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카고 화이트삭스의 불펜코치로 활약하다 최근 프로야구 SK 와이번스의 수석 코치로 영입돼 귀국을 앞둔 이만수코치는 화이트삭스가 88년만에 월드시리즈에서 우승한지 꼭 1년째 되는 26일(현지 시간) 연합뉴스와의 전화 인터뷰를 통해 그간 시카고 생활에서의 추억과 떠나는 아쉬움, 한국에서의 첫 지도자 생활에 대한 기대감을 담담하면서도 밝은 목소리로 풀어나갔다.
이코치는 귀국일정이 예상보다 앞당겨져 자신만 28일 먼저 귀국하고 아내인 이신화씨는 3주 후에 한국으로 올 것이라면서 "1998년 미국에 처음 왔을때도 혼자 먼저 왔었습니다. 그때는 미국에 지도자 공부를 하러 온다는 것이 솔직히 긴장됐었습니다. 기대감도 있었지만 과연 낯선 환경에서 제대로 해낼 수 있을까 걱정도 됐고 힘들기도 했지요. 그런데 이제 9년만에 다시 한국으로 돌아가게 된 지금 9년전 미국에 올때와 좀 비슷한 기분입니다. 한국에서의 지도자 생활도 처음이고 또 제게 대한 기대도 많은 것을 알고 있어서 설레면서도 긴장됩니다. 하지만 내나라로 돌아간다는 것을 생각하면 편하고 행복합니다. 잘해낼 것 같습니다" 라고 말했다.
다음은 이코치와의 일문 일답
--귀국소식을 알리자 화이트삭스측의 반응은 어땠는지.
▲구단주를 비롯해 단장과 감독, 코치들에 이르기까지 기꺼이 축하해줬다. 그에 반해 선수들은 축하보다는 아쉬움을 더 많이 나타냈다. 일부 선수들은 아직도 전화를 걸어서 가지 말고 같이 있자고 조르기도 한다. 그동안 빡빡한 일정때문에 못만났던 구단 직원들과는 오늘 아침에 만남을 가졌는데 '그리울겁니다' 라는 문구가 찍힌 1미터가 넘는 큰 제 얼굴 사진을 만들어서는 직원들이 빽빽하게 송별 메시지들을 적어넣은 것을 건네주더라. 가슴이 찡하면서 눈물이 핑 돌았다.
--선수, 코칭스태프은 물론 구단 직원과 중계방송팀, 팬들에 이르기까지 폭넓은 사랑을 받았는데.
▲성격이 사교적이고 외향적인 것이 미국에서 사람들과 친해지는데 많은 도움이 됐다. 처음에 말은 잘 안통했지만 이해하려고 노력하고 잘 웃으니까 금방 친해졌다. 아지 기옌 감독, 코치들과는 원정 경기때 한국 식당에서 함께 한국음식들을 즐기곤 했는데 특히 기옌 감독은 파전을 엄청나게 좋아하고 갈비탕도 한국 사람식으로 먹는 등 한국음식의 열성팬이 됐다.
--그동안의 미국생활을 돌아보며 가장 행복하고 기억에 남는 순간을 꼽는다면.
▲1998년 클리블랜드 인디언스의 싱글 A 팀의 타격코치로부터 시작해서 1999년 화이트삭스의 트리플 A 팀인 샬롯 나이츠를 거쳐 2000년 시카고 화이트삭스에 합류해 수 많은 즐거운 추억들을 가졌다. 그러나 그 가운데 최고는 지난해에 꿈에 그리던 월드시리즈를 그냥 구경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속한 팀이 우승한 것이라고 하겠다. 내 일생에서 가장 행복한 일이었다. 우승하고 나서 시카고 도심에서 카퍼레이드를 하는데 "이게 천국이 아닌가" 라는 생각까지 들었다. 야구 외적으로는 지난해 12월 시카고의 의사들끼리 모여서 만든 밴드가 장애인들을 위해 마련한 공연에 참가했던 것이 기억에 남는다. 정말 좋은 자리였다. 어제 그 밴드의 멤버인 산부인과 의사 프레드를 만나 내가 그동안 기회가 될 때마다 모아왔던 선수들의 사인볼과 야구 배트들을 선물했다. 자선 기금 마련에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었으면 한다.
--힘겨웠던 순간도 있었을텐데.
▲3년전 한국 복귀가 무산됐을때가 가장 힘들었다. 직접 연락도 못받고 언론 보도를 통해서 모든 것이 틀어진 것을 알게 됐을때 심정은 정말 말로 표현하기가 힘들다. 이미 화이트삭스와의 계약이 끝난 것은 물론 귀국 준비를 위해 집과 차도 다 정리한 상태여서 오갈 데 없는 막막한 신세였다. '낙동강 오리알이라는 말을 이런때 쓰는구나' 라는 생각을 했었다. 아내가 당시 많이 아팠었는데 화이트삭스를 떠나며 의료 보험 혜택도 끊어져서 천문학적인 의료비에 놀랐던 기억도 난다. 그러나 이 힘들었던 기억은 아이러니하게도 월드시리즈 다음으로 좋았던 일로 이어졌다. 당시 화이트삭스는 내가 그만둔 자리에 다른 코치가 내정되어 있었는데 감독과 코치들이 '이만수 아니면 안하겠다' 라고 나섰다. 동료들의 힘 덕분에 다시 화이트삭스로 돌아올 수 있었다. 미국에서는 정말 흔치 않은 일이다.
--한국에 돌아가면 시카고의 어떤 것이 가장 그리울 것 같은지.
▲미시간 호수가 가장 그리울 것 같다. 처음 시카고에 왔던 날 분명 시카고에는 바다가 없다고 들었는데 바다처럼 넓고 파도까지 치는 미시간 호수는 참 인상적이었다. 집에서 7분만 가면 미시간 호수가 나온다. 마음이 힘들거나 고민이 있을때는 호숫가로 나가 미시간 호수를 바라보며 시름을 잊곤 했다. 추억이 많은 곳이다.
--아내는 3주후에 다시 만나겠지만 두 아들과는 태평양을 두고 떨어지게 됐는데.
▲노던 일리노이대에 재학중인 큰아이는 내년에 졸업반이 된다. 졸업 후에는 귀국해서 군에 입대할 준비를 하고 있다. 조지아주에서 대학 신입생 생활을 하고 있는 둘째도 적응을 잘하고 있어서 별로 걱정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아내는 아무래도 엄마라서 그런지 막내 생각에 벌써부터 눈물을 보이기도 한다. 아내는 1년에 최소한 2차례 정도 아들들을 보러 미국을 다녀갈 것 같고 나 역시 시즌이 끝난 뒤 기회 있을 때 다시 올 생각이다.
--SK 수석코치로서의 포부는.
▲수석코치는 감독을 100 퍼센트 보좌하는 것이 의무다. 감독이 원하는 야구를 실현하기 위해 힘을 쏟을 계획이다. 김성근 감독은 선수시절 2년동안 감독으로 모신 분이다. 일부에서는 '일본야구와 미국야구' 라고 우려하기도 하던데 야구란 결국 기본은 같다고 본다. 김감독의 지도 아래 혹시 내게 미국야구에서 보고 익힌 것들에 대해 요청하실때 도움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제주도 훈련부터 합류할 예정이다. 또한 눈높이를 선수들에게 맞춰 선수를 도와주고 이끌어주는 지도자로 신뢰 받는 코치가 되고 싶다.
--그동안 메이저리그 야구를 보며 한국 야구에 도입하고 싶은 점이 있다면.
▲지금은 많이 바뀌었겠지만 내가 선수생활을 할 때만 해도 프로야구선수는 상당히 고달픈 느낌이 많았다. 종종 선수들은 승부에 너무 집착해서 정작 더 중요한, '즐거움'을 제대로 누리지 못한다. 열심히 하면서도 선수들이 즐거워야 보는 사람도 즐거울 수 있다. 남미 선수들을 보면서 부러웠던 부분은 때론 지나쳐보일만큼의 배짱과 낙천적인 자세였다. 경기중에 실수를 하더라도 금방 흘려보내고 더 이상 긴장하지 않는다. 그래서 두번 실수하는 경우가 적다. 그러나 한국선수들은 실수를 하면 자신을 자학하고 그러다 보니 주눅도 들고 더 긴장해서 다시 실수를 하는 경우가 종종 보인다. 어릴때부터 기본에 충실하면서도 야구를 즐길 수 있도록 교육을 시켜야 할 것이다. SK를 선택한 동기도 구단이 스포테인먼트를 추구한다는 점이었는데 구단은 이익을 갖고 팬들은 즐거움을 갖고 선수들은 직업을 갖는 3박자가 이뤄질때 좋은 야구가 된다고 생각한다. SK는 메이저리그 수준급의 경기장을 가지고 있어서 팬들에게 볼거리, 먹을거리를 제공하며 가족과 함께 찾을 수 있는 즐거운 야구장을 만드는 것이 충분히 가능하다고 본다.
--팬들에게 하고 싶은 말은.
▲먼저 시카고 팬들께는 갑자기 급하게 떠나 제대로 다 인사드리지 못하는 것을 죄송하게 생각한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다. 그동안의 성원에 보답하는 길은 여기서 배운만큼 한국에서 젊은이들에게 좋은 야구를 가르치는 것이라고 믿는다. 여러가지 힘든 상황속에서도 당당히 자리잡은 동포분들이 자랑스럽다. 이제는 단결된 모습으로 미국 주류사회에도 적극적으로 나서서 우리의 힘을 보여줄 수 있으면 좋겠다. 또한 그동안 잊지 않고 기다려준 한국팬들께는 기대하시는만큼 실망시키지 않도록 꾸준히 노력할 것을 약속드린다. 곧 한국에서 다시 인사드리겠다.
kwchrislee@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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