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예나 응용과학학교의 레이저광학과 학생이 레이저 기기를 이용해 기계 부품을 만들고 있다. 다양한 맞춤형 기계를 제작할 수 있도록 정밀 레이저 계측 교육에 심혈을 기울이고 있는 이 학교의 졸업생들에게는 독일 기업들의 취업 ‘러브콜’이 끊이지 않고 있다. 예나=유윤종 기자 |
“광학 분야의 첨단 교육을 알기 위해 저희 학교를 찾았다면 딱 맞히신 겁니다. 저희 학교의 광학 분야는 유럽을 넘어 세계에서 최고 수준을 자랑하니까요.” 이 학교 과학기술학부(SciTec)의 안드레아스 슐라이허 학장이 자신에 넘친 표정으로 기자를 맞았다.》
▽기업들 지원 힘입어 특화 육성=FH예나는 독일 통일 직후인 1991년 구 동독 튀링겐 주 예나에 설립된 대학 과정의 기술 전문인력 양성 학교. 경영학부 전자기술학부 기계제조학부 기초과학부 등 8개 학부에 4600여 명의 학생이 다니고 있다.
이 중에서도 ‘빛’에 직접 관련되는 학과는 과학기술학부에 속한 7개 학과 중 검안학과(Optometry) 레이저광학과(Laser & Optotechnology) 등 두 개 학과다.
학생 수로는 전체의 5%인 230명에 불과하지만, 이 학교가 설립된 직후부터 지역 내 기업들의 환영을 받으며 육성되고 있는 ‘특화 분야’로 꼽힌다.
먼저 레이저광학과의 ‘스타’인 옌스 블리트너 교수의 연구실로 안내됐다. 레이저를 이용한 계측과 성형(成形)을 이용해 다양한 소재의 정밀부품 제작이 가능하다.
다양한 ‘맞춤형’ 기계를 오차 없이 제작할 수 있게 해 주어 독일 곳곳의 기업에서 ‘러브 콜’을 받고 있다.
이어 미하엘 게브하르트 검안학과 학과장이 기자를 검안학과 실험동(棟)으로 안내했다.
검안학이란 안경 등 시력 보조 장치가 필요한 사람의 눈 특징을 파악해 가장 적절한 보조 장치를 마련해 주기 위한 학문. ‘안경학’과도 통하지만, 장비의 제조와 맞춤 외에 생체조직인 ‘눈’의 특성을 파악하는 생리학적 연구에도 많은 시간을 할애해야 하는 분야다.
콘택트렌즈 실험실, 안구생리학 연구실, 굴절광학 연구실 등 특화된 연구실에서는 학생들이 제각기 고객과 검안기사 역할을 맡아 측정 실험에 한창이었다.
▽안경원 개업에서 첨단기기 설계까지=“매 시간 연구실에 들어오기 전에 어떤 목적과 과정으로 실험을 진행할 것인지 철저한 계획을 세워 두어야 합니다. 그러지 않으면 가혹한 질책을 받기 십상이죠.”
유학생 서재명(27·디플롬 과정 3학기) 씨는 “국내 대학 안경학과 과정과 비교하면 1학년 때 화학, 생화학, 수학 등 관련 기초과학 실력을 탄탄히 다져 놓은 뒤에 실무 실습에 들어가는 점이 큰 차이”라고 설명했다.
빡빡한 수업 과정에도 불구하고 이 학교 검안학과가 인기를 끌고 있는 것은 100%에 가까운 취업률 때문.
카를 차이스 예나, 예놉티크, 쇼트 등의 지역 내 광학회사뿐 아니라 광학기술을 필요로 하는 독일 산업계가 졸업생을 ‘모셔 가다시피’ 스카우트해 가고 있다.
서 씨는 “졸업생 중 자동차 헤드라이트 설계 분야에서 일하는 사람도 상당수인 점을 생각하면 진로가 다양함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라며 웃음 지었다. 안경원을 개원하는 졸업생도 상당히 많다.
▽학비 부담 적지만 독일어 ‘필수’=최근 독일 대학들은 학제의 전환을 맞고 있다. 유럽 내 학제를 통일하기 위한 각국 교육장관들의 ‘볼로냐 선언’에 따라 학사(Bachelor)제를 도입하고 있는 것. 최근까지 독일 대학들은 졸업생에게 석사(Magister) 학위를, 직업학교는 디플롬 학위만을 수여해 왔다.
이에 따라 3년∼3년 반 수업 후 ‘디플롬’ 학위를 받는 2004년 이전 입학생과 달리 2005년 입학생부터는 4년 과정을 이수한 뒤 ‘학사’ 학위를 받게 된다.
독일의 대부분 지역처럼 FH예나 등 튀링겐 주 지역의 대학도 학기당 100유로(약 12만 원) 정도의 기본적인 등록금만 내고 있다.
서 씨는 “사람마다 차이는 있겠지만 혼자 유학생활을 할 경우 월 500유로(약 60만 원) 정도면 큰 무리가 없다”고 말했다.
독일은 주마다 대학 등록금을 포함한 교육 정책을 독자적으로 결정하며 튀링겐 주의 경우 2008년까지 등록금 인상은 없고 그 이후 학기당 550유로(약 66만 원) 정도가 될 것으로 보인다.
한국 학생이 검안학과에 입학하려면? 독일의 수능시험에 해당하는 아비투어(Abitur)를 치러 합격해야 하며 이 밖에 독일어 시험(DSH 또는 TestDaF) 합격증도 필요하다.
특히 국내외 안경점 등 광학 관련 분야에서 3년 이상의 실무 경력을 갖춰야 한다는 점도 염두에 둬야 한다.
게브하르트 학과장은 “FH예나의 검안학과에서는 광학기기에 사용되는 광학 지식 외에 눈과 관련된 생화학적 지식을 광범위하고도 깊이 있게 연구하므로 광학기계 분야나 개인별 눈의 특성을 폭넓게 고려하는 안경점 개업 등 다양한 분야의 진로를 설계할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예나=유윤종 기자 gustav@donga.com
▼동독은 망해도 예나는 살았다▼
“최고급입니다. 카를 차이스 렌즈니까요.”
국내 안경점에서도 자주 들을 수 있는 ‘품질 보증 선언’이다. 세계적 전자회사에서 개발된 최신 디지털 기기에도 ‘카를 차이스 렌즈 사용’이란 문구가 붙어 있는 것을 흔히 볼 수 있다. 그러나 세계 정상의 광학기기 회사 카를 차이스의 역사가 옛 동독 튀링겐 주에 속한 ‘광학의 수도’ 예나 시의 역사와 함께한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그다지 많지 않다.
카를 차이스사의 역사는 인근 바이마르 출신의 광학기술자 카를 차이스가 1847년 예나에 현미경용 렌즈 공방을 설립하면서 시작됐다. 그러나 제2차 세계대전이 독일의 패전으로 막을 내리면서 이 세계 정상의 광학기기 회사도 분단 시대를 맞게 됐다. 폭격으로 무너진 소련군 점령지역 예나의 카를 차이스사가 복구를 서두르는 동안 서독지역으로 피란한 종업원들은 루르공업지대의 오버코헨에 새로운 ‘카를 차이스’를 설립했다. 두 회사는 냉전기간에 각각 공산권과 서방을 대표하는 광학회사로 튼튼히 자리 잡았다.
1990년 동서독이 통일되자 두 회사의 통합 문제가 현안으로 떠올랐다. 양사의 대표들이 만나 상표권 문제 등을 논의했지만 결론을 낼 수 없었다. 그러던 중 옛 동유럽권의 경제난으로 기존 고객의 대부분을 잃은 예나의 ‘동쪽’ 카를 차이스를 1996년 서쪽 회사가 인수하면서 문제는 자연스럽게 해결됐다.
비록 독일 통일과정처럼 동쪽이 서쪽에 흡수 합병되는 모양새를 띠었지만 고유의 기술을 꾸준히 축적해 왔던 예나의 카를 차이스는 오늘날 ‘카를 차이스 예나 주식회사’라는 별도법인으로 현미경을 비롯한 특수 정밀광학기기 제조 분야에서 최고의 기술력을 자랑하고 있다. 이와 함께 1884년 창립된 광학유리 전문회사 ‘쇼트’, 예나의 풍부한 광학인력을 바탕으로 1991년 창립된 신생 광학기기회사 ‘예놉티크’도 광학도시 예나의 명성을 굳건히 하고 있다.
2005년 10월 독일통일 10주년을 맞아 경제전문지 ‘한델스블라트’ ‘비즈니스위크’ 등은 일제히 예나 시에 대한 특집기사를 게재했다. 옛 동독의 공업지역 대부분이 경쟁력을 상실하고 높은 실업률에 시달리고 있지만 예나만은 광학기술의 첨단 경쟁력과 대학사회가 탄탄히 결합해 고소득과 높은 성장률로 풍요를 누리고 있다는 내용이었다. 특화된 전문 기술력을 보유하고 있던 이 도시는 통일의 파고에 위축되지 않고 오히려 이를 기회로 활용할 수 있었던 것이다.
<4>‘크리스틴 발미 국제학교’
“아름다움이란 피부 두께에 불과하다.”
윌리엄 셰익스피어의 말이다. 진짜 아름다움은 겉으로 보이는 피부 아래에 감춰져 있다는 뜻이다.
뉴욕 맨해튼 중심부에 자리 잡고 있는 ‘크리스틴 발미 국제학교’. 미국 최초의 피부 관리(skin care) 교육기관이다. 피부 관리의 선구자로 꼽히는 크리스틴 발미가 1965년 설립한 이후 수천 명의 피부관리사를 배출한 유서 깊은 직업학교다.
11일 취재를 위해 크리스틴 발미 국제학교를 방문했을 때 어머니를 이어 학교를 운영하고 있는 마리나 발미 대표는 인터뷰에 앞서 기자를 실습실로 안내했다.
학교를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직접 피부 관리 서비스를 경험해 볼 필요가 있다며 기자를 침대에 눕도록 한 뒤 안면 피부 관리를 받도록 했다. 4월 졸업을 앞두고 있는 학생 윌슨 리(30) 씨가 ‘실습’에 나섰다.
그는 클렌징(얼굴을 깨끗하게 닦는 것)-토너(피부 깊숙이 박힌 더러운 물질을 닦아 내는 것)-얼굴 마사지-마스크(물을 적신 면으로 얼굴을 덮는 것)-피부 보호 크림 바르기 등을 익숙한 솜씨로 했다. 원래는 1시간 넘게 걸리지만 기자에게는 30분으로 줄인 안면 피부 관리를 했다. 짧은 순간이지만 피부가 촉촉해지면서 기분이 좋아졌다.
중국계 미국인인 리 씨는 최근 뉴욕에서 부쩍 늘고 있는 스파에서 피부관리사로 일하는 것이 목표. 지난해 12월부터 시작했지만 타고난 손재주가 있어 배우는 속도가 빠르다는 것이 학교 측의 평가다.
리 씨는 “새로운 기술을 배울 수 있어 좋다”며 “일단 졸업 후 뉴욕 주가 주관하는 피부관리사 면허시험에 합격하는 것이 목표”라고 말했다.
현재 학생이 200명 정도인 이 학교에서 졸업장을 받기 위해서는 이론과 실기 등 600시간의 강의를 이수해야 한다. 정규 과정에 등록하면 대개 4개월이 걸린다.
역사가 오래됐고 피부 관리에서 가장 앞서간다는 높은 지명도 때문에 캘리포니아 주를 비롯한 미국 내 여러 주는 물론 한국 일본 중국 등에서 건너온 학생도 상당수에 이른다.
리스틴 발미 국제학교의 장점은 체계적인 이론교육과 함께 크리스틴 발미의 명성 때문에 항상 ‘실제 고객’들을 상대로 하는 현장감 넘치는 교육이 가능하다는 점이다.
학생들의 ‘실습 대상’이 되려는 지원자가 항상 폭주해 인기있는 저녁시간대에 고객 자격으로 피부 관리 실습시간에 참여하기 위해서는 대개 한 달을 기다려야 한다.
새로운 기술과 기계가 쏟아져 나오고 있는 피부 관리 분야에서 늘 학생들에게 첨단 기술을 가르치고 있다는 것이 이 학교의 강점으로 꼽힌다.
기자가 방문한 날 주임강사인 엘리아스 헤르난데즈 씨가 치료 7일째인 고객을 대상으로 피부 관리 분야에서 어려운 기술로 분류되는 피부 박피(peeling) 강의를 진행하고 있었다.
헤르난데즈 씨는 “다른 피부 관리 학교의 주요 강사진 대부분은 우리 학교 출신”이라며 “계속 새로운 기술과 치료법을 연구해 오고 있기 때문에 피부 관리에 관한 한 우리가 세계 최고라고 자부한다”고 말했다.
학비는 4개월 정규 과정을 마치는 데 6000달러(약 600만 원). 결코 싸지 않은 수준이다.
졸업생들은 주로 스파나 네일업소에서 피부관리사로 일한다. 최근에는 피부과가 그 영역을 넓혀가면서 병원에서 일하는 졸업생도 부쩍 늘었다.
방주석 뉴욕 한인네일협회장은 “미국 피부 관리 업계에서는 크리스틴 발미 국제학교를 졸업했다고 하면 대체로 교육을 제대로 받았다고 인정해주기 때문에 이 학교를 졸업하면 일자리 구하기가 쉽다”고 말했다.
크리스틴 발미 국제학교는 최근 해외 진출에도 적극적이다. 창업자의 모국인 루마니아에 이어 인도와 파키스탄에 분교를 설립했으며 이를 계속 확대하는 방안을 추진 중이다.
영어에 익숙지 않은 학생들을 위해 맨해튼 학교에는 이론 강의에 한해 각각 한국어와 스페인어로 진행하는 한국반과 히스패닉반이 별도로 있다.
뉴욕=공종식 특파원 kong@donga.com
▼마리나 발미 대표가 보는 뷰티 산업▼
“크리스틴 발미 국제학교는 미국에 처음으로 유럽 스타일의 피부 관리를 소개한 학교라는 점에서 자부심을 가지고 있습니다.”
학교 설립자인 크리스틴 발미의 유일한 혈육인 마리나 발미(57) 대표는 “어머니가 학교를 세우기 전까지 미국에는 피부 관리 학교가 전무했다”며 이같이 말했다.
크리스틴 발미 국제학교는 유럽식 피부 관리 교육을 도입하면서 동시에 미국식의 표준화 개념을 접목시켰다. 고객들이 언제 어디서나 똑같은 피부 관리 서비스를 제공받을 수 있도록 교육 내용을 표준화한 것.
600시간으로 정해진 커리큘럼도 이 같은 틀 속에서 마련됐다. 현재 뉴욕 주가 피부관리사 면허시험을 치르기 위해서는 600시간 교육을 이수해야 한다는 점을 의무화한 것도 크리스틴 발미 국제학교의 영향이 컸다고 한다.
발미 대표는 피부 관리를 포함한 뷰티 산업의 장래를 밝게 봤다.
“현대인들은 매일 컴퓨터 등 기계와 많이 상대하면서 일을 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인간의 손길(human touch)을 원하고 있지요. 또 인간의 본성은 누구나 다른 사람들이 서비스해 주는 것을 좋아합니다. 그런 면에서 전문적인 기술을 갖춘 사람이 피부 관리를 해 주면 기분이 좋아지기 마련이지요.”
이 밖에 여유 있는 노인층이 증가하고 있는 것과 그동안 피부 관리의 사각지대였던 남자고객이 최근 늘고 있는 것도 새로운 기회라는 것이다.
발미 대표는 “뉴욕에서는 피부 관리 고객 중에서 남성 비중이 20%를 넘는다”고 말했다.
크리스틴 발미 국제학교는 2008년에 새로운 비상을 준비 중이다. 렌트비가 비싼 맨해튼에 자리 잡고 있어 비좁은 학교를 더 넓은 장소로 옮겨가면서 커리큘럼도 대폭 확대한다는 계획을 세워 놓고 있다.
뉴욕=공종식 특파원 ko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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