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 하순, 이 곳 일본에서는 북한에 납치됐다가 귀국한 일본인 1, 2세들의 ‘대를 이은 수난’ 문제가 단연 으뜸의 화제였습니다. 납치 1세대인 하스이케 가오루(46)씨 부부와 지무라 야스시(48)씨 부부, 그리고 미군 탈영병 출신의 남편 젠킨스씨와 두 딸을 북한에 두고 온 소가 히토미(45)씨도 관심의 대상이었지만, 특히 지난 5월22일 귀국한 하이스케, 지무라씨 부부의 ‘2세대 자녀 5명’에게는 온통 시선이 집중됐습니다.
이들의 부모들이 동서간 냉전대치의 희생양 격으로 지난 78년 여름 20세를 전후해 납치돼 24년을 북한에 살다 2002년 늦가을 귀국하는 시련과 감격(?)을 함께 맛보았지만, 스무살 안팎의 2세 5명은 사회주의 체제 북한에서의 20년 안팎 생활이 하루아침에 부정되고 있는 시련을 겪게 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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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잡지와 신문 등 언론들은 요즘 납치 피해자 1, 2세대들에 대해 뜨거운 관심을 보여주고 있다. 특히 5월22일 귀국한 2세대들의 일본적응 문제에 대해서는 앞으로도 관심이 집중 될 것으로 보인다. |
이들이 귀국한 지도 벌써 열흘입니다. 이들은 지난 5월22일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과 고이즈미 준이치로 일본 총리의 2차 정상회담 합의에 따라 부모의 고향, 일본에 도착한 것입니다. 물론 엄밀히 말하면 귀국이 아니고 첫발이지요.
하스이케 가오루씨 부부의 장녀(22), 장남(19)과 지무라 야스시씨 부부의 장녀(22), 장남(20), 차남(16) 등 5명은 현재 모두 부모의 고향인, 일본 본 섬의 북쪽 니이가타와 후쿠이 지역에 살고 있습니다. 하지만 ‘2세들의 마음의 귀국’은 아직 멀어 보입니다.
영주귀국 여부 북-일관계 진전에 달려
이들의 부친들은 일본 귀환 열흘을 맞아 각각 언론과의 인터뷰를 통해 자녀들에 대한 안타까운 마음을 전했습니다. 한마디로 자녀들은 아직까지도 일본으로의 영주귀국인지, 아니면 북한으로 돌아가는 지도 모르는 채 자신들의 운명을 북-일관계의 진전에, 그리고 부모들의 선택에 맡겨놓은 상태랍니다.
하스이케씨는 기자회견을 통해 자녀 2명이 일본어를 배우겠다는 결의에 차있고, 인터넷에 열중하고 있지만 북한으로 가겠다는 말은 아직 꺼낸 적이 없다고 전했습니다. 물론 북한에 남아있는 친구들이 마음에 걸린다는 말은 종종 하고 있답니다. 일본에 처음에 도착했을 때는 ‘서울에 가고 싶니?’라고 물으면 거절했으나 한국의 TV드라마 ‘겨울연가’를 통해 일본어 학습을 하고 나면서부터는 “서울에 가보고 싶다.”고 말한답니다.
하스이케씨에 비해 지무라씨는 세 자녀 문제에 대한 걱정이 더 많은 듯합니다. 그는 아직까지도 자신들이 피랍자라는 점을 정식으로 밝히지 않았답니다. 자녀들이 눈치껏 알아챌 때를 기다린다는 것이지요. 그는 기자회견을 통해 “아이들의 표정이 밝아지고는 있지만 외출하게 되면 긴장하는 표정이 역력하다. 그러다가 집으로 돌아오면 가족들이 있기 때문인지 밝아진다.”고 2세들의 심리상태를 전했습니다. 지무라씨의 부인은 지난 31일 열린 합동 기자회견에서 "3일전 저녁식사 후 납치문제에 대해 아이들에게 얘기해주었더니 나이어린 차남을 제외하고, 장남-장녀는 눈물이 맺힌 심각한 표정이더라. 하지만 납치문제 자체에는 반신반의하는 모습이었다."고 소개했습니다.
이들이 북한으로 돌아가고 싶은지에 대해선 지난달 22일 평양순안 공항에서 일본으로 출국하기에 앞서 한 방송사와 인터뷰에서 2세대 중 1명이 “일본에 가 부모를 만나본 뒤 공화국(북한)으로 돌아올 예정이다.”고 말한 것으로 한 주간지가 보도했으나 미확인상태입니다.
이들의 이런 심리상태를 고려, 고향 자치단체들은 부모들의 귀국 때와는 달리 대대적인 환영 대신에 소박하게 이들을 맞이했습니다. 일본에 첫 발을 디딘 지난 22일 2세들 중 일부는 불안한 표정을 짓기도 했습니다. 특히 부모의 고향에 갔을 때는 긴장이 최고조에 달한 표정이었습니다. 이후 간단한 인사말 정도의 일본어만 할 수 있는 상태인 2세들은 일본어를 배우면서 성묘도 하고, 동네사람들과 탁구나 농구, 축구를 하면서 일본인으로 새롭게 태어나기 위해 애를 쓰고 있습니다. 이름도 일본식으로 바꾸고...
일본생활에 잘 적응할지 우려 목소리도
그러나 이들이 과연 끝내 일본생활에 잘 적응할지 근본적으로 우려하는 소리도 있습니다. 북한에서 철저한 반일교육을 받았고, 부모로부터 “귀국한 재일조선인”이라고 들었던 그들이 ‘피랍 일본인 2세’라는 사실을 어떻게 받아들일지 문제랍니다. 실제 하스이케씨의 두 자녀는 부모가 피랍일본인이라는 사실을 말해주자 “엄청난 충격을 받은 표정이었다.”고 합니다.
앞으로는 더 첩첩산중이라고 합니다. 이들이 일본어 교육을 받고, 북한과는 전혀 다른 체제인 일본식 교육을 받으면서 과거를 지워버릴 수 있을까요? 그리고 이미 대학을 졸업한 자녀들은 다시 대학에 가야 하는지, 또 재학생은 고등학교나 대학교육을 어디서, 어떻게 받아야 하는지도 현지 지자체의 고민이랍니다. 그들에 대한 경호나 어떤 직업을 가져야 할지도 문제겠지요. 북한에서는 사범대학이나 컴퓨터, 기계공학 분야 등의 엘리트였다지만...
이들의 부모도 고민이 많다고 합니다. 부모들은 최근 이들의 귀국에 대비, 큰 집으로 옮기고 ‘귀국지원본부’의 지원도 받고 있지만 앞으로는 문제가 심각해질 수도 있다는 소식입니다. 생활비와 교육비가 급증할 것이 뻔한테 현재의 소득으로는 힘겹다는 얘기지요.
실제로 귀국한 피랍일본인 부부는 모두 20대 초반(소가씨는 여고시절 피랍)에 납치돼 북한에서 24년이나 살았기 때문에 자산이 전무한 상태라고 합니다. 정부로부터 받는 원조는 ‘납치피해자지원법’에 따른 원조금을 부부 몫으로 월 24만엔 (약 240만원)을 받았었고, 가족이 영주귀국 의사를 표시하면 이 돈을 ‘급부금’으로 바꿔 받게 됩니다. 자녀들이 귀국한 뒤에는 자녀 1인당 1개월에 3만엔씩이 주어지기 때문에 30만엔, 혹은 33만엔을 받게 됩니다.
이 밖에 이들은 시청 등지에서 임시직원으로 일하며 일당 5500엔 정도를 받고 있지요. 대학에서 한글 강사를 하고 있기도 한답니다. 하지만 임시직원으로 일한 수입이 연간합계로 200만엔(약 2000만원)을 넘게 되면 정부원조금이 삭감되기 때문에 근무시간을 조정하고 있는 답답한 상태라고 합니다.
특히 정부 보조금은 5년으로 한정돼 있고, 1년마다 계약을 갱신해야 하는 임시직원의 자리도 불안한 상태입니다. 그래서 정부지원에 대한 불만도 있답니다. 물론 가장 큰 불안은 자녀들의 소프트웨어라 할 수 있는 ‘마음’의 적응문제입니다. 그래서 임상심리사나 정신과의사 등도 나서 일본생활에 대한 적응을 도울 예정이라고 합니다.
이 같은 문제가 지적되면서 지원법에 의해 급부금 지급이 끝날 경우 현지 자치단체가 수익이 훨씬 많고, 안정적인 정식 직원으로 채용하겠다는 뜻을 밝히고 있지만 납치 1세대들의 불안은 여전한 것 같습니다. 따라서 납치피해자지원법 자체를 2006년 개정할 예정으로, 각 자치단체와 내각부의 지원실이 1세대들의 걱정을 덜어주기 위한 개정방향을 검토 중이기도 하답니다.
결국 이들 ‘납치 피해자 2세대의 수난’ 문제는 당사자 개인만의 문제가 아닌 이웃나라 일본 전체가 풀어야 할 큰 국가적 숙제로 보여집니다. taein@seoul.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