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햇볕이 아주 따가웠던 6월 첫째 주 토요일, 제 아이가 다니는 일본 도쿄의 한 구립중학교 체육대회에서 받은‘강렬한 인상’에 대해 전해드릴까 합니다.
한마디로 그 날 체육대회(운동회)는 제게 처음으로 일본의 문화와 정신의 원형을 조금은 이해할 수 있게 해주었습니다. 즉 약자를 철저히 격려하고 배려하며, 뒤쳐진 학생을 내팽개치지 않고 함께 데려가기 위해 작은 힘을 모아 노력하는 일본 교육의 모습이었지요.
특히 약자를 낙오시키지 않고, 강하게 만들어 함께 가는 전형적인 일본의 집단주의가 어떻게 형성되는지의 단초를 확인한 날이기도 했습니다.‘빨간신호 때도 단체로 횡단보도를 건너면 문제가 안 된다.’는 속설도 확인할 수 있었지요. 거창하게 말하면 제가 첫 회에 말씀드린 대로‘일본 힘의 원동력’이 무엇인지도 조금은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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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초·중·고등학생들은 평소 각종 동아리활동 등을 통해 체력단련에 열중한다. 사진은 도쿄도내 한 소학교에서 쉬는 시간 운동에 열심인 어린이들. |
당초 저는 그 날 운동회를 못 볼 뻔했습니다. 지난 회에 소개해드렸듯이 전날 아침 일찍 나고야에 갔다가 도요타자동차를 취재하고, 심야열차로 도쿄로 돌아와 피곤한데다, 그 날은 휴무일이어서 편이 쉬어보려고 했었지요.
그러나 1학년인 아이가 낯설고, 물설고, 말도 잘 통하지 않은 일본에 와 학교생활을 하는데, 그것도 일년 중 가장 큰 행사인 체육대회를 처음으로 한다는데 가보지 않으면 안될 것 같아 학교로 갔습니다. 그것도 개회식과 15개 종목 중 한 종목이 끝난 뒤였습니다.
처음엔 잠시 얼굴만 보여주고 집으로 오려고 생각했었지요. 그런데 그게 아니었습니다. 장거리달리기가 시작되고 있었는데 첫 인상이 너무 강렬했습니다. 1, 2, 3학년 여러 조가 개인 대항 1500m(남학생), 1000m(여학생) 달리기를 하는데 구경온 학부모와 학생들이 1등보다는 꼴찌에게 ‘간바레(힘내라)’를 연호하면서 격려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런 모습은 그 경기가 끝날 때까지 계속 이어졌습니다.
1등보다는 꼴찌에게 '힘내라'
꼴찌에게 박수를 보낸 것 못지 않은 인상적인 모습은 장애학생에 대한 철저한 배려였습니다. 참고로 제 아이가 다니는 학교는 한 학년이 100명 안팎으로, 일반 학생 3학급과 장애인 학급이 1개반이 있습니다. 물론 장애인 학급은 학생수가 5명 안팎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운동회 때는 소아마비, 뇌성마비 등 장애학생도 일반 학급에 배치해 대부분 경기에 참여시켰습니다.
배치만으로 끝나는 게 아니었습니다. 학년 전체의 남-녀학생 이어달리기에 휠체어를 탄 장애인학생이나 뇌성마비 학생, 중증의 소아마비 학생 등이 각 반에 선수로 모두 참여했고, 8명이 발을 묶어 함께 달리기 등 대부분의 종목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장애학생들은 혼자 달릴 때는 끝까지 이를 앙다물고 달렸고, 발묶고 달리기나 이동시에는 동료학생이 부축해 주었습니다.
체육대회에 학생 전원이 낙오되지 않고 참석할 수 있도록 종목이 짜여진 것도 인상적이었습니다. 단체 공집어넣기, 학년 전원 이어달리기, 줄다리기, 각 반별 대표 이어달리기, 지신밟기식 연속달리기, 단체 줄넘기, 8명이 다리묶고 함께 달리기, 전체학생 단체 무용 등 대부분의 종목들이 학생이 빠짐없이 참여하게 돼 있었습니다.
그리고 협동심을 발휘해야만 좋은 성적을 거둘 수 있었습니다. 제 딸아이만 해도 개인이 하는 100m 달리기를 제외하고는 나머지 이어달리기, 지신밟기, 8명이 다리 묶고 함께 달리기, 단체 무용 등 여러 단체 종목에 거의 쉴 새 없이 참여했습니다.
특히 30여명이 함께 하는 집단 줄넘기가 기억에 남았습니다. 잘 아시겠지만 집단줄넘기는 한 사람만 잘못해도 중단됩니다. 두 사람에 양쪽에서 긴 줄을 잡아 돌리고 나머지는 가운데 서서 구호에 맞추어 함께 뛰는 고도의 협동심이 요구되는 경기지요. 그 경기에서 몸이 불편한 장애학생을 일반학생 중 힘이 센 학생이 안고서 함께 줄을 넘는 모습이 보기 좋았습니다. 함께 한 학생들도 싫거나 귀찮다는 모습은 보이지 않았지요.
'집단주의' 일본정신 확인 계기
그리고 개인-단체기록경기에서는 50년 넘게 이 학교의 기록을 보존해오면서 해 마다 신기록이 작성되면 새롭게 추가하는 것도 놀라웠습니다. 조그마한 학교에서 말이지요. 추락한 비행기에서 죽어가면서도 기록을 남긴다는 일본인들의 기록문화의 단면을 확인했다면 지나칠까요. 그 날도 두 개의 신기록이 나왔습니다.
선생님들의 철저한 준비도 대단했습니다. 프로정신이 느낄 수 있었습니다. 우선 체육대회 날짜를 토요일로 잡아 학부모들의 참여를 높이려 노력했고, 실제로 그 날 학부모들의 참석률이 놀라울 정도로 높았습니다. 학생 수 보다 응원하는 학부모와 동네 어린이들의 수가 더 많아 보였으니까요.
체육대회 준비도 한 달 전부터 집요하도록 철저하게 했고, 하루 전에는 수업을 전폐하고 리허설을 했다고 합니다. 비가 올 경우에는 실내로 대체하거나 생략하지 않고, 예비일을 잡아놓았습니다. 장기일기예보를 참고했답니다.
이러한 선생님들의 노력과, 약자를 세심하게 돕는 학생들의 협동심, 무엇보다 충분하고 철저한 사전연습을 통해 이날 오전 8시 반에 시작된 체육대회는 예정대로 오후3시 반에 정확히 끝났고, 운동장 정리는 4시 이후에나 유월의 따가운 햇살과 자욱한 먼지 속에서 끝났습니다.
앞서도 말씀드렸지만 이날의 체육대회를 통해 ‘집단주의’로 통칭되는 일본정신의 원류를 조금은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다만 이 집단주의가 시대에 맞는 것인지, 문제점은 없는 것인지 등에 대한 논란의 여지는 많이 있습니다. 특히 극우세력의 군국주의 부활 움직임과 연결하면 더욱 그렇지요.
아울러 이날 체육대회와 우리 한국의 체육대회 혹은 운동회의 기억을 단순비교하면 무리가 있을 것입니다. 이 곳 학교들은 충실한 교육예산의 지원을 받아 학교 규모가 전교생 300명 내외입니다. 이런 협동심을 발휘할 수 있는 대회 진행이 비교적 수월할 것입니다.
그렇다고 해도 정말 선진적인 교육현장에서는 분명 취할 것이 있었습니다. 그 중에서도 꼴찌에게 박수를 보내고, 약자를 포기하거나 외면하지 않고 집단의 힘으로 함께 데려가려고 하는 모습은 한 번쯤 우리 교육 일선에 계신 분들이나 학부모, 학생들이 참고해 볼 가치는 충분하다고 보였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