鶴山의 草幕舍廊房

대한민국 探訪

화성 행궁과 수원 성곽

鶴山 徐 仁 2006. 5. 11. 19:21
화성 행궁과 수원 성곽
  2006/05/04 01:18
김신묵      

유네스코 문화유산으로 등록된 수원 화성의 서장대(西將臺)가 지난 5월 1일 새벽에 방화로 인하여 소실되었다

5억 5000만원을 들여 오는 10월까지 복원키로 한다지만 이미 그 문화재적 가치는 소실된것이 아닌가 생각이 든다.

즉, 진품은 불에 타버리고 복제품이 들어선다는 얘기가 아닌가??

안타까운 마음에 얼마전 화성행궁과 수원성을 돌아본 이야기를 정리해 본다.

 

 

 

■ 수원 화성

 

조선 태종때 도호부로 승격된 수원은 한성 4진의 하나였다.

한양을 중심으로 동서남북 방향인 광주, 강화, 수원, 개성에 진을 설치하여 수도 한양을 보위케 한것이다.

그 수원땅을 지키고 있는 화성(사적 제3호)은 팔달산(143m)을 중심으로 하여 총길이가 5,700m에 달한다.


화성의 축성은 정조의 한과 효심에서 비롯됐다.

1762년 영조 38년 윤 5월21일 사도세자 (장조:고종때 추존)는 당쟁으로 인하여 한여름 뒤주 속에 갇혀 8일만에 죽었다.

 

사도세자의 아들 정조는 당시 11세였는데 그후 할아버지 영조의 뒤를 이은 정조는 즉위 13년만에 부친의 고혼을 위로키 위해 묘를 양주 땅 배봉산(지금의 서울시 전농동)에서 수원 화산으로 옮기고 수원을 자신이 이상으로 꿈꾸는 신도시로 건설하고자 정조 18년 정월부터 20년 9월까지에 걸쳐 성곽을 축성하였다.


화성은 단순한 하나의 '성'이 아니다.   역사적 의미와 함께 건축학적으로도 귀중한 문화유산이다.

화성은 조선 성곽제도의 최고 완성형이다. 한국성곽 발달사에서도 가장 중요한 비중을 차지 한다.

이 성은 석성과 토성의 장점만을 살려 축성됐다.

화성축성에 매달린 선조들은 한국성곽의 약점을 보완하기 위해 중국과 서양의 축성술을 본뜨기도 했다.

 

이 성에 관련된 사항은 "화성 성역의궤"에 자세히 기록돼 있다. 화성의 건축과 관련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이 바로 다산 정약용이다.

당시 30세였던 다산은 왕실서고 규장각에 비치된 첨단서적들을 섭렵하고 중국에서 들여온『고금도서 집성』5,000권을 참조해 새로운 성곽을 설계했다. 정약용은 거중기를 고안하기도 했다.

 

기록에 의하면 이 성에는 성문을 비롯, 48개의 시설물이 있었지만 현재 복원된 것을 포함해 41개의 시설물이 남아 있다.

보물 제402호인 팔달문을 비롯해 팔달산을 둘러싼 시설 가운데 가장 높은 서장대, 화포를 감춰두고 적군에게 총을 쏘도록 축조된 남포루, 선조들의 정취가 가득한 방화수류정 등 200년전 건물엔 조선의 문화 향기가 가득하다.

 

화성은 1997년 12월4일 창덕궁과 함께 유네스코(UNESCO)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됐다.

 

최근에는 수원시 화성사업소를 설립하여 화성행궁과 수원성 일대를 문화유산으로 제대로 관리하고 관람객들에게 편의를 제공하기 위하여 여러가지 제도개선과 보완, 발전을 모색하고 있으며 나름대로 성과를 거두고 있던 중 이런 화재사고를 겪고보니 참으로 민망스럽다.

 

 

<화성행궁을 관람시 미리 예약, 요청하면 전문 해설사의 설명을 들을 수 있다>

 

<요일별로 시간을 정하여 행궁 앞마당에서는 각종 이벤트가 벌어진다... 궁중무술 시범중~>

 

<수원 화성의 약도... 화성행궁에서 시작하여 4,5,6,7,8,9,10,11번 연무대까지 둘러본 이야기....>

 

화성행궁 앞에서 무술시범을 지켜보고 전문해설사를 따라 행궁을 돌아보는데는 약 1시간 30분 정도 소요된다.

그후 팔달산으로 올라 순환도로를 따라 걸어서 성곽을 한바퀴 돌아보았다.

아쉽게도 경기도청 방향으로 돌지 못하고 바로 화서문으로 가다보니 이번에 불에 탄 서장대를 빼먹고 돌아보게 되었다.

 

<수원 성곽.... 걸어서 돌아볼 수 있도록 산책로가 잘 조성되어 있다...물론 행궁과 성곽 모두 입장료를 징수한다>

 

화서문(華西門)은 수원 화성의 서쪽문으로 보물 제 403호이다.

돌로 쌓은 홍예문 위에 문루를 세웠고 바깥쪽으로는 한쪽이 열린형태의 옹성을 둘른 모습이다.

북쪽 옆으로 서북공심돈이 있는데 화서문과 함께 어우러져 아름다운 풍광을 보여준다.

공심돈이란 일종의 망루로 적의 동태를 살피는 곳인데 화성에는 2개소가 세워져 있다.

 

<화서문과 서북공심돈>

 

장안문(長安門)은 수원성의 북쪽문으로 국가의 안녕을 상징하는 뜻에서 장안문이라고 하였으며,

성문의 바깥쪽에 반원형의 옹성을 쌓은 특이한 구조를 갖추고 있다.

지금도 이 지역을 수원의 북문이라고 일상적으로 부르고 있다.

 

<장안문(長安門)...도로 중앙에 고립되어 있었으나 고가교을 설치하여 성곽과 연결시켰다>

 

화성을 남북으로 흐르는 수원천위에 북쪽과 남쪽에 하나씩의 수문을 세웠는데 북수문을 화홍문(華紅門)이라고도 한다.

화홍문(華紅門)에서 華는 화성을 뜻하고, 紅은 무지개를 뜻하는 글자로 장쾌한 물보라가 생긴다해서 붙인 이름이다.

자연하천 위에 성문을 세운 例는 세계적으로도 드문 경우라고 한다.

 

<화홍문(華紅門)....>

 

방화수류정(訪花隨柳亭)...

성곽을 따라 망루나 성문, 포대등 군사시설들이 이어지다가 느닷없이 풍류를 즐기는 방화수류정이라니?

사실 이곳은 원래 동북각루로 지휘소와 망루의 역할을 하는 4개의 각루중 하나이며 가장 아름다운 곳으로 손꼽히기에 '꽃을 좇고 나비를 따라 가는곳'이라해서 방화수류정이라고 부르는 곳이다.

그러나 기실은 군사적인 목적을 아름다운 외관에 숨긴채 멋스러움으로 지어진 곳인줄 누가 알리오?

주변의 용연과 북암문, 화홍문과 어울려 화성에서 가장 아름다운 곳이라 손꼽히고 있다.

 

<방화수류정(訪花隨柳亭)...>

 

<용연(龍淵)....버드나무가 심어진 연못이다....>

 

<북암문(北暗門)....暗門이란 성곽의 비밀통로 같은 곳이다....>

 

<수원성의 멋진 모습....>

 

 

 

 

■ 서장대(西將臺)

 

화성에서 제일 높은 팔달산에 군사를 총 지휘 할 수 있는 장대를 세웠으니 바로 서장대(西將臺)이다.  이름하여 화성장대

그리 높지는 않지만 (팔달산 143m) 화성 전역은 물론 사방 백리까지 보이는 곳이라고 한다.

그만큼 군사적으로 중요한 위치였으며 또 그만큼 공들여 지었기에 총리대신 채제공이 상량문을 쓰고 정조임금이 화성장대라고 친필로 편액을 써서 걸었던 곳이다.

 

그 화성장대, 즉 서장대가 이번에 불타고 만 것이다.

 

 

 

 

 

 

 

 

 

                                                     불타기 전의 서장대(西將臺) 모습 ☞

 

 

<불타버린 서장대(西將臺)의 모습>

 

 

 

 

 

 

<Tip... 수원은 수원갈비로 유명한 곳이다.    강추!!... 점심메뉴로 갈비정식이 1만6천원인데 훌륭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