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HMS는 2개 캠퍼스에 각기 프랑스요리·이탈리아요리·제과제빵 등 5개의 주방을 갖추고 있다. 디플롬 과정 학생들이 프랑스음식 조리 실습시간에 강사의 설명을 경청하고 있다. 레쟁(스위스)=유윤종 기자 |
스위스의 호텔학교와 이탈리아의 문화재 복원학교에서 중국의 무술학교까지, 손기술과 예술적 감각, 현장 적응형 실무기술이 어우러진 활기 넘치는 직업교육 현장은 다음 세대의 주인공들에게는 적성에 맞는 행복한 직업 인생을, 미래의 한국사회에는 다양한 분야에서 경쟁력을 갖춘 활력 있는 사회로 들어서는 문을 활짝 열어 줄 것이다.》
■코-레쟁 캠퍼스 가보니
레만 호반을 죽 달려가던 차의 창 위쪽으로 아득한 산 중턱에 중세의 고성(古城) 같은 건물이 눈에 확 들어왔다.
“저 건물은 뭡니까?”
동행한 플로란 론데스 스위스 호텔 매니지먼트 스쿨(SHMS) 사무국장에게 물었다.
“저곳이 곧 우리가 도착할 SHMS의 코(Caux) 캠퍼스입니다.”
“예? 저 높은 곳이 학교라고요?”
구절양장(九折羊腸)이 따로 없었다. 차는 영동고속도로의 옛 대관령 구간을 연상케 하는 급커브와 급경사의 눈길을 20여 분간이나 달렸다. 마음을 졸이는 순간들을 뒤로하고 문득 햇살이 한결 화창해졌다고 느꼈다. 저 아래 레만 호의 물결이 흐린 안개에 싸여 가라앉아 있었다. 해발 1200m. 1905년 문을 연 ‘코 팰러스’ 호텔에 차가 닿았다. 예전에는 5성급 호텔이었지만 오늘날엔 이 학교의 제1 캠퍼스로 사용되는 곳이다.
시끌벅적한 소리가 귓전을 때렸다. 단정한 정복을 입은 수십 명의 학생이 휴식시간에 즐겁게 얘기를 나누고 있었다. 유럽인, 아시아인, 인도인…. 갖가지 다른 악센트의 영어 목소리로 떠들썩했다.
이윽고 론데스 국장은 1학년 ‘음식·와인 서비스’ 실습 현장인 프렌치 레스토랑으로 기자를 안내했다. 동료 학생들이 웃음 띤 얼굴로 앉아있는 가운데 실습조 학생들은 긴장된 표정으로 접시를 날랐다.
“잠깐, 방금 접시가 올 때 편했나요?”
“아뇨, 이 친구 팔이 눈앞을 가렸어요.”
“자, 들었죠? 몸이 손님의 시선을 가리는 시간은 아주 짧아야 합니다. 서두르지 말고, 다시 한 번!”
스위스 호텔 매니지먼트 스쿨은 1992년 문을 연, 비교적 ‘젊은’ 호텔학교다. 그러나 이 학교는 매년 10% 이상의 성장세를 기록하고 있다. 글뤼옹 인스티튜트, 레로슈 호텔 매니지먼트 인스티튜트 등 경쟁 학교들이 학생 수 감소로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는 것과 대조적이다. 최근 경영전문 주간지 ‘유러피안 비즈니스 저널’에 특집기사로 소개될 만큼 각광을 받고 있다.
이 학교 학생은 2200명. 론데스 국장은 “제2외국어 수업을 제외한 전 과정이 영어로 진행되는 학교 중에서는 SHMS가 최대 규모”라고 설명했다.
이어 제2캠퍼스가 있는 인근 레쟁으로 향했다. 몽트뢰에서 차로 40여 분, 한층 높은 해발 1600m의 스키 타운이다. 이 학교는 급증하는 학생을 수용하기 위해 리조트 체인 ‘클럽메드’ 소유의 리조트였던 기차역 앞의 ‘몽블랑 호텔’과 ‘벨베데레 호텔’ 등 두 건물을 지난해 매입해 캠퍼스로 개조했다. 서로 약 100m 떨어져 있으며 30m 정도의 고도 차가 나는 두 건물은 케이블을 사용한 ‘레일웨이’로 연결된다. 주방만 해도 프랑스식, 이탈리아식, 와인·치즈용, 제과제빵용 등 다섯 개. 말끔하게 정비된 주방을 둘러보다 한국인 김병용(22) 씨를 만났다. 미국에서 고등학교를 마치고 학사(BA) 코스를 다니고 있는 그는 최근 실력을 인정받아 구내 프랑스 레스토랑에서 후배들을 지도하는 ‘인스트럭터’로 선발됐다.
“우리 학교의 장점은 철저히 실무 능력에 초점을 두고 학생들을 지도한다는 점이죠. 주방에서부터 하우스키핑(객실 정리), 리셉션, 회계, 파티 플래닝 등에 이르기까지 세부 사항을 꼼꼼하게 가르치기 때문에 호텔 내 모든 직위를 교과 과정 내에서 경험하게 됩니다. 그런 만큼 실전에 즉각 적응하기가 쉽죠. ”
디플롬(자격증) 과정에 재학 중인 홍완기(20) 씨는 “주방과 레스토랑 등 실습시설 뿐 아니라 커피숍, 바, 스파 등 학생 편의시설도 혀를 내두를 만하다”라고 자랑했다. 호텔학교인 만큼 기숙사 역시 ‘호텔 수준’으로 관리되고 있다는 말도 덧붙였다.
몽트뢰(스위스)=유윤종 기자 gustav@donga.com
■‘호텔업의 고향’ 몽트뢰는…
몽트뢰는 스위스 서부 레만 호반의 동쪽에 자리 잡고 있으며 수도인 베른에서 자동차로 2시간, 레만 호 반대편인 제네바에서는 1시간 거리인 휴양도시. 인구 2만3000명에 불과한 소도시지만 스위스가 오늘날 세계에서 손꼽히는 관광대국으로 성장한 데는 ‘스위스 호텔업의 고향’으로 불리는 이 도시가 큰 역할을 했다.
레만 호 주변은 기후가 온난해 유럽인이 겨울에 많이 찾는 지역. 이 일대에서도 몽트뢰를 중심으로 한 인근 에글, 브베, 샤토되 등은 해발 1000m를 훌쩍 넘는 알프스 산간지대를 바로 눈앞에 두고 있어 스키 등 겨울 스포츠를 즐기기에도 적합하다. 리옹 디종 등 프랑스의 대도시와 가까울 뿐 아니라 파리에서 출발하는 관광객에게도 프랑스 영내인 샤모니보다 오히려 접근하기 용이하다.
이 때문에 19세기 영국과 프랑스의 상류층은 겨울이면 이 지역을 앞 다투어 찾았다. 맑은 공기 때문에 주로 결핵환자의 요양소로 쓰였던 고산지역 산장들도 잇따라 호텔로 개발됐다. 특히 영국인들은 당나귀 등에 욕조를 싣고 험한 산길을 올라 이목을 끌기도 했다.
오늘날 몽트뢰는 7월마다 열리는 유럽 최고의 재즈 축제 ‘몽트뢰 재즈 페스티벌’로 명성을 얻고 있다. 호반에 위치한 9세기의 건물 ‘시옹 성’도 바이런의 서사시 ‘시옹 성의 죄수’로 유명해 관광객들의 발길을 끌어들이고 있다. 제네바와 로잔 등 인근의 대도시를 찾는 비즈니스맨들도 몽트뢰의 목가적인 분위기를 맛보기 위해 이 작은 도시를 즐겨 찾는다.
스위스 호텔학교협회에 속한 15개 학교 중에서도 절반에 가까운 7개가 몽트뢰와 레쟁, 글리옹, 르부브레 등 몽트뢰 인근 지역에 있다.
■2년 6개월 교과과정
스위스 호텔 매니지먼트 스쿨(SHMS)의 교과과정은 2년 반 과정의 디플롬 과정으로 시작된다. 첫해에는 서빙 주방 컴퓨터 접대를, 2년차에는 객실정비 마케팅 회계 관광학 등을 배운다. 그러나 학교 교육은 매년 5개월의 집중 수업이며, 나머지 4∼6개월을 이용해 권위 있는 호텔과 레스토랑이 인증하는 ‘인턴십’을 받아야 한다.
인턴십 기간에는 매달 2000스위스프랑(약 150만 원) 정도의 급료를 받는다. 매년 2만∼2만5000스위스프랑(약 1500만∼1900만 원)의 수업료가 부담되는 수준이지만 인턴십으로 어느 정도의 벌충이 가능한 셈. 스위스나 다른 유럽 국가뿐 아니라 한국에서도 인턴십이 가능하다. 인턴십 과정의 성과를 설명하는 ‘리포팅’에서 탈락하면 유급이 불가피하다.
이곳에서 디플롬 과정을 마치면 미국 호텔·모텔협회가 인증하는 디플롬 자격을 별도의 인증 절차 없이 받을 수 있다. 디플롬 과정을 마친 뒤엔 원할 경우 5개월간 접대, 여행, 이벤트 등의 특화과정을 이수한 뒤 학사(BA) 자격을 받게 되고 나아가 1년 동안의 심화 실무교육을 마친 뒤 석사(MA) 자격을 받게 된다.
학사 석사 과정은 자매학교인 영국 더비대와 공동 프로그램으로 운영되며, 졸업 후에는 더비대 등에서 박사과정 수학을 비롯한 관련 연구를 계속할 수도 있다. 이들 과정을 이수하는 동안 팀을 짜서 행사를 기획하고 실행하는 연회(Banquet) 실습 프로그램과 각 나라의 문화를 자랑하는 ‘인터내셔널 데이’ 프로그램은 성과를 학점으로 인정받을 뿐 아니라 학창 생활의 즐거운 추억이 되기도 한다.
얼마 전 졸업후(PGD) 과정을 마친 김태형(21) 씨는 “특히 올해 인터내셔널 데이에는 한국요리와 태권도, 부채춤, 즉석 난타 공연이 인기를 끌어 캠퍼스 내에 ‘작은 한류’를 일으켰다”고 소개했다.
SHMS 유학 희망자들의 유학 수속을 돕고 있는 유학채널의 권상오 부장은 “수업 내용을 따라가기 위해서는 일정 수준 이상의 영어 청취 능력이 권장된다”며 “학교에서 실시하는 어학시험에 불합격할 경우 현지에서 어학코스를 별도로 밟게 돼 금전과 시간의 손실이 따르니 유의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몽트뢰=유윤종 기자 gustav@donga.com
■돈하우저 학장 인터뷰
“SHMS의 경쟁력은 즉시 현장에 적용할 수 있는 실무 위주의 교육에서 나옵니다. 세계 각국의 호텔과 서비스 업체들이 졸업생들의 탁월한 업무 능력을 주목하게 됐고, 이에 따라 더 많은 우수한 인재가 몰려드는 것이죠.”
SHMS 학장으로 재직하고 있는 에마뉘엘 돈하우저(39·호텔경영학·사진) 교수의 설명. 그는 “중국, 싱가포르, 태국, 독일 등에 지사를 두고 적극적으로 입학생을 유치하고 있는 점도 학교의 수준을 높이고 있다”고 설명했다.
“현재 우리 학교 학생의 국적은 60개국을 넘습니다. 다른 스위스 호텔학교뿐 아니라 세계 어떤 학교보다도 넓은 문화적 다양성을 확보한 거죠. 이 점은 서비스업 종사자들에게 있어서 특히 중요합니다. 여러 나라에서 온 친구들과 교류하고 공부하며 문화적 차이를 느낀 이들이 훗날 세계인의 문화적 다양성을 감안한 맞춤형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으니까요.”
그는 특히 한국 학생들이 열정과 탁월한 역량으로 교수진과 다른 나라 출신의 학생들에게 강한 인상을 심어 주고 있다고 말했다.
“한국 학생들은 자체적인 위계질서가 있어서 선배들이 후배들을 엄격하게 지도하며 조언과 격려를 아끼지 않습니다. 그러면서도 다른 나라에서 온 학생들에게도 배타적이지 않은 점이 돋보이죠. 대체로 사교적이라고 할까요. 성취 동기가 높은 한국 학생들이 학업에서 높은 성취를 나타내는 것은 당연합니다. 학업에 최선을 다하지 못한 채 중도 포기하는 안타까운 사례도 더러 있습니다만….”
]<2>日공학원 만화애니메이션科
만화애니메이션과의 전용 실습공간인 만화디자인관. 3D 컴퓨터그래픽 설비, 디지털 편집장치, 고성능 음향기기 등 최신 기자재가 가득하다. 도쿄=박원재 특파원 |
‘아톰’ ‘마징가Z’ ‘캔디’….
한국의 386세대는 흑백 TV 앞에 모여 앉아 만화영화 캐릭터의 사연에 웃고 울고 가슴 졸이며 어린 시절을 보냈다.
‘괴로워도
슬퍼도 나는 안 울어’로 시작되는 캔디의 주제가는 당시 초등학생 소녀들에게 ‘국민동요’와 같은 대접을 받았을 정도.
비슷하거나 조금 앞선 시기에 자란 일본의 어린이들도 그랬다. 일본의 중년 남성들이 어렸을 때 ‘무쇠팔 무쇠다리 로켓 주먹’의 마징가Z는 ‘우리들을 위해서만 힘을 쓰는 착한 로봇’의 상징이었다.
그러고 보면 일본제 만화영화는 알게 모르게 한국과 일본의 어린이를 정서적으로 이어 준 끈이었는지도 모른다.
일본 도쿄(東京) 오타(大田)구의 번화가인 가마타(蒲田) 역 근처에 자리잡은 일본공학원 전문학교(www.neec.ac.jp). 2년제 직업학교인 이곳은 영상 소프트웨어 분야의 인력양성 기관으로 업계에서 명성이 높은 곳이다.
특히 2000년 4월 개설된 종합애니메이션과(2006년 4월 학기부터 만화애니메이션과로 명칭 변경 예정)는 애니메이션에 관한 한 세계 최고를 자랑하는 일본에서도 교육 내용이 충실하기로 정평이 나 있다. 현역 인기 만화가와 애니메이터들이 현장에서 쌓은 경험을 토대로 실습 위주로 가르쳐 후발 주자라는 단점을 메웠다.
취재차 찾아간 기자에게 전임 교원인 오니시 도모유키(大西智之) 씨는 브리핑에 앞서 우선 시설부터 둘러볼 것을 권했다. 우중충한 실습실과 강의실 몇 곳 정도를 예상했던 기자는 ‘만화디자인관’에 들어선 순간 화려한 내부 인테리어와 첨단 설비에 압도됐다.
7층짜리 건물 전체가 학생들의 실습 공간으로 꾸며진 것은 물론 웬만한 애니메이션 제작사를 뺨칠 만큼 최신식 장비들이 가득했다.
7층은 아틀리에, 6층은 컴퓨터디자인 실습, 5층은 애니메이션 실습, 4층은 만화 작업, 3층은 디자인 스튜디오, 2층은 컴퓨터그래픽 작업…. 1층 로비 한편의 스튜디오엔 3D 컴퓨터그래픽(CG) 및 디지털 편집장치, 음향설비가 두루 갖춰져 있었다.
층마다 휴식 공간을 겸해 조성된 갤러리 라운지엔 학생들이 창안한 기기묘묘한 캐릭터가 가득 들어서 저마다 솜씨를 뽐냈다.
만화애니메이션과에 등록한 학생은 1학년 300명, 2학년 320명을 합해 620명.
특정 학과만을 위해 건물 전체를 할애한 것은 만화 애니메이션과를 간판으로 키우려는 학교 측의 의지를 나타낸 것이라고 오니시 씨는 설명했다.
실습실에선 2학년생들이 2월 말 발표할 상영시간 10분 분량의 졸업기념 작품을 만드느라 분주했다. 20명이 한 조가 돼 기획안 작성과 캐릭터 고안, 스토리 설정 및 전개 등 애니메이션 제작의 모든 과정을 나눠서 해결하는 집단창작 방식이다.
애니메이션 작업팀은 손으로 그린 그림을 동화상으로 바꾸느라 마우스를 부지런히 놀렸고, 디지털 작업팀은 등장인물과 배경에 색깔을 입히고 음향을 삽입하는 작업에 몰두했다. 완성된 작품들이 3월 말 열리는 도쿄 국제 애니메이션 페스티벌에 출품되기 때문인지 팀원들은 수시로 머리를 맞대며 작품 콘셉트를 상의했다.
만화 전공의 2학년생인 다마나 아오이(玉名葵) 씨는 “다른 만화학교에서는 그림만 잘 그리면 된다는 식인데 이곳에선 매주 한 차례 시나리오 작가의 강의가 개설돼 있어 작품의 수준을 높일 수 있다”고 말했다.
만화애니메이션과는 만화, 애니메이션, 캐릭터 디자인 등 3가지 전공으로 나눠져 있다.
학생은 2학년의 경우 만화 80명, 애니메이션 100명, 캐릭터 디자인 140명이다. 첫 학기엔 전공을 불문하고 세 분야의 기초 과목을 모두 소화한 뒤 2학기부터 전공을 정하게 된다.
“학생들에게 최대한의 선택권을 주고 인접 분야의 지식도 폭넓게 쌓도록 하자는 취지에서 시작한 제도입니다. 입학할 땐 애니메이션 전공을 희망했다가 나중에 캐릭터 디자인 등으로 관심영역이 바뀌는 학생이 적지 않거든요. 만화와 애니메이션은 서로 통하는 만큼 두 분야의 지식을 함께 배워 두는 것이 나중에 현업에서 일할 때 도움이 됩니다.”
학교 측이 첨단장비 못지않게 자랑거리로 내세우는 게 실력파 강사진이다. 전임 교원 8명 외에 외부에서 초빙된 50여 명의 강사는 일본의 ‘아니메 마니아’(만화광) 사이에 인기가 높은 전업 만화 작가와 애니메이션 제작업체의 베테랑 전문가로 구성됐다.
애니메이션 감독 7명, 만화가 11명, 캐릭터 디자이너 4명을 비롯해 일러스트레이터, 촬영감독, 배경미술 전문가, 컬러코디네이터 등이 과목별로 포진해 있다. 작품의 깊이를 더하기 위해 심리학을 전공한 카운슬러와 커뮤니케이션 전문가까지 초빙했다.
애니메이션 전공 1학년에 재학 중인 허남주(許男朱·23·여) 씨는 어렸을 때부터 동경했던 애니메이터의 꿈을 이루기 위해 건국대 영문과를 휴학하고 일본행을 택한 케이스. 먼저 입학한 친구의 소개로 들어왔는데 1년간 이 학교에 다니면서 선택을 잘했다는 생각을 여러 번 한다고 말했다.
“강사들이 만화의 기초부터 가르쳐 주기 때문에 기본적인 소질만 있으면 초보자라도 충분히 따라갈 수 있어요. 포토샵을 포함해 여러 가지 디지털 장비를 활용하는 방법을 배운 것도 유익했습니다.”
그는 “도쿄의 물가가 비싸서 유학 생활이 경제적으로 부담이 크지만 애니메이션에 관심이 있는 젊은이라면 도전해 볼 만하다”고 말했다.
도쿄=박원재 특파원 parkwj@donga.com
▼취업 맞춤형 커리큘럼▼
올해 3월 일본공학원 전문학교의 만화애니메이션과를 졸업하는 한국인 학생은 남녀 각각 1명씩 모두 2명. 1학년엔 한국 학생 3명이 재학 중이다.
졸업반의 2명은 지난해 11월경 일찌감치 일본 애니메이션 업체 취업이 확정됐다. 다만 현장에서 실력으로 인정받는 시스템이라 보수는 그리 많지 않다고 한다.
▽관련업계 제휴로 취업 유리=졸업생들이 가장 많이 진출하는 직종은 애니메이터. 디지털 촬영 및 편집, 제작진행(프로듀서), 컴퓨터그래픽(CG) 디자이너로도 취업한다. 취업률은 애니메이션 전공이 90%대로 가장 높고 만화와 캐릭터 디자인은 70% 선. 요즘은 게임소프트 제작 업종이 각광을 받으면서 이 학과에서도 캐릭터 디자인의 인기가 높아지는 추세. 만화 전공 학생들은 전업작가를 희망하는 경우가 많아 상대적으로 취업률이 낮다.
외부 강사들이 평소 눈여겨본 학생을 자신과 연관이 있는 업체에 추천하는 사례가 많은 것도 이 학교의 강점. 애니메이션 제작사, 디지털영상 분야의 인재 파견회사 등과 제휴 관계를 맺고 있어 취업에도 유리한 여건을 갖고 있다.
▽실습60% 강의40%로 교육=주임 교원인 가와이 마사타카(川合正剛·30) 씨는 “졸업 후 곧바로 현장에 투입돼도 제 몫을 다하는 인재를 키운다는 게 교육 방침”이라며 “교육 내용은 실습 60%, 강의 40%로 배분된다”고 소개했다.
일단 입학하면 ‘만화의 기본은 그림 그리기’라는 원칙에 따라 데생부터 배우고, 이어 누드를 그리는 과정도 이수해야 한다. 캐릭터에 생명력을 불어넣는 노하우를 습득하려면 인체 묘사가 필수라는 취지에서다. 1학년 때 전공별로 각종 장비의 활용법을 익히고 다양한 실습 경험을 쌓는 데 주력한다면 2학년 때는 실제 작품 제작이 중심이 된다. 커리큘럼상의 실습 시간이 주당 18시간으로 적지 않지만 방과 후 작업까지 합하면 실습 비중이 일본에서도 가장 높은 수준이라는 게 학교 측의 설명.
이론도 소홀히 다루지 않는다. 특히 ‘작품 및 작가 연구’ 수업에서는 공상과학, 액션, 순정 등 장르별 거장들의 작품을 분석해 연출 기술과 특수효과, 화면 구성 등의 기법을 가르치기 때문에 학생들의 선호도가 높다. 만화가 또는 애니메이터로 데뷔할 때 시행착오를 줄일 수 있다는 것이다.
여름방학엔 미국 로스앤젤레스로 수학여행을 떠나 세계 최대의 애니메이션 이벤트인 ‘아니메 엑스포’에 참가한다.
▽시험없이 서류전형으로 신입생 선발=추천 입학원서는 매년 10월초, 일반 입학원서는 11월 초부터 접수한다. 입학시험을 치르지 않고 서류 전형만으로 합격자를 결정한다. 물론 외국인 학생들은 일본어로 수업을 받을 수 있는 능력이 필수. 1년간 현지 어학연수를 마친 뒤 입학하는 게 통상의 관례다.
학비는 입학할 때 입학금 20만 엔, 1학기 수업료 30만 엔, 실험실습비 10만 엔, 기타(시설설비비) 등을 합해 70만2670엔을 내야 한다. 2학기부터는 수업료와 실험실습비 등으로 약 50만 엔이 든다.
도쿄 외곽 하치오지(八王子)에 있는 일본공학원 전문학교의 하치오지 캠퍼스에도 비슷한 커리큘럼으로 운영되는 만화애니메이션과가 설치돼 있다.
도쿄=박원재 특파원 parkwj@donga.com
▼“교육의 질 日서 최고 자부…한국 유학생들 환영합니다”▼
“역사는 짧지만 교육의 질은 ‘일본 1등’이라고 자부합니다. 우리 졸업생들의 실력이 뛰어나다는 사실은 애니메이션 업계에서도 인정받고 있어요.”
가와이 마사타카(사진) 만화애니메이션과 주임 교원은 “다른 학교에선 찾아보기 힘든 톱클래스의 강사진과 만화에 대한 열정으로 가득 찬 학생, 최신 장비가 조화를 이룬 게 일본공학원 전문학교의 매력”이라며 학과 자랑에 열을 올렸다.
참신한 감각이 중시되는 특성을 반영한 듯 전임교원 9명은 모두 20대 후반∼30대 초반의 젊은 사람이다. 학생들과도 스승과 제자의 관계라기보다는 선후배처럼 격의 없이 어울린다.
“산학협동 차원에서 애니메이션 제작사들이 각종 자료를 제공하는 것은 물론 전문가들을 강사로 파견해 줍니다. 학생들에게 현장실습 기회를 제공하겠다는 업체들의 제의도 늘고 있습니다.”
가와이 주임은 1990년대 초반 한국에서도 크게 히트한 ‘포켓 몬스터’를 비롯해 여러 작품의 원화(原畵) 제작에 참여한 실력파. 외부 강사 자격으로 이 학교 강단에 섰다가 차세대 애니메이터를 양성하는 일에 흥미를 느껴 2년 전 전임 교원이 됐다.
그는 “일본의 현역 애니메이터 중에는 작품 제작에 매달리느라 자신의 뒤를 이을 후배 키울 시간이 없는 것을 안타까워하는 이가 적지 않다”며 “일본공학원의 교육시스템은 이런 현장의 욕구를 실제 직업교육으로 연결시킨 바람직한 모델”이라고 설명했다.
일본공학원 측은 한국, 대만 등 인접국 학생들을 본격적으로 유치하기 위해 지난해 4월 국제교류센터를 만들었다. 가와이 주임도 지난해 12월 경기 고양시 한국국제전시장(KINTEX)에서 열린 ‘세계 전문교육기관 엑스포(WPEE)’에 참가해 만화애니메이션과의 장점을 소개한 바 있다.
“지금까지 가르친 한국 학생들은 배우려는 열의가 강하고, 손놀림도 빨라 언젠가 대성할 재목이 많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습니다. 다만 유학 중 생활비 조달이 쉽지 않은 데다 일본 프로덕션의 초봉도 넉넉하지 않은 게 마음에 걸려요.”
그는 “한국에는 애니메이션을 전문으로 가르치는 교육기관이 일본에 비해 적다고 들었다”며 “외국에서의 힘든 여건을 각오하고 만화에 대해 열심히 배울 자세가 돼 있는 학생이라면 최선을 다해 가르치겠다”고 다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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