鶴山의 草幕舍廊房

精神修養 마당

김구 선생의 어머니

鶴山 徐 仁 2006. 3. 6. 11:21
 
   
   
  서정후님께 드립니다.
     
 
김구 선생의 어머니

 
  백범이 중국으로 망명하여 상해에서 임시정부 일을 보고 있을 때다. 그의 어머니와 아내가 조선에서 나와 함께 지내고 있었다. 특별한 생계수단이 없었던 백범이었던지라, 가정생활이 곤궁하기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그때 백범의 어머니는 이미 환갑이 넘은 연세였으나 중국인들의 쓰레기통을 뒤져 버려진 배춧잎을 주워서 반찬을 만들기도 하였다. 한번은 노모의 생일을 맞았을 때다. 독립 운동가들이 푼푼이 거둬 노모의 생일잔치를 차릴 준비를 하고 있다는 소식을 들은 백범의 어머니께서 그 돈을 자기에게 주면 입에 맞는 음식을 사다 먹겠노라고 하였다. 모두들 그러려니 하고 거둬들인 돈을 노모께 드렸다. 그랬더니 막상 생일이 되자 노모는 음식 대신 권총 두 자루를 내 놓으시면서 말하는 것이었다.
 
“이역만리에서 독립운동을 한다는 사람들이 생일잔치가 다 무엇이냐?”
 
1945년 11월 28일 백범이 조선기독교남부대회에서 연설하는 자리에서 자신의 어머니에 대하여 다음 같이 말하였다.
 
 “제가 외국으로 망명하기 전에 서대문형무소에 15년 형기를 받고 갇혀 있을 때에 어머님과 내 안해(아내)는 한 달에 한 번, 또는 두 달에 한 번 밖에 없는 면회를 하기 위하여 서울 와서 살고 계셨습니다. 그러면서 성경말씀으로 늘 위로해 주셨습니다. 그때 어머님께서 면회 오실 때마다 오셔서 하시는 말씀이
 “내가 자조(자주) 오지 못할찌라도 너는 하나님의 말씀을 잊지 말고 있어야 한다. 그리고 내가 너를 늘 위로해 주지 못하지마는 하나님께서는 늘 위로해 주시리라. 부디 늘 기도하는 중에 지내여라.”
 이렇게 말씀해주시곤 할 때 얼마나 큰 위로가 되고 마음에 든든했는지 알 수 없었습니다.