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도요타 찬가
▲ 도요타 공장이 들어선 켄터키주 시골마을 조지타운의 대학생 앤드류 니오가 2007년 1월 9일 도요타가 세워준 학교 풋볼스타디움 간판을 가리키고 있다. | |
기자는 결국 질문을 포기했다. 같은 질문을 여러 사람에게 던졌으나 예상했던 ‘한국식’ 대답은 전혀 나오지 않았다. 우문(愚問)이었던 것이다.
지난주 도요타자동차 공장이 있는 미국 켄터키주 조지타운에서 기자는 미국인 주민들에게 물어봤다. “일본차인 도요타가 미국차인 GM·포드·크라이슬러를 제치고 올해 세계 1위가 될 것 같은데 어떻게 생각하는가?” 한국이라면 “있을 수 없는 일”, “한국차를 한 대라도 더 사서 도와야 할 것”이라는 애국심 가득한 대답이 나왔을 것이다. 미국인들은 달랐다.
호텔 직원인 마이크 에커트는 “오늘날 우리가 이렇게 잘사는 건 모두 도요타 덕택이다. GM이 1위 자리를 빼앗겨도 우리는 전혀 개의치 않는다(We don’t care)”라고 했다. 공립 체육관의 40대 여직원은 “도요타 덕택에 세수(稅收)가 늘어나 조만간 새 스케이트보드장도 생긴다”며 “우리는 정말 도요타를 좋아한다”고 말했다.
심지어 GM·포드·크라이슬러 등 미국 ‘빅3’ 업체의 아성인 디트로이트의 주민조차 미제 차를 외면하고 일제 차를 반겼다. 가게 점원인 제이슨 파크스는 “일제 차가 품질과 디자인, 애프터서비스가 훨씬 좋다”며 “내 약혼자 집안이 대대로 포드에서 일하지만 약혼자도 나의 혼다 차를 좋아한다”고 했다.
왜 이런 현상이 발생할까. 1960년대에 세계 최고의 명성을 구가하던 미국 자동차 회사들은 노조의 파업을 두려워해 막대한 연금과 의료비를 지급하는 노사합의서에 도장을 마구 찍어 줬다. 회사가 잘나갈 때는 이게 문제가 되지 않았다. 하지만 도요타·혼다·닛산 등 일본 차들이 약진하면서 상황은 완전히 달라졌다. GM과 포드가 강성 노조와 높은 의료비·연금부담으로 투자가 부실해지자 미국 소비자들이 싸늘하게 외면하고 있는 것이다.
도요타 찬가를 부르는 조지타운의 예를 보자. 인구 1만명의 이 시골 동네는 1980년대 중반 미국 회사들이 투자할 여력이 없자 일본 회사인 도요타에 달려갔다. 도요타는 대규모 인센티브 제안에 화답해 50억 달러를 투자, 공장을 짓고 학교를 세우면서 주민들의 생활을 완전히 바꾸어 놓았다. 마을 사람들은 이제 모두 열렬한 도요타 지지자이다.
앨라배마주는 조지타운이 도요타에 제공한 것의 2배에 달하는 인센티브를 제안하면서 벤츠 공장 유치작업을 벌이고 있다. 유치에 성공하면 주민들은 GM 대신 벤츠를 옹호할 것이다.
켄터키나 앨라배마뿐 아니다. 미국 전역에서 도요타 사랑은 점점 커지고 있다. 미국인의 4분의 1이 새 차를 살 때 도요타를 살 생각이고, 도요타 소유자가 다시 도요타를 선택할 확률은 78%에 이른다. 반면 GM과 포드를 사겠다는 사람은 각각 15%, 13%에 불과하다(컨슈머리포트). 이쯤 되면 미국 차는 완전히 패배, 백기를 들고 투항한 셈이다. 한때 미국에도 소비자의 애국심에 호소해 망해 가던 차 회사를 살린 시절이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더 이상 그런 시대는 아닌 것 같다. 소비자들의 입맛은 점점 까다로워지고 제품의 원산지 구별은 사라져 가고 있기 때문이다.
독점과 애국심 덕을 톡톡히 보고 있는 한국 차업계의 노조가 최근 파업을 시작했다. 시간이 흘러 10년쯤 뒤에 미국처럼 잦은 파업과 노사 긴장, 시장 개방으로 경영 위기에 처했다고 가정해 보자. 일본·미국 자동차의 위세와 중국·인도 자동차의 약진 속에서 그때에도 지금처럼 독점과 애국심에 호소해 가며 살아남을 수 있을까. 미국의 교훈은 ‘No’라고 분명히 말하고 있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