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 이행률 44.2%…‘일자리 창출’은 헛구호, 노동 분야는 67%로 높은 편
참여정부 공약 얼마나 이행했나
참여정부 공약 얼마나 이행했나
반면 노무현 캠프(당시 민주당)가 내건 공약은 민노당을 기준으로 한다면 ‘우파 정책’에 가까웠다. 평등과 분배가 강조되기는 했지만, 당시 한나라당의 공약과 큰 차이점을 발견하기 힘든 것이 사실이었다. 심상정 민노당 의원은 “참여정부의 대선 공약은 중도우파 공약”이라고 규정했다. 일부만 충실, 총체적으로 부실 좌파 건 우파 정부이건, 이도저도 아닌 모자이크 정부건, 중요한 것은 ‘일 잘하는 정부’다. 나라 경제가 잘 돌아가고, 서민이 배부르고, 기업가가 신명나게 일할 수 있는 분위기였다면 국민은 이 정부에 대해 ‘지지율 10%’로 화답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렇다면 참여정부는 얼마나 일을 잘했을까,
국민에게 약속한 공약은 얼마나 충실히 수행했을까? 이코노미스트는 2002년 대선 당시 현 정부가 내건 공약 중 경제분야 이행률을 조사했다. 총 1332개 과제 중 경제 관련 공약을 추려내고, 그중 ‘투자하기 좋은 나라를 만들겠습니다’ 등의 추상적인 것과 검증이 쉽지 않은 공약을 제외한 419개 과제를 분석했다. 그 결과 참여정부의 경제 공약 이행률은 44.2%로 집계됐다. 경제분야에 한정했지만 상대적으로 높은 편이다. DJ정부의 공약 이행률 18%(2003년 당시 경실련 발표)와 비교하면 더욱 그렇다. 문제는 일부 부문은 충실한 편이지만 총체적으로는 실패했다는 점이다. 정작 중요한 공약은 ‘선언’에 그쳤고, 기업 규제 같은, 지키지 않았으면 더 좋았을 약속을 잘 지킨 것도 문제다. 복지와 분배를 그렇게 강조해 놓고도, 정작 복지분야 공약 이행률이 낮은 것도 눈에 띈다. 참여정부가 국민과 한 약속 중에서 낙제점을 받은 것은 ‘일자리 창출’이다. 단 한 건도 약속을 지키지 못했다. 말 그대로 공약(空約)이 돼 버린 셈이다. 2002년 대선 때 노무현 당시 민주당 후보는 열 가지가 넘는 ‘일자리 창출’ 공약을 발표했다.
고령자 일자리 50만 개, 청년층에 알맞은 좋은 일자리 50만 개, 중기 맞춤형 기술인력 10만 명 양성 등도 지키지 못했다. 1년 남은 집권기간 중 이행 가능성도 현재로서는 없다. 복지 부문 이행률 37% 불과 나라 살림과 관련된 공약 이행률도 낮았다. ‘7% 경제성장’은 말할 것도 없고, 줄여가겠다는 국가채무는 지난해 200조원을 돌파했다. 서민의 삶은 더욱 고통스러워졌다. ‘집값 안정’을 외쳤지만 과도한 시장 개입으로 ‘정부 실패’의 전형을 보여주며, 무주택자는 더 이상 집을 살 수 없을 정도로 집값을 올려놨다. ‘반기업, 친노동’ 성격이 짙은 공약 이행률은 상대적으로 높았다. 특히 비정규직 관련 공약과 복수노조, 산별교섭 등 노동분야 관련 공약 이행률은 64.3%로 부문별 공약 이행률 중 가장 높았다. 재벌 개혁을 주요 20대 정책과제에 포함시켜 대기업을 옥죄는 데는 성공했다. 반면 중소기업 관련 공약은 절반도 지키지 못했다.
복지·의료 분야 이행률은 본지가 분류한 8개 분야 중 가장 낮은 37.2%였다. 참여정부의 복지분야 공약 구호는 ‘전 국민의 보편적 복지’였다. 핵심은 사회복지 지출비를 올리고, 자활지원법을 제정해 저소득층 자활사업을 지원하겠다는 것이다. 공공의료를 확대하고, 전 국민의 의료보장을 하겠다는 것도 포함됐다. 노무현 대통령은 지난해 신년연설을 통해 “참여정부 정책이 분배 위주라고 하는데 우리의 재정규모는 GDP 대비 27% 수준으로 미국 36%, 일본 37%, 영국 44%, 스웨덴 57%에 비해 적다”며 “더욱이 이들 나라가 중앙정부 재정의 절반 이상을 복지에 쓰는데 우리는 4분의 1밖에 되지 않는다. 어떤 기준으로 보더라도 좌파 정부 논란은 사리에 맞지 않는 주장”이라고 말했다. 청와대 사람들 역시 “GDP 대비 복지비 지출이 8.7% 수준인데 어떻게 복지 지향 좌파 정부냐”고 주장해 왔다. 하지만 참여정부의 공약은 사회복지 지출비를 GDP 대비 13.5%까지 확대한다는 것이었다. 만약 정부가 이 공약을 실천했다면, 우리나라의 사회보장 지출 수준은 OECD 국가의 절반 정도인 경제수준과 노인인구 비율을 감안했을 때 16~17%가 됐을 것이다. 또 현 정부는 지난해 발표한 ‘비전 2030’ 정책을 통해 2030년까지 복지비 지출을 GDP 대비 20%대까지 끌어올리겠다고도 했다. 하지만 말의 성찬일 뿐 이에 대한 국민적 동의는 사실상 얻지 못했다. 심상정 민노당 의원이 “제대로 된 복지정책을 쓰지도 않으면서 마치 복지 정부, 좌파 정부인 양 행세하는 꼴”이라고 비판한 배경이다.
재정분야 이행률은 39.3%였다. 공약인 ‘세무 당국과 사회보험 기관의 공조체제 강화’(2005년 세법 개정안)를 통해 탈루 세원을 차단하려는 노력이 돋보였고, 올해 도입되는 복기부식 예산제도 정책이나 중기 재정계획 수립 의무화 등은 평가받을 만하지만, ‘영점 기준에서 전면적으로 재정 개혁을 하겠다’는 공약은 3대 재정개혁 과제를 추진 중임에도 별다른 성과를 보지 못했다. 공적자금을 철저히 회수하겠다고 약속했지만 2006년 11월 현재 회수율은 47.9%에 그치고 있다. 지하경제를 근절하겠다는 공약 역시 별다른 정책을 내놓지 못했다. 동북아 허브를 구축하겠다는 공약 역시 평가는 바닥이다. 산업·무역 분야는 10개 중 4개꼴(39.7%)로 지켰다. 외국인투자 비율을 GDP 대비 20% 이상 높이겠다고 공약했지만, 론스타 사태 등 오히려 외국자본에 대해 공격적인 자세로 일관했다는 지적이다.
노동분야 공약 이행률은 높았다. 공무원노조 허용, 복수노조 및 산별노조 허용, 비정규직 관련 공약 등 친노동 성격의 이행률이 특히 높았다. 하지만 얼마 전 국회를 통과한 ‘비정규직 법안’은 노동계에서조차 악법이라며 철회를 주장하고 있어 논란이 계속될 전망이다. 부동산·교통 분야 이행률은 44.4%였다. 대통령 스스로 “부동산 빼고는 꿀릴 게 없다”고 말할 정도로 현 정부의 부동산 정책은 실패작이다. ‘중산층·서민의 내집 마련 꿈 실현’이라는 공약을 내세웠고, 그렇게 해보려던 정부의 정책은 서민에게 칼이 돼 돌아왔다. 정부가 숱한 반발에도 공약이라며 추진한 부산신항은 해양수산부 스스로 규모를 축소하겠다고 나설 만큼 자리를 잡지 못하고 있다. ‘지방 신공항 건설 사업’ 역시 정체이고, 기존에 있던 지방 공항시설 역시 김포·김해·제주 등을 제외하면 만성 적자 상태다. ‘4차로 이상 국도 확대’ ‘고속도로망 확충’ ‘교통 사각지대 경전철 건설’ 등은 장기계획이지만 순조롭게 진행 중인 것으로 평가된다. 농어촌 관련 공약은 절반을 넘게 지켰다(53.8%). ‘농림 예산 국가 전체의 10% 수준 확충’ 등의 큰 공약은 이행하지 못했지만 농어촌특별법 제정, 재해 복구비 정부보조율 인상, 농어업인 대출자금 금리인하 등 전반적으로 충실하게 이행했다.
일부 정치학자는 “집권당이 가장 먼저 할 일은 공약을 버리는 것”이라고 말한다. 표를 얻기 위해 만든 공약에 함몰되면, 현실과 동떨어질 수 있다는 것을 우려한 말일 것이다. 설령 그렇다 해도 공약에는 정파의 이념, 이미지와 방향이 녹아있게 마련이다. ‘정부개입’지나치게 중시 이 점에서 참여정부는 대국민 약속을 지키려는 노력에 소홀했다고는 볼 수 없지만, 결과적으로 실패할 수밖에 없는 공약을 내세웠다고 할 수 있다. 또 ‘좌파 공약’이라고 단정하기에는 무리가 있지만, 지나치게 정부 개입을 중시한 측면도 있다. 정부 개입 중시자들의 특징은 시장보다는 정부를 신뢰하고, 분배와 보편적 복지를 강조하며, 자유보다는 평등을 중시한다. 강자와 약자 또는 선한 자와 악한 자를 구별하는 경향도 있다. 유럽의 진보 정당이 여기에 속한다. 참여정부를 ‘좌파 정권’이라고 보는 시각이 팽배한 것도 이 같은 맥락에서다. ‘1000개 일류 상품 개발’ ‘세계 100대 브랜드에 10개 이상 진입’ ‘중소기업 수출비중 50% 확대’ 등의 무모한 공약 역시 정부 역할을 과신하는 데서 나온 발상이다. 늦었지만 이행할 기회가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기업환경을 개선하고 규제를 풀며 기술개발을 지원하는 것이다. 기업의 시장개척도 정부가 도와야 한다. 산업부문 공약의 이행 주체는 사실상 기업이라고 할 수 있다. 김태윤 기자(pin21@joongang.co.kr) 매거진 기사 더 많이 보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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