鶴山의 草幕舍廊房

Free Opinion

일본 특파원 리포트 6

鶴山 徐 仁 2007. 3. 24. 18:05
접근하기 어려운 후지산
2005-08-25
8759

후지산은 역시 ‘오르기 힘든 산, 접근하기 힘든 산’이라는 사실을 새삼 확인하고 있습니다. 후지산은 정상에 오르기도 어렵고, 올라도 고산지역이라 기상변화가 심하기 때문에 맑은 하늘을 보는 것이 어렵다는 얘기지요. 그래서 천의 얼굴을 가진 후지산이라고도 합니다.

후지산에 오르기가 어렵다는 걸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뉴스가 있어 소개합니다. 인터넷 통신판매사이트를 운영하는 도쿄도내의 한 회사가 8월 24일 내년도의 신입사원 채용 면접시험을 후지산 정상에서 실시, 주목을 끌었습니다.

‘면접등산’에는 대학생 21명이 참가했다고 합니다. 이들은 이날 오전 0시 회사 사장 등과 함께 산중턱에서 정상을 향해 등산을 시도했지만, 도중에 포기한 학생도 있었고 정상에 오른 뒤 지쳐버린 사람을 제외, 일출 뒤 사장과 면접을 한 학생은 11명에 그쳤다고 합니다.

후지산의 일출직전
후지산의 일출

일생일대의 취업문제가 걸려있는데도, 21명 가운데 반 가까이가 오르지 못하거나 올라도 면접을 못 볼 정도로 후지산은 쉽게 접근을 허용하지 않는 산인 것입니다. 회사측은 “일본 제일의 산에 함께 오르면서 협조성이나 생각을 알고 싶었다.”고 밝혔습니다. 채용예정 인원은 3~4명. 취직에 이르는 길이 후지산 등산 만큼이나 어려운 것이지요.

이 밖에도 후지산은 여러 요인으로 정상까지 올라 보기가 어려운 산입니다. 우선 소개 드린대로 1년 12개월 중 7~8월 2개월간만 일반인이 특별한 절차를 밟지 않고 정상까지 올라갈 수 있습니다. 이 때만 개산(開山)을 하는 것입니다. 즉, 시기적 제약이 있습니다.

두 번째가 날씨의 제약입니다. 버스표 예약을 했다가 날씨가 좋지 않으면 취소해야 합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올 해 세 번 후지산을 안내해달라는 부탁을 받았는데, 자동차표가 동나거나 날씨가 좋지 않은 등의 이유로 결국 한차례만 안내등산에 나설 수 있었습니다.

운 좋게 정상까지 올라도 모습을 잘 드러내지 않는 것이 후지산이라고 합니다. 저는 두 차례 후지산 정상에 올랐을 때 모두 날씨가 좋았습니다. 지난해 일출모습은 완벽하지는 않았지만 올해는 완벽한 일출의 장관을 구경도 하고, 사진도 찍어두었습니다.

특히 일본인들은 후지산에서 일출을 볼 수 있는 것을 운수대통 중에서도 최고로 친다고 합니다. 태양신을 섬기는 일본인들이기 때문에 후지산의 떠오르는 태양 ‘오히 사마’를 보고 소원을 빌면 성취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후지산 정상서 신입사원 채용 면접시험

정상에 올라도 문제는 많습니다. 지난 13일 정상에 올랐던 지인의 말에 따르면 얼마나 짙게 구름이 끼었던지 그야말로 수m 앞만 보이고, 그런 날씨가 하산해야 할 오전9시까지 계속돼 끝내 후지산의 위용은 전혀 보지 못했다고 합니다. 사진도 제대로 못 찍었답니다.

그 분의 말. “하레오토코(등산이나 놀러 가면 대부분 현지 날씨가 좋은 남자를 칭하는 말)와 함께 갔어야 했는데요...”라고 했습니다. 그 분은 난생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생각하며 후지산에 올랐지만 결국은 정상의 거대한 분화구나 주변경관을 전혀 못 봤다는 것입니다.

제가 올해 후지산에 오르기 시작한 것은 지난 7월 29일 금요일 밤 10시 30분쯤입니다. 일과를 마치고 도쿄신주쿠에서 고속버스를 타고, 해발 2305m인 후지 5합메(5부능선)에 도착, 오르기 시작했습니다. 지인을 안내하는 등산이었기 때문에 심심하지는 않았습니다.

산을 오리기 시작한 지 1시간 반, 토요일인 30일 오전0시쯤 7부능선 해발 2700m 지점에 올랐습니다. 그믐달이 환상적으로 밝았고, 밤하늘을 가득 메운 별들은 조금 과장을 하면 주먹만했습니다. 별과 그믐달이 피로를 잊게 해주었지요.

오르기를 계속, 오전 4시 30분이 조금 넘어 해가 떠올랐습니다. 정상 바로 아래에서 일출을 맞았습니다. 밤새 구름이 생겼는데 고맙게도 일출의 장관을 보여준 그 20여분간 태양이 구름 속에서 온전하게 모습을 드러내 주었습니다. 사진으로만은 제대로 표현이 안됐습니다.

후지산의 분화구
후지산정상의 붐비는 사람들

후지산에 오르는 게 쉽지 않다는 것도 확인했습니다. 저는 20년 정도 등산을 해서인지 문제가 없었지만 지인은 잠이 와서인지, 아니면 산소가 부족해서인지 자꾸 몽롱하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준비해간 산소를 들이키게 하고, 이끌어 주면서 정상까지 올랐습니다.

특히 힘든 것은 올라간 방향의 정상에서도 분화구의 정반대에 있는, 명실상부하게 일본 최고봉인 후지산 검봉(3776m)까지 가는 것이었습니다. 지인에게 계속 산소를 흡입시키고, 짐은 제가 모두 들고 끌다시피 해서 검봉에 오른 시간이 오전 6시 20분이었습니다.

그때서야 지인은 얼굴이 밝아지며 무척 좋아했습니다. 그렇게 기뻐하는 얼굴. 순번을 기다려 사진을 여러 장 찍어달라며 좋아하던 모습은 자연 그대로의 평화로움이었습니다. 하지만 지인의 고산병이 염려돼 서둘러 데리고 하산을 한 것은 조금 아쉬웠습니다.


고산병 공포…일출 보기도 무척 힘들어

고산병을 우려한 것은 검봉을 오르기 직전 60대 여성이 고산병으로 온몸을 떠는 모습을 보았기 때문입니다. 일행이 안절부절 못하고, 전문가를 부르고, 산소를 동원했지만 그 여인은 제가 정상에서 내려올 때까지도 20여분간 온몸을 떨고 있었습니다. 오싹해질 정도였습니다.

다행인 것은 그 다음날 뉴스에 그 사람 소식이 없었습니다. 다음날 뉴스에는 그 날 일본 북알프스 고산에서 2명의 60대가 심장마비 등으로 숨졌다는 내용이 있었거든요. 후지산 정상에서 사고가 없었으니, 뉴스가 되지 않았겠지요. 눈으로 확인한 고산병, 정말 으스스했습니다.

앞서 7월 중순에는 독일인 1명이 혼자 등산을 하다가 후지산 정상 600여m 아래 부분서 숨진 채로 발견된 일이 있었습니다. 그 뉴스가 영자신문과 일부 일본 신문에 보도됐지요. 그래서 그런지 올해는 지난해와 달리 후지산에 오르는 서양사람들이 적다는 느낌이었습니다.

지난해도 후지산의 환경문제를 잠깐 언급했었지만 이 번에도 후지산이 잠깐 동안의 개산에도 인간이 다녀간 흔적으로 신음하고 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자신의 쓰레기는 자신이 가져가라고 계도하지만 역시 버려진 것도 적지 않았습니다.

인상적인 것은 화장실 요금입니다 7부능선은 한 번 이용에 100엔 이었습니다. 껌이 200엔, 1회용 커피 한 잔 400엔, 나무지팡이 1000엔. 비교가 되지요? 8부능선 화장실도 100엔이었지만 정상의 화장실은 200엔이었습니다.

8부능선까지는 화장실 요금을 자율적으로 냈지만 정상은 암모니아 냄새가 나는 곳에서 관리인이 직접 받았습니다. 사람을 못 믿는 것이지요. 내려오는 길 6부능선 화장실은 환경보전 비용을 자율적으로 내게 되어 있었습니다. 후지산 화장실은 아직도 일부를 제외하고는 재래식이라 암모니아 냄새는 숨쉬기 어려울 정도로 지독했습니다.

생명의 위대함도 확인했습니다. 정상에서 잠시 쉴 때 기온이 4도인데도 어디선가 벌이 날아와 윙윙거렸습니다. 7부능선 부근까지만 있는 고산식물들이 꽃을 만개, 꿀을 따기 위한 벌들이 굉장히 많았습니다. 꿀벌보다 2배 정도의 크기였고, 쏘였을 때 통증이 격렬했습니다.
후지산은 멀리서 보면 한없이 부드러워 보이지만 실제로는 거칠었습니다.


taein@seoul.co.kr

악마의 유혹 타니가와다케
2005-0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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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魔)의 산’, ‘악마의 산’, ‘죽음의 산’. 일본 군마현과 니가타현 경계에 솟아 있는 타니가와다케(谷川岳. 해발 1977m)에 붙여지는 으스스한 별명입니다. ‘악마의 유혹’이라고도 불립니다. 타니가와다케가 악마처럼 사람을 유혹한다는 뜻이라고 합니다.

수식어가 너무 거창한 타니가와다케. 그 유래를 살펴보면 이해가 갑니다. 타니가와다케는 악마처럼 많은 사람들을 집어삼켰습니다. 일본에서는 1950년대 중반부터 등산붐이 거세게 일었습니다. 특히 젊은이들을 중심으로 고난도의 암벽타기 도전붐이 일면서 타니가와다케의 동쪽 연봉 이치노쿠라사와가 인기를 끌었습니다.

문제는 일본에서 제일 험한 암벽이라는 의미의 이치노쿠라사와에서 생깁니다. 이곳은 해발 1974m로 타니가와다케의 동생격인 봉우리에 달린 사면입니다. 큰 암벽은 넓이 800m, 높이 300m의 수직암벽도 있다고 합니다. 1959년 두 명의 젊은이가 처음 정복할 때까지는 전인미답의 콧대 높은 암벽이었답니다.

타니가와다케의 웅장한 자태

이 이치노쿠라사와 일원에는 높이 200m급의 암벽루트만 무려 50여개나 되고, 암벽의 난이도는 초보자용에서부터 최고난도까지 다양한 것이 있어 암벽등반가들을 유혹한다고 합니다. 그런데 장비와 등반기술이 부족한 상태에서의 무모한 도전의 결과 해마다 수십 명이 암벽등반이나 타니가와의 깎아지른 능선등반을 하다가 조난돼 숨지는 사고가 잇달았습니다.

이후 1966년까지 무려 455명이 이치노쿠라사와 등 타니가와다케 산악군 일원에서 숨지자 암벽이 위치한 군마현이 조례제정에 나섭니다. ‘타니가와다케 조난방지조례’입니다. 조례가 제정된 1966년에만 37명이 숨졌듯이 더 이상 방치할 수 없는 지경이 된 것이지요.

조례는 상당히 엄격합니다. 입산자들에 대해서는 등산계획서를 제출하게 했습니다. 조난사고를 방지하기 위해 주소, 이름, 성별, 소속단체는 물론 등산경력, 등산계획일정, 장비와 식량, 비상연락처 등을 소상하게 적도록 했습니다.

이를 제출하고 등산계를 받은 뒤 등산 중 지도원이 제출을 요구하면 의무적으로 제출하도록 했습니다. 하지만 이후에도 사망자는 매년 속출했고, 근년에는 그나마 줄어 2003년에는 3명이 조난당해 사망했습니다.

해마다 수십명씩 숨진 ‘죽음의 산’

타니가와다케의 악명은 수년전 일본산악회 회장도 이 곳에서 숨졌다는 것에서도 알 수 있다고 합니다. 타니가와다케. 봄부터 여름까지는 곳곳의 거대한 폭포들과 만년설이 사람을 압도합니다. 가을에는 단풍이 황홀할 정도라고 하고, 겨울은 깊이를 알 수 없게 눈이 내린다고 합니다.

이처럼 사시사철 아름다운 모습을 간직한 타니가와다케에 일본의 열혈 산악인과 등산객들이 몰려들어 암벽을 타다가, 빙벽을 타다가, 그리고 깎아지른 듯한 능선 등산을 하다가 지금까지 800명 가까운 생명이 조난사를 당했습니다. 여기저기 즐비한 위령비들.

하지만 오늘도 타니가와다케에 사람들은 계속 도전을 하고 있습니다. 좀 더 발달한 장비와 등산기술로 ‘악마처럼 유혹하는’ 타니가와다케를 찾는 것이지요. 그 타니가와다케의 정상에서 맑은 날 북쪽을 보면 동해바다가 보인다고 합니다.

그토록 도도한 아름다움을 자랑한다는 타니가와다케에 8월 마지막 토요일 도전해보았습니다. 새벽4시 일행은 버스로 도쿄를 떠났습니다. 하지만 타니가와다케로 가는 길은 순탄치 않았습니다. 4시40분, ‘꽝’ 소리와 함께 차가 흔들려 갓길에 차를 세웠습니다.

점검결과 뒷바퀴 안쪽 타이어 하나가 펑크 났습니다. 침착한 운전기사분. 차를 몰고 휴게소로 갔지요. 하지만 그 휴게소에는 정비소가 없었습니다. 암담했지요. 주유소에서 대형 잭을 빌려와 볼트를 풀려고 했지만 꿈쩍도 안 해 점점 난감해졌습니다.

타니가와다케의 정상

여기저기 전화로 이동정비소에 물어봐도 토요일 새벽에 버스의 바퀴를 수리해 줄만한 곳은 없었습니다. 그런데 궁하면 통한다고, 일행 중 과학적인 사고를 하는 한 분이 볼트를 돌리는 방향이 잘못되었다며 방향을 전환, 4명 정도가 힘을 모아 드디어 볼트가 움직였습니다.

이후에도 난관이 몇 차례. 옆에 있던 다른 버스운전기사분에게 도움을 요청해 난관을 뚫고 10명의 힘과 지혜를 모아 스페어타이어로 수리를 마친 것은 1시간20분이 지나서였습니다. 특히 운전기사분은 온몸이 땀범벅. 긴장이 풀린 인솔자분이 아침을 한 턱 쏘았습니다.

하산길은 수백미터 낭떠러지 ‘아찔’

예정 보다 1시간도 더 늦게 다시 타니가와다케로. 그런데 아뿔싸. 제법 굵은 비가 내렸습니다. 일기예보는 햇빛이 쨍쨍이었는데. 다행히 오래지 않아 비는 그치고 8시 25분 타니가와다케 등산로 입구인 해발 750m의 로프웨이 타니가와도아이구치역에 도착했습니다.

1000엔을 내고, 6인승 로프웨이에 탄 뒤 10여분. 일행은 순식간에 해발 1321m인 텐진다이라역에 내렸습니다. 스키장인 이 곳에서는 리프트를 이용해서 등산로 입구까지 갈 수 있었지만 우리는 걸어서 본격 등산이 시작되는 텐진산 정상으로 갔습니다.

그런데 텐진산 정상 부분에 신기하게도 약수터가 있었습니다. 양도 매우 많아, 지하수가 솟아오른 것으로 보이는 물줄기는 어른 엄지손가락만큼이나 됐습니다. 그래서 일본인들은 이 곳을 신성한 곳으로 여겨 신사를 만들어놓았습니다. 연못도 있었습니다.

여기서부터 본격적인 타니가와다케 등산. 어린이에서부터 할머니-할아버지까지도 쉽게 오를 수 있는 등산로 였습니다. 그러나 오를 때 날씨가 좋지 않아 정상부분은 구름 속에 있고, 멀리 능선들이 구름 속에 있다가 잠시 모습을 드러내곤 했습니다. 그리고 중간의 피난소에 적설량을 쉽게 알 수 있도록 2m까지 재는 잣대가 있는 것이 인상적이었습니다.

그리고 등산길이 분명 3㎞밖에 안 된다고 했지만 텐진산에서 타니가와다케 정상까지는 무려 2시간 40분이 걸렸습니다. 올라도 올라도 그 자리인 것 같았고, 끝없는 산죽밭을 헤치고 구름속의 타니가와다케토마노미미(1963m), 타니가와다케오쿠노미미(1977m-주봉-토마노미미에서 20분정도)에 겨우 도착했습니다. 타니가와다케는 일명 두귀(미미)봉입니다.

하지만 도도한 타니가와다케는 제 모습을 보여주지 않았습니다. 구름속. 동해바다를 보는 꿈은 무산. 11시 40분. 점심을 먹는데 갑자기 부슬비가 오락가락. 그래도 도시락은 꿀맛. 기념촬영을 하고, 12시 10분 하산시작. 이 때 순간적인 논란이 있었습니다.

올라왔던 평이한 길로 가느냐, 아니면 험하지만 색다른 다른 길로 가느냐. 소수가 왔던 길로 가자고 했지만 결국 “어떻게 같은 길로 하산하느냐.”는 강경론이 승리, 험하고 화끈한 하산길을 택했습니다. 하지만 이 길은 등산경력 20년인 저도 처음 경험하는 험한 길. 좌우가 수백m 낭떠러지이고, 앞도 낭떠러지 걸어서 2시간 반이나 걸리는 험로.

워낙 험해서 다리를 부들부들 떨며 전진을 못하는 사람들 때문에 정체가 됐습니다. 괜히 이 길을 택했다며 후회들이었습니다. 앞서가던 일본 젊은이 3명. “무섭다. 술이 먹고 싶다.”면서 안절부절. 우리 일행 중에서도 2명이 벼랑에 몸이 3분의1정도 빠졌다 올라오는 아찔한 순간.

오후3시30분 겨우 하산했습니다. 아찔했었지만 너무 보람찼던 기억들. 그리고 조금 쉰 뒤 도쿄로 돌아왔습니다. 혹시 타니가와다케에 가고 싶은 분들이 있다면 웬만하면 로프웨이를 타고 가서 평이한 등산로로 올랐다 그 길로 내려오시길 권합니다. 전문가분들이야 다르시겠지만….


taein@seoul.co.kr

재팬드림은 없다
2005-09-15
8604

재팬(일본)드림을 꿈꾸며 낯설고 물설은 일본땅에서 불법체류자의 불안감을 안은 채 생활하는 한국인들을 도쿄에서 적지 않게 만날 수 있습니다. 지금도 재팬드림을 꿈꾸며 불법체류자에 합류하는 사람이 한달 300명 안팎이라고 파악됐습니다. 그러나 재팬드림은 없습니다.

도쿄의 외교소식통들에 따르면 일본은 불법체류자가 20~30년을 거주해도 적발되면 반드시 추방시킨다고 합니다. 물론 극소수의 예외조치는 있지만, 걸리면 끝장이라고 합니다. 처음 적발됐을 때는 그래도 추방이지만, 재적발이면 실형도 살게 됩니다. 구제방법이 없습니다.

한 외교소식통은 “아메리카에서는 아메리칸드림을 실현할 수 있지만 일본에서는 절대로 있을 수 없다. 20여년을 불법체류하다가도 자녀 교육문제 등으로 불법체류가 발각되면 여지없이 추방된 사례가 있다. 사실상 예외는 없다.”고 전합니다.

일본당국은 물론 자수할 경우는 출국시킨 뒤 1년 유예기간이 지나면 재입국할 수 있도록 한다는 조치를 발표했지만, 대부분의 불법체류자들은 이 조치를 믿을 수 없다면서 자수를 피한다고 합니다.


도쿄의 관문 도쿄역을 공중에서 찍은 광경.

이처럼 불법체류자에 대해서는 가혹한, 예외없는 조치를 취하고 있기 때문에 일본에 불법체류하는 많은 한국인들은 생활을 하다가, 자살하거나 살인사건에 연루되는 사례도 적지않다고 합니다. 노숙자가 되기도 하고….

일본내 불법체류 한국인은 꾸준히 줄고 있습니다. 법무성 자료에 의하면 1999년 6만 2557명, 2001년 5만 6023명, 2002년 5만 5164명, 2003년 4만9874명, 2004년 4만 6425명, 그리고 올 1월1일 현재는 4만 3151명이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이런 통계에는 위변조 여권으로 입국했다가 역시 다른 위변조 여권으로 출국한 사람 등도 포함되어 있기 때문에 실제 불법체류자는 이 보다는 상당히 적을 것이라는 것이 외교소식통의 설명입니다. 하지만 국내 개인정보보호법 때문에 실태파악이 어렵다고 합니다.

특히 불법체류 한국인 중에서는 여성의 비율이 높아 올해 4만여명 중 2만 7781명이 여성이었다고 합니다. 일본내 전체 불법체류 외국인은 올해의 경우 20만 7299명으로, 그 중 한국인이 차지하는 비중은 20.8%라고 합니다. 수년간 20%전반의 비율이었다고 합니다.

20~30년 거주해도 적발되면 반드시 추방

이런 불법체류 한국인중 지난해 강제 출국자는 7782명으로 이 중 여성이 5001명이나 되었다고 합니다. 강제추방자는 1999년 1만 5665명, 2001년 9952명, 2002년 9656명, 2003년 7877명이었습니다.

출입국과 관련해 입국거부된 한국인도 적지 않습니다. 2000년 2579명, 2001년 2525명, 2002년 2459명, 2003년 2290명, 2004년 3309명이었고, 위변조 여권 등으로 적발된 한국인은 2000년 254명, 2001년 266명, 2002년 316명, 2003년 290명, 지난해 422명이었습니다.

이처럼 일본내에 불법체류 한국인의 경우 구제를 호소하는 사람이 많다고 하지만 정부차원에서 해 줄만한 조치는 현재는 없다고 합니다. 일본 정부가 워낙 입장이 강경하기 때문이지요.

그래서 불법체류 한국인들은 약점 투성이입니다. 특히 젊은 여성들의 경우 약점을 잡힌 일본생활을 하다가 막다른 골목으로 몰려 자살하는 사례도 적지 않습니다. 남성도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최근 한 일본인이 자신의 집 앞에 쓰러져 있는 30대 후반의 걸인을 발견했습니다. 그가 목욕을 시키고 밥을 먹인 뒤 인근 캡슐호텔에 재웠는데 말을 시켜보니 정신이 오락가락하는 한국인이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도쿄 한국총영사관에 인도했습니다.

영사관측이 그 남자가 소지한 여권 등으로 조사하자 그 사람은 88서울올림픽 다음해인 1989년 재팬드림을 꿈꾸며 일본에 입국, 불법체류하며 각종 아르바이트나 노동판을 전전하다 심신이 쇠약해져 부랑인이 되었다는 게 확인됐습니다.

그 사람은 결국 이틀간 영사관에서 숙소와 식사를 제공받은 뒤 무려 17년만에 “죽은 줄만 알았다.”며 반기는 70대 노모에게 인도됐다고 하지만 몸도 마음도 정상적인 상태는 아니었다고 합니다. 재팬드림의 비참한 결말이었지요.

올 8월 집 부근에서 자살한 홍모씨(44.여)의 사연도 딱합니다. 홍씨는 일본인과 결혼, ‘일본인의 배우자’ 자격을 얻었으나 최근 이혼, 혼자 살다가 자살했습니다. 일본인 남편과의 생활에서 심한 정신질환을 얻어 수차례 자살을 시도했었다는 주위의 증언입니다.

홍씨처럼 일본인과의 계약 결혼 등으로 재팬드림을 꿈꾸는 유흥업소 종사 여성들이 적지 않지만 약점이 많기 때문에 모든 것을 빼앗기고, 매를 맞는 등의 비참한 생활을 하다가 자살로 이르는 경우가 많은 것으로 파악되고 있습니다.

막다른 골목 몰려 자살하는 사람 속출

그나마 자살자중에는 한국에서 가족이 찾아와 시신을 인수해가는 경우도 있지만 “나는 그런 자식이 없다.”며 인수를 거부하는 경우는 일본 지자체가 화장, 유골만 보관하게 돼 60년전의 일제시대처럼 ‘고혼-원혼’으로 일본을 떠도는 영혼들이 적지 않습니다.

유흥업소에서 일하던 김모씨(54.여)는 2005년 5월 자신의 업소에서 평소부터 알고 있던 불법체류 한국인 남자 김모씨가 휘두른 흉기에 찔려 사망하기도 했고, 밀항으로 일본에 건너온 장모씨(47)는 2004년 2월 동거녀와 싸우다 등유를 뿌리고 분신자살했습니다.

1992년 일본에 건너와 불법체류하면서 막노동을 하던 이모씨(67)는 입국관리국에 자진 출두해 귀국하려고 수속을 완료했으나 귀국하기 하루 전 공원에서 목을 매 자살했습니다.

1996년 3월 일본에 입국한 뒤 계속 불법체류하던 김모씨(42)는 2005년 1월 종업원으로 일하던 불고기집 2층에서 역시 불법체류자인 B여인과 치정문제로 싸우다 칼에 찔려 사망했습니다. 김씨가 다른 여자와 사귄다면서 B씨가 칼을 휘두른 것이지요.

일본에서 유흥음식점을 경영하며 단기체류자격으로 한국과 일본을 빈번히 드나들던 이모씨(40)는 2005년 3월 자신이 경영하던 주점에서 목매 자살했습니다. 한국 유흥음식점이 많은 우에노에서 클럽을 경영하다 심각한 경영난에 빠졌기 때문이었습니다.

불법체류 하다가 몸이 아프면 여지없이 한국행입니다. 송모씨(41.여)는 1998년 단기관광비자로 일본에 건너와 사실상 이혼한 뒤 한국에 있던 남편과 사이에 태어난 딸(중3)과 함께 불법체류하다 급성뇌출혈로 입원, 전신마비증상으로 귀국조치 됐습니다. 유흥주점에서 손님을 끌기 위해 자비로 술을 대다가 많은 빚을 져 고민중 쓰러졌다는 것입니다.

이처럼 자살이나 교통사고 등으로 사망한 불법체류자는 2003년 24명, 2004년 23명이었습니다. 절도, 강도, 폭행, 상해 등 각종 사건 관련자들을 포함하면 2003년 151명이고 2004년에는 150명이었다고 합니다.

관련 외교소식통들은 “불법체류자도 국민이기 때문에 보호에 전력을 기울인다.”면서도 “일본측이 이 문제에는 너무 엄격하기 때문에 말로가 비참하다. 일본에 불법체류하면 반드시 응징 받는다는 것은 알아야 한다.”고 강조합니다.

일본 정부관계자나 아는 일본인중에 취재를 하다보면 은근슬쩍 불법체류 한국인 얘기를 꺼내기도 합니다. “경제는 선진국권인데 왜 불법체류자가 많냐”는 것입니다.

taein@seoul.co.kr

사기꾼이 들끓는다
2005-09-26
11240

지난해부터 일본에서는 판단능력이 떨어지는 고령자 등 사회적인 약자를 상대로 한 악질적인 사기사건이 빈발, 사회적인 과제로 떠올랐습니다. 기업형 사기집단도 생기며 피해가 확산되자 정부차원에서 대책마련에 나섰지만 사기수법은 갈수록 지능적으로 변하고 있습니다.

 제가 사는 곳에도 사기꾼의 손길이 미쳤습니다. 이달 초 제가 살고 있는 도쿄 시내의 맨션(아파트) 우편함에 한 통의 서류가 들어있었습니다. 흰 봉투 안에 그럴싸한 인사말과 함께 ‘입주자 제위께’라는 안내장이 들어있었습니다.
 

▲ 한 노인시설에서 장기를 두는 노인들. 일본에서의 사기는 노인들을 상대로 한 경우가 많다.

일본의 맨션은 주로 거대 부동산회사들이 관리해주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런데 안내장에는 그 ‘회사와 은행간의 거래에 폐해가 생겨 임대료와 주차요금, 관리비 등의 송금시 계좌의 거래가 일시 중단됐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부득이하게 9월분과 10월분에 한해 임대료 등을 다른 은행의 계좌로 입금하라는 것이었습니다. 은행은 달랐지만 지점도 제가 거래하는 부동산회사와 같았고, 은행계좌도 실명이어서 믿으려 했지요. 조기에 문제가 된 계좌도 복구한다는 내용도 있었습니다.

 예금주도 나와 있었고, 거듭거듭 미안하다는 표현도 있어 자칫 속아 넘어갈 수 있는 내용이었습니다. 그러나 저 같은 경우 예금주가 회사가 아닌 개인으로 변했고, 알리는 사람이 맨션관리조합이라는 점을 수상하게 생각했습니다.

 특히 한 달에 거액을 납부하는 방법에 변화가 온 사안에 대해 직접 방문도 없이 봉투에 넣어 통보하고, 관리조합의 직인도 없는 등 허술한 점을 발견, 일단 내지 않기로 작정했습니다. 물론 납부기일 직전에 관리회사로 확인은 해보려 했지요.

 그런데 역시 사기사건임이 며칠 뒤 드러났습니다. 관리회사에서 “임대료 납부 계좌이체 통장번호가 변경되었다는 안내문을 받았다는 입주자의 연락이 있는데, 변경된 것이 없습니다. 향후에도 유사한 일이 있으면 즉시 신고해주세요.”라고 급한 연락이 있었습니다.

 이처럼 각종 사기사건이 연령과 계층, 지역을 초월해 확산되고 있어 문제가 심각합니다. 뛰는 경찰당국에 나는 사기꾼들을 실감시키는 사건들이 줄을 잇고 있습니다. 지난해 ‘오레오레’ 사기사건에 이어 올해는 집을 수리 안하면 곧 무너진다는 리폼(개?보수)사기가 극성입니다.

‘임대료 다른 은행 계좌로 입금하라‘ 안내장

 인터넷상의 사기사건도 새로운 과제로 떠올랐습니다. 최근 인터넷 옥션에서 상품을 낙찰 받아 대금을 계좌이체해도 상품이 도착하지 않는 피해가 급증하고 있습니다. 올 상반기 일본 경찰에 신고된 피해건수만 8722건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 보다 20% 가깝게 늘었습니다.

 인터넷 옥션상의 사기는 ‘악질적인 출품자’들 다수가 신원확인이 어려운 인터넷카페를 이용하는 것으로 파악되고 있어, 인터넷카페의 업계단체는 9월 가맹점들에게 운용지침을 개정, 이용자의 이름과 주소 등을 등록하는 회원제를 도입하도록 권고하고 나섰습니다.

 올해 들어 크게 문제되고 있는 사기는 인지증(치매 등) 노인 등을 상대로 한 악질적인 기업형 리폼사기입니다. 일본 경시청은 지난 6월 주택 개·보수회사인 ‘S사’(도쿄 소재)의 사원 4명을 사기 및 특정상거래법 위반혐의로 긴급 체포했습니다.

 경찰에 따르면 S사의 모회사를 정점으로 S사이스트, S사웨스트 등 그룹을 형성, 일본 전역의 5400여명에게 리폼사기를 벌여 1백15억엔(약 1000억원)의 부당이득을 취했습니다. 주 표적은 단독주택에서 혼자 혹은 부부만이 사는 고령자들이었습니다.

 이들은 2002년부터 고령자들이 사는 주택을 무료로 점검해 주는 척하며 ‘지진이 발생하면 집이 무너질 수 있다.’는 등의 말로 불안감을 조성한 뒤 리폼 계약을 맺고, 불필요한 공사를 벌여 1건당 최소 수십만엔에서 수백만엔을 뜯어냈습니다.

 이들은 한군데 공사가 끝나면 집안의 또 다른 문제점을 드는 수법으로 새 업체와 추가 공사 계약을 맺도록 하는 ‘돌림리폼’도 서슴지 않았습니다. 올 3월에는 사이타마현에서 인지증에 걸린 80세, 78세 자매가 무려 19개의 업자로부터 5000만엔 이상의 불필요한 주택리폼 계약을 맺어 전재산을 털린 사실이 언론에 소개되면서 사회에 충격을 주기도 했습니다.

 일본 언론들은 S사 외에도 수십개의 조직이 회사명과 소재지, 대표자 등을 바꿔가며 판단력이 약한 고령자를 상대로 사기행각을 벌이고 있는 것으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경시청 국민생활센터에 접수된 작년 한해 리폼사기 상담건수가 8500여건 이었습니다. 상담자는 대부분 60세 이상의 고령자였습니다.

치매노인등 상대로 기업형 리폼사기도 극성

 앞서 지난 수년간 일본사회는 ‘오레다요. 오레’(저예요, 저) 사기로 떠들썩했습니다. 약칭 오레오레 사기는 사기꾼들이 홀로 있는 고령자 집에 전화를 걸어 빠른 말로 ‘저예요, 저’ 하며 아들이나 손자인 것처럼 가장한 뒤 “교통사고를 냈다. 합의금이 필요하다.”라고 둘러대며 통장에 돈을 보내달라고 요청하는 수법을 구사합니다.

 오레오레 사기는 언론과 경찰의 계도 등으로 최근 수그러들었지만 한때 매달 1000건(미수 포함)가량 발생해 1인당 평균 피해액만 2백만엔이 넘을 정도로 심각했습니다. 언론들은 “심리적으로 불안한 고령자들을 돌볼 수 있는 체제 구축이 시급하다.”고 지적합니다.

 이처럼 노인상대 사기사건이 많은 것은 현재의 일본 노인들이 상대적으로 젊은 세대에 비해 부자가 많기 때문이라는 것이 일본인들의 설명입니다. 현재의 노인들은 거품경제 때 저축을 통해 돈을 키웠고, 연금혜택도 충분히 받아 현금이나 저금이 많다는 것입니다.

 이처럼 부자노인들이 많다 보니 ‘가난한 젊은이’들이 부자 노인들의 등을 치는 사기범죄가 들끓고 있다는 것입니다. 상황이 심각해지자 일본경찰은 송금처인 은행과 우체국 등에 ‘오레오레 사기 주의’ 등의 안내장을 붙이는 등 안간힘을 쓰고 있습니다.

 하지만 사기꾼들은 한 발 더 나가고 있습니다. 아예 경찰관이나 보험회사 직원을 사칭하고 있습니다. 아들이 교통사고를 일으켜 경찰서에 와 있으니 합의금을 보내라는 수법입니다. 전화를 바꿔 받은 가짜 아들은 “죄송합니다.”라는 말만 되풀이하며 흐느끼고, 부모들은 경찰서라는 말에 큰 의심 없이 지정된 계좌에 돈을 송금하는 것이지요. 의사 아들을 둔 노인에게는 “의료사고를 냈다.”며 급히 돈을 송금하라고 사기 치는 사건도 있었습니다.

 이 같은 사기사건들은 1991년 거품이 붕괴되면서 시작된 장기불황과 구조조정을 거치며 일본사회의 젊은이들 중 정상적으로 살기 어려워진 사람들이 늘어난 반증이란 해석도 있습니다. 일본의 실업률은 올해 4%대로 높은 수준입니다.

 사기사건이 증가하고 있다는 점은 일본 정부의 통계로도 드러납니다. 올해 총무성 통계국 자료에 따르면 2001년 4만 3104건이던 사기사건은 2002년 4만 9482건으로 늘었고 2003년에는 6만 298건으로 급증했습니다. 같은 지능범죄인 위조사건도 2001년 7671건이었으나 2002년에는 1만 883건으로, 2003년에는 1만 2103건으로 크게 늘었습니다.

 세계2위 경제대국 일본. 91년 거품붕괴 뒤 불황이 장기화되면서 그 후유증의 하나로 각종 사기사건도 꼬리를 물고 이어지는 것 같습니다.

taein@seoul.co.kr

딜레마에 빠진 ‘국세조사’
2005-10-07
16641

일본에서는 2005년 10월 1일을 기준으로 국세조사(國勢調査-센서스)가 진행 중입니다. 인구, 세대, 산업구조 등의 실태파악과 국가시책의 기초자료를 얻기 위해 1920년부터 5년마다 실시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조사의 문제점이 속속 노출되고 있습니다.

 도쿄 한 지역의 조사원인 70대 할머니. 이 할머니는 베테랑입니다. 국세조사만 벌써 5번째라고 합니다. 그런데 이 분이 담당한 92세대 중 20여세대만 직접 조사표를 전달할 수 있었습니다. 나머지는 우편함을 통해 배달, 기입하도록 할 수밖에 없었다고 하소연입니다.

 그 분은 “다시는 국세조사를 하지 않겠다.”고 합니다. 조사가 너무 어려워졌기 때문입니다. 지금까지의 4번 조사는 어렵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번 조사는 지난 4월 ‘개인정보보호법’이 시행된 뒤 첫 조사인데다, 프라이버시 문제가 강조되며 극히 어려워졌다고 합니다.

▲ 주말오후 신주쿠의 인파.

이런 한계를 인식, 당국은 그 지역에서 오래 산 나이가 지긋한 유지들을 조사원으로 투입하고 있지만 “분명 집 안에 사람이 있는데 초인종을 눌러도 응답을 안한다.” “다음에 오라” 는 등의 말만 되풀이 하는 등 극도로 조사가 어렵다고 합니다. 조사거부는 부지기수랍니다.

 64세의 남성은 도쿄 스기나미구 토박이 조사원입니다. 이분도 “사람이나 TV소리가 들리는데도 응답하지 않는 경우가 허다하다.”고 어려움을 토로했습니다. 불법체류자(일본내 20여만명 추정)가 많은 것도 조사가 어려운 한 요인으로 꼽았습니다.

 74세 여성조사원은 약120 세대를 담당하고 있습니다. 4회 이상씩 방문했지만 직접 만난 세대는 20%정도에 그쳤습니다. 특히 5년전 단독주택 위주로 조사할 때는 비교적 편하게 조사했지만 공동주택이 늘어나며 어려워졌다고 합니다.

 독신생활 세대나 주택 입구에 자동잠금장치를 갖춘 맨션(아파트)의 증가도 조사를 어렵게 만들고 있다고 합니다. 독신생활의 경우 부재중인 경우가 많아 정확도를 높이기 위해 직접 조사표를 건네주는 것이 어렵다고 합니다.

 자동잠금식 맨션은 조사원이 방문판매원으로 오인 받아 맨션에 들어가는 것 자체가 어렵게 만들었습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총무성이 동성에서 발행한 조사원증을 목에 걸고 방문하도록 지도하지만 조사원 사칭 범죄까지 일어나면서 속수무책이라고 합니다.

이러다 보니 센다이시 한 구에서는 20세에서 78세까지의 조사원 81명이 조사원 교육을 마친 뒤 본격조사기간에 불분명한 이유로 사퇴, 시와 구 직원들이 조사표를 배포하고 회수하는 어려움을 겪기도 했다고 합니다. 시-구측은 조사의 어려움으로 인해 사퇴한 것으로 보고 있으며, 시-구의 업무차질을 우려하기도 했습니다.

프라이버시 문제등으로 걸림돌 많아

 이런 현실과 관련 총무성은 “갈수록 조사는 어려워지고 있지만, 조사는 중요하다. 협력해 달라.”고 호소하고 있습니다. 또 프라이버시 때문에 조사내용 공개를 꺼릴 경우 조사표를 봉투에 넣고 봉인한 상태로 제출하는 방식도 도입했습니다. 이 경우 문제가 있으면 지자체가 추가 조사합니다.

 이처럼 일본의 국세조사는 일본내 외국인을 포함, 모든 거주자를 상대로 이뤄지고 있습니다. 기초자치단체의 의뢰를 받은 조사원이 각 세대에 조사표를 배포, 세대원이 연필로 기입한 것을 회수하는 것으로 끝납니다. 봉인하지 않은 조사표는 현장서 조사원이 확인, 수정합니다.

일본 국세조사표 뒷면과 작성방법

전국에서 4900여만 세대의 조사를 위해 약85 만명의 조사원이 동원됐고, 한 사람 당 맡은 조사를 수행하면 9만엔 정도의 수당을 받게 됩니다. 이런 인건비를 포함해 조사를 위해 약 650 억엔의 국비가 소요된다고 합니다.(100엔은 930원 정도)

 이처럼 거대한 국세조사가 부실할 징후가 속속 포착되고 있습니다. 10월 1일 이전에 조사표를 수거해가기도 하고, 조사표 배포가 제대로 안되기도 합니다. 응답거부도 적지 않습니다. 조사원을 가장해 조사표를 수거해 가는(나고야시) 사례가 신고 되기도 했습니다.

 국세조사표와 명부를 잃어버리는 사건이 발생하기도 했습니다. 가고시마에서는 자신의 집을 방문한 국세조사원에게 “불법침입이다. 상사를 불러와라.”며 3시간여 동안 조사를 방해한 57세 남자가 업무방해로 체포되기도 했습니다. 이처럼 분위기가 5년 전과는 판이하다고 합니다.

 조사를 거듭하면서 정확한 조사가 어려워지자 총무성은 다양한 대책을 강구하고 유명 여배우까지 동원해 홍보를 강화하면서 협력을 호소하고 있지만, “방문조사 방법이 시대에 맞지 않는다.” 등의 목소리도 적지 않다고 합니다.

 일본 총무성에 따르면 2000년 국세조사 때는 주민을 만나지 못해 조사표를 건네줄 수 없었던 세대는 전국에서 약 101만건(전체의 2.1%)으로 1995년 조사 때 보다 4배 정도나 상승했습니다. 미회수율도 0.45%에서 1.7%로 증가했습니다. 회수율을 높이기 위해 이번에는 조사표는 봉투에 넣어 봉하거나 그대로 해서 제출할 수 있도록 한 것입니다.

 하지만 올해 국세조사는 개인정보법 시행과 함께 프라이버시 의식이 한층 강해지면서 조사를 둘러싼 잡음이 많아지고, 현행 면접방식의 국세조사를 재검토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높아지고, 전수조사(전세대조사)에는 한계가 있다는 지적도 있습니다.

“면접방식 조사 재검토” 목소리 높아져

 하지만 조사 주체인 일본 총무성은 “현재의 조사 방법이 정확도-신뢰도가 크게 떨어진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며 반론을 펴고 있습니다. 조사내용이 프라이버시를 침범할 정도는 아니기 때문에 조사원이 직접 대면은 못해도 우편함에 넣은 뒤 수거해도, 조사내용이 왜곡될 내용이 거의 없기 때문에 조사 자체가 왜곡될 소지는 적다는 것입니다.

 실제 조사표를 보면 세대원의 인적사항이나 살고 있는 집의 형태, 그리고 집의 크기 등 조사 항목이 비교적 단순합니다. 개인의 프라이버시를 크게 침해할 정도의 민감한 내용은 조사항목에 없습니다. 그런데도 시대가 변하면서 이 소동이 일고 있는 것입니다.

 이에 따라 총무성은 “앞으로는 인터넷을 이용한 조사도 검토하겠다.”는 입장을 보이고 있습니다. 시민단체들도 활발하게 움직이고 있습니다. ‘국세조사의 시정을 요구하는 모임’ 등 시민단체들은 조사의 어려움을 호소하는 조사원들의 고충을 반영, 개선을 요구할 계획이라고 합니다.

국세조사의 결과는 복지나 생활환경 정비 등의 행정시책의 결정에 참고자료로 사용됩니다. 지방자치법은 지방의회의 의원정수 결정이나 시나 지정도시, 핵심시, 특례시의 설치 요건도 최신의 인구조사결과를 토대로 이뤄집니다. 지방교부세 배분기준도 됩니다.

 아울러 평균수명이나 인구, 세대수의 장래 추정에도 조사 결과가 이용되고 있으며, 연금 등의 사회보장제도를 만드는 기초자료로 활용됩니다. 조사원에 의한 일본의 전수조사는 정확도가 높고 국제적으로도 평가받았다고 하지만 마침내 중대 시련에 봉착한 분위기입니다.

 총무성은 “조사가 종료되면 지방자치단체 등으로부터 상황보고를 받을 계획이다. 조사를 시행하는 것이 매우 어렵다는 보고가 많게 되면 다음 조사의 과제로 설정, 적절한 해결책을 강구하겠다.”고 밝히고 있습니다.

 저도 대학시절 아르바이트로 5년마다 실시되는 인구-주택센서스조사에 참여한 적이 있습니다. 당시 300개 가까운 한국의 성씨, 김씨나 이씨의 본이 100개가 넘는 점, 그리고 다양한 종교 등에 대해 알게 돼 참으로 보람이 많았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물론 당시 조사내용을 직접 들으며 기입하기 위해 사람이 없으면 밤에까지 몇 차례나 찾아가 조사하느라 힘들었던 기억이 선합니다. 현재의 기자생활을 하는데도 그 경험은 도움이 되었지요. 일본 조사원의 하소연을 들으며 힘들었던 조사원 생활 시절을 떠올려 보았습니다.

taein@seoul.co.kr

딜레마에 빠진 ‘국세조사’
2005-10-07
16643

일본에서는 2005년 10월 1일을 기준으로 국세조사(國勢調査-센서스)가 진행 중입니다. 인구, 세대, 산업구조 등의 실태파악과 국가시책의 기초자료를 얻기 위해 1920년부터 5년마다 실시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조사의 문제점이 속속 노출되고 있습니다.

 도쿄 한 지역의 조사원인 70대 할머니. 이 할머니는 베테랑입니다. 국세조사만 벌써 5번째라고 합니다. 그런데 이 분이 담당한 92세대 중 20여세대만 직접 조사표를 전달할 수 있었습니다. 나머지는 우편함을 통해 배달, 기입하도록 할 수밖에 없었다고 하소연입니다.

 그 분은 “다시는 국세조사를 하지 않겠다.”고 합니다. 조사가 너무 어려워졌기 때문입니다. 지금까지의 4번 조사는 어렵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번 조사는 지난 4월 ‘개인정보보호법’이 시행된 뒤 첫 조사인데다, 프라이버시 문제가 강조되며 극히 어려워졌다고 합니다.

▲ 주말오후 신주쿠의 인파.

이런 한계를 인식, 당국은 그 지역에서 오래 산 나이가 지긋한 유지들을 조사원으로 투입하고 있지만 “분명 집 안에 사람이 있는데 초인종을 눌러도 응답을 안한다.” “다음에 오라” 는 등의 말만 되풀이 하는 등 극도로 조사가 어렵다고 합니다. 조사거부는 부지기수랍니다.

 64세의 남성은 도쿄 스기나미구 토박이 조사원입니다. 이분도 “사람이나 TV소리가 들리는데도 응답하지 않는 경우가 허다하다.”고 어려움을 토로했습니다. 불법체류자(일본내 20여만명 추정)가 많은 것도 조사가 어려운 한 요인으로 꼽았습니다.

 74세 여성조사원은 약120 세대를 담당하고 있습니다. 4회 이상씩 방문했지만 직접 만난 세대는 20%정도에 그쳤습니다. 특히 5년전 단독주택 위주로 조사할 때는 비교적 편하게 조사했지만 공동주택이 늘어나며 어려워졌다고 합니다.

 독신생활 세대나 주택 입구에 자동잠금장치를 갖춘 맨션(아파트)의 증가도 조사를 어렵게 만들고 있다고 합니다. 독신생활의 경우 부재중인 경우가 많아 정확도를 높이기 위해 직접 조사표를 건네주는 것이 어렵다고 합니다.

 자동잠금식 맨션은 조사원이 방문판매원으로 오인 받아 맨션에 들어가는 것 자체가 어렵게 만들었습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총무성이 동성에서 발행한 조사원증을 목에 걸고 방문하도록 지도하지만 조사원 사칭 범죄까지 일어나면서 속수무책이라고 합니다.

이러다 보니 센다이시 한 구에서는 20세에서 78세까지의 조사원 81명이 조사원 교육을 마친 뒤 본격조사기간에 불분명한 이유로 사퇴, 시와 구 직원들이 조사표를 배포하고 회수하는 어려움을 겪기도 했다고 합니다. 시-구측은 조사의 어려움으로 인해 사퇴한 것으로 보고 있으며, 시-구의 업무차질을 우려하기도 했습니다.

프라이버시 문제등으로 걸림돌 많아

 이런 현실과 관련 총무성은 “갈수록 조사는 어려워지고 있지만, 조사는 중요하다. 협력해 달라.”고 호소하고 있습니다. 또 프라이버시 때문에 조사내용 공개를 꺼릴 경우 조사표를 봉투에 넣고 봉인한 상태로 제출하는 방식도 도입했습니다. 이 경우 문제가 있으면 지자체가 추가 조사합니다.

 이처럼 일본의 국세조사는 일본내 외국인을 포함, 모든 거주자를 상대로 이뤄지고 있습니다. 기초자치단체의 의뢰를 받은 조사원이 각 세대에 조사표를 배포, 세대원이 연필로 기입한 것을 회수하는 것으로 끝납니다. 봉인하지 않은 조사표는 현장서 조사원이 확인, 수정합니다.

일본 국세조사표 뒷면과 작성방법

전국에서 4900여만 세대의 조사를 위해 약85 만명의 조사원이 동원됐고, 한 사람 당 맡은 조사를 수행하면 9만엔 정도의 수당을 받게 됩니다. 이런 인건비를 포함해 조사를 위해 약 650 억엔의 국비가 소요된다고 합니다.(100엔은 930원 정도)

 이처럼 거대한 국세조사가 부실할 징후가 속속 포착되고 있습니다. 10월 1일 이전에 조사표를 수거해가기도 하고, 조사표 배포가 제대로 안되기도 합니다. 응답거부도 적지 않습니다. 조사원을 가장해 조사표를 수거해 가는(나고야시) 사례가 신고 되기도 했습니다.

 국세조사표와 명부를 잃어버리는 사건이 발생하기도 했습니다. 가고시마에서는 자신의 집을 방문한 국세조사원에게 “불법침입이다. 상사를 불러와라.”며 3시간여 동안 조사를 방해한 57세 남자가 업무방해로 체포되기도 했습니다. 이처럼 분위기가 5년 전과는 판이하다고 합니다.

 조사를 거듭하면서 정확한 조사가 어려워지자 총무성은 다양한 대책을 강구하고 유명 여배우까지 동원해 홍보를 강화하면서 협력을 호소하고 있지만, “방문조사 방법이 시대에 맞지 않는다.” 등의 목소리도 적지 않다고 합니다.

 일본 총무성에 따르면 2000년 국세조사 때는 주민을 만나지 못해 조사표를 건네줄 수 없었던 세대는 전국에서 약 101만건(전체의 2.1%)으로 1995년 조사 때 보다 4배 정도나 상승했습니다. 미회수율도 0.45%에서 1.7%로 증가했습니다. 회수율을 높이기 위해 이번에는 조사표는 봉투에 넣어 봉하거나 그대로 해서 제출할 수 있도록 한 것입니다.

 하지만 올해 국세조사는 개인정보법 시행과 함께 프라이버시 의식이 한층 강해지면서 조사를 둘러싼 잡음이 많아지고, 현행 면접방식의 국세조사를 재검토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높아지고, 전수조사(전세대조사)에는 한계가 있다는 지적도 있습니다.

“면접방식 조사 재검토” 목소리 높아져

 하지만 조사 주체인 일본 총무성은 “현재의 조사 방법이 정확도-신뢰도가 크게 떨어진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며 반론을 펴고 있습니다. 조사내용이 프라이버시를 침범할 정도는 아니기 때문에 조사원이 직접 대면은 못해도 우편함에 넣은 뒤 수거해도, 조사내용이 왜곡될 내용이 거의 없기 때문에 조사 자체가 왜곡될 소지는 적다는 것입니다.

 실제 조사표를 보면 세대원의 인적사항이나 살고 있는 집의 형태, 그리고 집의 크기 등 조사 항목이 비교적 단순합니다. 개인의 프라이버시를 크게 침해할 정도의 민감한 내용은 조사항목에 없습니다. 그런데도 시대가 변하면서 이 소동이 일고 있는 것입니다.

 이에 따라 총무성은 “앞으로는 인터넷을 이용한 조사도 검토하겠다.”는 입장을 보이고 있습니다. 시민단체들도 활발하게 움직이고 있습니다. ‘국세조사의 시정을 요구하는 모임’ 등 시민단체들은 조사의 어려움을 호소하는 조사원들의 고충을 반영, 개선을 요구할 계획이라고 합니다.

국세조사의 결과는 복지나 생활환경 정비 등의 행정시책의 결정에 참고자료로 사용됩니다. 지방자치법은 지방의회의 의원정수 결정이나 시나 지정도시, 핵심시, 특례시의 설치 요건도 최신의 인구조사결과를 토대로 이뤄집니다. 지방교부세 배분기준도 됩니다.

 아울러 평균수명이나 인구, 세대수의 장래 추정에도 조사 결과가 이용되고 있으며, 연금 등의 사회보장제도를 만드는 기초자료로 활용됩니다. 조사원에 의한 일본의 전수조사는 정확도가 높고 국제적으로도 평가받았다고 하지만 마침내 중대 시련에 봉착한 분위기입니다.

 총무성은 “조사가 종료되면 지방자치단체 등으로부터 상황보고를 받을 계획이다. 조사를 시행하는 것이 매우 어렵다는 보고가 많게 되면 다음 조사의 과제로 설정, 적절한 해결책을 강구하겠다.”고 밝히고 있습니다.

 저도 대학시절 아르바이트로 5년마다 실시되는 인구-주택센서스조사에 참여한 적이 있습니다. 당시 300개 가까운 한국의 성씨, 김씨나 이씨의 본이 100개가 넘는 점, 그리고 다양한 종교 등에 대해 알게 돼 참으로 보람이 많았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물론 당시 조사내용을 직접 들으며 기입하기 위해 사람이 없으면 밤에까지 몇 차례나 찾아가 조사하느라 힘들었던 기억이 선합니다. 현재의 기자생활을 하는데도 그 경험은 도움이 되었지요. 일본 조사원의 하소연을 들으며 힘들었던 조사원 생활 시절을 떠올려 보았습니다.

taein@seoul.co.kr

지진, 신의 처분에 맡긴다
2005-10-18
7705

파키스탄에서 강력한 지진이 발생, 수만명이 숨지고 일본에서도 크고 작은 지진이 빈발하고 있지만 일본인들의 지진에 대한 대비는 ‘의외로’ 느슨한 것으로 조사되고 있습니다. 기발하고 철저하게 지진에 대비하는 사람들도 적지 않지만, 많은 사람들은 “올테면 와라. 신의 처분에 맡긴다.”는 식입니다.

 올해에도 일본에는 지진이 잦습니다. 10월 16일 일요일 오후4시 5분쯤에도 도쿄를 비롯한 간도지방에 꽤나 강력한 진동을 동반한 지진(리히터 규모 5.1)이 일어났습니다. 실내의 문들이 요란하게 흔들리고, 책꽂이가 휘청거려 피난준비를 해야 할 정도였습니다.

 이처럼 중급 규모의 지진은 문제가 아닙니다. 거대지진이 머지않아 올 것이라는 경고가 그치지 않고 있습니다. 실제 일본 내각부가 여론조사를 실시, 9월 26일 발표한 바에 따르면 일본 국민의 64%는 “10년 이내에 대지진이 일어날 것”이라고 우려했습니다.

▲ 일본 도쿄 스기나미구 아사가야역 앞에 세워진 지진 대비 안전 홍보탑. ‘지진, 불을 끄세요’라는 내용과 ‘가정과 직장에서 재해에 대비해야 합니다’라는 내용이 적혀있다.

 그런데 이처럼 지진을 우려하는 일본인들이 정작 내진진단이나 집보수 등 지진방재 대책에는 크게 신경을 쓰지 않는다는 것이 조사의 결과입니다. 즉 80% 정도의 일본국민들이 내진지진방재 대책을 하지 않고 있는 것으로 이 조사에서 드러났습니다.

 그리고 한신 대지진이나 니가타주에쓰지진과 같이 대지진이 일어났을 때 자택의 내진성에 대해서는 ‘괜찮다고 생각한다.’ ‘아마도 괜찮다고 생각한다.’를 합해도 32.3%에 머물렀습니다. 그런데도 지진에 대비, 내진공사 등을 실시한 적이 있는 비율은 12.3%에 머물렀습니다.

 대지진에 대비, 가구나 냉장고 등을 고정하고 있다고 대답한 비율도 20.8%에 그쳤고, 80%가까운 응답자가 ‘특별히 고정할 이유가 없다.’ ‘귀찮다.’ ‘효과가 없다고 생각한다.’는 등의 이유로 그냥 두고 있다고 대답했습니다.

 실제 일본인들은 “효과적인 대응방법을 몰라서”, “운에 맡기고 살기 때문에”, “대책을 세울 금전적인 여유가 없어서”, “내가 살고 있는 지역만큼은 거대지진이 올 것 같지 않아서”, “사택(임대주택)이라서 손을 댈 수 없어서” 등의 이유로 ‘대책 없이’ 지낸다고 합니다.

  아울러 보험이나 공제조합 가입도 미진한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실제 민간 손해보험 30개 회사가 판매하고 있는 지진보험 가입률은 지금까지 공표된 것에 따르면 지난 3월말 현재 18.5%에 그치고 있다고 아사히신문이 전했습니다.

 다만 지난해 이후 니가타주에쓰지진, 후쿠오카앞바다 지진, 미야기앞바다 지진 등 비교적 큰 지진들이 빈발하면서 지진보험 가입이 늘고 있긴 합니다. 2005년도(내년 3월)까지 손해보험 등의 가입건수가 1000만건을 넘을 것으로 전망됐습니다. 하지만 일본 총세대수가 4900만 가구임을 감안하면  가입률은 겨우 20%를 턱걸이 할 정도로 낮은 상태인 것입니다.

日국민 64% “10년 이내 대지진 일어날 것”

 내진 대책도 별로 세우지 않고, 그렇다고 지진에 대비한 보험가입률도 낮습니다. “일본인은 지진대비가 철저하다.”고 알고 있던 일반적인 상식과는 거리가 먼 결론입니다.

왜 이럴까요. “대비책이 작은 지진에는 도움이 되지만 거대지진이 오면 스스로 할 수 있는 것이 없다. 신의 처분에 맡길 뿐이기 때문”이라는 것이 일본인들의 설명입니다.

일본 홋카이도~아사마야마 화산대의 정중앙에 위치한 해발 1915m의 활화산 차우스다케(나스다케) 정상 바로 아래에서 화산가스와 연기가 솟아나오는 모습. 일본에서는 화산성 지진도 빈발한다.

1995년 한신대지진이나 지난해 니가타주에쓰지진 등 큰 지진으로 집들이 무너질 때는 “비상물품을 준비해 두었지만 그것을 챙겨 나올 여력이 없었다.”는 것이 당시 피해자 가운데 절반 정도의 증언입니다. 비상용품 챙기는 것보다는 탈출로 확보가 시급했다는 것입니다.

 실제로 리히터 규모 7을 넘는 거대 지진이 오면 “자신의 의사로 행동을 하는 것이 불가능하다. 내진성이 높은 주택조차 크게 파괴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 지진학자들의 설명입니다. 정작 큰 지진이 오면 인간의 대비가 무력해지고 만다는 얘기지요.

 아울러 최근 지진이 빈발하면서 지진에 대비한 상식도 크게 바꿔야할 상황입니다. 우선 “책상 밑으로 숨어라”는 상식에도 문제가 있다고 합니다. 책상 밑으로 피하는 것은 교실처럼 튼튼한 공공건물에 있다가 지진을 당할 때 적절하다고 합니다.

 하지만 일반 주택이나 사무실에서는 강력한 진동을 감지할 때 책상 밑으로 숨는 것 보다는 탈출로 확보를 위해 현관문을 열어두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합니다. 철제문도 강한 지진에는 뒤틀려 열어지지 않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즉 큰 지진 때는 상식으로 대처하는 것 보다는, 냉정하게 상황을 봐 안전한 곳으로 탈출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는 것이지요.

 비상식량에 대한 상식도 바꿔야 할 것 같습니다. 지금도 일본 재해교육시 3일분의 식량과 물 등을 준비하라고 하지만 일부 전문가들은 교통, 통신의 발달로 상황이 바뀌었다며 요강이나 어른용 기저귀, 1회용변기 등 ‘간이 화장실 확보’를 주문합니다.

험준한 산악지형 등이 아니고 도시지역이라면 이틀 뒤면 구호품이 도착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먹는 것은 해결되지만 용변문제 해결은 단수 등의 영향으로 스스로 해결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한신대지진 때는 맨홀도 임시화장실로 이용됐습니다.

“거대지진 오면 스스로 할 수 있는 게 없다”

 임시 화장실용 기저귀나 간이용변기 등을 확보하는 것과 같이 중요한 것이 정전대책이라고 합니다. 거대지진은 정전을 동반하기 때문에 회중전등이나 비상용 초, 성냥이나 라이터 등이 절박하게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신문확보도 지인들의 안부확인을 위해 요긴하다고 합니다.

 가족이나 지인들과의 통신수단 확보도 큰 과제입니다. 저도 지난해 니가타 지진 때나 지난 7월 23일 간토지역 지진 때 직접 경험한 바 있습니다만 편리하다고 생각하는 휴대전화가 수시간 불통되기 일쑤입니다. 평소 보다 수십배 통화량이 폭주하는데 이는 통신회사가 경찰, 소방당국과 긴급연락선을 확보하기 위해 일반 통신을 규제하기 때문입니다.

 다만 휴대전화를 이용한 문자메시지 교환은 규제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고 합니다. 따라서 휴대전화 메일이 니가타지진 때는 요긴한 비상연락 수단이었습니다. 하지만 대도시 지진시에는 이 마저도 통신량이 폭주하면 규제될 수 있습니다. 일반전화도 유사하다고 합니다.

 그래서 대형지진 등 재해시에는 휴대전화의 보급확대로 점차 사라지고 있는 공중전화가 가장 유용한 수단이 된다고 합니다. 그래서 비상시 대비용으로 튼튼하게 시공된 공중전화가 있는 곳을 평소 확인해두는 것이 대형지진 때에는 도움이 됩니다.

 지진으로 집이 무너질 위험에 처했다고 무작정 밖으로 뛰어나가는 것도 위험천만이라고 합니다. 지진이 계속되면 거리에는 깨진 유리창이 난무하고, 간판도 떨어질 위험이 높으며 고층빌딩은 무너질 가능성도 있습니다. 가능한 가까운 곳의 넓은 공간으로, 최대한 빠른 시간내에 피하는 것이 상책이라고 합니다.

 결국 작은 지진이 일어날 때는 가구를 고정하고, 비상식량을 준비하는 등의 일반적인 지진대비 상식이 중요합니다. 하지만 거대지진이 일어나면 상식에 얽매이지 말고 상황에 맞는 대응책을 강구해야 한다는 게 전문가들의 조언입니다.
 
 taein@seoul.co.kr

제2버블 전야의 일본
2005-1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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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들어 일본의 경제전문기자나 경제전문가 등을 만나면 “일본주식에 투자해 보라. 종목에 따라 다르겠지만 전체적으로 향후 2~3년간은 크게 오를 것이다. 투자하지 않으면 후회할 것이다.”라는 말을 자주 듣습니다. 실제 닛케이평균주가도 최근 4개월간 30%정도 올랐습니다.

 주식시장만이 아닙니다. 지난해부터 이미 부동산시장의 미니버블(거품) 지적이 일기 시작했듯이 도쿄나 오사카, 나고야 등 3대 도시의 도심지역을 중심으로 지가가 급등하는 현상이 일고 있습니다. 주식이나 부동산의 상승속도가 너무 빠르다는 지적도 많습니다.

 각종 경제지표는 혼조현상을 보이고 있습니다. 기본적으로 일본 정부와 일본은행이 지난 8월 “경기가 조정국면을 탈출했다.”고 선언했지만 이후 국내총생산(GDP)성장률이나 기업의 설비투자, 개인소비 등의 지표는 애매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반적으로는 일본 경제에 대한 장밋빛 전망을 담은 서적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습니다. 급기야는 현 시점이 20년 전인 1985년의 일본의 경제상황과 흡사, 제2의 ‘자산 거품’이 일고 있다는 지적이 많이 나옵니다. 

▲ 도쿄역 바로앞의 마루노우치빌딩(가장 높은 빌딩) 과 주변의 개발 열풍. 도쿄역과 일본 왕궁 사이의 마루노우치는 최근 재개발 열기로 일본의 부동산바람을 선도하고 있다.

그 거품의 가장 큰 요인으로 꼽히는 것이 20년 전이나 지금이나 저금리입니다. 1985년의 금리 수준은 5.25%로, 80년의 8.25%보다는 크게 낮아진 수준이었습니다. 금리가 낮으니 돈이 많이 풀렸고, 그 돈이 거품을 형성시켰던 것입니다.

 지금은 아주 복잡합니다. 1991년 거품이 붕괴되면서 경기가 곤두박질친 뒤 디플레이션(물가는 내리면서 경기가 나쁜 상태)의 악몽이 계속되자 일본은행은 2001년부터 사실상 제로금리를 실시, 양적완화라는 통화팽창 정책을 구사하고 있습니다. 경기를 살리기 위해서지요.

 따라서 지난 5년 가까이 시중에 적정선 이상의 돈이 풀렸고, 이에 따라 갈 곳을 잃은 돈들이 주식시장이나 부동산시장 등 ‘돈이 될만한 곳’을 기웃거리며 거품을 형성시키고 있다는 것입니다. 언제 제2의 거품이 터질지 모를 상황이란 지적이 많습니다.

제2의 ‘자산 거품’ 일고 있다는 지적 많아

 일본은행은 내년 초쯤 디플레이션을 탈출, 적어도 소비자 물가의 플러스 전환을 전망하면서 제로금리 정책 철회를 저울질하고 있지만, 여전히 경기전망이 불투명하다며 신중을 요구하는 목소리도 적지 않습니다.

 이 밖에도 여러 가지 면에서 20년 전과 현재의 일본상황이 유사하다는 분석이 제기됩니다. 85년에는 주요 5개국 재무장관, 중앙은행 총재들이 뉴욕의 프라자호텔에 모여 미국의 쌍둥이(재정-무역)적자 해소를 위해 엔화 가치를 급격히 올리는 ‘프라자 합의’를 도출합니다.

 이 프라자 합의는, 이후 비싸진 엔화를 무기로 일본인들이 미국의 땅과 건물을 마구잡이로 사들이며 자산거품의 최전성기를 보내게 하는 출발점이 됩니다. 그런데 20년이 흐른 오늘도 미국의 쌍둥이적자가 폭발적으로 늘어나고 있다는 점에서 유사합니다.

 정치적 상황도 너무 유사합니다. 지난 9월 11일 고이즈미 준이치로 총리의 자민당 정권은 중의원 총선거에서 압승을 거둡니다. 86년 7월 실시된 중-참의원 동시선거서도 나카소네 총리의 자민당 정권이 압승했었습니다. 두 정권의 개혁추진도 유사합니다.

 1985년에는 ‘인간-주거-환경과 과학기술’이라는 주제로 쓰쿠바과학만국박람회가 열렸고, 올해는 지난 3월부터 9월까지 역시 환경을 강조한 아이치만국박람회가 열렸습니다. 대형박람회가 열린 것이지요. 지금 일본에서는 이처럼 20년 전과 오늘을 비교하는 것이 유행입니다.

 사회적으로도 유사한 현상이 많습니다. 85년에도 거품전야에는 젊은 여성탤런트들이 등장하는 광고가 선풍을 일으켰고, 지금도 역시 젊은 여성탤런트들이 TV광고의 주역으로 맹활약하고 있다는 통계가 있습니다. 광고호감도 상위그룹에 여성탤런트가 많은 현상이지요.
 프로야구판도 유사합니다. 간사이의 자존심 한신타이거스가 1985년에도 리그 우승을 했고, 올해도 역시 센트럴리그 우승을 차지한 바 있습니다. 경마에서도 84년과 올해 무패로 ‘3관왕’을 달성한 명마가 탄생한 것도 유사한 분위기입니다.

 하지만 다른 점도 적지 않습니다. 가장 중요한 요소라고 할 수 있는 개인의 소비심리가 판이합니다. 85년에는 과시형 소비가 많았다고 합니다. 하지만 지금은 물건구입 보다는 자격취득이나 여가생활 등 삶의 질을 향상시키려는 소비가 주류를 이루고 있습니다.

 특히 20년 전에는 일본 전체의 경제력이 향상, 국민 전체가 일본경제의 상승 분위기를 즐길 수 있었지만 지금은 상-하간 소득격차가 너무 커지며 양극화 현상이 상시화 되어있기 때문에 ‘소비를 즐기는 잔칫집 분위기’는 아닌 상황입니다. 윗목과 아랫목이 상당히 다릅니다.

1985년과 유사한 점 많지만 다른 점도

 경기순환 사이클도 다릅니다. 20년 전은 경기가 최고점을 찍었을 때입니다. 80년대 전반에는 수출주도로 경기가 가파른 상승세를 탔지만 85년 6월 이후 후퇴국면을 시작한 것으로 나타나 있습니다. 이후 엔고로 불황에 빠지려하자 부양책을 쓴 게 거품팽창이 되었지요.

 하지만 2005년은 상황이 다릅니다. ‘잃어버린 15년’이라는 어두운 터널을 막 빠져나와 경기가 회복국면을 지속하고 있다는 데는 이론이 없는 상태입니다. 거대한 재정적자도 그 때나 지금이나 닮았습니다. 하지만 이후 전개 양상은 다릅니다.

 85년 당시도 늘어나는 재정적자 해소가 과제였습니다. 당시는 한동안의 거품경기에 의해 세수입이 증대되면서 재정적자가 축소됩니다. 반면 91년 이후 경기대책이 계속되면서 재정적자도 확대, 현재는 20년 전보다 8배 규모입니다. 중앙-지방정부의 빚이 800조엔이 육박합니다.

 특히 일본의 나라빚은 앞으로 일본 경제에 중대한 변수로 지목되고 있습니다. 현재 일본의 GDP 대비 정부장기채무잔고 비율은 무려 150% 안팎으로 주요 선진국 중에서 최고 수준입니다. 재정적자가 심하다는 미국보다 그 비율이 훨씬 높습니다.

 따라서 일본 경제는 앞으로 천문학적인 나라빚을 어떻게 해결하느냐에 따라 명암이 갈릴 것이라는 지적이 일반적입니다. 경기가 좋아져 세수가 늘어난다면 좋겠지요. 그러나 전문가들은 급격한 위축도 없겠지만, 1%전후의 저성장을 예상하며 고성장은 없을 것으로 봅니다.

 그렇다면 세출을 줄여야 하기 때문에, 재정 투-융자를 줄이고, 공무원 수를 5년간 5% 줄인다고 하는 등 정책방향을 제기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어느 것 하나 간단한 것이 없습니다.

 아울러 일본 국민들은 증세정책 예고에 긴장하고 있습니다. 2007년부터 소비세와 주민세를 증세, 재정수지를 개선하겠다고 하지만 집권 자민당 내에서도 반발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어 유동적입니다. 아직도 경제의 기초체력이 충분히 회복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일본 정부는 현재 진퇴양난의 형국입니다. 세금을 늘려 재정적자를 줄이자니 경기위축이 우려되고, 현상대로 하자니 거품이 우려되는 해결하기 어려운 상황인 것입니다. 금리문제도 마찬가지입니다. 현행유지시 경기진작에 도움은 되지만 역시 거품이 우려되고, 세계적인 추세에 맞추어 올리자니 경기후퇴를 우려, 반대와 우려의 목소리가 터져 나옵니다.

 20년 전에도 일본 정부의 상황이 지금처럼 어려운 상황이었다고 합니다. 그 때 대처를 잘못해 거품붕괴로 장기불황에 빠졌던 것이지요. 과연 선거승리의 분위기에 젖어있는 고이즈미 정부의 선택은 어떨까요. 제2의 거품 경고가 사실이 아닐 수도 있습니다만….

taein@seoul.co.kr

어떤 직업이 많이 버나
2005-1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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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도 취업시즌이 다가왔다. (정규신입사원 입사는 보통 4월1일) 따라서 대학-고교졸업생들의 취업열기가 뜨겁다. 경기가 조금은 풀려 취업시장이 활발한 편이다. 11월 중순 현재 상당수 대학들의 취업내정률이 60%를 넘었을 정도로 호조다. 최종취업률은 90%를 넘을 전망이다.

 하지만 이런 수치와는 달리 취업시장에 나서면 이른바 ‘좋은 직장’ 찾기는 여전히 어렵다고 한다. 일본 경제가 1991년 거품붕괴로 시작된 장기불황에서 벗어났다고 하지만 여전히 ‘아랫목은 따뜻한데 윗목은 아직…’인 상태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비정규직 취업도 많다.

 실제로 자동차나 철강 등 수출위주의 기업은 올해 실적이 매우 좋다. 하지만 백화점이나 슈퍼 등 유통업은 여전히 어렵다. 전기-전자업체도 가격인하 경쟁으로 고전하고 있다. 소니가 빙하기이고, 산요전기가 최악의 경영위기를 맞는 등 전기-전자업계도 좋지 않다.

 대기업이 이럴진대 중소기업은 알짜-우량기업을 빼고는 “아직”이라고 말한다. 일반 국민들, 이른바 서민들의 가계도 여전히 햇볕이 들지 않고 있다. 실적이 좋은 대기업 직원들이 ‘15년만의 최고 겨울보너스’를 받게됐다며 희색인 것과는 선명하게 대비된다.

 문제는 내년 이후다. 일본 정부는 1999년부터 장기불황을 극복하기 위한 대책으로 시중에, 국민들에게 좀 더 많은 돈이 돌아갈 수 있도록 감세정책을 실시했다. 소득세와 주민세를 경감해주는 정률감세제를 도입했고, 법인세율은 34.5%에서 30%로 낮춰 주었다.

 고액소득자의 소득세율도 50%에서 37%로 낮추었다. 기업들이 세금을 적게 내면 세후 이익이 증대되게 되고, 이 이익을 종업원들에게 돌려주어 소비가 진작되게 하려는 취지였다. 소비세율은 5%로 여전히 구미(歐美)의 15%이상 보다는 낮다. 스웨덴(25%)의 5분1수준이다.

 중앙은행을 통해서는 돈도 풀었다. 2001년 3월부터 이른바 제로금리로 대표되는 ‘양적완화정책’을 구사했다. 시중에 돈이 좀 더 많이 돌게 해, 물가가 내리면서 경기가 좋지 않은 디플레이션에서 탈출하려는 고육지책을 써 온 것이다.

 그런데 이런 정책적인 노력에 따른 부작용도 커지고 있다. 중앙-지방 정부의 부채가 이 기간 중 무려 200조엔 정도 급팽창, 총부채가 800조엔에 육박한다. 돈을 푸는 정책을 장기간 실시, 부분적인 재거품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따라서 세금을 더 거두고, 금리도 올릴 조짐인 것이다.

‘돈 푸는 정책’ 부작용 심각

 이런 분위기이기 때문에 내년부터는 본격적인 증세기조로 정책기조가 전환될 기류다. 소비세율도 올리고, 감세정책도 폐지할 움직임이다. 각종 공제조치도 축소-폐지된다. 노인들의 의료비, 장애인의 보조비 등도 축소되는 등 세출축소 노력이 가시화된다. 이와 관련한 논란도 뜨거워지고 있다.
 

▲ 일본 국회의사당
일본은 내각제이기 때문에 총리나 장관 등 공직의 최고위직은 대부분 국회의원들의 차지다. 아울러 공무원들의 영향력이 강해 급여가 높은 수준이다. 그래서 우리식으로 하면 행정고시나 지방공무원 시험 등은 매우 인기가 높다.
이처럼 내년 이후 월급쟁이, 전문직들의 지갑이 세금문제로 얇아질 조짐을 보이면서 현재 일본에서 구직전선에 나선 대졸-고졸 예정자들은 ‘누가, 어떤 직종이 얼마나 벌고 있는지’에 대해 어느 때 보다 관심이 높다. 그래서 잡지들은 ‘전직종 급료비교’에 열을 올리고 있다.

 우선 급료의 양극화가 심화되는 것이 두드러진 특징이다. 이른바 ‘승리조’ ‘패배조’의 연수입 격차가 커지고 있는 것이다. 후지TV처럼 사원들(1367명)의 평균 연봉이 지난해말 기준 1567만엔(100엔=870원 정도)인 기업이 있지만, 200만엔대 기업도 적지 않다.

 현재 일본에서는 각 방송사들이나 중앙신문사 직원들의 연수입이 다른 직종에 비해 상대적으로 높은 편이다. 방송사가 1300만엔 안팎이고, 신문사들이 규모에 따라 1000만엔 안팎인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그래서 이들 직종은 여전히 ‘기자-PD고시’라고 할 정도로 인기다.

 반면 3000개가 넘는 상장기업 가운데도 소매업이나 서비스업, 영세 의약품회사 등의 종업원 평균연수입이 최저 150만엔대도 있고, 200~300만엔인 기업도 적지 않다. 이런 기업은 종업원의 근속연수가 짧고, 정사원의 비율이 낮은 것도 특징으로 꼽힌다.

 업종별 편차도 크다. 격주간인 프레지던트 최신호 조사에 따르면 증권업은 지난해 기준 평균연수입이 722만엔이다. 광업 644만엔, 철강 595만엔, 수산-농림 509만엔, 기계 586만엔, 해운업 798만엔, 비철금속 573만엔, 전기기기 604만엔, 정밀기기 594만엔, 부동산 630만엔, 섬유 550만엔, 고무제품 550만엔이었다. 이 업종들은 향후 경기전망도 좋은 편이다.

 반면 전망이 좋지 않은 보험업은 679만엔, 의약품 696만엔, 서비스업 514만엔, 육상운송업 514만엔, 소매업 461만엔, 펄프종이 583만엔 등이었다. 화학, 식료품, 은행업, 정보-통신업 등의 업종은 경기전망이 중간정도로 나타났다. 취업희망자들은 이런 업종별 경기전망도 중시한다.

급여의 양극화 갈수록 심화

 위에서 제시한 업종별 평균 연수입이 높은 것은 상장기업들을 상대로 했기 때문이다. 대부분 중소기업이 위주인 주식시장에 상장되지 않은 기업들의 종업원 평균연수입은 이 보다는 훨씬 낮은 수준으로, 일본 월급쟁이들의 평균 연수입은 400만엔 대이다.

 의사, 변호사, 회계사, 프로야구선수 등 업종별 급여도 편차가 매우 크다. 일본에서는 여전히 공무원들의 연수입이 회사원들에 비해서는 상대적으로 높고, 직업의 안정성도 보장되는 측면이 강하다. 5년간 5%의 공무원을 줄이겠다고 하지만 해고는 없고, 신규채용만 줄이는 식이다.

 이런 공무원의 최고봉 내각총리는 추정 연수입이 4165만엔이다. 프로야구선수는 평균 연수입이 3743만엔(752명 평균), 장관 3041만엔(17명), 사무차관 2432만엔(12명), 국회의원 2228만엔(720여명), 변호사 2101만엔(2만1185명), 도-도-부-현지사 2100만엔(47명) 등이다.

 6만9000여명의 개업의사 평균연수입은 2086만엔, 조종사는 1713만엔(2920명), 공인회계사 1426만엔(2만94명), 치과의사 1329만엔(9만여명), 고용의사 1227만엔(26만여명), 대학교수 1153만엔(4만4000여명), 대학조교수 917만엔(1만8000여명), 사법서사 890만엔(1만7800여명), 경찰관 840만엔(23만7900여명), 변리사 827만엔(6000여명) 등으로 비교적 고소득자다.

 반면 연수입이 초라한 직종들. 417만명으로 추정되는 프리터(아르바이트 위주로 생활하는 사람)는 평균연수입이 불과 106만엔으로 조사됐다. 빌딩청소원들은 233만엔(9만2000여명),이-미용사 295만엔(3만1500명), 가정건강보조원 299만엔(3만2000여명) 등으로 나타났다.

 28만7000여명으로 추산된 택시운전수의 경우도 추정연수입이 306만엔으로 낮은 편이다. 이들은 “고이즈미 정부가 택시업 참여 규제를 풀어, 택시가 크게 늘어나 수입은 더욱 악화되고 있다.”고 푸념하는 경우가 많다. 15만여명의 경비원도 315만엔 정도로 낮다.

 6만2000여명 유치원교사의 연수입도 328만엔으로 비교적 낮은 편이다. 40만여명의 개호복지사도 333만엔, 보험외판원 337만엔(17만9000여명), 보육사 340만엔(1만6000여명), 영양사 349만엔(4만5000여명), 조리사 352만엔(22만여명) 등으로 비교적 저소득에 속한다.

 아울러 자동차정비공(평균연수입 387만엔, 15만8000여명),백화점점원(390만엔, 10만여명),보일러공(403만엔, 1만5000여명), 프로그래머(412만엔, 13만6700여명) 등도 월급쟁이(4453만명) 평균 439만엔을 밑도는 직업군으로 분류되고 있다.

 이밖에 간호사는 연수입 464만엔(43만여명), 시의회의원 528만엔(1만9563명), 소방사 572만엔(15만3000여명), 전차차장 586만엔(2만1000여명), 국가공무원 628만엔(110만9000명), 지방공무원 728만엔(314만여명), 고등학교교사 741만엔(7만9000여명) 등으로 추정됐다.

일본 산에서는 맹수를 조심하라
2005-12-12
25318

일본의 산에 오를 때는, 특히 혼자서 오를 때는 맹수를 조심해야 한다. 맹수, 그 중에서도 반달가슴곰은 등산객이나 산골마을 주민, 심지어 도쿄도내의 산간마을까지도 심각한 위협을 주고 있다. (역으로 곰이 인간들의 피해를 받고 있다고도 할 수 있다.)

 야생 원숭이도 사람을 오싹하게 만들곤 한다. 군마나 도치키현 등 일본 중부의 산지에는 20~30마리씩 무리를 지어 다니는 원숭이를 어렵지 않게 만날 수 있다. 야생원숭이는 도쿄근교의 다카오산에서도 만날 수 있다.

 집단생활을 하는 원숭이들은 사람을 무서워하지 않는다. 상황에 따라서는 공격하겠다는 자세도 취해, 사람을 오싹하게 한다. 비웃는 듯한 얼굴도 야생원숭이들의 특징으로 볼 수 있다. 밤에 만나는 여우는 사람의 정신을 흐트러지게 하는 무서운 존재다.

탄자와산에서 해질녘에 만난 사슴.


뭐니 해도 일본 맹수의 최고봉은 곰이다. 다행히 올해는 곰 소동은 거의 없었다. 여름날씨가 좋아 산에 각종 열매가 풍부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산에 먹을 것이 충분하기 때문에 굳이 인간이 사는 곳에 내려가지 않아도 되는 것이다.

 그래도 일본의 곰은 무서운 존재다. 탄자와산골에서 태어나 살고 있다는 50대 후반 농민의 경고. 그는 “7년 전 70대였던 친척이 탄자와산 신사로 일을 보러 갔다가 행방불명돼 지금까지(올 11월) 소식이 없다. 탄자와는 간단한 산이 아니다. 뭐가 나올지 모른다.”고 할 정도였다.

 몇몇 등산인들에게 “탄자와산에는 곰이 없느냐.”고 물었을 때 “곰이 없다.”는 대답을 들었는데 그게 아니었다. 곰이 있다는 경고다. 밤에 탄자와산을 수 시간 혼자 걸을 때는 그 농민의 경고성 발언이 생각나 오싹오싹했다. 전문가들도 탄자와를 곰의 서식지로 분류했다.

 일본등산객들은 곰을 무서워한다. 그래서 등산객들은 곰에게 사람이 있다는 것을 알리기 위해 ‘방울’을 매달고 다닌다. 그런데도 곰을 만날 경우 큰소리를 치거나, 돌을 던지거나, 뒷모습을 보이고 도망쳐서는 안 된다. 곰이 자신을 공격하는 것으로 착각해 흥분, 역공격하기 때문이다.

 곰을 만나 눈이 마주치면 침착하게 수분 간 노려보면 대부분 곰이 자리를 피한다고 산악인들은 설명한다. 곰은 공격받지 않으면 공격하지 않는 습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곰을 쳐다보면서 서서히 뒤로 물러나 자리를 피해도 공격하지 않는다고 한다.

 뛰어서 도망치면 안 된다. 곰은 시속 60㎞로 달릴 수 있기 때문에 뛰는 걸 공격행위로 인식하면 공격을 받을 수 있다. 나무로 올라가도 소용없다. 곰은 사람보다 나무를 훨씬 더 잘 탄다. 사진을 찍으려 해서도 안 된다. 렌즈를 보거나 플래시가 터지면 곰은 흥분한다. 곰새끼를 발견했을 경우 절대로 가까이 가면 안 된다. 어미의 모성본능이 발동, 거세게 공격하기 때문이다.

반달가슴곰-야생원숭이등 출몰

 일본에 곰이 얼마나 살기에 이런가. 일본 혼슈와 시고쿠, 규슈, 홋카이도에는 1만5000마리 정도의 곰이 산다. 혼슈 등지에는 반달가슴곰이, 홋카이도에는 큰곰이 살고 있다. 그래서 곰이 겨울잠을 자는 기간을 제외하면 일본의 산에서는 곰을 보는 경험을 할 수 있는 것이다.

초겨울인 12월 중순 구모도리야마 주능선에서 만난 사슴사냥꾼


사냥도 허락된다. 다만 규슈는 거의 멸종됐고, 시고쿠에서는 개체수가 적어 사냥이 허락되지 않고 있다. 전체적으로 긴키 지방 등 17개현은 곰 포획이 허용되지 않는다. 하지만 동일본 지역에서는 매년 11월15일 곰수렵이 해금된다. 보통 이듬해 2월 15일까지의 동면기다. 개체수가 많아 희소생물보존법의 대상이 아니기 때문에 포획수 제한도 없다.

 다만 지난해처럼 여름에 비가 많이 와 산에 나무열매가 적은 해는 예외다. 지난해는 2000두 가까운 곰이 민가로 먹이를 찾아 내려왔다가 포획됐었다. 이런 해에는 수렵허가가 단축된다. 일본에서는 해마다 1000두 안팎의 곰이 각종 방법으로 포획되고 있다.

 근대화로 인한 피해도 적지 않다. 일부 지역서는 생식지가 도로 등으로 끊어지면서 근친교배로 털이 온통 흰 반달곰이 태어나 목격되는 경우가 적지 않다. 좁은 시고쿠는 곰과 인간의 활동 영역이 겹치는 경우가 많아 개체수가 30여 마리로 줄었다.

 그 밖의 야생동물, 특히 ‘일본사슴’은 산에서 만날 수 있는 반가운 친구들이다. 도쿄인근 산에도 사슴들은 매우 많다. 가나가와현 탄자와산이나 도쿄의 최고봉인 구모도리야마(2017m)에 가면 정상부근을 중심으로 사슴을 쉽게 만날 수 있다.

 사슴들은 먹이활동을 하다가 사람을 만나면 소스라치게 놀라며 줄행랑을 치기가 일쑤다. 따라서 가까운 곳에서 사슴을 관찰하는 것은 쉽지 않다. 물론 사람과의 거리가 상당히 있으면 경계행동만을 취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그런데 어둠이 내릴 즈음이면 사슴들의 경계심이 훨씬 낮아지는 것 같다. 해질녘에 만나는 사슴들은 잘 도망치지 않는다. 사진을 근접해서 촬영해도 여유를 보인다. 그러다가 손에 닿을 듯한 근접촬영을 하려고 하면 서서히 자리를 뜬다.

 아울러 사슴들은 밤에는 활동공간도 넓히는 것으로 보인다. 낮에는 1300m이상의 고지대에서만 모습을 보이던 사슴들이 해질녘부터는 탄자와산의 수백m 낮은 지점에서도 모습을 나타낸다. 사람들이 잘 다니지 않는다는 것을 알기 때문일까, 아니면 다른 이유가 있을까.

사슴 개체수 급증…당국 사냥허용

 탄자와의 사슴들이 인간과 비교적 친숙한 편이지만 구모도리야마의 사슴들은 최근 꼭꼭 숨어들어야 할 처지다. 구모도리야마 인근의 사슴들이 수천마리로 급증, 나무를 갉아먹는 등의 피해가 늘자 당국이 사냥을 허가했기 때문이다. 9월 17일부터 다음해 3월31일까지다.

 그래서인지 구모도리야마에서는, 12월 10일 하루 종일 산행을 하는 동안 낮은 곳은 물론 정상인근 어디에서도 그 많던 사슴들을 만나 볼 수 없었다. 그 대신 ‘도교도청’의 사슴사냥 허가를 받은 포수들만 여러 명 만날 수 있었다. 장총을 메고, 사냥개도 데리고 어슬렁거리는.

 이 산에 서식하는 사슴들은 이미 총포나 덫으로 자신들을 잡는 것이 허용된 사실을 알았기 때문인지 사람이 접근하기 어려운 곳으로 숨어든 것으로 보인다. 간간이 구모도리야마 골짜기에서 울리는 ‘꽝, 꽝, 꽝…’ 총소리는 사슴들이 보이지 않는 이유를 설명해주었다.

 이 산에는 곰도 많아 ‘곰 출몰 주의’라는 안내판이 등산로입구에서부터 여기저기에 붙어있지만 사슴만이 아니라 곰이나 원숭이 등 야생동물들이 사냥꾼들에 시달려 “사냥꾼 조심”이라고 할 것만 같다. 사냥꾼들도 약간은 찜찜해서인지 사진촬영 요청에는 응해주지 않았다.

 구모도리야마 인근에서는 올해 들어 사슴사냥이 화제로 올랐지만 지난해 이 곳은 곰이 민가인근에 자주 출몰, 소동이 일었었다. 이 곳은 행정구역상으로 일본의 수도인 도쿄 도내이다. 도쿄도심에서 전차 등으로 두 시간이면 닿을 수 있다.그러나 산이 깊어 곰도, 사슴도 많다.

 이처럼 동물피해가 화제지만, 지금 일본에서는 야생동물과 인간의 공존 방안이 심각하게 논의되고 있다. 원숭이도 개체수가 급증하면서 민가에 나타나 피해를 입혀 포획되는 사례가 늘고 있다. 각종 시민단체도 생겨나 당국자들과 지혜를 모으고 있다.

 이 같은 일본의 야생동물 소동을 보면 20세기 전반까지만 해도 금수강산을 포효했다는 한국의 호랑이와 곰, 늑대, 여우 등 야생동물들이 왜 사라졌는지를 생각해 보게 된다. 일제의 남벌이나 동족상잔의 비극 때 숲이 사라졌기 때문이라는 설도 있긴 하지만….


 taein@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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