람이 불면 수십~수백키로미터까지 날아다닌다.

꽃가루병은 지난해까지 일본 국민 6명당 1명 정도가 앓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습니다. 그러나 4월초 한 조사에서는 일본 국민의 26%정도가 카훈쇼로 고통 받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2명당 1명이 카훈쇼와 관계있다고까지 추정하기도 하니 국민병인 것이지요. 봄에는 꽃가루가 적게 날린다며 비 내리기를 바라는 사람이 많을 정도입니다.

그 증상은 알레르기로 치부하기에는 심하다고 합니다. 눈에는 눈물이 나고, 코에는 콧물이 나며 기침이 나는 것은 물론입니다. 몸에 열도 나고 밥을 먹기 힘들 정도가 되며, 정상적인 사회생활이 힘들어지는 사람도 적지 않다고 합니다. 입원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최근 끝난 일본 선발고교야구 경기 결과에도 영향을 미쳤답니다. 팀의 에이스나 주력선수가 카훈쇼인 경우 고전했다고 합니다. 어떤 때는 대회장인 고시엔야구장에 꽃가루가 지난해 보다 무려 100배 이상 날아다녔다고 하니까요. 미국 프로야구 메이저리그 뉴욕 양키스에서 활약 중인 마쓰이 히데키, 시애틀 매리너스의 이치로 선수도 카훈쇼였다고 합니다.

현재 진행 중인 일본 프로야구도 꽃가루병이 주요 변수입니다. 전설적인 홈런타자 출신 소프트뱅크 호크스의 왕정치(오사다하루) 감독을 비롯, 많은 유명 선수와 코치진이 카훈쇼를 앓고 있기 때문입니다. 특히 지난해 보다 꽃가루 비산(날아다니는)량이 10~20배 많은 올해는 꽃가루 비산량이 적어지는 5월초까지는 ‘꽃가루변수’가 프로야구 성적에 중요하답니다.

삼나무·노송나무가 주범으로 알려져

유례없이 꽃가루 발생이 많은 올해는 환자나 꽃가루병을 염려한 사람들이 외출을 꺼리거나 술을 피하기 때문에(카훈쇼에는 코점막 등을 파괴하는 알코올성분이 치명적) 일본 국내총생산(GDP)이 1%가깝게 줄어들 가능성도 있다는 연구결과가 나오기도 했습니다. 특수마스크나 콧물약, 안약, 화분제거 전용액 등이 동날 정도이지만 경제효과가 부작용에는 못 미칩니다.

꽃가루병은 생활 모습까지 바꾸고 있습니다. 봄철에는 꽃가루를 피해 문을 닫고 사는 집이나 사무실이 많습니다. 가족 중 카훈쇼 환자가 있을 경우 외출하고 돌아와서는 반드시 집밖에서 옷에서 꽃가루를 털어내고 들어가야 합니다. 꽃가루병은 생후 수개월 만에 걸리기도 합니다. 당연히 봄철에는 공공장소 출입을 극구 꺼리는 카훈쇼 환자들이 많습니다. 식당에서 대접하겠다고 초청할 경우 “뜻은 고맙지만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곳은 꽃가루가 있기 때문에 갈 수 없다.”며 거절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반면 삼나무나 노송나무가 거의 없는 오키나와가 꽃가루 비산기의 휴가처나 노후 생활지로 인기를 끌고 있습니다. 꽃가루 양이 적은 홋카이도 일부 지역도 마찬가지입니다. 오키나와는 ‘꽃가루피난용 별장’도 인기입니다.

꽃가루 침투를 어렵게 만든 특수마스크를 하고 도쿄시내 한 공원을 거니는 시민들의 모습.

4월 중순으로 접어들면서 꽃가루가 큰 고비를 넘겼다고 하지만 여전히 ‘꽃가루 피난용’ 오키나와 관광상품은 인기입니다. 여행사 관광상품 중에는 “삼나무꽃가루가 적은 오키나와로!”라는 슬로건을 내걸어 30%이상의 매출신장을 기록하기도 했습니다.

외국인도 면역력에 따라 차이는 있지만 4년 이상 살면 카훈쇼에 걸리는 경우가 있다고 합니다. 따라서 외국인을 포함, 카훈쇼에 걸리지 않기 위해서는 잠을 많이 자고 운동을 적당히 하고, 술을 삼가야 하는 등의 생활수칙을 지켜야 한다는 게 정설입니다.

전해 여름이 선선했으면 꽃가루 양이 적고, 무더웠으면 꽃가루 양과 날리는 기간이 크게 늘어납니다. 빠르면 12월부터 날리기도 합니다. 올해가 그런 해이지요.

아울러 삼나무나 노송나무, 특히 삼나무를 생각만 해도 진저리치는 사람들이 있을 정도로 삼나무는 카훈쇼 환자에게 공포의 대상입니다. 삼나무가 카훈쇼의 주범으로 지목되는 것이지요. 이 삼나무가 일본에서 집중적으로 조림된 것은 태평양전쟁 이후입니다.

자연의 복수·일본의 재앙이라고 불려

일본에서는 전후 부흥기에 삼림 남벌이 심해 민둥산이 많아졌습니다. 따라서 태풍이나 대설, 호우 때 산사태가 자주 일어났지요. 그래서 일본 정부는 생장이 빠르고, 곧고, 강도까지 갖춘 삼나무를 집중적으로 조림했습니다. 삼나무 식목기술이 발달했던 것도 영향을 미쳤습니다. 일본의 산들을 가보면 수백 년 된 높이 40미터, 밑동둘레 7미터 안팎의 삼나무 거목들이 많습니다.

하지만 삼나무로 집중 조림을 한 뒤 문제점이 속속 드러났습니다. 육림 담당 공무원의 노령화 등으로 간벌이 어려워지는 등 삼림관리가 어려워지고 있습니다. 산세가 험해 간벌작업 자체가 어려운 곳도 많습니다. 건축용 등 소비도 가격이 비싸 저조했습니다. 따라서 삼나무는 현재 일본 전체 인공조림 면적의 44% 정도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이에 따라 봄철이면 임야청에 “삼나무를 없애 달라.”는 항의전화가 쇄도합니다. 담당자들은 “삼림은 물을 저장하고 산사태를 막아주며, 지구온난화를 막아주기 위한 이산화탄소를 흡수하는 등의 좋은 기능이 많아 없애는 건 곤란하다.”고 답변합니다.

그렇지만 카훈쇼가 워낙 심각하다보니 임야청에서는 3년 전부터 꽃가루를 많이 발생시키는 수종을 중심으로 벌목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화분이 적은 삼나무도 적극 개발, 향후 5년간 60만 본으로 늘릴 계획입니다. 올 1월에는 ‘무화분삼나무’도 개발했습니다. 그리고 주택용 등으로 삼나무 소비를 늘리는 방안도 강구중입니다.

카훈쇼는 이처럼 일본의 국민병으로 번지며 자연의 복수, 혹은 일본의 재앙이라고까지 일컬어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아직도 카훈쇼의 인과관계는 정확히 밝혀지지 않았습니다. 삼나무와 노송나무의 꽃가루가 날리는 때 많이 발생하다보니 두 나무와 연관이 깊다는 정도지요. 그래서 일본에서는 꽃가루병이 정말 국가재앙이 되지 않도록, 대책마련을 서두르고 있습니다.

우리나라도 일부 지역에서 생장이 빠르고, 보기에 좋은 삼나무를 가로수로 심기도 했지만 이런 부작용을 일찍 차단하는 노력을 서둘러야 할 것 같습니다.


taein@seoul.co.kr

'Free Opinion' 카테고리의 다른 글

일본 특파원 리포트 6  (0) 2007.03.24
일본 특파원 리포트 5  (0) 2007.03.24
일본 특파원 3  (0) 2007.03.24
일본 특파원 리포트 2  (0) 2007.03.24
일본 특파원 리포트 1  (0) 2007.03.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