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서움의 실체란 무엇인가. 무서움의 대상보다는 마음의 작용에 의해 무서움이 일어난다. 밤이나 낮이나 똑같은 산중 환경, 다만 조명상태가 밝았다 어두웠다 할 뿐인데 마음에 그림자가 생기면 무서움을 느낀다. 자연을 정복의 대상이나 수단으로 여기지 않고 살아 있는 생명체로 대한다면 그 품은 한없이 너그럽다. 무섭기는 갑자기 돌변하는 인간의 도시다. 예측할 수 없는 돌발적인 사건 사고가 언제 어디서 일어날지 모르기 때문이다.
두려움의 실체보다도 두려워하는 그 마음이 상황을 더욱 나쁘게 만든다. 두려움은 몸의 근육을 마비시키고 혈액순환에도 영향을 미쳐 정상적이고 건강한 생명의 활동을 저해한다.
우리 마음은 자력과 같아서 내부에 두려움이 있으면 온갖 두려움의 대상들이 몰려온다. 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에게도 그 두려움이 옮겨간다. 병균만 전염되는 것이 아니라 두려움도 전염된다.
이런 이야기가 있다.
한 순례자가 순례의 길에서 흑사병(페스트)과 마주치자 그에게 물었다.
“너는 어디로 가는 길이냐?”
흑사병이 대답했다.
“바그다드로 5천명을 죽이러 가는 길이오.”
며칠 뒤 순례자는 되돌아오는 흑사병을 보고 그에게 따졌다.
“너는 일전에 나한테 바그다드로 5천명을 죽이러 간다고 했는데, 어째서 3만명이나 무고한 생명을 죽였느냐?”
이때 흑사병은 이렇게 대답했다.
“아니오. 나는 내가 말한 대로 5천명만 죽였소. 그 나머지는 두려움에 질려서 자기네들 스스로가 죽은 것이오.”
두려움이 사람들을 죽게 한 것이다. 세상사는 인간의 무의식에 대응하고 있다. 이것이 우주의 메아리이며 그 질서다. 어두운 생각 속에 갇혀서 살면 우리들 삶 자체가 어두워진다. 애걸복걸하면서 국제구제금융으로부터 묵은 빚을 갚기 위해 새 빚을 얻어와야 하는 우리네 처지를 생각하면 착잡하고 암담하기만 하다. 그러나 이런 일이 남이 저지른 일이 아니라 우리 스스로가 우리 분수를 모르고 헤프게 살아온 결과임을 상기할 때 감수하지 않을 수 없다.
다른 한편, 이런 경제난국이 아니면 무슨 힘으로 허세와 과시와 과소비를 견제할 수 있을 것인가. 이 또한 살아 있는 우주의 흐름이다. 우리 눈에 보이는 현상은 보이지 않는 세계가 나타난 결과다. 어떤 현상이든지 우리의 초대를 받아 우리 앞에 온 것이지 우연히 나타난 것은 아니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이미 지나간 과거사에 얽매일 것 없이 새로 시작한다는 결의와 각오다.
인간의 행복과 삶의 의미가 어디에 있는지 근원적으로 생각을 돌이켜야 하고, 그동안 잘못 길들여진 생활습관을 하나하나 고쳐나가야 한다. 그리고 비관적이고 절망적인 한탄의 늪에서 벗어나 낙관적이고 희망적인 의지를 가지고 살아야 한다.
마음의 세계와 물질의 세계를 이어주는 법칙은 놀랄 만큼 정확하고 빈틈이 없다. 걱정과 근심에 빠져 있는 사람에게는 늘 걱정 근심거리만 생긴다. 그러나 희망에 넘치고 신념에 차 있는 마음은 희망과 신념에 찬 우주의 기운을 자기쪽으로 끌어들인다. 비관과 절망이 죽음에 이르는 병이라면, 낙관과 희망은 건전한 삶에 이르는 재기의 통로다.
오늘과 같은 암담한 수렁에서 벗어나려면 어떤 상황 아래서라도 두려워하지 말아야 한다. 그리고 기죽지 말아야 한다. 어차피 인생은 끝없는 시도요 실험 아닌가. 걱정 근심을 미리 가불해 쓰지 말고, 그날그날 최선을 다해 최대한으로 살아간다면 우리는 이 어려움을 능히 이겨낼 수 있다. 얼어붙은 겨울 속에서도 봄은 움튼다.
1998년 1월 18일 |
경제적인 불황과는 상관없이 이 땅의 여기저기서 꽃이 피어나고 있다. 봄은 남쪽에서부터 꽃으로 피어나고, 겨울은 북쪽에서부터 눈으로 내린다. 그 어떤 세월에도 어김없는 이런 계절의 순환이 우리를 받쳐주고 있다는 사실이 든든하게 여겨졌다.
이와 같은 순환은 자연계의 질서일 뿐만 아니라 인간사회에도 적용된다. 한쪽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순환인데 반해서 다른 한쪽은 인위적인 순환이다. 지금 우리 앞에닥친국제통화기금(IMF) 한파는 밖에서 휘몰아쳐 들어온 것이 아니라 우리들 스스로가 불러들인 인위적인 재난이다. 그러니 세상일은 우연히 되는 일도 없고 공것도 없다. 모두가 뿌려서 거둔다.
수많은 사람들이 일터에서 밀려나 그 가족들과 함께 살길이 막막하여 스스로 목숨을 끊는 일이 날마다 이어지고 있는 절박한 현실이다. 그런데도 국민의 세금으로 번쩍거리면서 지내고 있는 이 땅의 정치꾼들은, 내가 옳네 네가 그르네 하면서 수렁에서 벗어날 줄을 모른다. 실로 한심스러운 작태다.
사람의 마음은 항상 무엇엔가 사로잡히면 평온하지 못하다. 마음이 아무것에도 사로잡혀 있지 않을 때에만 자유로울 수 있고, 그때 그 마음은 본래의 평온을 되찾을 수 있다. 기왕에 쥐었던 권력을잃었다고해서 너무 연연해서도 안되고, 새로 얻었다고 해서 함부로 휘둘러서도 안된다.잃은쪽이나 얻은 쪽이나 순환의 질서 앞에 겸허해야 한다. 이 세상에 영원한 것이 어디 있는가.
민심이 천심이라는 말을 우리는 익히 들어왔다. 당리당략에만 혼을 빼앗겨 민심을 잃는다면 그런 정당은 미래가 없다. 집안에 불이 났으면 모두가 나서서 함께 불을 끄는 일이 시급한데, 네탓 내탓을 따지기만 한다면 어떻게 불이 꺼지겠는가.
우리 시대에 정권이 바뀐 것도 민심에서 싹튼 순환의 질서로 보아야 한다. 말이 없던 민중이 선택한 순환의 질서다. 그래서 말없는 민중을 두려워하라는 것이다. 요즘의 정치적인 혼미를 말없이 지켜보고 있는 민중은 머지않아 있을 지방선거에서 순환의 질서를 다시 한번 보여줄 것이다. 정치꾼들은 이런 민중을 두려워할 줄 알아야 한다. 집권 여당은 지나간 정권에서 저질러진 어리석음을 되풀이하지 말아야 한다. 순리를 벗어난 무리수를 써가면서 강행한 그 폐해를 잊지 말아야 한다. 이제는 이끌어가는 입장이니 자만하지 말고 한걸음 물러설 줄도 아는 아량과 여유를 지닐 수 있어야 한다.
어려운 결단이겠지만, 총리인준 문제로 정국이 꼬여 안 풀리면 차선책을 쓸 수도 있어야 한다. 물론 여기에는 당사자의 지혜로운 선택이 따라야 할 것이다. 눈앞 일로만 보면 첫 라운드에서 참패하는 것 같겠지만, 긴 안목으로 보면 지는 길이 곧 이기는 길이다. 나라일이 위급할 때 자기 한 몸을 희생할 줄 아는 그 도량과 용기가 ‘서리’라는 가시방석보다 훨씬 명예로울 것이다. 이 또한 정치적인 역량으로 평가될 것이고, 이보 전진을 위한 일보 후퇴의 현명한 전술일 수도 있다. 왕년의 집권 여당에서 현재의 야당으로 물러앉은 한나라당은 권력의 덧없음을 실감했을 것이다.
권력도 살아 움직이기 때문에 고정되어 있지 않고 순환한다는 교훈을 절감하고 있을 것이다. 오늘날 무고한 국민이 겪게 된 이런 재난이 어떻게 해서 초래되었는지, 집권 여당이었던 자신들의 책임소재를 반성할 줄 알아야 한다. 못먹는 밥에 재를 뿌리고 있다는 국민적인 지탄을 받지 않도록 각성해야 한다.
사마천은 그의 ‘사기(史記)’에서 말한다. “정치의 도리는 화(禍)가 될 수 있는 일이라도 그것을 잘 활용하여 복이 되게 하고, 실패를 돌이켜 성공으로 이끄는 데에 있다.”
누가 말했던가. 사람은 정치에 관심을 갖지 않으려 해도 정치쪽에서 관련해 온다고.
1998년 3월 1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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