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의 김정일 조카 장금송 비운의 러브스토리 [중앙일보]
성혜림씨 등
`김정일 가` 여인들 … 순탄치 않은 삶
파리 유학 중이던 금송씨는 8월 자신의 빌라에서 사망 이틀 만에 발견됐다. 그를 보살피던 북한인 운전기사와 가정부에 의해서다. 그의 프랑스 체류 동정을 주시해 온 프랑스 공안 당국과 한국의 정보기관은 긴장했다. 금송씨는 장성택 북한 노동당 제1부부장과 김경희(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여동생) 당 경공업부장 사이의 무남독녀다. 김 위원장의 조카가 해외에서 숨진 건 보통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소식통은 "금송씨는 훤칠한 키에 서구적인 미모 때문에 주변 사람들이 북한 출신이란 걸 알아채지 못할 정도였다"고 귀띔했다. 정보 소식통에 따르면 사인은 수면제 과다복용이었다. 사랑하는 남자와의 결혼이 어렵게 되고 평양 귀환 독촉까지 받게 되자 극단적인 선택을 한 것이다. 그의 유해는 프랑스 관계 당국의 협조 아래 극비리에 평양으로 향했다. 금송씨의 결혼에 제동을 건 부모도 사실은 집안의 반대를 무릅쓴 결혼을 했다. 김경희는 1960년대 말 모스크바 유학생 출신인 미남형 엘리트 장성택과 사랑에 빠졌다. 첫 부인 김정숙과 낳은 딸 경희를 애지중지하던 김일성은 두 사람의 관계를 반대했고, 장성택을 강원도 원산으로 보내 버렸다. 하지만 불같은 성격인 김경희는 틈만 나면 벤츠 승용차를 몰아 원산으로 향했고 72년 결혼에 성공했다. 26세 동갑이었다. 평양 권력 내부에서 '장 부장'으로 통하는 장성택은 2003년 10월 직권남용 등의 이유로 좌천됐지만 올 1월 복귀했다. 김 위원장도 60년대 후반 여배우 성혜림과 사랑에 빠졌다. 성혜림은 월북작가 이기영의 며느리로 김 위원장은 절친했던 친구 이종혁(현 아태평화위원장)의 집에 드나들다 그의 형수를 마음에 둔 것. 성혜림을 이혼시킨 뒤 몰래 살림을 차려 71년 아들 정남을 낳았으나 김일성으로부터 끝내 인정받지 못했다. 이영종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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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09.18 04:29 입력 / 2006.09.18 05:46 수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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